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연재

소림사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소림무술

[진영섭의 태극권 이야기 - 5 ] 달마역근경과 소림사 그리고 태극권 2편


진영섭 밝은빛연구소 소장

앞의 글에서 역근경(易筋經)은 달마대사의 저작이 아니라 도교(道敎)의 도인술의 단련법 가운데 하나로 다만 중국 선종(禪宗)의 시조로 명망 높은 달마대사의 이름에 가탁한 것이며 소림무술을 달마대사가 창시하였다는 것 역시 근거가 매우 박약함을 밝혔다. 가탁(假託)하였다는 점에서는 내가무술의 시조로 추앙되고 있는 장삼봉 진인의 경우 역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다만 외래문화에 대한 대항마로서의 국산문화의 상징이라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라 하겠다.

주지하다시피 불교는 위진남북조 시대에 이르러 대량으로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파되었고 관련 불경의 번역사업 역시 매우 활발하였다. 불경을 유입하고 번역하는 일은 서유기의 삼장법사(실존 인물로 당 태종 시기의 현장법사)가 그 상징적인 키워드이다. 아무튼 인도의 불교는 중국으로 건너와서 중국 전통의 도가사상과 유학(儒學) 사상의 영향을 받아 완전히 중국화 된 선종(禪宗)으로 탈바꿈하게 된다.

도가와 유가 역시 외래문화인 불교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유학은 기존의 유학과는 완전히 다른 성격의 신유학인 성리학(性理學)이 되고 도교에서는 방대한 불경의 영향으로 인해 기존의 노장(老莊) 사상 외에 각종 방술(方術)을 망라하여 도장(道藏)을 정리하여 우선 양적으로 맞서는 형태를 취한다.

실질적으로는 중국의 전통사상과 외래의 불교사상은 상호간에 영향을 주고 받아 내용적으로 많은 부분을 공유하지만 외형은 여전히 불교는 불교의 옷을, 유학(儒學)은 유학의 옷을, 도교는 도교의 옷을 입고 있게 된다. 이것이 어쩌면 한 문화가 다른 문화를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시 하나의 문화로 진화해 나가는 공식이라 할 수 있으리라. 그런데 시대적으로 외세의 침범으로 인한 동란기에는 외래문화와 토종문화로 다시 자연스레 나누어 보게 되고 또 토종문화의 우수성을 찾아내고 강조하려는 움직임이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다. 무술의 경우 역시 예외는 아닐 터이다.


소림권술 책자

이민족인 여진족의 청(淸)에게 명(明)이 멸망하고 지배를 받는 시대에 산 황종희(黃宗羲) 같은 대학자도 <왕정남묘지명(王征南墓誌銘)>을 찬술하여 소림무술을 인도인인 달마대사가 창시한 외래 권종(拳種)이라 하고 대항마로 무당 무술을 순국산 브랜드인 내가권<내공 무술의 의미가 아님>이란 개념을 공식화 시켰다.

황종희가 말한 북송(北宋) 말과 명말(明末)의 시대적 상황은 외부의 침입으로 한족(漢族)의 중국이 멸망의 위기에 처하였거나 이미 멸망하였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필자의 견해로는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소림무술을 달마가 창시하였다거나 무당무술을 장삼봉이 창시하였다거나 혹은 아니라는 것에 있지 않다. 다만 중국인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지켜보고자 하는 몸부림이었으며 그 상징으로 달마대사와 장삼봉 진인을 설정했을 뿐이 아닌가 생각된다. 사족을 하나 덧붙이자면 달마대사나 장삼봉 진인은 정사(正史)에서도 인정하는 실존 인물로 상상으로 만들어낸 것은 아니다.

소림사와 같은 산사(山寺)에서 왜 수도에 정진하지 않고 곁가지 같은 무술을 하였을까? 그저 단순하게 수도에 도움이 되라고 무술을 하지는 않았음은 삼척동자도 알 수 있지 않을까? 깊은 산속에 위치한 사찰에서는 호신과 자위의 수단으로 무술이 반드시 필요하였을 것이다. 소림사의 무술은 소림사의 흥망성쇠(興亡盛衰)와 궤를 같이 한다. 소림사의 흥망을 간략하게 적어보면 아래와 같다.

● 북위(北魏) 효문제(孝文帝) 태화(太和)20년 서역에서 온 발타(跋陀: 생졸년 미상)에 의해 창건
● 달마대사가 남조(南朝)의 양(梁) 나라를 거쳐 북방의 소림사에 옴. 달마대사는 독살되었다고 하는데 졸년은 528년 혹은 536년으로 말해진다.
● 북주(北周) 건덕(健德) 3년● 북주(北周) 정제(靜帝) 즉위후 “척호사(陟岵寺)”란 이름으로 부흥
● 당대(唐代) 대체로 황금기라 할 정도로 융성
● 당(唐) 무종(武宗)의 회창(會昌) 3년(AD 845년)에 시행된 회창멸법(會昌滅法)으로 심각한 타격을 받음. 이 조치로 기독교(카톨릭을 말함)인 경교(景敎)는 아예 자취를 감춤. 소림 무술 역시 심각한 타격을 입음.
● 각원(覺圓) 선사 등의 노력에 의해 소림 무술의 중흥기를 맞음.
● 청말(淸末)에 이르기까지 무난하게 번성
● 청말(淸末)부터 급격하게 쇠락하였고 1928년 병란(兵亂)에 의해 사찰이 거의 전소되는 피해를 입음.
● 1949년에 공산화되면서 사찰에 승려가 거의 없을 지경으로 타격을 받고 또 문화대혁명으로 완전히 폐쇄되다시피 함. 소림사의 무술은 소림사 자체로는 사실상 완전히 실전됨.
● 1980년대에 이르러 등소평의 개혁개방 정책에 힘입어 부흥의 전기가 마련됨. 민간무술인을 초빙하여 소림 무술을 복원하는 작업이 시작됨.
● 현재는 참선과 무술을 수련하는 것 외에도 이를 소재로 하는 테마가 되면서 관광산업화하였다.


(달마역근경과 소림사 그리고 태극권 3편은 16일 연재됩니다)

[편집 =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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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기냥 2008.11.13
지금까지본 무술관련글중에 가장 깊이가 있네요... 구체적인 공법이나 무술에 관해서도 설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