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종별선수권에 사용된 전자호구를 지켜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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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태권도 공정성을 위해 박진감과 재미는 버려졌다
태권도 겨루기는 기록경기가 아닌 맨손으로 하는 격투기 경기다. 그렇기에 사람이 심판을 보고 판정을 내려야 더욱 묘미가 있고 생동감이 넘친다. 하지만 이제 사람의 역할은 점차 사라지고 기계가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전자호구 이야기다. 최첨단 기계가 태권도 경기에 등장한 것은 분명 환영할 일이다. 하지만 전자호구가 태권도에 도입된 것은 문명의 발달보다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 더 큰 이유를 차지한다. 그동안 있었던 심판 판정에 대한 불신과 그에 따른 갈등의 골은 이미 다시 메우기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사람보다는 기계를 믿어보자는 것이다.
경상북도 안동에서 3월 25일부터 4월 1일까지 열린 ‘2008년도 전국종별태권도선수권대회(이하 종별선수권)’에서 전 경기 전자호구를 사용했다. 기자는 27일부터 28일 양일간 현장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이날 지도자들은 똑같은 조건에서 치루는 경기의 판정에 대해 공정하다고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경기는 정말 재미없었다.
신인등용문의 장인 종별선수권은 지난대회 입상경력이 없는 선수들이 출전한다. 선수에 대한 정보가 전무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루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느 대회보다도 화려한 기술이 다양하게 펼쳐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는 단발 공격이 주를 이뤘다. 흡사 올림픽평가전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였다.
경기 후 만난 지도자들은 답답함을 호소했다. 기량이 좋은 선수가 필요 없다는 것이다. 앞발위주의 공격을 잘하는 선수가 이날 경기에서는 최고였다고 평가했다. 관중들도 혼란스러워 했다. 누가 봐도 득점이라고 생각되는 공격. 관중석에선 환호성이 터져 나왔지만 전광판엔 점수가 기록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심판이 판정하는 얼굴공격이 더 많이 나와야 정상이다. 얼굴득점은 2점이다. 하지만 일반호구보다 불편할 수밖에 없는 전자호구를 입고 시도하기엔 쉽지 않은 선택이다. 게다가 공격을 감행하다 몸통을 쉽게 내주기 일수다. 뒷차기 공격도 현저하게 줄었다. 아무리 강하게 공격을 성공해도 발뒷굼치에 있는 센서가 접촉하지 않으면 공격은 무의미로 끝난다.
선수들 입장에서는 어떤 공격이 성공할지 모르기 때문에 소극적인 경기를 펼칠 수밖에 없다. 대한태권도협회(회장 김정길, KTA)는 앞으로 국내 주요 대회에 전자호구를 도입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시아태권도연맹(회장 이대순)은 제18회 아시아태권도선수권대회 전 경기에 전자호구를 사용하기로 확정했다. 태권도에 전자호구 완전 도입이 기정사실화 되고 있다.
그동안 태권도 경기는 재미없는 경기로 인한 매스미디어 노출 부족 그리고 불공정 판정에 의한 잦은 판정시비 등이 꾸준히 지적돼왔다. 이러한 태권도 경기의 패러다임을 바꿀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전자호구다. 세계태권도연맹(WTF) 조정원 총재도 취임 초부터 전자호구 도입을 적극 추진했다. KTA도 전자호구의 필요성을 인정했다.
하지만 현재 전자호구를 도입을 주도하고 있는 WTF와 KTA의 모습을 보면 심판 판정의 공정성에만 치우쳐 있는 것 같다. 물론 공정성은 올림픽 잔류라는 대의명분을 위한 선결 조건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로 인해 태권도 경기가 재미없어 진다면 그땐 어떻게 할 것인가. 그렇기에 제도권의 노력과 합심이 그 어느때보다 중요한 시기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전자호구 도입과정을 보면 현재 세계태권도연맹(총재 조정원, WTF)의 유일한 공인업체인 라저스트(LaJUST)사가 주도해 왔다. 경기단체인 WTF와 KTA는 라저스트가 가져온 제품을 품평하는 수준이었다. 최상의 제품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개발부터 적극적인 참여를 해야한 하지만 제품 개발에 있어서 그들은 흡사 방관자 같았다.
WTF는 라저스트 한 업체만이 아닌 우수한 기술력을 보유한 여러 업체를 선정해 전자호구 개발을 유도해야 한다. 그러면 상호 경쟁을 통해 전자호구 기술의 발전은 물론 시장 가격도 합리적으로 책정될 수 있다. 현재 99만원으로 책정돼 있는 라저스트 전자호구 가격은 지도자에게 적지 않은 부담으로 다가오고 있다.
또 KTA는 심판들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 할 수 있는 경기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기계를 이용해 사람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 될 수 있게 말이다. 올해 새로 구성된 경기부 심판진의 의지는 대단하다. 그들의 역량이 최대한 발휘 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줄 의무는 KTA에 있다.
태권도 경기의 공정성과 재미. 이 두 마리 토끼를 한 번에 잡아야 한다. 이를 경기단체만의 문제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앞서 말했듯이 전자호구로 인해 태권도의 패러다임이 바뀔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국기원을 비롯한 모든 태권도인이 전자호구 도입에 관심을 가지고 힘을 모아야 할 때이다.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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