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행웅, 그는 누구인가?

이행웅은 1937년 중국 봉천에서 8남매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러나 그는 한국전쟁으로 큰형을 잃으면서 졸지에 가난한 집안의 장남이 되어야만 했다.
본국이라고 돌아온 한국은 세계 2차대전 후 발발한 한국전쟁으로 황폐했고 이행웅의 가족은 나라에서 지어준 전쟁민주택 한 자락에서 생존과 싸웠다. 이행웅은 꿈을 꾸기보다는 다음 끼니를 걱정했다.
그는 어린 시절 공부에 흥미가 없는 소년이었다. 그저 달리기와 축구 등 운동 외에는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의 소개로 당시 당수도라고 불렸던 태권도라는 무술을 알게 되었다.
처음에는 좀 더 잘 싸워서 스스로 몸을 지키고 싶은 마음으로 태권도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태권도라는 무술은 그로 하여금 운동 시간을 기다리게 할 정도로 유일하게 이행웅 자신을 몰두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찾아서 하는 일 그리고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신이 나는 일 그게 그 힘든 시기에 이행웅 자신을 버틸 수 있게 하는 디딤돌이었다. 그는 점점 태권도라는 무술에 빠져들었고 열심히 수련하기 시작했다. 그의 나이 17살 때였다.
그는 그 후 꾸준히 태권도를 수련, 군대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근무한 후 경기도 오산의 판자집에 태권도 도장을 열었다. 도장을 운영하던 중 그의 수련생이었던 미국인 딕 리드로부터 그는 미국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자는 제의를 받았다.
이행웅은 흔쾌히 승낙한 후 바로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회의 나라에서 자신의 태권도를 선보이겠다는 도전정신만은 강인했다. 그것이 한국 태권도 사범으로서는 최초의 미국 진출이었다.
그는 미국 네브래스카주 오마하에 정착, 당시 태권도의 불모지에 한국문화와 한국무술 태권도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의 초기 미국생활은 험난하기만 했다. 1960년대 초, 도미했을 당시 미국의 무술도장은 가라데 일색이었으며 찢어지는 가난보다 그를 더 힘들게 한 것은 바로 텃세였다. 영역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여러 가지 싸움이 그에게는 커다란 어려움이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1966년 태권도 도장 광고를 내면서 조금씩 도장의 기틀이 잡혀 나갔다. 하지만 곧 이행웅은 벽에 부딪히게 되었다. 더 이상 회원들이 늘지 않는 것이었다.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의 수요가 많다는 것은 사실이었지만 전달방법에 문제가 있는 듯 했다.
그후 경영 전문인과의 상담 끝에 미국에서는 미국식 경영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 이행웅은 먼저 조직적인 운영방식을 위해 자신의 도장 2개에 다른 도장 2개를 묶어 미국 태권도 협회인 ATA(American Taekwondo Association)를 창립하게 되었다.

이것은 프랜차이즈 운영방식이었다. ATA에 가입한 회원들에게 운영방법과 정보를 공유한 후에 이익을 분배하는 방식으로 미국적 사고방식의 경영이었다.
이행웅은 자신이 생각하는 태권도의 철학인 언행일치를 지켜나가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던 인물이다. 오랫동안 피워오던 담배를 끊은 것도 그 때였다. 자신이 마음속에 그린 인간상에 근접할수록 혹은 자신에게 배운 태권도가 고귀하다고 여겨질수록 그는 타인에게 귀감이 되기를 원했다. 그는 모든 것을 몸소 실천으로 조용하게 그러나 진중하게 보여주었다.
그는 그저 태권도를 가르친다는 것에 그치지 않고 태권도라는 문화를 전파하는데 기업경영방식을 응용했다. 그 경영이 성공하면서 자연스럽게 태권도의 고급화도 이루어지게 되었고 그는 사조직으로는 ATA라는 최대의 태권도단체를 지켜 갈 수 있었다.
ATA가 더욱 크게 발전하는 과정에 있어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만남이 있었다. 그것은 1985년 이행웅과 클린턴 대통령과의 만남이었다. 당시 이행웅은 알칸소주 주지사인 빌 클린턴을 찾아가 ATA 세계대회의 후원을 받아 내었다.
클린턴은 이후 태권도에 관심을 표명하고 명예 4단증을 받기도 했다. 이행웅과 클린턴은 이후 돈독한 우정을 쌓아갔으며 관계는 사제지간으로 발전했다. 이행웅이 9단으로 승단할 때 사부의 날이라고 선포한 것도 바로 클린턴이었다. 또한 클린턴은 ATA 세계대회가 열리는 동안에 주청사에 태극기를 걸도록 했다.
미국의 주청사에 사흘동안이나 태극기가 걸리는 일은 한국의 대통령이 방문한다해도 있을 법한 일이 아니었다. 그 모든 것을 행하고 지킨 사람이 바로 이행웅이었다.
태권도 시합은 승자와 패자를 가리는 것이 아니라 참가자 모두가 자신과의 싸움으로 경기의 내용을 결정짓는 것이라고 이행웅은 말했다. ATA 세계대회에 참가한 모든 사람들은 최선을 다한 자에게 박수를 보내고 자신과 한판 승부를 벌일 회원들에게는 아름다운 미소를 보낸다.
환갑의 나이가 훌쩍 넘어버린 나이로 그는 한 명의 회원이라 더 만나기 위해 아예 대회가 열리는 3일 내내 단식을 하기도 했다. 밥 먹을 시간을 쪼개가며 어린아이들에게 사인을 해주는 할아버지가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돈이 있는 자가 존경을 받기는 어렵다는 말이 있지만 그 말을 무색하게 만드는 사람이 바로 이행웅일 것이다.
가난한 집안의 아들에서 듬직한 가장의 모습으로, 태권도를 사랑하는 한 남자로 아이들의 꿈을 전달하는 전령사로 한결같이 지내 온 단 한 사람. 우리는 그를 그랜드 마스터 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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