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이경명 태권도문화연구소대표
WTF가 스스로 경기규정 및 공문발송 시한 위반
오는 12월12일부터 3일간 앙카라(터키)에서 제3회 WTF세계태권도품새선수권대회가 개최된다. 겨루기 종목에 비해 품새경기문화는 이제 시작의 문턱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듯하다. 이 뜻의 다른 올바른 이해는 WTF품새경기규칙에서 찾아질 듯하다. 품새경기규칙 가운데 선수는 물론이고 심판이 숙지할 첫째 조건은 ‘경기의 방식’과 ‘채점기준’ 그리고 ‘채점방법’으로 요약될 것이 분명하다. 이번 대회에도 세계태권도연맹(WTF)은 '경기의 방식' 3가지 중 ‘컷오프 방식’을 택하고 있다. 컷오프 방식이란 주로 골프에서 채택되고 있는 방식을 원용한 것으로 태권도의 경우 예선, 본선, 결승전으로 구분되고 예선전은 참가선수 중 50% 높은 점수 순으로 선발하고 본선은 예선전에서 선발한 선수 중 높은 순으로 8명을 선발하는 방식을 말한다.
예선, 본선에 있어서 예선은 제1지정, 본선은 제2지정 품새 중 '하나'를 시연하도록 규정돼 있다. 지정 품새란 공인품새를 일컫고 제1지정 및 제2지정 품새 영역에서 각기 4 개의 품새가 지정돼 있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간과할 수 없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경기규칙에서 한영 해설이 상이하다는 것에서 시작된다(품새경기규칙 및 해설 제7조. 주-(3)).
WTF는 오는 세계대회 공문요강을 지난 9월 중순 경 각국 협회에 발송했다. 이 대회의 개최국은 지난 5월 이즈미르(터키)에서 열린 제7회 WTF세계청소년태권도선수권대회 기간에 결정됐다. 그런데 WTF는 그 대회요강을 불과 대회 2개월 전에 공지했고, 또 이 과정에서 품새 경기규칙까지 어겼다. 뒤늦게 그 사실을 알게 된 본인은 이의를 제기한 바 있다.
이쯤에서 독자들은 문제의 발단이 무엇이었든가를 눈치챘을 것이다.
그것은 예선과 본선에서 지정 품새 중 ‘하나’의 규정을 무시하고 ‘두 가지’ 품새를 의무적으로 시연하도록 명시한 것이다. 그 뿐만이 아니라 장년부 2(51세 이상) 분류에서 제2지정 품새 즉 십진, 지태, 천권, 한수 품새를 지태, 천권, 한수, 일여로 바꾼 사실이 드러났다.
그것에 대한 자세한 전말(顚末)은 여기서 생략해도 무난할 듯하다. 하지만 문제는 WTF사무국의 행정이 주목의 대상이다. 품새 세계대회 공문을 WTF의 핵심관계자가 서류를 검토한 후에 서명한 것인지, 아니면 부서 담당자의 품의서(稟議書)를 전적으로 신뢰하고 결재를 한 것인지는 본인으로서는 전혀 관여할 바는 아닐 듯싶다. 하지만 가뜩이나 늦어진 그 중요한 공문에 적어도 경기규칙의 준수 여부는 당연히 검토했어야 한다.
본인은 지난 9월25일자로 WTF교육위원장에서 사의를 표명했다. 주된 사유는 2008베이징 올림픽 태권도경기 결과에 대한 최소한의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었다. 세인(世人)에게 회자(膾炙)되고 있는 ‘판정번복’과 ‘심판폭행’ 두 사건에 대해 적어도 도의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지적 실천행위였다. WTF 어느 누구도 책임을 질 줄 모르는 상황에 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품새 대회 공문의 규칙 위반은 전 세계 회원국 태권도인을 우롱하는 행위로 간주되며, 이는 결코 현 WTF로서는 서광을 찾아볼 수 없다는 이성적 판단에 따른 실천적 행위였다.
베이징 올림픽은 물론, 오는 12월 품새 세계대회에서마저 경기규칙을 어겨가며 막무가내로 집행하겠다는 행정에 우리의 침묵은 되레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베이징 올림픽 태권도경기 결과에 WTF사무국은 조금도 도의적인 책임질 문제점이 없다고 판단하는 이유는 아마도 이런 것일 듯싶다.
“그와 같은 결정은 모든 경기 결과를 보다 투명하고 공정하게 하기 위한 연맹의 강력한 의지를 보인 것이다.” 하지만 이는 두고두고 불씨를 안게 될 판례(判例)의 효시가 될 것이다. 또한 경기 감독 위원회의 소청심의 의결에 동의는커녕 어느 누구도 그 같은 판정에 의구심을 떨쳐버리지 못했다.
WTF는 지금이라도 개과자신(改過自新 잘못을 고쳐 새로워짐)하려는 자세의 드러냄이 빠를수록 좋을 듯하다. 책임 소재의 한계는 불 보듯 자명한 것은 아닐까. 행정의 무지(無知) 혹은 횡포이든 간에 책임의 경계마저 구분할 수 없다면 그 보다 더 불행한 일은 없을 듯하다. 직언하건 데, 누가 어느 범위에서든 도덕적 책임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때, 세계태권도인들은 WTF발전기대에 실낱같은 안위(安慰)라도 느낄 수 있겠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 준비과정에서 “모든 책임은 내가 지면 될 터이니 나를 따르라”고 한 모 WTF임원의 말이 새삼 떠오르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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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 = 정대길 기자 press02@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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