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몸짓을 찾자
우리 몸짓을 찾자
한국의 무술들은 저마다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주변 국가의 영향을 받은 모방품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불어온 전통문화의 관심 여파로 인해 많은 무술들은 우리 것이라는 과장된 표현을 서슴치 않고 있다.
무술을 연구하는 많은 학자들은 그런 혼란을 막아보고자 다양한 의견을 제시했고 개념 규명을 밝히기 위한 작업이 최우선으로 이루어진 바 있다.
심지어는 일본 무도학자들이 써놓은 것을 재인용하여 더욱 혼란을 주는 이론을 제시하기도 하였고 무조건 과거 역사를 운운하여 떠든 이야기로 홍수를 이룬 적도 있다.
마치 우리 것은 추하고 힘이 없어 보이는 것이고 일본과 같이 형식화된 딱딱한 무도들은 마치 힘이 있어 보이는 것처럼 비교한 사람들도 있었다.
"우리것이 추하다." 이것은 비단 무술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다른 문화 생활에 있어서도 우리 전통은 마치 추하고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도외시되어 왔다.
한복은 명절때나 입는 옷으로 생각하고 있고 우리 전통 음식은 그저 별미로 즐기는 수준에 이르렀다. 민속촌을 찾을땐 과거 못살았던 시대를 회상이나 하려는 듯 혓바닥을 차며 돌이키지 않으려는 과거의 교훈장으로 생각할 뿐이다.
아주 못된 민족이 되어 버렸다. 과거 우리 집터가 어떻게 생겨났고, 과거 우리 민족이 왜 그러한 옷을 입었는가를 과학으로 증명치 못하고 그저 못살아서라는 해석으로 회피하고 있다.
필자는 왜 우리 무예인 택견이나 씨름이 뒷전인가를 고민한 적이 있다. 그 고민의 해답은 민족성에 있다. 그리고 우리 민족이 잘못된 인식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술의 최상급은 일본무도라는 인식, 일본식의 방법이 최고의 무술인냥 해석하는 못난 모습들. 그것은 일제때 일본문화를 영위했던 지식층들의 못난 습관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들이 일본문화를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중국이 개방되면서 일본무도는 중국무술에 비해 새발의 피라는 걸 무예당사자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이를 주장하기엔 그동안 닦아 놓은 터전에 상응되는 판이라 두려워하는지도 모른다.
필자가 중국에서 조선족 무술인을 만나서 하루를 보낸 적이 있다. 그는 조선족 무술이 왜 없는가라는 고민에 빠져 있다가 당시 부모세대인 지식인으로부터 왜 없느냐고 충고를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우리 민족이 생활 속에서 사용하던 떡매(떡을 칠때 쓰는 큰 망치), 도리깨(콩을 타작할때 쓰는 도구), 다듬이로 일제하에 중국땅에서는 일본군인들을 상대하여 싸웠다는 이야기다.
그는 수십년간 그 복원을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그런 노력을 인정한 중국정부는 조선족 전통무술로 인정하여 중국무술편람에 등록시켰다. 중국에서 그 무술을 인정한 것이다.
일본의 칼에 떡매는 엄청난 위력이 있으며, 중국의 창에 도리깨는 기 위용이 대단하다. 필자의 부탁으로 동작을 시연한 그를 보고 위력이 대단함을 알았다. 또한 그 기술은 우리 민족이 어려운 난국에서 헤쳐나가는 중요한 수단이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우리 무예인들은 지금 일본 단무지를 그냥 먹으며, 좋아 하는 사람은 단무지를 먹지 동치미는 추하게 생각하는 꼴이다. 필자는 일본무도가 단무지라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는다.
단무지가 우리 입맛에 맛지 않으면 고추가루에 겉절이라도 해서 맛있게 먹어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그저 권위주의에 빠져 마치 일본 것이 최고이고, 중국 것이 최고처럼 착각하지는 말았으면 한다.
우리 몸에 맞는 몸짓을 찾아야 하고, 우리 몸에 맞는 몸짓으로 변형해야 한다. 일본 무도고수에게 스승이라 지칭하며 굽신거리는 소수의 우리 무예인들을 볼 때는 참으로 어려운 난국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무작정 우리것이니 좋아해야 한다는 어처구니없는 옹호론자들도 각성해야 한다. 우리가 어려웠을때 먹던 개떡을 우리 음식이니 그대로 재현해 먹으며 피자보다 맛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된다.
우리 것이 잘못되었다면 변형을 줄 수도 있는 문제다. 우리의 몸짓에 우리의 새로운 무예개발도 필요하다.
끝으로 우리나라에 있는 모든 무예단체 고단자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신은 얼마나 우리것을 찾으려 했습니까? 또한 우리의 몸짓중 우리춤을 추어본 적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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