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도 어쩔 수 없었던 강원식

강원식이 대한태권도협회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인준 단 문제를 바로잡는 것이었다. 그 때만 해도 9개 관에서 서류를 올리면 협회에서는 바로 단증을 발급하는 체제였기 때문에 폐단이 많았다. 각 관에서 제대로 심사도 보지 않은 사람을 추천해 단증을 받아가 단의 권위가 실추됐던 것이다.
강원식은 이를 바로잡기 위해 김운용 회장에게 인준 단을 없애자고 건의하는 한편 각 관의 관장들에게 인준 단을 안하겠다는 각서까지 받았다. 이를 각 관의 관장들이 싫어했던 것은 물론이다. 후배가 협회에 들어앉아 그동안의 관행을 없애려고 하니 좋을리 만무했던 것이다. 그러나 면전에서는 반대를 못했다. 왜냐하면 반대할 명분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발생한 사건이 세칭 H단 사건과 스카치테이프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인준 단을 없애려는 강원식과 인준 단을 계속 발급하자고 주장한 각 관의 관장들과의 갈등의 결과였다.
하루는 김운용 회장이 강원식을 불렀다. 김 회장은 그에게 "사람들이 늙어서 심사를 못보겠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겠느냐"면서 "그냥 단증을 발급해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강원식은 줄 수 없다고 버텼다. 각 관의 관장들이 단합해 당시 협회 사무장이었던 김완수와 함께 여관방에서 단증을 만들어 김 회장에게 직접 가져가 결재를 요구했던 것이다. 강원식은 계속 안된다고 버텼으나 김 회장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절충안을 제시했다. 5단과 6단만 해주자고. 이는 당시 협회 부회장이었던 엄운규와 함께 세 명이 함께 결정한 것이었다. 강원식은 그러나 인준해 주는 단은 명예 단이라는 단서를 붙였고 엄운규는 그렇다면 단증에는 명예 단임을 표시하지 말고 단증 대장에만 표시하자고 제안했다.
결국 강원식은 이를 받아들였고 단증 번호 앞에는 명예의 영어 표기인 아너(Honor)의 첫 자를 따 에이치(H)자가 붙여졌다. 이 일을 두고 사람들은 H단 사건이라 불렀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해외여행이 자유롭지 못했는데 태권도 단증이 있으면 그나마 해외진출이 쉬웠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떳떳하지 못한 방법으로 단증을 받으려고 했다. 그런 과정에서 H단 사건과 함께 발생한 사건이 스카치테이프 사건인데 이는 단증 발급 대장에 있는 사람의 이름을 칼로 오려낸 후 그 뒷면에 다른 사람의 이름을 쓴 종이를 스카치테이프로 붙여 단증 발급자 이름을 바꿔치기한 사건이었다.
이 사건에 연루된 당시 협회 관계자는 이 일로 구속됐다. 강원식도 이때 남대문경찰서에 불려가 조사를 받았는데 혐의가 없어 풀려났다. H단 사건과 더불어 스카치테이프 사건을 겪으면서 강원식은 태권도 발전을 위해 반드시 관을 없애야겠다는 결심을 굳히게 된다.
이런 일 저런 일로 강원식은 엄운규 및 각 관의 원로들하고 충돌이 잦았다. 관계가 소원해 진 것은 물론이다. 훗날 관 통합을 추진할 때도 원로들은 한사코 관 통합을 반대했고 이에 영향을 받은 김운용 회장은 관 통합에 미온적이었다. 이때 강원식은 현 국기원 부원장인 이종우의 도움을 받아 관 통합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강원식의 대쪽같은 성품은 1980년 군사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정권에게도 인정(?)을 받을 정도였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집권과 동시에 사회정화위원회라는 기구를 설치해 사회 각계각층에 대한 숙정 작업을 벌였는데 대한태권도협회 임원들도 이때 모두 사표를 내게 됐던 것이다.
당시 사회분위기는 상당히 살벌했다. 거리에서 사람들을 마구 잡아다가 삼청교육대에 보내고 언론인들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직장에서 쫓겨났다. 항상 말썽이 끊이지 않았던 대한태권도협회가 그 대상에서 제외될 리가 없었다.
강원식에게 문제가 있었다면 이때 꼼짝없이 물러나야 할 판이었다. 그런데 모든 임원들의 사표가 수리됐는데 김운용 회장과 당시 전무이사였던 강원식의 사표는 반려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강원식은 본의 아니게 군사정권의 인정(?)을 받았던 것이다.
한편 당시 어수선했던 분위기 속에서 국기원 부원장 자리가 비게 됐는데 국기원 원장도 겸직하고 있었던 김운용 회장은 강원식에게 국기원 부원장도 맡아 줄 것을 제안한다. 김 회장 입장에서 봤을 때는 사사건건 바른 말만 하는 강원식이 고울 리가 없었겠지만 막상 일할 사람을 고르다보니 그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강원식의 국기원 생활이 시작되고 그는 근 10여년을 국기원에서 자신의 역량을 시험하게 된다.
<다음에 계속>


댓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