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論] 절체절명 태권도의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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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위란 ...

구효송 교수
권위란 주어지는 것이면서 동시에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는 개인이나 단체를 막론하고 공통적으로 해당되는 원칙이기도 하다. 선생님이 학생들로부터 존경을 받는 까닭은 그가 교육이라는 시스템 안에서 선생님이라는 지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가 존경받기 위해서 스스로 존경받을 행동을 하는 것이 필수조건인 것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즉, ‘존경받기의 필수조건’이 전제되지 않은 상황에서의 권위라는 것은 폭력에 지나지 않으며, 이러한 권위는 그 스스로의 한계성으로 인해서 무너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날 태권도 사범들이 직면하고 있는 권위의 문제는 대부분 스스로 책임져야 할 성질의 것이다. 도장에서 태권도정신을 강조하고 ‘도(道)’를 들먹이면서 스스로의 일상생활에서는 존경받을 일을 하지 못하고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 누가 사범에 대한 존경심을 가지고 있겠는가.사범이라는 개인을 떠나 각 태권도협회의 권위도 마찬가지이다. 협회의 권위라는 것은 태권도라는 운동문화의 권위가 존경받을 그 무엇이 되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해 주는 데에서 빛을 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태권도협회는 과연 존경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스스로 몇 단이라는 단증의 권위를 내세우면서 남이 나를 당연히 존경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이전에 우리는 스스로 존경받을 준비를 어느 정도 해왔던가 말이다. 이는 최근에 태권도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데 가장 기본이 되는 물음이 아닐 수 없다. 이제 양적인 증가를 어느 정도 이루어낸 태권도계가 다음 단계로 무사히 넘어가는가 아니면 이 자리에서 주저앉고 말 것인가의 기로에서 냉철히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수년 전 독일의 가르미쉬 파어텐키르헨(Garmisch Partenkirchen)에서 열린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에서 이란 대표팀 코치가 ‘대한민국’(Republic of Korea)의 피켓을 걷어찬 행위를 두고 우리는 분노했다. 그러나 그 코치가 대한민국의 피켓이 아닌 다른 나라의 피켓을 찼어도 우리는 그토록 분노했을 것인가? 혹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이러한 몰상식한 행위가 태권도의 일상이 되어있지는 않은가? 이 행위에 분노하는 우리는 과연 그 코치의 입장에 서 있었을 때 어떻게 행동했을 것인가? 아니면 무엇이 그 코치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질문을 하자면 한이 없다.
태권도계의 정체성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바로 태권도계가 직면한 심각한 윤리적 정당성이 그것이다. 바로 이 윤리적 정당성에 대한 의문부호는 태권도가 지난 수십 년 동안 걸어온 길에서 스스로의 문화적 가치를 경영학적인 입장의 성장론적 가치와 뒤섞어버린 것에서 그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지금도 우리는 이러한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태권도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한편에서는 우리의 전통적 가치 혹은 문화를 이야기하면서 다른 한편에서는 도장의 운영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 그리하여 입으로는 문화적 가치를 이야기하면서 도장의 발전을 경영학적인 성장의 잣대로 평가하는 모습이 우리가 가진 정체성의 위기를 단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다. 이러한 이율배반은 도장은 운영하는 개개인의 삶 속에서뿐만 아니라 그 도장들에게 사회적 시스템을 제공해주는 협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단증이 바로 그 표상이다. 예전 60년대에 일반적으로 주어졌던 단증에 대한 권위를 생각해 볼 때, 오늘날의 태권도 단증이 어느 정도의 권위를 가지고 있는지 자문해보면 이 이율배반이 어느 정도 심각한지는 금세 드러나게 된다.
우리는 어떤 형태의 삶을 살던지 경영학적인 사고를 필요로 한다. 그러나 이 경영학적인 방편이 사안의 본질을 덮어버릴 때에는 정체성의 위기가 찾아오고, 또한 이에 대한 본질적인 반성이 필요하게 된다. 오늘날의 태권도 도장에서는 수련생을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여 이웃 도장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그리하여 태권도를 가르쳐야 할 시간에 에어로빅이나 태권도 춤 등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다만 태권도장의 본질인 태권도가 이러한 부수적인 요소에 의해서 밀려나는 데 문제의 소지가 있는 것이다. 즉, 본질이 비본질에 의해서 밀려나는 기이한 현상이 우리의 도장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태권도단체는 이를 단증발급이라는 형태로 뒷받침해주고 있는 것이 오늘의 태권도계가 직면한 현주소이다. 그러나 모든 것이 경영학적인 시각에서 결정되고 진행된다면 우리가 추구하는 또 다른 수많은 가치들이 설 자리는 어디인가?
우리의 독주는 끝났다
작금에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 속에서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일 하나는 세계태권도연맹 산하 조직인 각 대륙태권도연맹들이 전통적으로 국기원이 발급하는 단증을 거부하고 자체적으로 단증을 발급하기에 이르렀다는 소식이다. 이에 첫 발을 내디딘 연맹은 유럽태권도연맹(ETU)이고, 미주연맹(PATU)도 같은 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있는 가운데 이 소식을 접한 한국의 태권도계는 발칵 뒤집어진 형국이다. 현실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을 기관인 국기원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이웃이 이제 태권도를 걱정하고 있다. 지금껏 국기원 단증은 전 세계 태권도인들을 하나로 묶는 제도적 권위의 하나였던 것인데, 이제 그 권위가 별 볼일 없게 되었다는 말이다. 과연 태권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이 걱정할 만 하다. 이제 이로써 태권도 종주국의 위상이 흔들리고, 무엇보다도 한국 태권도계의 가장 중요한 ‘돈줄’이 막히게 되는 것이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이 ‘그럴 수가 있나’라며 한편에서는 놀라고, 또 다른 한 편에서는 분노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냉철히 생각해보자. 이것이 어디 놀랄 일인가. 나는 오히려 ‘드디어 올 것이 왔다’라고 생각한다. 국기원의 위상에 대한 걱정과 위기상황이라는 화두는 이미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이미 그 출발부터 언젠가는 터질 문제를 안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전 세계 태권도인들이 국기원을 어느 기관에 소속된 단체로 생각하지 않는다.
국기원은 세계태권도연맹에 소속된 기관이 아니고 그렇다고 대한태권도협회에 소속된 기관도 아니다. 그저 태권도계의 독립된 단체일 뿐이다. 그러면서 전 세계의 태권도를 대표한다고 하여 그 영문 표기도 ‘세계태권도본부’(World Taekwondo Headquarter)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 주된 업무는 뭐니 뭐니 해도 태권도 단증발급이다. 전 세계의 단증이 바로 국기원에서 발급되는 것인데, 지난 30여년의 세월 속에서 이제는 국기원의 단증발급 업무가 마치 국기원 고유의 것인 양 인식되어 왔다. 그러면 태권도 조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단증 발급업무를 세계태권도연맹이나 기타 어느 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고 국기원이 독점하고 있다는 것은 이미 국기원이 또 하나의 세계태권도기구라는 것을 실질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즉, 세계태권도연맹과 국기원이 각기 독립된 세계기구로서 양립하고 있는데, 이 자체가 이미 모순이다. 여타 어느 스포츠종목에서도 볼 수 없는 기이한 제도가 태권도계에 들어앉은 것이다.
그런데 처음에 국기원이 단증 업무를 담당했을 때에는 이러한 부분이 그다지 문제가 될 수 없었던 것이, 당시 1970년대 초반의 이 업무는 국내 태권도계의 단증 업무라고만 생각했다. 당시에 해외의 국가협회들이 요즘 같이 제대로 정비되었던 것이 아니고 해외 파견 사범들이 개인적으로 단증을 발급하거나 아니면 국기원의 단증을 한국으로부터 받아서 전달하는데 그쳤으며 여기에 대해서 크게 문제 삼을 분위기가 아니었다. 그러던 것이 세계태권도연맹의 출범과 더불어 자연스레 모든 단증 업무를 독점하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기관으로부터의 통제도 받지 않는, 그리하여 ‘비상식적’ 조직인 국기원이 결과적으로 전 세계 태권도 제도의 핵심인 단증 발급의 주체가 되었다는 사실이 아이러니로 남는다. 무엇이 이러한 상황을 초래했을까?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대한 답은 역시 비상식적일 수밖에 없었던 김운용 전총재의 1인 지배체제에서 구할 수밖에 없다. 박정희 유신체제의 비호 아래 세계태권도연맹, 대한태권도협회 그리고 국기원 3대 조직의 수장을 겸하여 대한민국 태권도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던 그는 이상의 기구들을 자신의 편의대로 주물렀다. 이 와중에 우리의 머리 속을 지배하던 생각에는 늘 ‘태권도는 한국 것이다’라는 왜곡된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하여 태권도가 전 세계로 뻗어나가던 시기에도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것이어야 했고, 이제 올림픽 가맹종목이 된 뒤에도 역시 태권도는 ‘한국의 것’이어야 한다. 따라서 그 ‘한국 태권도’를 관장하는 세계태권도연맹 마저도 은연중에 ‘한국 것’이라는 인식이 남아 있었으니, 태권도에 관한 한 모든 것을 한국이 통제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을 가지고 김운용 전총재는 세계연맹을 완전히 장악해 나갔고, 이에 한 때나마 해외 태권도 단증 발급 업무를 국기원에서 세계연맹으로 이관시켰던 적이 있다.
1984년 7월부터 1987년 12월까지 세계연맹은 한국을 제외한 세계태권도인들의 단증을 발급했다. 물론 김 전총재의 전횡으로 업무 이관이 아무런 방해를 받지 않고 이루어질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88년 1월 1일부로 이 심사권은 다시 국기원으로 넘어왔으니, 알려진 바로는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늘 ‘한국 것’이라고 여겨져 왔던 세계태권도연맹이 언젠가는 한국인의 손을 벗어나서 해외로 이전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었고, 이럴 경우에 최소한 국기원만이라도 한국에 남겨야 한다는 생각과 함께 가장 큰 ‘이권’인 단증 발급 업무를 국기원으로 귀속시켜야 태권도의 재원이 확보된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태권도에 대한 우리의 인식에 커다란 착오가 있었다는 것이다. 한국이 낳은 자식인 태권도는 우리의 생각보다 일찍 자라서 세계무대를 향하여 떠나고 말았는데, 우리는 아직도 이 자식을 품안의 자식으로 여기는 데에 문제의 씨앗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이미 여러 태권도인들이 지적을 했고, 이에 대한 대비를 철저히 해야 태권도계가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온 것도 벌써 오래 전의 일이다. 그 중에서도 물론 국기원의 위상 제고 및 정체성 확립에 관한 경고는 충분히 강조된 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기원은 그 기회를 살리지 못했다. 김운용씨가 물러나면서 국기원 조직이 새로 개편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할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새로운 집행부는 지엽적인 부분에 신경을 썼겠으나 정작 본질적인 정체성 부분에는 손을 쓰지 못한 채 오늘의 위기상황을 자초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이제 몇 몇의 대륙연맹에서 자체적으로 단증을 발급하게 되면 우리에게는 이를 막을 아무런 명분이 없다. 먼저, 국기원 단증의 실추된 권위를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문화적 가치’와 ‘도장의 발전의 경영학적인 성장’ 부분이 서로 뒤엉켜버린 이 시점에서 태권도에 입문한지 1년도 되지 않아 1단을 취득하는 국내의 현실이 5년가량을 수련해야 1단을 받는 유럽의 정서와 비교해서 단증에 관한 ‘윤리적 정당성’을 주장하기 어렵다. 게다가 세계연맹이 아니면서 세계태권도본부를 자처하는 국기원으로부터 단증을 받아야 할 이유를 그 누구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하는 형편이다.
시스템을 살려야
지금부터라도 국기원의 앞길에 대하여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다. 단증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국기원의 존립여부가 걸린 문제다. 이를 해결하기 위하여 이제는 서푼짜리도 되지 않는 민족주의적 감정을 걷어버리고 보다 열린 마음으로 전향적인 사고를 가져야 한다. 우리의 태권도계는 스스로 그 그릇이 참 작다. 어느 모임에 가도 대부분이 ‘잔머리를 굴릴’ 줄은 알았지 보다 ‘큰 머리를 굴린’ 줄 모르는 것이 우리의 씁쓸한 현실이다. 우리는 세계스포츠정치를 모르고 세계연맹을 경영하는가 하면, 국제적 정황을 모르고 민족주의적 정서만 가지고 세계 속에서 철부지 노릇을 하고 있다. 이러한 태권도계의 무지로 인해서 우리는 금메달 하나에 목숨을 걸고, 그리하여 승부조작의 오명을 뒤집어써서 올림픽 퇴출의 위기상황에까지 가보지 않았던가 말이다.
이제 우리 태권도인들에게는 보다 거시적으로 세계적인 안목을 가지고 태권도를 바라보아야 하는 인식의 전환이 가장 절박한 과제이다. 메달보다도 중요하고 단증 발급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태권도라는 시스템을 살리는 길이다. 이 시스템을 살리기 위해서는 모든 작은 욕심을 버려야 한다. 금메달도 버리고 단증도 버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품안의 자식을 낡은 사고에 묶어두지 말고 세계의 무대로 날려 보내어 새 시대를 준비하게 하는 마음으로 이 위기상황을 극복해야 한다. 그리하여 나를 죽이고 태권도를 살려내야 한다.
이 시점에서 몇 가지를 제안하고자 한다. 먼저, 세계태권도연맹을 대한민국에 잡아둘 필요가 없다. 국가협회가 아닌 세계연맹이 한국인들에 의해 장악된 채 대한민국에 본부를 두고 있으면 필연적으로 한국의 민족주의적 정서에 휩싸이게 되고, 이는 태권도의 발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계연맹을 세계인의 손에 놓아주자. 그리하여 태권도가 살아남을 수 있게 하자.
그리고 현실적으로 대륙연맹에서 취급하고자 하는 단증 발급을 중단시킬 명분은 세계태권도연맹이 단증 업무를 넘겨받는 일 밖에 없다. 이 업무를 국기원에서 세계연맹으로 이관시키고 이를 바탕으로 세계연맹은 각 대륙연맹을 설득하여 전체 조직을 정비시키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기 위해서는 물론 세계연맹 자체가 좀 더 떳떳한 조직이 되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이와 동시에 국기원의 위상과 앞날에 대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리하여 유럽 발 ‘단증 위기’를 우리의 기회로 삼을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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