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품새의 재작(再昨)
최근 우리의 주변에서는 품새에 대한 논의가 심심치 않은 화두로 전개되면서 품새 제정이 말하기로 끝나기에는 이제 한계에 접어든 것 같다.
한 시대의 언어는 시대상을 반영하기 때문에 그러한 논의는 새로운 품새의 탄생을 열망하는 많은 태권도인들의 목소리인 것이다.
태권도계의 많은 식자들은 왜 새로운 품새가 만들어지기를 바라겠는가? 그것은 태권도의 근원을 밝히고자 하는 시도에서 걸림돌이 되고 있는 가라데의 수용과 극복이라는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며, 품새 수련과 태권도의 기술성 문제에 대한 적합성과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역사적 맥락에서뿐만 아니라 태권도 현장의 기술적 요구라는 측면에서도 어차피 개량과 확장이 필요한 시점에 와 있다는 점을 재인식해야 한다.
또한 우리 품새의 가라데적 요소에 대해 분명한 반성을 하지 않고는 결국 새로운 품새의 모색도 여전히 그 틀 속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게 될 위험이 있다. 현존하는 태권도 원로들이 명백히 밝히고 있듯이 태권도의 탄생 초기에는 가라데의 형을 위주로 수련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1973년에 이르러 제3차 교육과정에 태권도가 추가됨에 따라 당시 문교부에서는 초·중등학생을 지도하기 위한 새로운 태권도 품새의 제정을 요구하게 되었고, 당시 태권도 원로 4인이 용산 삼각지에 소재한 청도관에서 4일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초고속으로 만들어 낸 품새가 바로 현재 활용하고 있는 태극 품새인 것이다.
27년 동안이나 활용해오던 이러한 태극 품새는 태권도 수련의 근본을 이루며, 세계 속의 태권도로 성장하기까지 절대적인 역할을 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으며, 당시 품새의 제작에 관여했던 원로들의 노력은 모든 태권도인들의 존경을 받을만한 일대의 업적임에는 틀림이 없다.
그러나 태권도 품새와 현장의 기술적 요구와의 괴리감은 우리에게 새로운 시대적 사명감으로 품새 재작(再昨)의 과제를 던져주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태권도 발전의 근간이 절대적으로 도장이라는 것, 태권도 수련은 품새에서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태권도 도장이 청소년 지도와 사회체육의 커다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여기서 품새의 재작이란 수정과 보완을 의미하는 제작의 과정을 말한다.
1997년 대태협에서는 연구개발특별위원회를 구성하여 품새 개발의 연구를 시도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그 시도는 백지 상태로 끝이 났다. 그것은 새로운 품새의 개발이나 창작 품새의 진흥 등 정책적 아이디어의 배면에 이론적 방향성의 제시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태극 품새가 잘못되었다고 하면서도 그것의 개선은 언제 이루어질지 아직도 알 수가 없다.
새로운 품새의 개발은 무술의 한 수련 체계로서의 품새에 대한 보편적 이론의 이해를 바탕으로 하여 진행되어야 한다. 품새의 재작에서 비슷한 동작의 재배열이 새로운 품새의 개발일 수 없으며, 원칙 없는 새로운 동작의 도입이 새로운 품새 제작의 근거가 되어서도 안된다.
기존 품새의 문제점, 다양한 수련자 집단으로부터의 새로운 요구, 그리고 광범위한 비교 무술적인 탐색이 차분히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즉 새로운 품새의 구성은 우리 민족의 철학적 바탕에 근거하여 재창조되어야 한다.
제자리에 앉아서 어느 누군가가 해내겠지 그리고 1년 정도면 만들어 낼 수 있겠지라는 기대감은 전제한 수많은 욕구를 충족시키기에는 항상 부족함이 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품새의 재창조는 철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시도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충분한 기간을 두고 출발해야만 한다. 그리고 새 천년을 맞이하는 시점에서 태권도의 미래를 예견하여 수십억, 아니 수백억원을 소요하더라도 이제는 꼭 해내야만 하는 태권도의 절대적 사명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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