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래성’ 무술도장, 이제는 무너진다

[최악의 경기불황에도 성공하는 도장은 이유가 있다 - 2]

1980년대 들어 일반인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생활체육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무술도장도 예외는 아니었다. 이후 성인 수련생 중심으로 운영되던 무술도장들이 아동 중심의 운영으로 바뀌게 된다. 이는 시대적인 흐름이었다.
1990년대 들어 무술도장들은 최고의 호황기를 맞았다. 무술도장 하나 다니지 않는 아이들이 없을 정도였다. 태권도의 어떤 도장들은 규모를 넘어선 수련생을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도 생길 정도였다. 합기도와 검도도 마찬가지였다. 2000년대 들어 무술도장들은 폭발적으로 증가하며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은 현상이 발생했다. 태권도장 거리제한제(근방 500m안에 1개 도장만 존재)가 폐지된 것도 이 시점이다. 무한경쟁 상황으로 들어 선 것이다.
이때를 기점으로 무술도장들의 패러다임이 바뀌게 된다. 그러다보니 지도자들의 능력이 무술 실력보다 관원들의 숫자로 평가받기도 한다. 또 ‘체육관전문마케팅’이라는 신종업체까지 생겨나면서 관원모집, 특히 어린 수련생을 위한 유치전은 전쟁을 방불케 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무술 지도자들은 어린 수련생에게 맞춘 교육을 할 수밖에 없고, 학부모들의 한마디에 지도방법이 좌지우지되는 상황에 이른다. 하지만 이를 비난할 수만도 없다. 대부분이 생계를 위해 도장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특히 영세한 도장의 지도자일수록 경제논리 앞에서 그동안 소중히 지켜왔던 교육철학을 던져버리게 됐다.
하지만 최근 경기불황이 장기화될 조짐을 보이면서 간판만 무술도장인 유아체육시설 도장들이 위기를 맞고 있다. 허리띠를 졸라맨 학부모들이 아이들의 사교육비를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공부는 안 할 수 없고, 만만한 게 체육, 그중에 무술도장을 그만두고 있다. 물론 이런 상황을 경기불황 탓으로 돌릴 수도 있다. 하지만 통계적으로 사교육비는 줄지 않았다. 오히려 더 늘었다. 그런데 무술도장들은 관원수가 줄고 있다고 아우성이다. 왜 그럴까.
충성도가 낮기 때문이다. 그동안 당근만을 주던 무술도장일수록 더욱 그렇다. 선물공세로 관원들을 입관시키고, 무술도장 본연의 교육보다는 재미위주의 게임 등으로 교육에 나섰던 도장들은 고사 직전이다. 단기간에 관원 늘리기에만 초점을 맞췄던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모래성’ 무술도장들이 무너지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다.
기본을 지킨 도장들, ‘끄떡없다’

관원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있는 시기지만, 전혀 영향을 받지 않는 무술도장도 있다. 어떤 이유에서 일까. 경상남도 거제시에 위치한 ‘소나무향기 태권도’. 이곳은 거제시에서 태권도 교육을 잘하기로 소문난 도장이다. 약 4백여명의 관원이 큰 이동없이 꾸준히 도장을 다니고 있다. 어떤 방법을 쓰는 것일까.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기본에 충실한 태권도교육이다.
소나무향기 태권도 정종수 관장은 “많은 사범님들이 눈앞에 보이는 아이들 모집에만 집중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관원 한명이 그만두는 것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한다”며 “당장 도장운영이 어렵기 때문에 그런 것이기는 하지만, 이런 것이 계속 누적되면 부모님과 아이들에게 끌려갈 수밖에 없다. 그렇게 되면 태권도 기본 교육의 본질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정종수 관장은 태권도 기본기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정 관장은 “아이들이 태권도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은 중요하다. 이를 위해 태권도 품새, 발차기, 겨루기 등 기본 태권도 교육을 충실하게 지도한다. 많은 지도자들이 특별한 지도방법이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막상 들어보면 결론은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를 강조한 것일뿐”이라고 설명했다. 정종수 관장은 지난해 열린 KTA 경진대회 지도법부문에서 ‘긍정적 수련방법 제공’을 선보여 은상을 차지한 바 있다. 여기서도 정 관장은 기본을 강조했다.
충청남도 아산에 위치한 비전합기도체육관 최익수 관장은 외골수로 통한다. 최 관장은 오로지 합기도 기술 전수만으로 도장을 운영하기 때문이다. 홍보 전단지 한번 제대로 돌려본 적이 없다. 도장에서는 게임 한번 하지 않는다. 그러다보니 어린 수련생들이 힘들어서 그만두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도 최익수 관장은 합기도 도장에서 기술 수련은 기본 중에 기본이라는 철칙을 깨지 않는다.
최익수 관장은 “우리 도장은 국제연맹 합기도의 한기도와 한검도를 가르치고 있다. 쉽지 않은 기술들이지만 제자들을 가르칠 때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관원들이 힘들어 하지 않냐는 질문에 최 관장은 “물론 힘들어 한다. 하지만 내가 진심을 다해 가르치면 제자들도 내 진심을 느끼고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요즘 제자들을 지켜보면 나한테 오염(?)된 것 같다”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서울 청룡태권도장은 품새를 잘 가르치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 청룡도장만의 커리큘럼은 주변 학부모들에게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따지고 보면 그렇게 특별한 것이 아니다. 태권도 교육에 충실할 뿐이다. 청룡도장 강익필 관장은 “처음에는 시행착오가 많았다. 관원이 19명이던 시절, 급한 마음에 매 수업시간마다 아이들에게 30분씩 자유시간 줬다. 아이들이 상당히 좋아했지만, 약효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나중에는 여기가 도장인지 놀이방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강 관장은 철저하게 태권도를 바탕으로 한 교육체계를 설립했다. 강익필 관장은 “마케팅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관원이 금방 늘지는 않았지만, 태권도를 배우고 싶어 하는 부모들은 우리도장을 찾았다. 서서히 늘었지만, 들어온 관원은 오랜 기간 수련을 한다. 지금은 1백명 이상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익필 관장은 쉽게 싫증을 내는 아이들의 특성상 도장 분위기를 어떻게 만드느냐가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강 관장은 “태권도 도장은 노는 곳이 아닌 수련하는 곳으로 생각하도록 습관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몇몇 어린 관원들은 안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이때 관장이나 사범들은 선급하게 분위기를 다시 바꿔서는 안된다. 장기적으로 보고 행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들 '불황 속 성공 도장'들의 공통된 특징은 ‘기본에 충실’이다. 무술도장이 해당 무술을 잘 가르치는 기초공사에 성실했던 것이다. 단기간에 ‘모래성’을 쌓지는 않았지만, 천천히 튼튼하게 지은 만큼 웬만한 풍파에는 끄떡없는 것이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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