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넷타이거즈]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날들
[태권넷타이거즈]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날들
9월 18일
시범단원들은 두 패로 나뉘어 센티어니얼 공원에 도착했다. 학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차력하시던 분들이 이미 고기도 구워놓고 모든 준비를 해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학장님과 한 살 차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만큼 사모님은 젊어 보였고 세련됐다. 학장님 봉 잡으셨군...
처음에 도착한 아이들에게 사모님이 먼저 먹으라며 이것저것 챙겨주셨지만 아이들은 친구들이 모두 도착하면 같이 먹겠다고 기다리고 있었다.
아직 어린아이들인데도 힘든 운동을 함께 하고 아픔도 기쁨도 함께 나누어서 그런지 그 아이들의 동지애는 정말 두터웠고 그런 동지애가 참 부럽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모두 도착하고 즐거운 식사시간이 시작됐다. 잔디밭 나무 그늘 밑에 서너명씩 모여 앉아 넓은 공원을 둘러보며 밥을 먹었다. 그런데 민철이가 아무 것도 먹지 않고 혼자 앉아 있었다. 먹기도 전에 배가 아프다는 것이다.
결국 민철이는 이런저런 얘기 끝에 사모님의 오픈카를 타고 학장님 댁에 가서 약을 먹고 왔다. 차에서 내리자 기다리고 계시던 학장님이 민철이의 손을 따주셨다.
시범 때도 다치지 않는 민철이는 오늘 끝내 피를 보고 말았다. 그러나 피를 봐서인지 민철이의 속은 이내 가라앉았고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더 많은 양을 먹었다.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태어나서 오픈카도 타보고... 아프길 잘했단다.
더 이상 먹지 못 할 정도로 먹은 아이들은 잔디밭에서 빈둥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시간이 좀 지나자 아이들은 몸이 근질거리는지 가만히 있지 못하고 편을 갈라 축구를 했다. 이리 저리 공과 함께 뛰어다니던 아이들은 땀으로 목욕을 하고 흘린 땀방울만큼 물을 들이켰다.
뿔뿔이 흩어져 숨을 몰아쉬던 아이들은 또 다시 웅성웅성 모여들더니 시범 연습을 시작했다. 안단장님의 눈에 아이들이 너무 풀어져 보였는지 아이들은 모두 기합을 받았다. 시범단 아이들의 기분이 순식간에 가라앉아 버렸다.
힘들게 하루하루 잘 해준 아이들인데 기합 받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팠다.
끝까지 좋은 일만으로 하루를 마감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9월23일
태권넷 타이거즈 시범단원들은 거울 앞에 다닥다닥 붙어 서서 머리에 젤을 바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시드니에서 두번째로 멋을 부리고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3인의 태권 V와 직접 만나는 것도 한 이유겠지만, 아무래도 TV에 자기 얼굴이 나갈지도 모른다는 게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아이들은 모두 의기양양하게 공연장으로 향했다.
오늘 장소는 어제 시범 장소에서 멀지 않은 잔디밭으로 결정됐다. 시범준비를 하는 동안에도 관객들은 태권넷 시범단을 알아보고 미리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가슴이 뿌듯했다.
아이들은 잠깐 동안 몸을 풀었다. 그러면서도 3인의 태권V가 언제 오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말 많은 관객이 공연 공간을 두고 빙 둘러 모였다. 차력 시범이 끝나고 시범단의 공연이 막 시작할 즈음 3인의 태권V가 도착했다. 시범공연은 잠시 중단됐다.
영문을 모르는 관객들은 지연되는 공연에 짜증이 나는 듯 했고, 기다리는 것을 못 참는 성질 급한 관객 몇은 자리를 떴다.
그러나 시범이 시작되자 이내 자리를 뜬 사람 이상으로 더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빠듯한 시범일정, 불편한 생활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신기하리만큼 실수도 없이 오히려 신이 나서 시범을 보였다.
태권넷 스텝인 재영씨가 태권넷 도메인이 찍힌 현수막을 등에 두르고 공연장을 빙글빙글 돌며 흥을 돋궜다. 정말 멋진 슈퍼맨이었다.
이날 재영씨는 아이들의 인기에 버금가는 박수와 환호를 받는 스타가 됐다. 아이들의 시범 중간에 3인의 태권V가 나와 격파 시범을 보였다. 모여든 관객들의 박수가 시작부터 끝까지 끊이지 않았다.
모든 시범 순서가 끝날 즈음3인의 태권V와 태권넷 타이거즈 시범단원들이 한데 어울려 WE LOVE TAEKWONDO란 현수막을 들고 WE LOVE TAEKWONDO를 외치자 관객들도 따라 외치기 시작했다. 눈시울이 붉어졌다.
정말 가슴 찡한 순간이었다. 시드니에 와서 고생했던 많은 것들의 결실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 많은 외국인들이 한 목소리로 우리는 태권도를 사랑한다고 외치고 있었고 적어도 여기 모인 사람들의 가슴속에 태권도를 알리고 심어놨다는 생각에 하늘을 날고 있는 것처럼 기뻤다.
그렇게 태권넷 타이거즈 시범단의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시범공연이 화려하게 막을 내렸다.


9월 24일
아침부터 태권넷 타이거즈 시범단원들은 신이나 있었다.
어제 3인의 태권 V를 만난 설레임이 아직 가시질 않았고, 게다가 정말 관광다운 관광 일정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언제 방송되는 거야?
오늘 바닷가 간데....
야... 호형이 오빠가 젤 잘 생기지 않았니?
내 얼굴 잘 나왔을까?
아니야 장군이 오빠도 귀여워...
배 타고 간다며?
무슨 소리 택관이 형이 최고로 멋있어
일진 애들만 얼굴 나오겠지 뭐
바닷가 가면 수영복 입은 여자들이....
아이들의 조잘거림은 배를 탈 때까지 이어졌다.
공연 때문에 거의 매일 왔던 서클러 키(Circular Quay)에는 오늘도 여전히 사람이 많았다. 오늘 여기서 시범 공연하면 짱 이겠다. 사람 많아서란 생각이 순간 스쳐갔다.
공연 장소 때문에, 관객 때문에 신경을 곤두세워서인지 이제는 사람이 많은 곳을 보면 무조건 시범공연 생각이 먼저 난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아이들의 표정을 봤다. 역시 아이들 모두는 아니었지만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아이들도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범단원들은 태권도를 너무나 좋아하니까. 내가 상상하는 그 이상으로.
많은 사람들 때문에 아이들은 배를 타기까지 꽤 오랜 시간 동안 무작정 기다려야만 했다. 따가운 햇살, 무지막지한 인파. 슬금슬금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사람 정말 징그럽게 많네 라는 생각과 함께 사람의 간사함을 느꼈다. 시범 때 모인 그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도 이뻐 보였는데
드디어 배가 출발했다. 하얀 물거품이 일고 있는 바닷물 빛은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다. 어떤 색이라고 단정 지을 수 없는 색깔이었고 너무나 아름다웠다.
배는 오페라 하우스를 돌아 맨리(manly)비치를 향했다. 배 위에서는 오페라 하우스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빙 돌려보듯 볼 수 있었다. 어느 방향에서 보건 어느 각도에서 보건간에 오페라 하우스는 정말 예쁜 건물이었다.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치고 가도 아이들의 표정은 마냥 즐거웠다.
해변에 멋진 별장 같은 집들이 보이자 동욱이가 또 썰렁한 얘기를 시작했다.

"형, 저런 집 영화에서 자살 많이 하는 걸로 나오잖아요. 왜 저런 집에서 자살많이 하는지 알아요? 주변경치 내려보다 떨어지는 거예요." 그래도 배 위에서는 들어 줄만했다.
배에서 내려 햄버거를 먹고 조금 걸었다. 넓은 바다가 눈앞에 펼쳐졌다. 아이들은 쌀쌀한 날씨에도 과감히 물 속으로 첨벙 뛰어들어갔다. 아직 아이들이라서 그런지 아니면 운동을 해서 그런건지 모르겠지만 젊긴 젊구나 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물 속에서 놀던 아이들이 모래사장에 누워있는 슬기를 모래로 덮기 시작했다. 잠시 후에 희문이가 눕자 아이들이 더 달려와 슬기 때보다는 훨씬 나아진 솜씨로 예술(?)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가슴도 크게 만들고 거대한 고추도 만들었다.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잠시 서서 킬킬거리고 지나가곤 했다. 아마도 거대한 고추를 보고 웃었으리라. 지금 와서 다시 생각해봐도 정말 크긴 컸다. 사진을 다 찍자 희문이가 일어나려고 버둥거렸다. 사실 버둥거리는 건지 아닌지는 겉으로 봐서는 알 수 없었다.
시범단 아이들은 상점들을 돌며 친지들에게 줄 열쇠고리, 인형, 티셔츠 등을 샀다. 선물을 고르는 아이들의 진지한 표정, 웃음과 함께 시드니의 하루가 또 저물었다.

9월 25일
오늘 공연 일정이 취소되었다. 생각지 못한 휴식에 태권넷 아이들은 조금 당황해했다. 좋으면서도 내일이면 돌아가는데.. 하는 생각에 오늘 시범은 잘해보리라 다짐했었기 때문이다.
시범단의 가장 맏형인 동욱은 2진이다. 평소 시범 때는 송판을 주로 잡는다. 하지만 아이들이 그런 동욱의 생일을 위해 깜짝 파티를 준비했다.
숙소에는 전기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아 두개의 스텐드로 실내를 밝혀 놓았다.
아이들은 생일 케이크로 애플 파이를 준비했다. 말 그대로 오로지 사과와 빵으로 만든 생일 케이크였다. 빵 몇 개 위에 얹어진 사과 몇 알.

그리고 타이거즈 시범단에 만 있는 또 하나의 생일 축하 파이(송판 파이?)가 준비되어있었다. 동욱이의 나이만큼 18장의 송판이 가지런히 쌓여 있었고 송판 위에는 "축 생일. 한 장 못 깨는데 한대 씩"이라고 쓰여있었다.
아이들은 집 앞 상점에 초를 사러 나가고, 한편 동욱은 창범에게 이끌려 집밖을 배회하고 있었다.
생일파티의 총책임자는 시범단 총무를 맡고 있는 동기였다. 동기는 PD의 주머니에서 $20 반 강제로 얻어내어 필요한 과자와 음료수를 사왔다. 그런데 집 근처 상점의 레바논 출신의 맘씨 좋은 아저씨는 아이들이 내일 귀국한다고 하자 과자와 음료수를 공짜로 주셨다. 고마운 아저씨. 아이들은 아저씨에게 타이거즈 티셔츠를 드렸고 태권넷 스텝들은 태권넷 티셔츠를 드렸다. 아저씨는 많이 행복해했고 우리 모두 같은 마음이었다.
민철이는 베란다에서 동욱이가 오나 망을 보고, 아이들은 생일파티 준비를 거의 끝마쳐 갔다. 초에 불을 붙이기 직전 동욱이가 문 앞에 와 있었다. 아이들은 서둘러 초에 불을 붙이고 스텐드 불을 끄고, 동욱은 문을 열고 캄캄한 복도를 지나 방으로 들어왔다.
아이들은 송판에 초를 받치고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동욱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약간 당황스러워 했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동욱의 눈시울이 붉어 졌다.
노래가 끝나고 동욱이 촛불을 불어 끄자 갑자기 들리는 송판 뽀개지는 소리...
불이 켜지자 동욱은 머리를 감싸쥐고 있었고, 아이들은 동욱에게 쌓아놓은 송판을 보여 주며 생일격파를 시켰다.
송판 18장.
동욱은 화장실이 급하다며 화장실로 뛰어갔다. 격파해야 할 시간을 늦추려는 것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눈물을 보이고 싶지 않아서였을 것이다. 이렇게 생일을 축하해 주는 아이들이 고마웠으리라.
드디어 화장실에서 나온 동욱은 잠시 머뭇거리다 양 소매를 걷어올리고 셋, 둘, 하나.
이얍!!
7장의 송판만 깨져있었다. 야~ 11대 다 11대... 소리와 함께 동욱이는 송판으로 눈물이 핑 돌게 송판으로 두들겨 맞고 나서 2차시도에 들어갔다.
십, 구, 팔, 칠, 육, 오, 사, 삼, 이, 일!
송판이 모두 쪼개졌나 싶었는데 송판 한 장이 얄미우리만큼 멀쩡이 버티고 있었다.
퍼버벅!! 아이들의 송판세례를 한 차례 더 받아내고 마지막 한 장은 머리로 격파했다. .
이렇게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밤, 동욱이의 18살 생일은 깊어갔다.
태권넷 타이거즈 시범단원들은 아침 6시에 출발해야 하는 아이들은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고 10시간의 비행동안 자야 된다는 핑계로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밤을 뜬눈으로 지새웠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게임 방에서 밤을 새웠고, 나이 많은(?) 고등학생들은 다른 숙소로 끼리끼리 몰려가 이야기꽃을 피우며 밤을 새웠다.
새벽 5시경에 잠깐 눈을 붙인 아이들은 반은 졸며, 반은 몽유병처럼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향했다.
공항에서 출국 수속을 기다리면서도 의자에 기대어 잠을 자던 아이들. 태권넷 직원들의 이메일 주소와 전화 번호 등을 일일이 찾아 적던 아이들은 공항에서 마지막 기념 촬영을 하고 7:40분 아쉬운 인사를 남기고 탑승게이트 안으로 사라졌다.
벌써부터 아이들이 보고 싶다. 애들아 서울 가서 보자! 수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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