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edo
최신뉴스

최홍희 총재 김 대통령에 판문점 시범 제안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ITF) 총재가 지난 2월 김대중 대통령에게 판문점 시범을 제안했던 것으로 뒤늦게 알려졌다.


미국 캘리포니아 얼바인에서 활동하고 있는 국제태권도협의회(International Taekwondo Council) 강창진 회장은 지난 2월 최홍희 총재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태권도 평화 사범단 남북 순회 및 판문점 시범을 골자로 한 서신을 보냈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최홍희 총재의 서신을 청와대에 직접 전달하기 위해 내한해서 당시 남북관계 업무의 막후 역할을 하던 문화관광부 박지원 장관을 접촉했었으나 당시 박 장관은 미온적인 태도였다고 말했다.

이 서신에서 최 총재는 김 대통령에게 강 회장을 단장으로 하고 미주 사범 7-8명으로 구성된 평화 사범단을 북한에 파견해 북한 사범들과 2박 3일 정도의 합동 친선 수련을 마치고 다같이 판문점으로 내려와 판문점에서 시범을 한 후 남한으로 내려와 남한 사범들과 같이 2박 3일의 친선 합숙 수련을 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최 총재는 서신을 통해 김 대통령의 햇볕 정책에 대한 확고한 지지 의사를 표명하며 자신의 구상이 현 정부의 대북 정책 방향과도 일치하고 있음을 강조하기도 했다.

강 회장은 "나중에 통일부 장관으로부터 현재로서는 추진하기가 어렵다는 취지의 회신을 받았다"고 밝혔고 "한광옥 대통령 비서실장에게도 비슷한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강 회장은 또한 지난 6월에는 세계태권도연맹(WTF) 김운용 총재에게도 같은 내용의 서신을 자신의 이름으로 보냈으나 지금까지 아무런 답변이 없었다고 밝혔다.

강 회장은 현재 국제태권도협의회 회장이며 국기원 공인 9단이다. 강 회장은 월남과 유럽 등지에서 태권도를 보급하고 현재는 미국 캘리포니아 얼바인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홍희 총재가 김대중 대통령에게 보낸 서신 전문>

김대중 대통령 각하

제례하옵고 오늘 저는 조국통일과 국민의 복리를 위해, 주야로 헌신하시는 대통령 각하에게 이 편지를 올리는 기쁨을 가졌습니다.

지난 날 대통령께서는 역대 독재 정권과의 싸움에서 갖은 고초를 겪으시면서도 오직 조국의 민주화를 위한 불굴의 애국정신을 간직하시고, 오늘은 그 참된 정신을 실천에 옮기시는 대통령 각하에게 심심한 존경과 찬사를 보내드리는 바입니다.

저는 1918년 함경북도 화대에서 태어나 젊은 나이에 일본에 유학 중 일본군에 강제 징집되어 복역 중 학병동지를 규합하여 반일 봉기를 획책하다 발각되어 사형 집행일을 며칠 앞두고 광복이 되어 극적으로 살아난 세칭 평양 학병 사건의 주동 인물 중의 한사람입니다.

해방 후 저는 서울에서 군사모체를 지향하는 전국 학병단을 조직하고 그들과 함께 대한민국 창군에 참여했으며, 6.25 한국 전쟁 때에는 일선에서 사단을 지휘했고, 1961년에 예편하여 다음해인 1962년에는 초대 말레이시아 대사를 지내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1946년 3월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54년 전, 저는 민족 고유의 무도를 창시하려는 일념에서 소년 시절부터 수련해 온 무술을 바탕으로 온갖 역경과 고난을 무릅쓰고
이의 연구에 심혈을 기울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1955년 4월 11일에는 그것을 태권도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1966년 3월 22일에는 한국을 비롯한 9개국의 동의와 성원으로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인 국제태권도연맹을 창설하는 뜻깊은 날을 맞이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제가 창시한 태권도는 그 발전 과정에서 수많은 애로와 난관에 봉착하지 않으면 아니되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태권도를 자신의 정치 도구로 삼으려던 박정희 군사 독재정권의 마수가 뻗쳤을 때는 저 자신은 물론이요, 조국과 전세계 태권도 애호인들에게는 일대 수난기가 닥쳐왔던 것입니다.

당시 박정권의 이 정치적 음모에 단연 반대하고 나선 저로서는 심한 정치적 탄압을 받지 않으면 아니 되었었으며, 그의 독재 정치하에서는 우리 민족 무도인 태권도의 성장은 물론 이의 전세계 보급이 불가능하리라는 것을 절감한 나머지, 저는 1972년에 캐나다로의 망명의 길에 오르게 되었던 것입니다.

배달 민족의 무도인 태권도를 전세계에 전파하려는 일편단심에서 저는 1년 열두 달 내내 온갖 역경을 무릅쓰고 동분서주했으며, 그 고난의 결실로 지금은 120여개국이 국제태권도연맹 산하에 들어왔으며, 지구촌 어디에서나 수많은 태권도장과 수천만명의 태권도 애호가와 수련생을 만나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반세기 동안 저는 인간의 건강을 증진시키고 힘을 길러 자유와 정의를 지키는 기수로서 세계 평화에 기여하고, 고귀한 정신적 유산과 뛰어난 무도의 기술을 후세에 남기려는 일념에서 한 핏줄을 타고난 북녘 땅의 형제는 물론, 소련을 위시한 동구의 여러 사회주의 국가에도 사상이나 제도를 초월하여 동분서주했던 것입니다.

제가 창시한 태권도는 스포츠가 아니라 동양 사상과 윤리에 근거한 저의 철학과 우리 고유의 민족 정신에 기초한 순수 무도입니다. 태권도에는 24개의 기본틀 외에 3,200여개의 과학적인 동작이 있습니다. 태권도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24개의 틀은 우리 민족 역사에 길이 빛나는 충신과 장군, 애국열사를 기리어 그들의 이름을 따서 명명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단군틀, 을지틀, 포은틀, 충무틀, 중근틀 등으로 이는 우리에게 우리 민족의 얼과 애국정신을 앙양함은 물론, 세계 각국의 태권도 애호가에게는 그들 민족의 수호정신과 애국심을 지향하는데 큰 교훈이 되리라는 것을 자부하는 바입니다.

24개의 마지막 틀인 통일은 우리 민족이 절절히 염원하고 있는 통일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대통령 각하께서 취임하시자 내세우신 햇볕 정책은 실로 통일을 염원하는 민중의 소리이기도 하며, 이의 실현을 위해 지금까지 각하께서는 여러모로 많으신 사려를 베풀어 오셨다는 것을 우리들은 족히 주지하고 있는 바입니다.

천리길도 한 발자국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옛 성현의 말씀을 우리는 귀에 담고 있습니다. 어찌 우리 통일로 가는 길도 그렇지 아니하겠습니까. 이에 저는 감히 대통령 각하께 한가지 진언을 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태권도 평화 시범단 남북 순회 및 판문점 시범에 관한 것입니다. 즉 미국 사범 7-8명으로 구성된 평화 사범단이 미국 태권도계의 중진인 강창진 관장 인솔하에 북한을 방문하여 그 곳 사범들과 2박 3일 정도의 합동 친선 수련을 마치고 다같이 판문점으로 내려와, 거기서 전세계인들의 주목을 받으며 강창진 사범 지휘하에 태권도 평화 시범을 한 후 다시 모두 판문점을 통과하여 남한에 내려와 남한 사범들과 같이 2박 3일의 친선 합숙 수련회를 갖자는 요지입니다.

이와 같은 구상과 계획은 이미 전세계에 보급된 우리 국기 태권도 무도가 남북 교류에 크나큰 교량 역할을 할 수 있으며, 나라의 점진적 통일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치리라는 것을 믿어마지 않습니다. 또한 현시 대통령 각하께서 추진하고 계시는 햇볕 정책에도 부응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습니다.

원컨데 각하께서 저의 충정을 헤아리사 태권도 평화 사범단 순회와 시범이 근시일 내에 실현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마지 않습니다.

부디 각하와 각하의 온 가내가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바라며, 각하께서 하시는 나라의 매사에 신의 은총이 같이 하시길 기원합니다.

2000년 2월 21일

국제태권도연맹

총재 최 홍 희 올림

댓글 3

스웨덴, 림 원섭 개척 사범의 말 2000.12.12
월남과 유럽에 계셨다는데, 언제 어디에 계셨오 ? 본인은 월남에 다낭과 - 싸이곤에 1966-1974년까지 있었오. 물론 태권도 교관단에도 있었고 대사관 경비 대장(반장)도 했습니다. 여기 유럽은 1975-현재까지 있는데 강창진 관장님을 잘 몰아서 여쭤봅니다. 그리고 본론에서 그러니까 근 10년 전부터 생각했던 것을 1998년 여름에 휴가차 서울에 갔을 때 이미 본인 림원섭이는 태권도 남북 합동 시범에 대해서 좀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저 - 온성에서 서귀포까지 태권도 시범에 대해서 그것도 기차로 양쪽을 다니며 시범을 하며 민족 통일에 기여 한다는 계획을 꼭 필요한 곳에 보냈지요. 또 모 신문사에도 보냈지요. 그 때가 금강산 관광 문제가 크게 대두 될 때였지요. 외세에 의해서 잘린 군사분계선(38도선)을 기차를 확 뚫어 버리겠다는 본인의 뱃짱과 아울어 계획도 이 태권도 남북 시범 조직에 포함이 된 것이요. 그래서 올 여름에 기차가 뚫비는 작업을 한다고 해서 시원 섭섭했오. 그리고 ITF 최홍희 총재님께 ! 그때가 아마 1983-4년 8월이지요. 저와 박정태와 같이 앉아 있던 평양 보통강 호텔 식당에서 현 대통령에 대해서 여러가지 나뿐 말등을 하실 때 박정태와 저가 총재께 공격 했던 것을 기억 하시리라 믿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완전히 다르군요. 특히 위 말씀을 보면 태권도는 스포츠가 아니라 동양 사상의 철학을 근거로 만드셨다고 하셨는데. 아래에 질문을 드립니다. 1, ITF를 스포츠가 아니라고 하시는데, ITF는 시합이 없습니까 ? 2, ITF 태권도 책에 공자, 맹자, 순자, 한비자 등등의 철학만 있지 장자 철학은 없으며 또 신선도 철학도 없이 4 사람 만이 동양을 철학을 완전히 대표로 할 수 있습니까? 3, 만약 본인을 비롯하여 여러 사람들이 모화 사대사상을 가진 자라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4, 또 위 글에 단군, 을지, 포은, 충무, 중근틀 만을 말씀하셨는데 어찌 원효, 율곡, 퇴계, 화랑, 고당, 유신, 문무, 연개틀은 말을 하시지 아니 하셨는지요. 충신 포은(정몽주)을 보고 친명파였다고 하면 어떻게 대답을 하시 겠습니까? 특히 틀을 만드실 때 어째서 녹두 장군 전봉준, 단재 신채호 선생님, 최익현 선생님, 윤봉길 열사님, 백범 김구 선생님, 이준 열사님은 왜, 이분들의 성함 및 호를 사용 하시지 아니 하셨습니까 ? 혹시 잘 모르셨습니까 ? 알았는데, 집어 널 가치가 없다고 생각을 하셨습니까? 5, 대한민국 창군에 참여하셨다고 하셨고, 또 6.25 한국 전쟁 때 일선 에서 사단을 지휘하셨다고 하셨는데 대한민국 창군은 미군정 때을 말 씀 하시고, 또 6.25 동족 상잔의 참여 사단을 지휘하셨다면 사대 친미파고 동족을 살인 하였기 때문에 군사 재판에 가셔야 될 자라고 하면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참 말로 참으로 여러가지로 매우 안타깝습니다. 집안에서 년노하신데 바둑이나 두시면 어떠신가요 하며 권고 추선합니다. 00.12.12일 스웨덴 림원섭 씀 amea@chello.se
아무개 2000.12.13
당신의 짦은 지식으로 함부로 말하시는거 같아 글을 올림니다 당신이 최곤줄 알고 자기 주관적인 의견을 자주 올리는거 같군요 어찌된게 거의 올려놓은게 부정적인 내용들밖에 없네요.. 그런 대단한사람이면 당신이 해놓은건 뭐가 있는지.. 참.. 당신도 갈길이 멀군요...훗..
림 원섭 2000.12.13
오밤중이라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는 자는, 보는 눈도 어쩜 짧겠지 - 그래서 떳떳하지 못하게 이름도 아무개 라고 쓰며 나오는 것인가 보다. 아무개씨는 본인이 짧은 지식으로 함부로 말하시는거 같아 글을 올립니다 라고 쓰셨는데, 거 참 잘 맞췄오. 어떻게 그렇고 쪽집게 처럼 잘 맞추시요. 혹시 점쟁이 집 장남의 아들이 아니요? 본인은 지식이 짧지요. 키가 적다 보니까 어쩜 아는 것도 짧을 것으로 봅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노력 하겠습니다. 키를 키우면서 쌓아 올리겠습니다. 그런데 키가 클지 모르겠습니다. 본인이 해놓은 것을 열거하면 아무개씨는 어쩌면 뒤로 벌렁 까 넘어질 것을 감안하여 삼가 하겠습니다. 뭐! 아무개씨가 잘 아실 것이니까. 모르시면 최님에게 물어 보시라. 아무개라고 쓴 자가 누구인지 내가 언젠가 말을 하리다. 당당하라 비열하게 굴지마라 최가처럼. 그 밑에서 무엇을 배웠겠는냐? 아 - 상식아 넌 어디에 있냐고 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