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조된 대학 태권도시범단 한마당을 구해내다

[현장메모]대학 연합팀 시범에 눈시울이 불거지다
지난 18일 오후 6시(현지시간) 미국서 열리고 있는‘2008 세계태권도한마당(이하 한마당)’ 개막식 공연. 대회장인 캘리포니아 주 LA 애너하임 컨벤션센터에 미국인이 하나 둘씩 입장하기 시작한다. 이들은 종주국 무도태권도를 대표한다는 한마당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 입장료를 지불하고 들어온 유료 관중들이다.
음악단의 흥겨운 연주가 울려 퍼지며 개막식 시작을 알렸다. 이어지는 한마당 참석 귀빈소개와 그에 따른 한 말씀, 대회사, 환영사 등은 늘 그렇듯 지루하게 진행됐다. 드디어 한마당을 찾은 미국인들이 기다리던 시간인 태권도 시범 공연이 시작됐다.

어니 레이스 시범단. 가운데 화려한 복장을 한 사람이 단장 어니 레이스다
먼저 시범을 선보인 미국 ‘이글’ 팀은 한마당 개막식에 설 만큼의 실력은 아니었다. 실수의 연발. 하지만 작은 꼬마들과 청소년으로 구성된 이글 팀의 노력하는 모습에 관중들은 격려의 박수를 보냈다. 다음에 등장한 ‘어니 레이스’ 시범단. 이들은 미국 전역에서 상당한 인지도와 인기를 가지고 있다. 단장인 어니 레이스는 필립핀계 미국인으로 영화배우로 활약하기도 했다.
이들의 시범은 태권도가 아닌 마샬아츠 쇼에 가까웠다. 죽도, 검, 낫, 쌍절곤 등을 이용한 화려한 무기술.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고난이도 익스트림 마샬아츠 동작. 이글 팀에 적지 않은 실망감을 보였던 관중들은 세계적 수준의 마샬아츠 퍼포먼스에 연신 환호성과 휘파람을 불어댔다. 정말 눈이 즐거운 시범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대회는 종주국 무도태권도를 대표하는 한마당. 이런 생각이 들자 갑자기 가슴이 답답해졌다. 우여곡절 끝에 진행된 미국 한마당인데, 태권도를 모르는 미국인들에게 태권도가 한바탕 쇼로 비쳐지고 끝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마당이 무술 쇼로 비쳐지지 않기 위해서는 다음 순서인 한국 대학생으로 구성된 연합시범단의 어깨가 무거웠다. 사실 이들의 시범은 예정에 없는 일이다. 당초 한마당에서 시범을 보이기로 한 팀은 안학선 단장이 이끄는 ‘코리안 타이거즈’였다. 하지만 단원 대다수가 미국 비자신청을 거부당하며 입국조차 하지 못했다. 코리안 타이거즈는 한마당 시범 후 미국 전역을 돌며 유료 시범행사를 진행 할 예정이었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급하게 결성된 것이 바로 대학 연합 시범단이다. 이번 한마당엔 계명대, 경희대, 용인대, 한체대, 조선대, 우석대, 경원대 7개 대학 태권도학과에서 69명의 학생들이 참가한다. 물론 태권도 시범이 아닌 한마당 경연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말이다.

계명대학교 이규형 교수
이번 한마당에서 학생들을 책임지고 있는 사람은 계명대학교 이규형 교수다. 이 교수는 입국하는 첫날 대회 조직위로부터 난감한 부탁을 받는다. 오기로 했던 시범단이 문제가 생겨 오지 못하니 학생들과 함께 시범을 보여달라는 것이다. 사전 통보도 없었던 일. 개인을 위한 일이었다면 허락할 이규형 교수가 아니다. 하지만 그는 태권도를 보기 위해 한마당을 찾은 미국인들에게 실망감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으로 고심 끝에 수락한다.이규형 교수는 7개 대학 학생들을 모아놓고 “태권도를 위해 힘들지만 고생 한번만 하자”며 미안한 말을 전한다. 그렇게 이규형 교수는 대학 연합팀이 구성하고 시범을 짜기 시작했다. 마땅히 연습할 장소도 시간도 없었다. 그렇기에 숙소인 호텔 앞에서 늦은 밤까지 연습에 매진할 수 밖에 없었다. 게다가 주최 측의 부탁으로 개막식 전부터 중간 중간 시범을 선보여야 했다.
이규형 교수의 구령소리에 맞쳐 연합 시범단이 무대에 올라섰다. 진중한 음악에 맞춰 절도와 힘이 느껴지는 창작 품새로 시범이 시작됐다. 그리고 기자에게는 익숙한 정통 태권도 시범이 펼쳐졌다. 또 대학생들만의 패기를 엿볼 수 있는 시범들이 양념처럼 버무려졌다. 깔끔한 시범이었다. 실수 한번 없었다. 불과 3일간 손발을 맞춘 것이라곤 믿기 힘들었다.

미국 한마당에서 태권도 시범을 보이고 있는 대학 연합팀
시범 중간 중간 관중석을 쳐다봤다. 바로 앞전에 시범을 보인 어니 레이스에게 보내던 환호성은 없었다. 대신 넋을 일고 쳐다보던 관중들은 시범의 한 순서가 끝나면 우레와 같은 박수가 보낸다. 그리고 다시 시범이 시작되면 조용해진다. 수천명의 관중들이 정통 태권도 시범에 시선을 뺏긴 것이다. 기자이기 이전에 한국 사람이기 때문일까.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개막식 행사가 끝나고 시범을 보인 한 학생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었다. 그는 “힘이 들었지만 이규형 교수님 말처럼 어떤 조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한국을 위해 태권도를 위해 했기에 너무 뿌듯하다”고 말했다. 곧 바로 한마당 경연에 참가하기에 힘들만도 한텐데 말이다.
급조된 대학생 연합 시범단이 한마당을 살렸다. 이들이 없었다면 대회장을 찾은 미국인들은 한마당을 마샬아츠 쇼쯤으로 생각하고 돌아갔을 것이다. 연합 시범단이 보여준 정신력과 패기는 한마당을 대변하는 정신이었다. 만약 한마당을 정치적인 쇼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에게 한마당 정신을 배워보라고 권하고 싶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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