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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권도 병영일기 (3)


태권도 정신

신병교육대에서의 생활도 벌써 2주가 지났다. 이제 완전한 군인이 되기 위해선 앞으로 남은 기간은 4주, 속세에 찌들어 있던 나의 몸은 벌써부터 피로해 지기 시작한다. 이 곳의 숨쉴 틈 없이 바쁘게 짜여진 일상에 아직 적응을 못했기 때문이다.

남은 기간동안 과연 잘 해낼수 있을까? 때론 이렇게 나약한 생각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런 고통을 이겨낼수 있게 해준 건 항상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며 열심히 하라고 응원해 주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사회에 있을 때 관장님께서 늘 강조하시던 태권도 5대 정신. 그 중 하나인 인내를 다시 한번 마음 속에 되새기며 지쳐가는 마음을 애써 다잡아 본다.

자대에 배치받고 나서도 태권도 정신은 병영생활을 하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되었다.

조교들의 태권도 조교

오늘 아침은 매우 바쁘게 진행되었다. 3주차 교육중에서도 훈련소의 꽃이라 불리우는 행군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병교육대에서의 행군은 10km, 20km, 30km 이렇게 세번을 나누어 총 60km 행군을 하지만 자대에서의 행군은 만만치가 않다. 최저 30km~60km 이상을 한다. 참고로 육군수색대는 100km이상, 해병대나 특전사 등 그외 특수부대들은 천리(약 400km)행군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환자나 낙오자 또한 많이 발생하는 편이다. 우리는 각자 행군을 대비해 양말 속에 비누를 문지르고 전투화 속에 우유팩을 끼워넣는 등 만반의 준비를 철저히 해 놓고, 출동 명령을 기다렸다.

마침내 중대장의 행군간 사고예방 교육이 끝난 후에 우리는 조교들의 인솔에 따라 줄줄이 위병소 밖을 빠져나갔다. 약 한시간 쯤 걸었을 무렵 우리는 일산 시내를 통과하고 있었다. 3주만에 본 바깥 세상이었다.

군에 온지 겨우 3주밖에 안되었는데도 마음이 마구 설레인다. 길거리를 지극히 평범하게 걷고 있는 사람들마저 마치 딴 세상 사람 같아 보였다. 하지만 우리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 건 빵집에서 풍겨대는 고소한 빵 굽는 냄새였다. 한동안 나는 그 고소한 빵을 맛있게 먹고 있는 어린아이와도 같은 비참한 상상을 하기도 했었다.

나를 포함해 모두들 3주만에 느끼는 바깥 공기에 심한 동요를 느끼는 것 같았다. 그 때 나는 혼잣말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XX, 행군 코스를 잡을려면 어디 산 속이나 시골길로 잡던가 하지 괜히 시내로 나와서 아주 사람 미치게 만드네, 차라리 날 죽여라 죽여

이렇게 우리는 마음의 크나큰 상처만을 입은 채 별 사고없이 무사히 행군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 중에서도 오백원짜리 만한 물집이 잡힌 동료들이 있긴 했지만 군에선 그리 큰 부상은 아니었다.

3주차 교육을 마치고 조금씩 적응을 해나갈 무렵, 우리는 조금씩 여유로워질 수 있었다. 조교들하고도 왠만큼 친해져 시키는 일만 다하면 그리 심하게 간섭하진 않았다.

야간교육을 마치고 막 점호 청소를 하려는데 소대 조교들이 나를 따로 부른다. 긴장되지 않을수 없다. 헉! 왜부르지?, 영문도 모른 채 조교들을 따라갔다. 짠밥이 안되는 일, 이등병 조교들은 따로 태권도 승단심사 준비를 할 시간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점호청소 시간을 빌어서 나에게 태권도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태권도 조교가 한명 있긴 하지만 힘들게 욕먹어 가면서 배우기는 싫었는가 보다. 나는 흔쾌히 승락했다. 군대에서 태권도를 알릴 수 있는 기회를 마다할 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긴 거절도 못했을 것이다. 만약에 거절했다면 개념없다고 짱짱짱 왕따에 퇴소할 때까지의 그 무참한 갈굼을 이겨낼 여력이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교와 훈련병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계급의 벽 때문에 가르치는데 있어 그리 수월하진 않았다. 그런데 한 조교가 뜬금없이 고려품새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조교에게 정중한 말투로 "저기 2단심사를 보십니까?" 라고 하자 그 조교는 "그냥 멋있잖아" 란 의미없는 말을 내뱉을 뿐이었다. "빨리 시간없어 고려 가르쳐줘" 하고 하도 닥달하는 바람에 하늘같은 신교대 조교님에게 말 한마디 못하고 울며 겨자먹기로 점호 청소 끝날 때까지 정작 태극품새는 하나도 가르치지 못한 채 열심히 고려품새만 가르쳤다.

열심히 통밀기 준비서기만 반복하며 재밌어 하는 그 조교를 바라보며 내가 처음 고려 품새 배울 때를 상기하며 흐믓해 했던 기억이 난다. 군에선 태권도를 어떠한 교육적 목적으로 가치를 부여하진 않는다. 다만 실제 전투에서 전투를 목적으로 얼마만큼 적을 많이 쓰러뜨리느냐를 따지는 제압과 살상을 궁극적인 목적으로 한다.

근래에 들어와서 태권도의 보급이 활성화되고 태권무의 도입으로 군 태권도가 병사들의 체력증진과 군대예절 교육을 목적으로 하고는 있지만 극히 소수부대에만 시행되고 있어 이를 확산시키려면 충분한 시간과 노력이 뒤 따라야할 것이다.

그 이후에도 계속 소대 조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제법 잘 따라 하고 자세도 많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런데 조교들의 태권도 조교란 감투만 썼지, 훈련병이란 직분을 벗어나지 못한 말 그대로 허수아비 조교일 뿐이었다.

눈물의 태극1장

훈련병 태권도 조교로 불리울 만큼 유명세를 떨치기도 했었으나 그런 만큼 조교들과 때로는 훈련병들 사이에서도 나에 대해 말이 많았다. 하루는 태권도 교육을 받고 있는데 우리 소대를 맡고 있던 한 조교가 나를 불러내는 것이었다.

나는 아무 생각없이 훈령병들 앞에 섰다. 그러자 그 조교가 발차기 시범을 해 보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자신있게 조교의 지시에 따라 하나씩 발차기를 해보였다. 아마도 훈련병 주제에 조교한테 태권도를 가르친다는게 건방져 보인다는 생각에서 인지는 몰라도 그 조교의 눈빛은 시기와 질투로 가득차 있었다.

하지만 한달여 정도 운동을 못했다고는 하나 그대로 녹슬어 버릴 내 다리가 아니었다. 그런대로 발차기를 잘 소화해 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태극1장을 해보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태극1장 품새가 가장 중요하고도 어렵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품새의 시작으로서 그 안에 품새의 모든 의미와 태권도 품새의 모든 철학이 함축되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모두 알아내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조교는 나를 무시한답시고 태극1장을 시켰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그 조교의 큰 오산이었다.

지금까지도 난 품새를 연습하기 전에 꼭 태극1장을 먼저 한 후에 품새를 시작한다. 그만큼 태극1장이란 품새는 어떠한 태권도의 가치로서 나에게 큰 의미를 부여한다. 나름대로 멋지게 품새를 선보였다. 하지만 눈에 가시같은 나를 가만히 둘 위인이 아니었다.

품새가 끝나자마자 나에게 "너 지금 장난하냐?, 너 훈련병 맞냐?, 넌 품새를 해도 어째 각이 안 나오냐?, 개미를 삶아 먹었나, 기합소리는 왜 이렇게 작아?" 등 태권도를 무시하는게 아닌 내 인격 자체를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훈령병 입장에 뭐 할말이 있겠는가? 그저 죽으라면 죽는 시늉까지 해야 하는 아무런 힘도 남아 있지 않은 내 자신이 그저 한심 스러울 뿐이었다.

나에 대한 그 조교의 갈굼은 계속되었다. 주춤서기 자세로 기합연습을 시키는데 아무리 목이 터져라 소리를 내도 성이 안 찼는지 정권단련에다 선착순까지 내가 태권도를 배운 이후로 이렇게까지 푸대접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태권도를 배웠다는 사실을 한번도 후회해 본 적은 없다. 마침내 눈물의 태권도 교육은 끝이 났다. 침울해 있는 나를 보다 못한 동기들이 다가와 내게 한마디씩 위로의 말을 건넨다. 그때 난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고참, 후임병이 있다고 해도 내 동기들이 최고구나 라고 동기들의 소중함을 뼈저리게 느꼈다. 그 이후 조교들 승단심사가 끝난건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난 다시는 조교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지 않았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보다도 태권도를 더 잘하는 훈련병들이 많이 있었지만 하필이면 그때 내가 뽑힌게 조금은 후회스럽기도 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 때의 그 일이 지금은 신병교육대 시절의 작고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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