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위일체' 태권도 사범의 자세와 용기
[이규현 원장의 태권도 칼럼 - 11]태권도 사범의 자세
내가 이글을 쓰는 것은 지나온 많은 세월 속에 태권도를 수련하면서, 또한 도장을 운영하면서 느낀 것을 많은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어서다. 아주 오래 전에는 선배들이 권력을 쥐고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만용을 부려 태권도의 기본 바탕인 기술적인 문제와 인격적인 수양을 등한시했으며 아직도 자리에 연연해서 태권도 발전을 저해하고 있는 이들에게 조그만 양심이라도 갖게 함이다. 작금의 시대에서는 선후배의 지위도 무너지고, 실력과 양심보다는 자기의 삶과 지위에 연연하는 이들에게 태권도의 ‘도’는 자기가 갖고 있는 자세요(자세라 함은 올바른 정신의 자세와 마음(양심)의 자세 그리고 자기신체의 자세를 말한다), 큰 덕을 갖고 있는 인격은 용기라고 생각되어 태권도인들이 태권도를 사랑한다면, 진정 태권도와 더불어 사는 무인이라면 한번쯤 자기를 돌이켜보는 시간의 본보기가 되었으면 한다.
꼭 이루어야 하는 일이라면 원칙을 지키게나
그리고 원칙을 기준으로 삼아
죽을 만큼 최선을 다 하게나
그러면
때때로 소망하는 그 이상을 이루게 되지 -박현찬의 원칙 있는 삶에서-

이규현 세계태권도사범연수원 원장
요즈음 우리사회는 적은 노력으로 큰 것을 얻으려하고 양심을 버려 가면서 반칙을 일삼기도 하고 편한 지름길로만 가려고 하는 심리가 만연해 있다. 그러나 내 힘으로 차분히 이루어 낸 것 내 최대한의 노력으로 얻은 것이 오래가는 법이다. 소신껏 원칙을 지켜가며 가는 삶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이상적인 태권도 지도자의 표상은 용기 있는 덕을 지닌 지도자이다. 용기는 강한 것이고 씩씩한 것이요 늠름한 것이다. 또한 적극적이고 진취적인 것이고 자주적이고 도전적인 것이다.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용기의 반대는 비겁이고 허약이고 소극적이고 피동적인 것이다. 또한 지도자가 의를 보고도 행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용기는 강한 실천력이며 뜨거운 행동적 열정이다. 용기 있는 사람만이 고난을 이기고, 시련을 극복하고, 역경에 도전하고, 자기가 생각한 대로 행동하고, 목표를 달성하고, 진리와 주의를 관찰할 수가 있다.
동서고금에 용기를 강조하지 않은 철학이 없고, 종교가 없다. 공자의 2덕과 플라톤의 4원덕이 모두 용기를 강조했다. 용기에는 진용과 만용이 있다. 진용은 참된 용기이고 만용은 사리를 분간 못하고 함부로 날뛰는 무모한 행동이다. 그것은 사이비의 용기이다. 그러므로 우리 태권도 지도자는 스스로 게을리하지 말고 자기 분야에서 덕을 쌓는 또한 인격을 쌓는 수련에 정진을 하여 무슨 일에 부딪치던 자신 있는 행동을 보여주며 실천하는 용기 있는 태권도인으로 탈바꿈을 할 시기가 온 것 같다.
범을 맨주먹으로 때려잡고, 걸어서 깊은 강을 건너려고 하는 것은 진정한 용기가 아니다. 일찍이 순자는 소인의 용기와 대인의 용기를 구별했다. 죽음을 가볍게 생각하고 난폭한 행동을 하는 것은 소인의 용기요 필부의 용기다. 죽음을 무겁게 생각하여 의를 굳게 지키고 고행하는 것은 대인의 용기라고 했다. 용기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육체적 용기이고 또 하나는 정신적 용기다. 전자는 신체의 힘이 센 것이고 후자는 선과 악. 의와 불의, 할일과 해서는 안 될 일, 도리와 비리를 옳게 구별하고 선과 의와 도리를 지키고 실천하는 것이다. 인간에게 참으로 필요한 것은 정신적 도덕적 용기다. 그러므로 용기에는 밝음과 지혜가 필요하다. 밝음과 지혜가 없는 용기는 만용이 되기 쉽고 소인의 용기와 필부의 용기로 전락하기 쉽다. 무엇이 옳고 그른지를 바로 판단하고 옳은 것을 지키고 행할 때에 비로써 진정한 용기를 발휘할 수가 있다. 이것이 곧 태권도의 사범이 지켜가야 할 용기이다
용기만 있고 예의가 없으면 어지럽고 난폭한 행동을 하기 쉽다. 또 용기가 있고 정도와 의리가 결여된 때에는 난동을 부르기가 쉽다. 인간의 행동이 예의와 의에서 벗어날 때 진정한 용기의 행동이 될 수가 없다고 했다. 인간의 용기는 적극적 용기와 소극적 용기로 나눌 수가 있다. 어떤 목표를 향해서 힘차게 나아가는 진취적인 행동은 적극적인 용기요, 고난이나 역경을 꿋꿋이 참고 견디는 것은 소극적인 용기다. 전자는 앞으로 나아가는 진취의 용기요, 후자는 물러서서 자기를 지키는 인내의 용기다. 난세에 자기의 지조를 굳게 지키고 역경 속에서 타락하지 않고 자기의 인격과 주의를 고수하는 것이 지킴의 용기이다. 이런 용기가 부족하면 변절자가 되기 쉽다. 인간은 나아감의 용기도 필요하지만 지킴의 용기도 필요하다. 용기는 부동심이요, 무량심이요, 대담한 것이요 늠름한 것이다. 용기는 인생의 대업을 성취하는 원동력이요, 위대한 발명이다.
그러므로 태권도 지도자에게는 용기가 무엇보다도 필요하다. 용기는 인내력, 지구력, 진취적 기상, 개척적 정신, 도발적 기백, 적극적 의욕, 백절불굴 의지의 덕이 파생한다. 용기 있는 지도자의 형성은 태권도 교육을 담당해 지도하는 사범들의 기본과제의 하나이다. 일찍이 맹자는 대용과 소용을 구분했다. 우리는 대용의 인간이 되어야 한다. 스스로 돌이켜보고 마음에 부끄러움이 없으면 천만 사람이 반대하여도 나는 나의 길을 끊임없이 가야 한다. 이런 기상의 소유자를 맹자는 ‘사내대장부’라고 칭했다. 남이 장군의 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옛날의 선비나 무인들은 대장부가 되는 것을 인격수련의 목표로 삼았다. 크고 강한 호연지기를 가지는 늠름한 대장부, 이것이 우리의 태권도 사범들의 이상적인 인간상이라고 생각한다.
태권도 사범이라면 인(仁)이라고 하는 천하의 가장 넓은 곳에서 살고 예(禮)라고 하는 가장 옳은 자리에 서서 의(義)라고 하는 천하의 대도를 당당히 걸어가야 한다. 이것이 태권도 지도자의 길이다. 뜻을 얻으면 모든 태권도인과 같이 기뻐하고 뜻을 얻지 못하고 자기의 올바른 생각과 경론을 펼 수가 없으면 혼자 자기의 길을 갈 따름이다. 제아무리 부귀로 유혹을 해도 빠지지 않고 빈천의 고통으로 괴롭혀도 자기의 의지를 굽히지 않고 아무리 권위나 무력으로 위협을 하여도 결코 굴복하지 않는다. 이러한 불굴의 사나이를 대장부라 칭한다. 이것은 유명한 맹자의 대장부론의 골자다. 인간은 부귀 앞에는 약하고, 빈천하면 타락하기 쉽고, 위력 앞에는 굴복하기 쉽다. 그러나 그런 것에 빠지거나 굴복하지 않는 것이 대장부다. 커다란 용기가 없으면 대장부가 될 수가 없다. 대장부는 일조일석에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극기의 수련과 백년천마(百練天磨)의 각고가 필요하다. 역사가 사람에게 큰일을 맡기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고된 시련의 십자가를 지워주고 몸과 마음을 단련케 한다. 대장부가 되는 길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맹자는 다시 이렇게 말했다.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인간은 옥으로 만들고 시련이 인재를 만든다. 역경이 사람을 만든다. 눈 속의 산에서 6년의 고행이 크게 깨달음을 얻은 석가를 만들었고, 넓은 광야에서 40일의 고난이 성자 그리스도를 낳았다. 하늘이 어떤 사람에게 천하의 큰 임무와 큰일을 맡기려고 할 때에는 반드시 그 사람의 몸과 마음을 괴롭히는 쓰라린 괴로움과 어려움의 시련을 겪게 하고 무슨 일도 뜻대로 되지 않는 역경의 비운을 일부러 체험케 한다는 것이다. 편안함을 추구 하는 사람 속에서는 큰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잔잔한 바다에서는 훌륭한 뱃사공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대장부가 되려면 악전고투의 수련을 수 없이 한다. 이상적인 태권도인은 호연지기의 대장부 정신을 가져야 한다.
태권도는 삼위일체의 무술이다. 옛부터 지금까지 이 삼위일체의 수련을 모두 수련한 사범이 많아야 하는데 현시대에서도 삼위일체의 태권도를 갖추지 못한 이들이 너무나 많다. 태권도의 삼위일체라 함은 기본에 의한 품새의 수련과 맞추어 겨루기를 통한 겨루기와 격파술 수련의 시범을 들 수가 있는데 기본에 의한 품새라 함은 많은 기본용어의 기술적인 이론과 실기를 완벽하게 습득을 하고, 품새 수련의 경지를 이룰 수가 있어야 삼위일체의 한 가지를 터득해 가는 과정에 입문했다고 볼 수가 있다. 여기에 맞추어 겨루기에서 태권도의 호신술을 터득하면서 겨루기의 경험을 많이 가져야 한다.
마지막 격파술이란 모든 신체의 단련과 기술적인 동작을 연마해서 최고의 시범을 펼칠 수 있어야하며 이 모든 것이 이론과 실기가 변형되어야 한다. 그런데 요즘 태권도의 흐름을 볼 때 품새에서는 창작 품새를 할 수가 있어야 하고 또 태권로빅도 품새에 속하기 때문에 더 많은 분량의 수련과 연구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그러나 태권도의 삼위일체의 수련을 마치고 당당함과 자신감을 가지고 대장부의 품위와 인격을 갖출수 있는 태권도인이 되어야 하며 만일 자기 수련을 다 하지 못하여 아직도 삼위일체를 갖추지 못한 사범은 갖추도록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하며 수련생에게 귀감이 될 수 있는 그런 사람 노력을 아끼지 않고 정진하는 사람을 태권도 사범이라한다.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을 갖추고 수련생 앞에 당당히 서서 하나의 어린나무를 커다란 기둥이 되도록 이끌어주어야 하는 것이 사범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규현 원장의 태권도 칼럼은 매주 월요일 연재됩니다)
[편집 =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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