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득권보다는 평민으로 끝내고 싶다”

[명인 열전 - 3] 계명대학교 태권도학과 이규형 교수

정말 흐트러짐 없이 태권도만을 위해 살아온 사람이라는 강한 느낌을 받았다.
지난 9월 22일. 서울 미동초등학교(학교장 권무, 이하 미동)에서 이규형(계명대, 59) 교수를 만났다. 지난밤에 대구에서 올라와 피곤할 만도 한데, 미동 태권도부와 중학생들을 특별 지도하고 있었다. 다리가 불편해 보여 물어보니 지난해 해외 시범 중 다쳤다고 한다. 덕분에 1년째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학생들 지도가 끝나고 인터뷰를 시작했다.
1948년 전라북도 장수에서 태어난 이규형 교수. 그는 어려서 체구가 작고 힘이 약해 학교에서 늘상 주변 또래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허약한 아이였다. 이 교수가 10살이 되던 해. 장수에 태권도장이 처음으로 문을 열었다. 자신의 허약한 몸을 강하게 바뀌겠다는 생각으로 그는 태권도에 입문하게 된다.
태권도에 빠져 한창 수련에 열중하던 중 뜻하지 않은 불운이 찾아온다. 그를 지도하던 사범이 갑자기 아무 이유 없이 종적을 감춘 것이다. 초단 심사를 앞두고 있던 시기였기에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스승이 떠나자 수련생 대부분이 태권도를 중단했다. 하지만 이 교수는 산에 올라가 더블 백(샌드백 모양의 군대 배낭)에 모래와 톱밥을 넣고 혼자만의 수련을 계속했다.
하루 8시간의 강훈련이었지만, 개인수련으로는 한계가 있었는지 그는 초단(1단) 심사를 두 번이나 떨어지고 만다. 당시만 해도 승단 심사제도가 엄격했다고 한다. 겨루기를 두 명과 하는데, 이중 한번 이라도 지게 되면 떨어졌다고 한다. 그는 “스승과 함께 체계적으로 수련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를 느꼈다”며 “스승 없는 제자의 슬픔을 그 때 느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그렇게 어렵게 중학교 1학년이 되어 초단 승단에 합격한다. 지금은 초단의 가치가 많이 떨어졌지만, 당시만 해도 태권도 초단은 지역 사령관 대우를 받았다. 생활이 어려워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던 시기에 장수 경찰서장이 경찰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칠 사람이 필요하다며 요청을 해 왔다. 고등학생 신분이었지만 당시 장수에서 유단자는 이규형 교수 혼자였기에 가능한 제안이었다.
그렇게 경찰서 운동장에서 경찰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게 되고, 일과시간 이후에는 경찰서 운동장을 빌려 일반인들에게도 태권도를 가르쳤다. 이규형 교수는 “장수군 7개면 중 6개면 사람들을 다 가르쳤다. 1967년도에는 인원이 2000명에 육박했다”며 “당시 신문에도 나오면서 본의 아니게 유명세를 탔다. 인원이 많다 보니 전주로 승단심사를 보러 갈때 버스를 대절하기도 했다”고 추억을 떠올렸다.
미국 행과 미동초등학교의 갈림길, 그의 선택은?

많은 사람들이 어린이 태권도 대표시범단으로 미동태권도부를 떠 올린다.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에서 미동 태권도부가 선보인 시범을 아직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런 미동 태권도부를 이야기 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사람이 바로 이규형 교수다.
이규형 교수가 미동 태권도부를 맡게 된 것은 자의 보다는 타의에 가깝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1972년 육군종합 행정학교(당시에는 상무가 없었다)에서 태권도 교관으로 군대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 때 미동에서 군으로 태권도를 가르쳐 줄 사람을 한 명 보내 달라는 공문을 보내왔다. 대민봉사 차원에서 이규형 교수가 미동으로 가게 된다. 처음에는 운동장에서 12명을 데리고 시작했다.
태권도를 배우면 공부를 못하고 불량해 진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그렇기 때문에 이 교수는 학생들에게 태권도뿐 아니라 학업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에 미동에서 태권도를 배운 학생들은 하나같이 공부도 잘하고 예의바른 모범생이 된다는 소문이 나게 된다. 이후 태권도를 배우는 학생들은 200명으로 늘어나게 됐다.
이규형 교수는 군대 제대 후 미국으로 가게 돼 있었다. 제대 일주일을 남기고 미동에서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마지막 인사를 하러 학교를 찾아간다. 그런데 당시 군 무도과장과 학교장 그리고 학부모가 사전 모의를 했던 모양이다. 작별 인사를 하려고 단상에 서기전 학교장이 먼저 “이규형 사범이 여러분을 1~2년 동안 더 봐주고 가겠다고 합니다”고 말해놓고 도망가 버리는 게 아닌가.
그는 학생들의 진심어린 박수와 순수한 눈망울에 사실이 아니라는 말을 차마 할 수 없었다. 교장과 학부모는 “적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1년 내지 2년만 맡아 달라”고 간곡하게 부탁했다. 이규형 교수는 차마 뿌리치지 못하고 승낙을 한다. 그렇게 해서 미동 태권도부와의 질기고 질긴 인연이 시작 되었다.
미국행을 포기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없냐는 질문에 그는 “후회는 없다. 미국행도 좋지만 내 나라 내 민족이 있는 나라에서 꿈나무들을 인재로 육성할 수 있다는 것은 미국행과는 비교할 수 없는 최고의 보람”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35년이라는 세월을 미동 태권도부와 함께한 이규형 교수. 그에게 태권도를 배운 제자가 수만 명에 이른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배우 김혜수나 동방신기 미키 유천 등이 그의 제자들이다. 이 교수는 “제자들은 내 최고의 보람”이라며 인터뷰 내내 제자들 자랑에 침이 마를 줄 몰랐다. 그런 그의 모습이 참으로 흐뭇하게 느껴졌다.
미동의 유명세와 더불어 이규형 교수의 주가가 올라가니 유혹도 많았다. 행정부서에서 중책을 제의 받기도 하고, 어떤 곳에서는 국제 무술단체를 창립해 회장을 맡아 달라는 부탁을 받기도 했다. 이 교수는 “우선 능력이 부족해서 거절했다. 넥타이 맨 회장이나 간부보다는 도복을 입고 일선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이 좋다”며 “기득권보다는 평민으로 시작해 평민으로 끝나는 것이 나에게 맞다. 앞으로도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는 어린이대표시범단과 성인대표시범단장 자리를 후배에게 넘겨주고, 계명대학교에서 태권도 지도와 연구에만 집중하고 있다. 그는 지금도 매일 2시간씩 개인수련을 한다.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할 때까지 태권도를 하겠다고 말하는 이규형 교수. 자리싸움으로 얼룩지고 있는 태권도 기득권 틈에서도 오로지 후진양성과 연구에 매진하는 이규형 교수 같은 지도자들이 있기에 태권도의 미래가 밝아 질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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