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병철의 山山水水]보디빌딩, 태권도, 그리고 도의적 책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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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번째 이야기 -명함에서 두 음절만 뺀 도의적 책임
한 취재원 덕분에 사전에서 ‘도의적 책임’을 찾아 봤다. 원래 ‘도의(道義)’이라고 하면 ‘사람이 마땅히 지키고 행하여야 할 도덕적 의리’를 말하는 것으로 나와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예 '도의적 책임‘이라는 용어가 법률, 혹은 사회적 용어로 ‘개인의 양심이나 사회적 통념에 의한 윤리적 책임’이라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좀 쉽게 말하면 법적인 처벌의 범주를 떠나 개인의 양심과 사고에 따라 책임을 지는 것이다. 세상이 맑아지면서 이 ‘도의적 책임’이라는 말이 일반인도 쉽게 쓸 정도로 일반화되고 있다. 워낙에 좋은 뜻인 만큼 이 말에 따라 행동하는 일은 많아지는 것은 분명 나쁘지 않은 일이다.얼마 전 대한보디빌딩협회(이하 대보협)의 홍보이사가 기자에게 어떤 설명을 하면서 ‘도의적 책임’을 절묘하게 사용했다. 지난 여름 국제대회에 여자감독으로 출전했다가 대표선수를 성추행 한 혐의로 기소된 협회이사 A씨에 대한 해명 과정에서였다.
일단 성추행에 대한 얘기는 거론하지 않겠다. 현재 검찰이 수사중인 사건이고, 조만간 법원의 판단이 나올 것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A씨가 전국체전을 앞두고 어쨌든(성추행이 사실이든 아니든)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것에 대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대보협 심판이사에서 스스로 물러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국체전에서 핵심심판으로 활약했다는 사실이다. 대보협의 홍보이사는 “A씨가 도의적 책임을 지고 대보협 심판이사에서 물러났다. 본인 뜻도 그렇고, 협회에서도 그렇게 요구했다. 하지만 협회 이사 자격은 유지하고 있고, 또 유능한 국제심판으로 필요한 경우 얼마든지 심판을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즉 여기서 도의적 책임은 ‘심판이사’에서 ‘심판’이라는 두 음절을 떼어낸 것이다.
상황이 이렇자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선수 측은 분개하고 있다. “예를 한번 들어보죠. 한 경찰서에서 무슨 사고가 터졌고, 서장이 도의적 책임을 지고 물러났나고 합시다. 그럼 그 전 경찰서장이 무슨 부서장이나, 과장 이런 거 맡아서 그 경찰서에서 계속 근무합니까? 아예 도의적 책임이나 뭐니 이런 말 장난하지 말고 그대로 심판이사를 유지하는 게 낫지 이게 무슨 눈가리고 아웅하는 겁니까?” 해당 선수측 법정대리인의 말이다. 문화관광부나 대한체육회 등 상급기관에서 성추행 사건을 놓고 말이 많으니까 A씨와 대보협이 마치 진짜 ‘도의적 책임’을 진 것처럼 쇼를 했다는 비판이다.
마침 이번 제89회 전남전국체전 보디빌딩경기는 각종 판정시비로 얼룩졌다. 대회 도중 거친 항의가 나왔고, 장내 소란을 잠재우기 위해 경찰력까지 출동하기도 했다. 여기에 협회 인터넷 홈페이지의 게시판 논쟁과 관련해 대보협측으로부터 피소를 당한 한 심판은 ‘피소를 당했다는 이유’만으로 이번 전국체전 심판배정에서 제외됐다. 이러니 대보협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도의적 책임 찾아보기 힘든 태권도

이 대목에서 태권도로 시선을 돌려보자. 자세히 보면 도의적 책임을 질 사람이 수두룩하다. 국내단체를 보면 전 정권의 실세가 회장으로 오면서 호가호위를 한 사람이 새정권의 실세 밑에서 여전히 요직을 차지하고 있다. 워낙 업무능력이 뛰어나다고 해도, 뭐 모양새 차원에서 잠깐 사직서를 제출했다가 반려된 것도 아니고 그냥 ‘쭈욱’ 자리를 지키고 있다. 정말 능력이 뛰어나다.
세계태권도연맹(WTF)은 더 가관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맨체스터 돈봉투 사건’과 ‘베이징올림픽 심판폭행’은 백번 양보를 해서 WTF 입장을 그대로 반영한다고 해도 일단 사회적 물의를 빚은 것은 부인할 수 없다. IOC윤리위원회에서 조사를 하고, 조치를 내렸다(돈봉투사건). 그리고 해외토픽으로 전 세계의 조소를 샀고, 해외언론으로부터 올림픽 종목으로서의 위치가 흔들리게 됐다는 지적을 받았다(심판폭행). 하지만 그래도 도의적 책임을 지는 것은커녕 그 흔한 사과나 유감 표명도 없었다. 음해세력이 현집행부의 개혁의지를 꺽기 위해 ‘국익에 위배되는 아주 나쁜 방식’으로 연맹을 흔드는 것이지 집행부 임원들은 잘못이 없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예전에 국내 국한됐던 음해세력이 이제 외국언론 등 전세계로 확대되기도 했다. 그나마 뒤늦게 교육위원장이 자진사퇴했지만 ‘이 분’이 정말 도의적 책임을 질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태권도인들은 없다.
여기에 태권도의 주무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는 국정감사에서 IOC선수위원을 정권이 만들었다는 ‘자뻑’이 지나쳐 큰 소동을 빚은 바 있다(누가 책임졌다는 얘기는 없다). 그리고 시급한 법정법인 전환을 앞두고 있는 국기원은 특정인사의 과거 보호를 위해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엉터리 도의적 책임’을 지는 보디빌딩도 문제지만 무도인들이 모인 태권도는 아예 도의적 책임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것 같다. 오히려 새까만 후배들로부터 정말 참기 힘든 조직적인 인신공격을 받은 엄운규 국기원장이 사표를 제출하고, 팔순의 몸으로 혼자 지하철 노약자석을 이용하는 모습이 그나마 안타깝기는 하지만 담백해서 좋다.
[유병철 선임기자 /einer@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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