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8] 한국계 미국인으로서의 나의 사회 활동
미국 민경호 박사, 태권도 수기공모 당선작 기획연재 - 8-
[7편에 이어 계속]

백악관 방문
내가 스포츠 단체에 몸을 담고 중요한 자리에서 많은 일을 하게 된 동기는 잊어버릴 수 없는 사건이 하나 있다. 조지아 주립 대학에서 대학원생으로 공부를 하면서 나는 조교로서 유도와 태권도 (당시 명칭은 Korean Karate)를 가르치고 있었다.마침 전국 유도 대회가 1964년도에 뉴욕에서 있었는데, 나는 조지아 주를 대표로 유도 대회에 참가해 달라는 조지아 주 유도협회 회장의 부탁을 받고 뉴욕에서 마침 개최되고 있었던 세계박람회도 구경할 겸 뉴욕대회에 참가하게 되었다.
시합에 가보니 미국 선수들뿐만 아니라 많은 임원들도 일본 강도관 체제하에 움직였고 일본에 직수입해 온 일본선수들도 많았다. 내가 가지고 있던 대한유도 협회의 단증은 인정받지 못했다. 그래서 시합에 참가하려면 하얀 띠를 매고 하라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에서 온 몇몇 선수들은 자존심을 꺾을 수가 없어서 시합에 불참 했다. 그러나 나는 조지아 주 대표로 경비를 받으며 참석했기 때문에 쉽게 포기할 수 없는 입장이었다. 나는 혼심을 다해서 시합에 임했다.
공부에 전념했던 가난한 유학생 시절이어서 경기 하나 하나가 너무 힘이 들었다. 나는 체력을 안배하는 작전으로 일관하였다. 그래서 어떻게든 이기면 되니까 절반으로 모든 경기를 이기고 결승전에 진출하였다. 결승에서도 나는 최선을 다해서 싸웠다.안간힘을 써서 결승전도 절반으로 이겼다. 이겼다고 자랑스럽게 시상대로 나아갔다.
그런데 시상식을 하기 위해 나는 1등석으로 가려고 했는데, 나를 2등석으로 자꾸 밀어내곤 하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내가 1등이 아니라 2등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당시 유도 경기 승패규칙인 5 점 감점제를 잘 몰랐는데, 절반으로 이기면 1점 감점, 한판으로 이기면 0점으로 계산되는 레슬링에서 쓰이는 경기규칙을 채택했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벌점이 총 4점이고 상대는 계속해서 한판으로 이기고 올라왔기 때문에 벌점2점을 받아서 1등을 하게 된 것이다. 결국 그런 뼈아픈 경험을 통해 값진 교훈을 얻은 것이었다. 운동경기는 경기규칙에 의해서 진행되고 승패가 가려진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조금 더 희생을 하더라도 규칙결정에 나의 최선을 다해 직접 또는 간접적으로 관여해야 겠다고 다짐했다.
이러한 나의 초심 때문에 미국 유도 협회, 미국 체육회의 태권도 위원회, 팬암 태권도 연맹, 세계 태권도 연맹, 국제대학 스포츠 연맹 그리고 미국 올림픽 위원회에서 대의원이나 집행의원으로 많은 봉사활동을 자원해서 전개하게 되었다.
특히, 미국 올림픽위원회 교육분과위원(Education Council)으로 6년 동안 봉사했으며 미국올림픽 아카데미(UC Olympic Academy)를 매년 개최 하는데 직접 참여했으며 국제 올림픽 아카데미 (International Olympic Academy)에도 참석해 올림피아 그리스 (Olympia, Greece)에 네 번 이나 방문하였다.
그리고 올림픽 팬암게임 선수 선발 파견 위원회(Games Preparation and Service Committee) 위원으로 미국을 대표하는 올림픽 선수 선발 및 훈련과 파견에 직접 참여 할 수 있어서 개인적으로 많은 것을 배우고 미국 올림픽팀에 봉사했다고 생각한다.
[사진설명 : 1992년 스페인 바르셀로나 올림픽의 태권도팀 단장으로 출전 후에 당시 대통령이던 죠지 부시 대통령 내외와 함께 리셉션 중 백악관에서기념촬영.]
[ 9편에서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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