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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병영일기 (4)



신병 교육대의 생활도 이제 막바지로 치닫고 있다. 앞으로 2주 후면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조금은 정들었던 신병교육대를 떠나야 한다. 그래서인지 군에 와서 첫 편지를 받았을 때와 같이 매우 설레인다.

군에 와서 첫 편지를 내 남동생한테 받았다. 편지를 받는 순간 많이 설레였고, 흥분까지 되었었다. 몇 줄을 읽는데 가슴에서 무언가 울컥하며 치솟는 바람에 끝까지 읽지 못한 채 품에 간직하고 있다가 불침번 근무 때 화장실에 가서 몰래 읽은 적이 있다.

뭐랄까? 여자친구한테 온 편지는 아니었지만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게 해준 순간이었다. 그 이후에도 수많은 편지를 받아 보았지만 동생에게 받은 첫 편지 만큼 크게 감동을 받진 못했던 것 같다.

막바지 훈련에 돌입

4주차 교육 때 수류탄 투척 훈련 및 총검술 등을 무사히 마치고 이제 5~6주차 교육에 들어왔다. 신병교육대의 막바지 교육이라서 그런지 강도 높은 훈련들이 즐비했다. 대표적으로 화생방과 기초유격 등이 있었다. 사회에 있을 때에 익히 들어 잘 알고 있던 교육이라서 그런지 우리는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먼저 화생방 교육은 비가 오는 날에는 하지 않는다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에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제발 비를 내려주세요, 전 아직 살아갈 날들이 많이 남아 있답니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정말로 하느님께서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신 것이었다. 비가 내리진 않았지만 중대사열 때문에 오후 교육을 중단한 것이었다. 우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즐거운 마음으로 중대로 복귀했다.

하지만 부대도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진 않았다. 사열 준비로 할 일이 태산같이 쌓여 있었기 때문에 우리를 불러들인 것이었다. 우리는 그 때문에 더욱 고된 하루를 보냈다.

이튿날 아침 우리는 조교의 일일 훈련계획을 듣고는 전투화 뒷발차기로 머리를 정통으로 한대 얻어 맞은 듯한 심한 두통을 느꼈다. 다름아닌 어제 취소되었던 화생방 훈련을 이어서 계속한다는 것이었다. 하늘이 무너지는듯 했다.

아니 이게 왠 날벼락이란 말인가! 우리들은 조교들의 인솔에 따라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하고 죽음의 계곡을 넘고 있었다. 교장에 도착하자 곧바로 실습에 들어갔다. 먼저 환자들을 따로 차출해 견학실습으로 화생방 교육을 대신하게 했다.

그런 연유에서인지 오늘따라 환자가 유난히 많이 나왔다. 속칭 나일론 환자가 대부분 이었는데, 모두들 각기 자기가 앓고 있는 병들을 열거하는데 신경정신 질환자, 심폐기능 질환자, 알레르기 환자 등등 얼굴은 멀쩡해 보이지만 다들 마음 속에 공포심이라는 마음의 병을 앓고 있던 것이었다.

솔직히 나도 두려운건 마찬가지였지만, 그 정도는 아니었다. 너무 많은 환자 탓에 조교들은 병적 사실이 확인되는 훈령병만을 열외시키고 나머지 나일론 환자들은 다른 훈령병과 마찬가지로 실습을 받게 했다.

10명을 한 조로 나누어 실습을 시키는데 벌써 몇 개의 조가 실습교육을 끝냈다. 처음에는 눈물, 콧물, 침 등으로 얼굴이 범벅되어 있는 동료들이 우습게 보였지만, 실습을 끝낸 다른 동료들이 우리를 보며 짓는 음흉한 미소에 의미를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실습이 끝난 후에야 비로소 진정한 의미를 알 수 있었다.

한참을 기다린 끝에 마침내 내가 속해 있는 조의 차례가 되었다. 먼저 방독면을 쓰고 열심히 P.T체조를 하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며 우리의 심장박동 수를 마구 증가시킨 후에 실습실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서 방독면을 벗는 순간 나는 내 무덤이 바로 여기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고통스러웠다. 실습 때 사용되는 가스는 CS탄이라고 하는데 경찰들의 진압용으로 쓰이는 최루탄가스 보다는 몇 배가 강하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숨도 쉬지 못할만큼 고통스러워 죽겠는데 교관은 글쎄 군가까지 시키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헉, 켁, 컥이란 외마디 비명만 연신 질러대다가 실습실 밖으로 뛰쳐 나왔다. 그 때 나는 군에 와서 아끼고 아껴왔던 눈물을 다 쏟고 말았다.

우리가 늘상 마시며 살고 있는 이 흔한 공기가 이토록 소중하다는 것을 그 때 처음 느끼게 되었다. 그 이후로 기초유격 및 몇가지 훈련을 추가로 더 받은 후에 마지막 6주차 종합평가 측정을 받게 되었다.

종합평가 측정은 그동안 신병교육대에서 배워온 총검술, 제식, 태권도 등 힘들게 익혀온 훈련과정을 얼마만큼 잘 이수했는가를 가늠해보는 일종의 전투력 측정 같은 것이다. 이 측정에서 성적우수 훈령병에겐 포상휴가증이 걸려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혈안이 되어 열심히 연습했다.

물론 나도 열심히 하긴 했지만 다른 동료들의 실력에 비해선 다소 못미치는 수준이었나보다. 하지만 평소에 어려운 태권도 품새를 익혀오던 잘 발달되어 있던 두뇌로 총검술과 제식 등 동작은 완벽하게 외우고 있었지만 자세가 잘 나오지 않아 높은 점수를 받지는 못했다. 이렇게 해서 힘들고 어려웠지만 때론 즐겁고 보람있었던 신병교육대 훈련은 많은 아쉬움만을 남긴 채 그 막을 내렸다.

신교대여 잘있거라

이제 우리는 각자 배치받은 서로 다른 부대 마크를 달고 서로 자기 부대 마크가 더 멋있다 떠들어 대며 벌써부터 각자가 가게 될 부대에 소속감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 광경을 바라보며 어느샌가 씩씩한 군인으로 변해버린 동기들이 자랑스러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곧 있으면 서로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우리는 훈련 기간 동안 px(군부대 영내매점)를 이용하지 못했다. 신교대 금지 규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에는 훈련병들도 px를 이용할 수가 있다고 들었다. 새삼스레 군대가 많이 좋아졌다는 것을 느낀다. 앞으론 더욱 더 좋아질 것이다. 군대에 PC방도 생기고 화상채팅까지 되는 부대도 있다고 들었다.

신병교육대에서 갖는 마지막 밤이다. 우리는 대대 강당에 모여 신교대 마지막 밤을 기념하는 행사를 가졌다. 조촐하게나마 신교대에서 마련해 준 다과류에 군악대 축하 공연까지 오랜만에 만끽하는 즐거움이었다. 우리는 행사가 끝난 후 각자의 소대로 돌아가 신교대의 마지막 밤을 맞았다.

아무리 잠을 청하려해도 한껏 들떠 있는 마음 때문에 쉽게 잠을 이룰 수가 없다가 새벽1쯤 지났을까, 갑자기 몰려든 피로에 겨우 잠을 이룰 수가 있었다. 마지막 날 아침 우리는 매우 분주했다. 일주일 후 입소하게 될 후배 기수들을 위해 마무리 정리가 한창이었다.

그리고 퇴소식 준비도 해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눈코뜰새 없이 매우 바빴다. 우리는 처음으로 일명 새우깡이라고도 불리우는 이등병 계급장을 수여받고 마냥 어린아이처럼 좋아했다. 무사히 퇴소식을 치른 후 중대 연병장에서 각자 배치받은 부대 차량을 기다리고 있었다.

훈령병 중 대부분은 훈련받은 그 사단 소속으로 배치를 받지만 약 20% 정도는 인근 부대로 배치받는다. 나를 포함해 15명은 경기도 파주에 있는 무적부대로 배치를 받았다. 그래서 그동안 정들어 있던 백마부대를 떠나야 했다. 막상 떠나야 한다고 생각하니 시원 섭섭한 마음 뿐이었다. 하지만 신교대는 신교대일뿐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아쉬운 마음을 과감히 접기로 했다.

이윽고 소속 부대 미니버스가 도착하고 우리는 정들었던 동기들과 애써 이별을 하고는 차량에 올랐다. 모두들 이별의 아쉬움을 토했다. 한 동료는 참았던 눈물까지 흘리기도 했었고 나 또한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는 경험을 했다.

어떤 이유로든지 이별을 한다는건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 6주간의 소중한 추억을 간직한 채 신병교육대를 뒤로 하고 앞으로 펼쳐질 또 다른 시작을 향해 달리고 있다. 대한민국 육군 이등병으로 다시 태어나 초급병사로서의 군생활에 벌써부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댓글 3

이 동우 2000.11.27
아... 신병교육대 시절. 사소한 것들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그런 시절. 편지 한통에 울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끼고, 쵸코파이의 소중함과 동료들의 소중함을 느끼고 부대끼며 호흡하던, 그 논산의 서늘한 봄날씨와 황토벌이 이토록 그리워지는 건 나이 탓일까요? 계절 탓일까요? 쾌쾌한 모포자루속에서 피곤에 짖눌려 쓰러져 버리던 교육대의 내부반과 건빵을 마치 황금알이라도 되는양 숨겨놓았던 찬합이 이리도 그리운건 왜일까요. 그 속에서 느껴지고 경험하는 것들을 교육대 안이 아닌 외부의 사람들과 그토록 애절하게 공유하고 싶은 마음으로 수류탄 뭉치를 가슴에 품고 휴가때 애인을 보여주기 위해 가져나왔건만, 관심없다는 듯이 쳐다보는 그녀에게 얼마나 대단한 물건인지 온몸으로 설명해 주며 오버하던 그 시절이 벌써 10년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행군을 하며 동료들과 피로를 잊기 위해 지금 가장 먹고싶은 것을 나열해 가면 완전군장으로 기진맥진해 터덜터덜 걷던 그 100리의 길이 다시 걸어보고 싶은건, 아마도 막연한 향수 탓은 아닐 듯 싶습니다. 정상교씨의 병영일기... 제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군요. 앞으로도 좋은 글 부탁드립니다.
이 해우 2000.11.27
그리 슬픈이야기도 아닌 평범한 이야기에 이리 가슴이 복받쳐 오는 건 단순한 추억때문이 아닌 듯 싶어요. 그안에서 같이 경험했던 생생한 기억파편들이 하나 둘씩 맞춰지며 올라오는 뜨거운 열정과 끈적끈적한 전우애가 제 가슴을 때리는 군요. 행군할때 쓰러진 저를 부추켜 주고 제 총까지 들어주던 "김 석영" 이친구가가 그립습니다. 지금은 어디서 뭘 할래나?
과객 2000.11.27
저도 논산 출신입니다만, 자대 배치 받기 위해 따블빽 매고 쭈그리고 앉아 열차에 오르기를 기다리던 때가 생각납니다. 모두들 열차에 나누어 타고 군악대의 뺀드환송식을 받던 그 시간이 간절해 지는 군요. 아~~~ 나도 그런때가 있었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