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와 지자체 과열경쟁으로 난항 거듭

[특별기획. 태권도공원 어제와 오늘 ②]
- 국가경제위기와 지자체 유치 과열, 태권도공원 조성사업 전면 재검토
96년부터 본격화된 태권도공원 조성사업계획은 10년이 지난 현재까지 여러 차례의 무산위기를 거듭했다. 첫 위기는 90년대 말 갑자기 외한위기가 불어 닥치면서다. 국가 경제가 위기상황인 만큼 태권도공원 조성계획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KTA는 1998년 2월 13일 이사회를 열고 IMF(국제통화기금)로 인한 ‘(가칭)태권도성전’ 건립 계획을 유보했다. 게다가 당시 조성 사업을 앞장섰던 이흥주 상임부회장(KTA)도 서울특별시 부시장으로 자리를 옮겨 이래저래 조성사업이 난관에 봉착했다.
하지만 KTA가 사업계획을 유보한지 2개월 만에 당시 박지원 문광부장관이 대통령 보고를 통해 태권도공원 조성계획을 ‘특별추진과제’로 보고하면서 조성사업이 정상적으로 재개되었다. 당시 김운용 회장이 국회에 진출한 것도 큰 힘이 되었다.
2000년 4월 박지원 문광부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태권도를 21세기 국가전략상품으로 키우기 위해 2007년까지 2천억원을 투입해 100만평 규모의 태권도 성전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박 장관이 태권도공원 조성 계획을 공식 발표하자 전국 11개 시·도에서 27개 지자체가 후보 유치에 참여했다. 당시 문광부에 근무했던 한 관계자는 “많으면 4곳 정도의 지자체에서 후보 유치에 참여할 것으로 전망했다”고 말했다.

당시 태권도공원 후보 유치를 신청 지방자치단체
결국, ‘침체된 지역경제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걸고 후보유치에 나선 여러 지자체간 경쟁은 ‘넘지 못할 선’을 넘었다. 해당 지역에 공원유치를 위해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고 대대적인 유치 운동을 벌였던 것이다.
이 과정에서 상대 후보도시를 음해하고 비방하는 등 과열경쟁이 잇따랐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정부도 특단의 조치로 사업자체를 전면 재검토할 뜻을 내비쳤다. 같은 해 10월 당시 김한길 장관이 국회 국정감사에서 “태권도공원 사업 착수시기와 규모, 예산조달방안에 대해 전면 재검토 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IMF 여파 등의 이유로 조성사업 계획은 2004년까지 무기한 연기 되었다.
관련부처 잦은 장관 교체, 조성사업 계획도 함께 ‘흔들’
공원 조성사업이 장기화가 된 가운데 일각에서는 “태권도공원은 애초부터 정부의 투자로 이뤄지는 국책사업이다 보니 주무관청인 문광부장관의 잦은 교체와도 연관이 있다”고 여러 곳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대표적으로 2000년 9월, 태권도공원 조성사업을 실제 이끌었던 박지원 장관에서 김한길 장관(~2001년 9월)으로 교체된 시점에서 조성사업이 무산돼 이 같은 일각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었다.
이어 2001년 9월 김한길 장관에 이어 남궁진 장관(~2002년 7월) 시절에는 태권도공원 조성사업과 관련한 예산을 전혀 편성하지 않아 사실상 사업계획이 백지화가 되었음을 시사했다. 다시 말해 공원조성 계획이 없기 때문에 예산을 편성하지 않은 것이다. 실제 기획예산처는 2002년 총 사업비관리 대상사업에서 태권도공원 조성사업을 제외했다.
3년 동안 장관이 3회 교체되면서 태권도공원 조성사업은 백지화가 되었다. 이로 인해 당시 공원 유치에 나섰던 여러 지자체는 상당한 행정력과 홍보비 등을 날렸다. 기대에 들떠있던 여러 지자체는 정부의 갑작스러운 방침에 분통을 터트렸다.
왜 지자체는 태권도공원을 유치하려고 했나?

‘태권도공원’이 대체 무엇이기에 왜 전국적으로 지자체들이 태권도공원을 해당 지역에 유치하고자 했을까. 진정 태권도를 위해서였을까. 안타깝게도 이들 지자체들이 ‘태권도공원’ 유치에 목을 맨 까닭은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해서였다.
당시 178개국 6천만 태권도인구의 성지인 태권도공원을 조성하면 연간 250만 명의 태권도인과 관광객들이 찾게 되고, 연간 3조원 이상의 부가가치를 낼 수 있다는 전망이 나왔다. 이러한 수치는 종업원 1백명에 연매출 2백억원인 공장 150곳을 짓는 효과라는 분석이 나왔기 때문이다.
특히 공공자금 1천억 이상과 민자 등 막대한 예산을 투입한다는 정부발표에 지자체들로서는 태권도공원을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여기고 절대 놓칠 수 없는 기회로 여겼던 것이다.
이 때문에 여러 자자체들은 공원 유치를 위해 지역민들을 앞세워 대대적인 유치 홍보활동을 벌였다. 또 일부 지자체는 해당 지역이 ‘태권도 역사의 산실’이니, ‘화랑의 본고장’이니 등 태권도 역사의 도시라는 점을 끄집어내 공원 유치에 대한 당위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러한 지자체간 과열경쟁은 태권도 종주국 위상을 추락시키는 단초를 제공했다. 일부 지자체들은 태권도 붐 조성을 위해 ‘국제태권도축제’를 개최했다. 하지만 이 모든 비용들을 해당 지자체가 부담하는 선심성 축제로 전락해 외국인 태권도 수련생들에게 “종주국 한국은 언제든지 원하면 갈 수 있는 나라”다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다음은 특별기획 ‘태권도공원 어제와 오늘 ③’. ‘4년 만에 사업계획 재개, 그리고 무주’가 계속됩니다.]
- harrison@mook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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