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선수 가슴에 언제까지 못을 박을 것인가

삼성에스원 유경아, 올림픽선발전서 본인 의지와 관계없이 경기포기

14일 열린 올림픽선발전 1차전. 안새봄(좌)의 경기 모습
지난 2000년 5월 시드니올림픽 여자 대표 최종선발전. 당시 여자 -57kg급은 한국체육대학교 동기생인 정재은, 장지원 그리고 인천시청 강해은의 3파전이었다. 정재은과 장지원의 마지막 경기를 앞둔 상황에서 세 선수의 전적은 강해은 1승 1패, 정재은 1승, 장지원 1패였다.
이 경기에서 장지원이 이길 경우 세 명 모두 1승1패로 동률을 이뤄 재대결을 펼쳐야 했다. 꿈의 무대인 올림픽을 앞두고 한 치의 양보조차 있을 수 없는 상황. 장지원은 경기를 우세하게 끌고 가고 있었다. 판정으로 갈 경우 장지원의 승리가 조심스럽게 예측됐다.
그러나 종료 30초를 남겨두고 설마 하던 일이 터졌다. 느닷없이 장지원의 코너에서 흰색 수건을 던져졌다. 기권의 표시였다. 그렇게 경기는 끝나고 자연스럽게 정재은이 2승으로 시드니 올림픽 대표로 선발되었다.
지난 14일 국기원에서 열린 ‘2008 베이징 올림픽 파견 국가대표선수선발 1차 예선대회’. 8년전 필름을 되감아 정재은과 장지원의 경기를 다시 본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 일이 벌어졌다.
이날 여자 -67kg급에서 삼성에스원 소속 유경아와 안새봄이 맞붙었다. 경기는 유경아가 3회전 중반까지 4-1로 앞서고 있었다. 당시 경기 흐름과 남은 시간을 생각했을 때 누가 봐도 유경아의 승리가 확실시 됐다.
경기가 끝나갈 무렵 ‘설마’라고 생각했던 일이 경기장을 찾은 태권도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무렇지도 않게 행해졌다. 관중석에서 경기를 지켜보던 삼성에스원 김세혁 감독은 경기장에 있던 김용수 코치에게 고함을 지르며, 유경아의 기권을 지시했다.
이 모습을 지켜본 많은 사람들은 아연실색했고, 김용수 코치는 어쩔 수 없이 수건을 던져 유경아에게 경기를 포기시켰다. 그렇게 결승에는 안새봄이 올라가 2위를 차지하며, 국가대표 최종평가전 출전 자격을 얻었다.
유경아 ‘경기포기’ 사태에 대해 김세혁 감독은 “개인적으로는 마음이 아픈 일이다. 하지만 팀의 전략이라는 것이 있는 것”이라며 “경아와 부모님도 내 뜻을 이해주었다. 아직 2차 선발전도 남은 상황에서 지도자로서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두고 한 태권도 감독은 “도덕 불감증이 가져온 어처구니없는 일이다. 만약 태권도가 아닌 다른 운동 종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난리가 날 것”이라며 “이번 일은 태권도계의 썩어 빠진 관행 같은 것이다. 이런 문제는 법이 아닌 도덕적인 문제를 담당하기 위해 만든 (KTA)윤리위원회 같은 곳에서 하루 빨리 뿌리 뽑아야 한다”고 성토했다.
경기를 지켜본 한 태권도인은 “올림픽 정신인 ‘스포츠맨십’을 져버리는 비인간적인 행위”라며 “성적 우선주의를 부르짖는 일부 몰지각한 지도자들의 이런 행동 때문에 어린 선수의 가슴에 평생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긴다”고 비판했다.
그동안 태권도계에선 특정 선수 밀어주기가 암암리에 관행처럼 행해져 왔다. 만약 이번 경기포기 사태도 늘 그렇듯이 조용히 넘어 간다면 앞으로 태권도는 영원히 3류 스포츠라는 꼬리표를 달고 다녀야 할 것이다. (끝)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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