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소청제도 ‘자승자박’하는 꼴은 아닌지

[기자수첩]올림픽대표 2차 평가전 지연사태를 바라보며
올해 대한태권도협회(KTA)는 판정 결과를 번복할 수 있는 새로운 소청제도를 도입했다. 이미 내려진 판정을 뒤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지도자들은 반가움을 표시했고, 반면 새로 구성된 심판진들은 소청제도가 심판들을 위축 시킬 수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지난 4일 올림픽공원 펜싱경기장에서 열린 올림픽대표선발 2차 평가전은 새 소청제도의 문제점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남자 +80kg급 차동민(한국체대)과 윤희성(용인대)의 경기. 3회전 4-4 동점인 상태로 경기가 끝났지만 윤희성이 경고를 추가로 받으며 패했다.
용인대 측은 즉각 소청을 신청했다. 소청위원회는 심의 결과 문제가 없다는 결정을 내렸다. 이에 류병관 용인대 교수는 강력하게 항의했고, 이로 인해 올림픽대표 선발전이 5시간 지연되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중앙언론에선 큰 건수를 잡았고, 이날 태권도는 멋지게 방송을 탔다. ‘태권도 경기 또 판정시비’라는 부끄러운 타이틀과 함께 말이다.
용인대는 새 소청제도가 달갑지 않을 것이다. 지난 14일에 경남 사천에서 열렸던 1차 평가전 남자 -68kg 용인대 김응현 선수가 이긴 시합을 소청으로 날려버리며 탈락했다. 게다가 2차 평가전에선 소청이 기각됐으니 폭발할 만하다. 하지만 류병관 교수의 항의는 정도가 지나쳤다.
KTA는 소청위원회를 통해 나온 결과를 가지고도 용인대 류병관 교수의 기에 눌려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심판들은 마치 죄인처럼 쥐 죽은 듯이 앉아 있었다. 최정호 심판 위원장은 방송 카메라 앞에서 지연사태에 대해 해명하기 바빴다. 미숙한 경기진행으로 KTA는 물론 심판부의 권위가 땅에 떨어진 것이다.
새 소청제도는 개선이 필요해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5월 1일 열리는 3차 평가전에서 같은 상황이 연출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먼저 무분별한 소청 신청을 막기 위한 방안이 필요하다. 소청이 기각된 팀에게 불이익을 주거나, 현재 7만원인 소청비를 대폭 인상하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다. 또 소청이 가능한 사항을 세부적으로 정해야 한다. 경고나 감점까지 소청의 대상이 된 다면 원활한 경기 진행을 기대하긴 힘들다.
새 소청제도는 공정한 판정을 이끌어 내겠다는 KTA의 의지다. 하지만 이로 인해 KTA가 스스로를 옭아매는 ‘자승자박’하는 꼴을 연출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태권도 경기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에서 심판의 판정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기계가 아닌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실수가 있는 법이다. 그러나 고의적이지 않다면 심판의 실수도 경기의 일부라고 볼 수 있다.
스포츠 전문가들은 1류 스포츠 경기일수록 심판의 권위는 절대적이라고 말한다. 심판에 대한 신뢰도를 놓고 보면 태권도 경기는 1류 경기가 될 수 없다. 뿌리 깊은 판정 불신이 가져온 태권도의 우울한 자화상이다. KTA는 공정한 판정을 위해 새로운 제도 도입도 좋지만 심판의 권의를 살려주는 일을 먼저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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