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제프로권법 대혈전, 쇼 쇼 쇼!!!

2000년 12월 2일 토요일 KBS 88체육관 특설링에서 한일 국제프로권법 대혈전 타이틀 매치가 열렸다. 대한프로권법협회와 합기도 수도관 공동주최로 열린 이번 대회는 MBC와 이벤트 TV(케이블 TV)가 중계를 하는 등 대중 언론매체에서도 많은 호응을 보인 대회였다.
그러나 막상 실속을 보니, 우리나라 격투기 대회의 후진성을 재삼 확인하는 자리가 되어버린 기분이 들어 씁쓸한 감정을 지울 수 없었다.
애초부터 일본의 대표적인 격투기 대회인 K-1 대회에 대한 이미지를 가지고 대회장에 들어선 것이 실망감을 더욱 크게 만드는 구실이 되었다. 썰렁한 관중, 조명시설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말로만(?) 특설링, 지루한 대회 진행, 어설픈 선수 등은 우리나라 격투기의 현 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2명의 러시아 미녀들을 라운드걸로 채용한 것이 유일한 경기운영의 배려(?)였다. 예정된 시간보다 늦게 시작된 대회는 한국주니어 웰터급 랭킹전을 시작으로 메인 이벤트인 아시아 미들급 참피온 타이틀매치 8차 방어전까지 총 5개 경기로 진행이 되었다.
그중 하이라이트는 결승전과 결승전 바로 직전의 일본 다께모도 마꼬토(아시아 주니어 웰터급 2위 / 13전 12승 1패 10KO) 선수와 한국의 최정우(아세아 쥬니어 웰터급 4위 / 12전 10승 2패 10KO) 선수의 경기였다.
이 두 경기는 극한 대조를 이루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진실과 거짓(?)의 감동의 차이를 적나라하게 보여준 경기였다. 다케모토 마꼬토 선수와 한국의 최정우 선수와의 경기는 총 5라운드로 시종일관 리얼 풀컨텍 파이트로 박진감을 주었다.
1라운드는 대등하게 진행되는 듯 싶었지만, 2라운드부터 조금씩 최정우 선수가 주먹으로 안면공격을 허용하다가 급기야는 다운을 빼았겼고, 3라운드에는 쌍코피(?)를 터뜨릴 정도로 엄청나게 난타를 당해 결국 4회 TKO 패를 당하고 말았다.

비록 한국의 최정우 선수가 지기는 했지만, 끝까지 쓰러지지 않고 최선을 다한 아름답고 감동적인 경기로 손 끝에 땀을 쥐게 했다. 반면에 그날의 최대 하이라이트였던 아시아 미들급 참피온 타이틀 매치 8차 방어전은 그야말로 웃겼다.
한국의 이주철(아시아 미들급 참피온 7차 방어 성공/26전 25승 1패 25KO)과 천룡(아시아 미들급 4위)의 챔피온 타이틀 매치는 이미 각본이 짜여진 코미디였다.
두 선수는 메인 이벤트답게 화려하게 입장하였다. 챔피언인 이주철 선수는 동작도 크고 화려해서 1라운드 초반에는 역시하는 감탄사가 여기저기서 튀어 나왔다. 반면에 상대인 천룡 선수는 공격다운 날카로운 공격을 못하고 적당히 폼만 잡으며 이주철 선수의 샌드백(?)역할을 하던 와중, 이주철 선수가 관중을 위한 멋진 공중 뛰어 뒤돌려차기로 폼을 잡다 착지에서 삐끗, 무릎 관절에 부상을 당했다.
문제는 그때부터 코미디로 돌아간다. 계속 화려한 경기를 보여주려는 챔피언 이주철은 제대로 지탱하고 서 있기도 불편한 상태에서 경기를 하게 된다. 몇 차례 공격을 시도하다 무릎에 무리가 와 스스로 쓰러지기를 몇번, 그 와중에 천룡 선수는 계속 폼만 잡고 공격도 하지 않고 주변을 맴돈다.
그러다가 이주철 선수가 살짝만 건드려도 몇 바퀴를 돌아서 넘어지는 쇼를 계속 하다. 라운드 중간에 협회 관계자가 링사이드로 다가가 이주철 선수에게 뭐라고 몇 마디를 건넨후 천룡 선수는 맞았는지 안 맞았는지도 모를 주먹공격에 쓰러져 KO로 일어나지 못했다. 3라운드 KO승으로 싱겁게 경기가 끝나버린 것이다.
세상에 세상에 이런 코미디가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일본 선수와 한국 선수의 경기를 시종일관 손에 땀을 쥐고 지켜보던 기자는 아시아 챔피온전의 쇼를 감상하고 허탈해질 수밖에 없었다.
더욱이 KO로 쓰러져서 퇴장하는 천룡 선수를 부축한 트레이너는 퇴장하면서 웃는 모습까지 보였다. 그야말로 쇼라는 것을 그들도 아는 듯이.
관중은 바보가 아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프로레슬링이 하루 아침에 비인기 종목으로 전락한 것도 바로 이런 쇼라는 사실이 밝혀진 이후부터이다. 프로레슬링이 한창이던 시절의 옛날을 생각해 보자. 일본의 전설적인 레슬러 이노끼와 전설적인 헤비급 프로복서 알리의 대결, 그때를 기억하는가?
전세계인들이 열광했던 세기의 대결. 온 세상 사람들이 그 경기에 대해 궁금해 하고 흥분했었다.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그 승부가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했다면, 그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부터 어느 누구도 그 경기에 관심을 갖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당연하다. 진정한 격투기의 매력과 스릴은 진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리얼 풀 컨택 파이트 바로 이것만이 관객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지든 이기든 중요한 것은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이지, 화려하고 조작된 쇼가 아니다. 이 점을 대회 관계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물론 스타를 키우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지만 스타를 키우기 위해 승부를 조작하는 것은 오히려 스타를 죽이는 꼴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정말 조작을 하려거든, 티 안나게 하는 세련된 승부조작법을 실현하거나,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진실한 승부로 관객에게 어필하는 것이 침체된 격투기 산업을 부활시키는 힘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70년대의 프로레슬링과 복싱 등의 마샬아트 르네상스를 새천년에 부활시키기 위해 관계자들과 선수들이 가슴에 새겨야 할 좌우명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진실이다. 진실만이 감동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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