[기자의눈] 배신하면 죽는다-칼 꺼낸 WT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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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TF, 랭킹제 도입으로 유럽의 반란 꺽는다
얼마전 한국의 모기업에서 직원 1050명을 대상으로 ‘친구에게 하는 거짓말’이라는 흥미로운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답변이 1위를 차지했다. 또 다른 거짓말인 ‘요즘 일이 많아 바빠 죽겠어’라는 말이 전체 응답자의 40%를 차지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말 중에도 이와 비슷한 말이 있다. 바로 혼네(本音)와 타테마에(建前)다. 사전적 의미로 혼네는 사람의 속마음을, 타테마에는 사람의 겉치레를 뜻한다. 시대적으로는 일본의 막부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던 당시의 생활상을 대표하는 말이라고들 한다. 이는 남들과의 화합을 깨뜨리지 않고 살아가려는 일본 국민들의 생존방법이었다고도 해석한다. 앞서 나열한 한국과 일본의 말들은 모두 ‘가식’ 즉, 속 다르고 겉 다른 양국 국민들의 언어특성을 표현한 것이다. 이와 비슷한 상황이 태권도에 적용될 조짐이다. 지난 14일 WTF는 예사롭지 않은 발표를 하나했다. 각국 태권도 선수들을 대상으로 ‘랭킹제’를 도입하겠다는 중대 계획을 조용히 꺼내놓은 것이다. 재밌는 태권도경기와 미디어 효과를 극대화하겠다는 획기적인 기획안이었다. <무카스>의 첫보도를 시작으로 국내 주요언론이 앞다퉈 보도했고, 곧 해외에도 알려지면서 곧장 전 세계 태권도인들의 폭발적인 관심을 이끌어 냈다. 잘만 된다면 태권도 프로리그 도입의 초석이 될 수 있는 실로 놀라운 발상이었다.
하지만 이런 획기적 조치의 이면에 자리한 날카로운 칼날은 잘 알려지지 않았다. 랭킹제 시행의 가장 중요한 핵심 사항으로 첫째가 ‘WTF가 승인한 국제대회 출전 선수에게만 점수를 부여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말뜻은 WTF가 승인하지 않은 대회에 출전한 선수는 랭킹 점수를 획득할 수 없다는 것이다. 직접 언급은 피했지만, 지난 2005년부터 자체단증 발급 움직임을 전개하고, 아디다스 전자호구를 사용해 유럽태권도선수권대회를 강행하고 있는 유럽태권도연맹(회장 갈라파고스,ETU)에 대한 ‘옐로우카드’라고도 볼 수 있다. 조금 지나칠 수도 있겠지만 ‘배신하면 죽는다’라고 WTF가 엄포를 주는 것 같기도 하다. “랭킹제 도입은 유럽연맹의 독단적인 행동에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조치입니다.” 신원을 밝힐 수 없는 WTF의 한 관계자의 말이다. 더 이상 유럽의 반기를 손 놓고 지켜 볼 수 없어 제시한 WTF의 강경책이라는 표현은 정말이지 꼭 들어맞는다.
부모(WTF)가 얼마나 자식(유럽연맹)이 못마땅했으면 회초리(랭킹제)를 빼어들었을까. 때는 지난 2월에 열린 ‘제18회 유럽태권도선수권대회(이하 유럽선수권)’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대회에서 유럽연맹은 아디다스전자호구를 사용해 전 경기를 치렀다. 2006년 9월 11일에 WTF가 공인계약을 체결한 라저스트전자호구가 아니었다. 공인제품이 아닌 아디다스 전자호구 사용에 WTF는 즉각 유럽선수권의 인가를 취소했다. 당연히 대회 직후 유럽선수권에 입상한 선수들의 경력은 휴지조각이 됐다. 이런 가운데도 유럽연맹의 입장은 ‘너희(WTF)들 승인이 무슨 상관있냐. 할 테면 해봐라’였다. WTF는 잠잠해지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유럽연맹의 반란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한술 더 떠서 유럽연맹은 내년 2009년 ‘제19회 유럽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도 아디다스전자호구를 사용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이제 WTF가 승인한 대회 같은거 필요없다는 행동이었다.
더 이상 WTF는 지체할 수 없었다. 주위에서는 WTF의 극단적인 조치가 필요하다고들까지 얘기했다. 하지만 WTF는 흥분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다가가 유럽연맹에 랭킹제를 권했다. WTF가 울화통이 치밀고, 답답한 혼네(속마음)를 잠시 뒤로하고, 랭킹제라는 타테마에를 슬그머니 건낸 것이다. 정말이지 재미있는 전술이다.
유럽연맹은 이런 WTF의 혼네를 알고 있을까. 당연하다. 그래서 자칫 의욕적으로 꺼내든 칼(랭킹제)마저 효력이 없으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든다.
[정대길 기자 /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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