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몽 같은 4박5일의 종주국 태권도

베이징 올림픽 비상. 한국 남자 금1개 역대 최악

남자 헤비급 남윤배(한체대, 21)가 예상하지 못한 패배에 아쉬움을 달래고 있다.
종주국 태권도가 세계선수권 출전 사상 가장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다.
우리나라 태권도대표팀(단장 이등자, 이하 대표팀)은 22일 막을 내린 ‘제18회(여자 1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남녀 동반우승(남자 18연패, 여자 11연패)을 차지했지만 마냥 즐겁지 못하다.
대회 마지막 날까지 종합우승을 위해 긴장을 끈을 놓지 못했다. 대회결과보다 내용에 만족하지 못했고 내년으로 다가온 베이징 올림픽에 대한 걱정도 태산이다.
종합우승을 자신했던 남자부(감독 이호열)는 최연호(상무, 26)만 유일하게 금메달을 획득하고 은메달 1개, 동메달 4개로 역대 최악의 성적을 기록했다. 총 53점을 얻은 남자대표팀은 2위 이란(45점)과 8점차로 겨우 18연속 종합우승을 지켰다. 여자부는 홈팀 중국(45점)의 거센 도전을 물리치고 총 73점을 얻어 11연패를 달성했다.
‘날쌘돌이’ 최연호는 8kg을 감량하고 빠른 발차기와 노련한 경기운영으로 세계대회 3회 우승도전에 성공했다. ‘불운의 스타’ 송명섭(에스원, 페더급, 23)은 8강에서 2년 전 결승에서 뼈아픈 패배를 안긴 마크 로페즈(23)를 설욕하고 준결승에 올랐으나 이란의 오미드 골람 자데아슬에게 연장전에서 패해 눈물을 삼켰다. ‘포스트 문대성’을 꿈꾸는 헤비급 남윤배(한체대, 21)는 경쟁국가 선수들에 비해 작은 키와 체력의 한계를 드러내며 준결승에서 복병 다바 모디보 케이타(말리, 25)에게 연장전 일격을 당해 동메달에 그쳤다.
종합우승 달성에 걱정하던 여자대표팀(감독 박경환)은 의외로 선전했다. 웰터급 황경선(한국체대, 21)의 대회 2연패 달성과 페더급 이성혜(에스원, 23), 밴텀급 정진희(조선대, 21) 등 3명이 금메달을 획득하고 3명이 결승에서 패해 은메달을 3개 기록했다. 여자 경량급 박효지(핀급, 한체대, 19)와 장은숙(플라이급, 인천시청, 26)은 경쟁 국가들과 경쟁에서 체격조건과 경험부족을 나타내며 아쉽게 예선에서 패했다.
올림픽을 앞두고 상대국 비밀 병기들이 표면적으로 나타났다. 약체로 평가했던 말리, 크로아티아, 쿠바 등이 이번 대회에서 세계대회 출전사상 첫 금메달을 챙겼다. 특히 남자 헤비급 우승자 말리의 다바 모디보 케이타(25)는 2m7cm의 큰 키로 우리나라 남윤배(한국체대, 21)를 준결승에서 꺾고 내년 올림픽 금메달에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
이번 대회를 지켜본 많은 태권도 전문가들은 우리 선수들의 단조로운 경기기술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대표적인 것이 우선 경기내용이 소극적이고 기술 또한 외국 선수들에 비해 돌려차기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 이를 위해 강한 체력훈련을 통해 여러 기술들을 연결할 수 있는 훈련이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를 통해 ‘종주국 독주시대’가 끝났음을 경기 내용과 결과에서 확연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최연호(가스공사, 핀급, 26), 송명섭(가스공사, 페더급 23), 황경선(한국체대, 웰터급, 21) 등 세 선수를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이번 대회가 첫 세계대회 출전이다.
아무리 종주국 대표라고 하더라도 세계무대는 분명 어제와는 달라졌다. 30여 개국 선수들이 실력이 우리 선수단과 평준화를 이뤘다. 우리 대표팀은 경기력은 좋지만 운영능력과 노련미에서는 다른 상대국에 비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로 인해 대부분 선수들이 초반 승기를 잡고 있다가도 경기운영 실패로 3회전 종반과 연장전(서든데스)에서 역전패를 당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났다. 남자 중량급과 여자 경량급에서는 신체조건에서 큰 차이를 나타냈다. 또 2분 3회전을 주도할 만한 강한 체력도 풀어야할 숙제로 남겼다.
상대 주요국가 선수들에 대한 사전 분석도 미흡했다. 현재 태릉선수촌에는 상대국가 선수들에 대한 분석 자료가 다른 국가들에 비해 현저하게 부족한 실정이다. 또 여러 선수들이 큰 국제대회 경험이 부족해 메달 권에 진입하면서 위축돼 제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올림픽을 대비하기 위해서는 빠른 대표선발전을 통해 국외에서 열리는 여러 크고 작은 대회에 출전해 경기력을 높여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반면, 일부 대표선수 지도자들 사이에서 ‘자기 새끼 챙기기’에 대한 불만이 제기됐다. 대표팀 지도자가 소속팀 선수들만 챙긴다는 것. 이 같은 현상은 매년 되풀이 되고 있다. 이에 많은 지도자들은 이와 같은 불이익과 주변 오해들이 없도록 ‘상비군제도’를 시행하자는 의견이 높다.
이번 대회에서 일부 선수들의 경우 이해할 수 없는 판정으로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했다. 이에 대표팀은 “우리나라를 견제하기 위해 심판들이 불리하게 판정을 하고 있다”고 항변했다.
급기야 대회 사흘째에는 남자 플라이급 준결승에서 석연치 않은 판정이 내려지자 대표팀 코치가 해당 심판들과 감독관들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이에 WTF는 경기장 질서를 무너트린 대표팀 관계자들에 대해 수위를 조절해 엄정히 징계조치를 내리겠다고 공식 밝혔다.
내년 베이징 올림픽(2008년 8월 8일)까지 남은기간은 1년 3개월여.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이다. 종주국 태권도가 이번 대회에서 잃은 위상을 베이징 올림픽에서 회복하기 위해서는 대표 선발과정과 훈련방식까지 새로운 시스템으로 정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 harrison@mookas.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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