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범단일기] 어느새 익숙해진 시드니
[시범단일기]어느새 익숙해진 시드니
2000년 9월 12일
설레이고 설레였던 호주에서의 생활이 드디어 시작되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호주 공항에 도착했다. 갑자기 너무 많은 외국인을 봐서인지 낯설기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익숙해지리라 믿는다.
오늘부터 시범이 있다고 해서 무거운 짐들을 들고 장소로 향했다. 그러나 시간 착오로 시범은 취소되었다. 첫번째 시범부터 취소돼서 맘이 안 좋았다. 아이들 얼굴도 많이 안타까워 보였다. 그렇게 호주에서의 하루가 거의 지나갔다.
앞으로 남은 날들은 태권도를 알리는 뜻 깊은 날이 되었으면 하면서 호주에서의 첫째 날은 잘 지나갔다.
2000년 9월 13일
내가 호주에 온지 두번째 날이다. 그래서 그런가? 외국에 나왔다는 실감이 안 나는 거 같다. 음...외국인처럼 빵만 먹을 줄 알았는데... 한국에 있을 때처럼 밥만 먹는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더 두고 봐야지.
아! 실감나는 건 한국에 있을 때는 외국인들을 신기하게 봤는데 여기서는 우리들을 신기하게 본다는 거. 잠시나마 동물원에 있는 동물들과 하나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점심을 먹고 TV나 책에서나 본 오페라하우스가 보이는 잔디밭에서 호주에서의 첫 시범을 시작했다. 마음이 흡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마음은 뿌듯하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할 때가 가장 행복한 것처럼.
시범을 준비하고 마무리하는 게 어느새 나에겐 익숙해져 버렸다. 시드니에서 더 많은 사람들에게 태권도를 알리고 보여준다는 마음으로 더욱더 열심히 노력해야겠다.
2000년 9월 14일
아침부터 정신없이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어제 너무 늦게 자서인가 정말 일어나기 힘들었다. 서둘러 아침을 먹고 시범보일 장소로 가서 두번의 시범을 했는데 너무 긴장을 해서인지 너무 많이 실수를 했다.
나로 인해 완벽한 시범이 될 수 없었다는 생각에 하루종일 마음이 안 좋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도 잠시 저녁을 먹으러 참새방이라는 한국 음식점에 갔다. 생각도 못한 떡볶이가 나왔는데 정말 행복했다. 내가 제일 좋아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떡볶이를 먹게 될 줄이야...^^
7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들어올 수 있었다. 피곤해서인지 씻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 하지만 호현이가 피자를 네 판이나 사와서 다시 일어났다. 먹고 싶다는 말 한마디에 사오다니 정말 좋은 친구 같다. 오늘은 먹을 복이 있는 날인가 보다. 시드니에서의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서 다행이다.
2000년 9월 15일
오늘 시범은 한 번이 있었는데 다친 동생들이 많아 걱정이다. 그런데 단장님한테까지 혼이 났으니 동생들 기가 죽을까봐 내가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감기까지 걸려있는데.
오늘은 호현이라는 친구에 대해 얘기를 하고 싶다. 호주에 살고 있는 친구라 일정이 다 끝나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다시 볼 수 없을 거란 생각에 내 마음을 가끔씩 서운하게 만드는 친구. 하지만 내 기억속에서 오래오래 남아있을 거 같은 친구. 시범단 동생들에게 친형처럼 신경을 써준다.
그 친구는 나이 어린 동생들이 부모님을 떠나 외국에 나와있는 걸 보면 잘해주고 싶다고 말한다. 같은 나이라 그런지 말도 통하는 거 같다. 아무도 모르게 뒤에서 열심히 도와준다. 내가 그 친구를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 뭐가 있을까?
호주에 와서 힘든 일도 있지만 즐거운 일이 더 많은 거 같다. 동생들과 더 친해질 수 있어서도 좋고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어서도 좋고. 아무튼 난 내 평생 기억에 남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것에 감사한다. 동생들이 한국에 돌아가는 날까지 몸 건강히 잘 지냈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오늘 하루 일기는 여기서끝!!!!!
2000년 9월 16일
오늘도 바쁜 하루가 시작되었다. 한국에서 부모님들이 겨울옷을 보내주셨다. 역시 부모님 마음은 다 같나보다. 부모님들께 감사하는 마음을 뒤로한 채 시범을 보이러 무대로 향했다.
많이 걸어서인지 다리가 말을 안 듣는다. 기분까지 가라앉아 오늘 하루는 무지 힘들다는 생각만 든다.
지금은 숙소. 동생들은 놀러나가고 몇 명 아이들만 모여있다. 아직 나이가 어려서인지 하나도 힘이 안 드나 보다. 역시 나이는 못 속인다는 말이 사실인가?^^ 내 20살에 있어서 잊혀지지 않을 일들이었다.
오늘 하루는 많이 힘들었지만 내일을 위해 푹 자야겠다. 시계에 맞춰진 시간마다 항상 똑같은 일이 반복되는 거 같지만 내일부터 모레까지는 시범이 없어서 부담은 없다. 몸은 힘이 들지만 마음은 시간이 아주 천천히 지나갔으면 좋겠다.
희성이가 다시 감기에 걸리려고 하는데 내일 아침이 되면 괜찮아 졌음 좋겠다.
2000년 9월 18일
점심시간은 새벽 4시 20분. 숙소를 바꾼 기념으로 드라이브를 갔다왔다. 돌아오다 잠을 자서인지 지금은 비몽사몽!!!!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순간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영화 속 같은 풍경. 그 풍경은 내가 말로 표현 못할 만큼 너무 아름다웠다. 구비 구비 휘어진 작은 길을 따라 밤바다를 감상했다.
마치 영화를 찍으려고 만들어 논 것 같았다. 그 풍경을 묘사하려면 내가 시인이 되어버릴 거 같다. 오늘 하루는 운이 좋은 거 같다. 비록 동생들과 숙소를 다르게 쓰지만은 공원에 가서 재미있게 놀고 불고기도 먹고 사범님께 핸드스프링도 배우고 본다이 비치라는 말로만 듣던 해변가도 가보고 달빛에 비친 바다도 보고.
한가지 내가 다시 생각해야 할 건 천우한테 무슨 고민이 있는 거 같은데 신경을 써주지 못한 거. 내일은 천우랑 고민상담을 해야겠다. 그럼 꿈나라로 출발.
2000년 9월 20일
아침부터 서둘러 단장님이 계시는 숙소로 향했다. 늦었다고 혼날까봐 마음이 불안했다. 참으로 다행인 건 그냥 넘어갔다는 거.
하지만 시범 때 동기 손이 다친 거 때문에 마음이 안 좋은데 단장님이 하신 말 한마디 때문에 내 맘은 하루종일 엉망이었다. 그땐 왜이리 서운한지 하루가 거의 지나 일기를 쓰는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금방이라도 눈물이 나올 거 같다.
오늘이 시드니에서 제일 힘든 하루가 된 것 같다. 그래도 내 기분을 풀어 주려고 하는 동생 오빠 언니께 감사드린다. 서러워서 그런가?오늘따라 왜이리 고마운지. 아무튼 내일이 되면 오늘 일은 모두 잊어버리고 좋은 기분으로 아침을 맞이하면 좋겠다.
참 오늘 SBS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와서 떨리긴 했지만 커다란 실수를 안해서 다행이다. 내가 카메라 체질인가?? 매일 실수를 했던 호주 국가에서도 틀리지 않고 신기한 일이다.
2시가 다 되어간다. 이렇게 또 잠자리에 늦게 든다. 시간을 아주 천천히 가도록 할 수 있었으면 좋을텐데.
2000년 9월 22일
어느새 시드니에서의 생활이 익숙해졌다. 이제 한국으로 돌아갈 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난 정말 가기가 싫다. 가족들도 보고 싶고 친구들도 보고 싶지만 그래도.
엄마한테 전화를 했는데 난 그냥 엄마가 걱정하실까봐 한건데 엄마는 하나도 반가우시지 않은가 보다. 전화비 많이 나온다고 전화 이제 그만하라고 하신다. 마음이 찢어진다. 내가 보고싶지도 않으신가?
조금 서운하지만 시범준비로 더 생각할 시간이 없다. 오늘부터 시범 장소가 바뀐다고 해서 갔는데 길거리라 맘에 안들었다. 그것보단 사람이 없을 거 같아 불안한 건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과는 달리 시범은 아주 성공적으로 끝난 거 같다. 사람들도 아주 많이 모였다. 더욱더 기분이 좋은 건 내일 한국이 보인다의 태권V랑 같이 촬영을 한다는 거. 이제 나도 TV에 출연하는구나. 조금전에 라면을 먹었는데 내일 눈이 안 부어야 할텐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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