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서 만난 태권도계의 야인, 이규현 사범

[명인열전 - 5] 세계태권도사범연수원 이규현 원장
고속도로를 타고 1시간 남짓하게 달렸을까.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도장리라는 한 시골에 도착했다. 지난 밤 내린 눈은 주변 풍취를 한껏 느끼게 했다. 비포장도로를 지나 낮은 언덕을 올라가니 목적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규현(63) 원장이 운영하는 세계태권도사범연수원(이하 연수원)이 그곳.
연수원 내에는 교육생들이 훈련에 한창이다. 지도 중이던 이규현 원장이 기자를 발견하고는 반갑게 맞아주었다. 태권도계에서 강직한 사람으로 유명하기에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상상했다. 예상은 빗나갔다. 부드러운 미소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도 잠시였을 뿐. 교육생 지도를 시작하자 카리스마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태권도계의 야인’이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는 이규현 원장. 제도권을 떠나 자신만의 태권도를 펼치고 있기에 나온 말이다. 태권도 숙원사업 중 하나는 통일된 정통 태권도를 전 세계에 보급하는 것. 하지만 현재 국기원 연수원의 교육으로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 이규현 원장은 1995년 개인 사비를 털어 땅을 사고 지금의 연수원을 설립했다.
국기원에서 이러한 이규현 원장이 달가울 리 없다. 이규현 원장은 “국기원 교육분과위원장까지 한 내가 국기원과 사이가 안 좋을 이유는 없다. 하지만 알게 모르게 피해를 받은 것은 사실”이라며 “국기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5일간의 사범교육으로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연수원을 설립해 운영한 것이다. 하지만 도움보다는 방해가 많았다”고 아쉬운 목소리를 냈다.
이어 그는 “국기원에서 사범교육을 위한 완벽한 시스템을 만들어 놓았다면 사설 교육 기관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것은 힘든 일이다. 넘쳐나는 사범들을 생각한다면 사설 교육기관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다. 단 돈에 목적을 두고 교육기관을 운영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규현 원장이 현재 자신만의 태권도를 가르치고 연구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제도권을 배제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30년 넘게 태권도 제도권에서 가장 열성적으로 일을 해온 사람 중 한명이다. 최초의 국기원 시범단원 13명중 한명이 바로 그다. 그 후 4명의 단장을 모시고 부단장으로서 국기원 시범단을 이끌어 왔다. 대한태권도협회에선 경기 심판 일을 20여년간 해 왔다. 국기원에선 교육분과 위원장으로 있으면서 지금의 국기원 연수원이 존재 하는데 많은 밑거름이 되었다.
이규현 원장은 태권도를 대중적으로 알리는데도 많은 공헌을 했다. 1988년 대한태권도협회에서 최초로 제작한 품새 비디오의 모델. 아리랑 TV 방영 태권도 품새에서 시연자로 나서며 세계에 태권도를 알리는데 일조했다. 또 1999년 KBS ‘한국이 보인다’에서 파란 눈의 태권도인 ‘브루노’ 스승으로 일반인들에게도 태권도를 친숙하게 만들었다.
브루노를 가르쳤던 일에 대해 이규현 원장은 “처음 브루노를 맡아 태권도를 가르쳤을 때 브루노가 유단자가 아니었기에 여러모로 힘든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방송매체에서 태권도를 대표해 나오는 것이기에 누구보다도 강도 높은 훈련을 시켰다. 가르치는 나도 힘들었지만 배우는 브루노는 아마도 죽을 맛이었을 것”이라며 당시를 흐뭇하게 회상했다.
이규현 원장은 1년 전 부인과 사별했다. 10년간 몸이 아팠던 아내의 병수발을 직접 했다. 그런 아내 이야기를 묻자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급하게 화제를 자식 이야기로 바꾸자 얼굴이 환해졌다. 1남 1녀를 두고 있는 이규현 원장은 아들은 육사출신 군인이고, 딸 또한 육사출신 사위를 얻어 엉겁결에 군인가족이 되었다며 은근히 자식 자랑을 했다.
태권도 품새는 실전적이어야 한다고 생각
이규현 원장은 태권도 품새 연구를 누구보다 많이 하는 사람이다. 연수원에서는 옛날 구형 태권도 품새와 현재의 품새를 비교하며 가르친다. 또한 가라테, 주짓수 등 타 무술에 대한 연구를 통해 태권도 품새에 접목하는 실험도 하고 있다. 태권도 품새는 실전적이어야 한다는 생각에서다.현재의 국기원 품새에 대해 어떻게 생각 하냐는 질문에 그는 “수정, 보완이 필요한 것은 맞지만, 국기원 품새가 잘못 만들어 졌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며 “국기원 품새는 품의 동작수가 적기 때문에 짧다. 그러다 보니 실전 응용에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지금의 품새는 인격수양을 위한 성격이 강하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기원에서 개발한 경기용 품새에 대해 이규현 원장은 “경기용 품새 개발에 참여를 못했다. 시연회에도 부름을 받지 못했다. 내가 가면 쓴 소리 일색이라고 생각한 건지 모르겠다(웃음)”며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다만 품새를 만드는 방법에서 좀 더 많은 사람의 의견이 수렴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앞으로 경기용 품새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가라테 형이나 우슈의 남권과 북권 등의 장점을 한번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며 “가라테는 동작의 연속성이 뛰어나고 우슈는 상당기간을 연구를 통해 시합용 우슈를 만들어 난이도면에서 어렵다. 이러한 점은 참고해 볼만 한 것 같다”고 조언했다.
이규현 사범은 태권도계에 정통 태권도를 배운 지도자들이 적은 부분을 가장 아쉬워했다. 그는 작은 힘이지만 연수원을 통해 진정한 태권도 무인들을 더 많이 배출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이후 연수원의 모든 일은 후배들에게 물려주고 자신은 수련에만 몰두하고 싶다고 한다.태권도를 했다는 것이 평생의 자랑이라고 떳떳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이규현 원장이 그 중 한명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끝)
[신준철 기자 / sjc@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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