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연재-2] 버클리대 태권도과목 사수(死守)

미국 민경호 박사, 태권도 수기공모 당선작 기획연재 -2-


재단법인 태권도진흥재단(이사장 이대순)과 국기원(원장 엄운규)이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공동 주관한 해외 한인사범 태권도 수기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미국 민경호 박사(전 버클리 대학 교수)의 ‘미국에서의 태권도 보급과 세계화를 위한 일생의 집념과 노력’이라는 주제의 태권도수기를 <무토미디어>가 약 10회에 걸쳐 연재 합니다. 태권도 보급과 발전을 위해 일생을 희생과 봉사로 연구 한 그의 태권도 인생 열전 무술인 여러분에게 공개합니다.

<편집자 주>

버클리대 태권도 정식 과목 잔류시키기 위해 석좌교수제 도입


1980년대초 버클리 대학 연례 태권도 대회

한국의 무도인 태권도가 미국에서 자리를 잡고, 미국의 유명한 대학에서 태권도가 정규 학점 과목으로 채택되고. 과외 시간에 클럽활동으로 많은 학생들이 수련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까지는 많은 노력들이 있었다.

그런데 많은 대학교에서 1세대들이 은퇴를 하면서 태권도 프로그램이 없어져가는 것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금할 길 없다. 사실 버클리 프로그램도 그렇게 될 수 있었던 프로그램 중의 하나이다. 미국에서는 현직 교수가 하고 있는 프로그램을 그대로 놓아두었다가 그 교수가 은퇴할 때 같이 없애는 경우가 많이 있다.

특히 주립대학의 경우 주정부의 예산이 삭감되면 제일 먼저 삭감되는 것이 체육실기 과목 등 예체능 과목들이다. 시대가 변화하면서 많은 것들이 변하듯이, 버클리 대학도 내가 처음 채용되었을 때는 체육학과가 있어 박사학위까지 수여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는 체육과가 아닌 교양체육 과목 위주로 그 위상이 격하되었다.

사실 1995년에 나는 조용히 은퇴를 하려고 마음을 먹었었다. 개인적으로는 과분한 연금도 받는 좋은 조건이었다. 그 당시에는 일찍 은퇴를 하게 되면 정년나이에 5년을 더하고 근무연한을 또한 5년 가산해서 총 10년 일한 만큼의 개인적인 혜택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은퇴하고 나면 어떻게 태권도 및 타 무도 프로그램이 유지 될 것인지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내가 은퇴를 하면 무도 프로그램이 버클리에서 점차 사라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만 했다. 그래서 석좌 교수제를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하게 되었다.

“내가 이룬 업적 중 가장 힘들었지만 보람 느껴”


버클리 총장 국기원 방문


[사진 : 석좌제도 도입후 국기원을 방문하고 버클리 대학의 티엔 총장이 김운용 총재로부터 명예 단증을 받았다.]

첫 번째 당면한 문제는 석좌 교수제를 만들려면 우선 버클리 대학 교학 담당(Provost) 부총장이 주관하고 각 단과 대학장들이 참석하는 학과목 자문 위원회를 통과하여야 한다. 버클리 대학은 고도의 각 분야 학문 연구 및 국가와 사회에 어떻게 이바지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인데 교과목을 까다롭게 선택하게 되어있다.

하물며 석좌교수제는 더욱 까다롭게 다룰 수밖에 없는 것이 대학에서 영구히 교과 과목으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버클리 대학이 태권도와 타 무도를 영구 교과목으로서 교육적 가치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나는 솔직히 많은 걱정을 했었으나, 다행히 학장들 중에는 나에게 직접 무도를 배운 사람도 있었고, 자기 딸들이 나에게 태권도를 배운 학장도 있었음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여하간 행운이었다.

두 번째 문제는 모금 운동이었다. 처음에는 로스앤젤리스에 있는 문화원을 통해서 모금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국제 문화 교류 재단을 통해서 알아보기도 하였다. 그러나 한국어 프로그램만 도와준다는 이야기였다.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이 목적 달성을 위해서 11명으로 구성된 후원회를 조직하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버클리 대학 화학과 김성호교수, 정치외교학과의 이홍영 교수, 로랜스 연구소의 주동일 박사 및 강우정 박사, 그리고 샌프란시스코 한국일보 사장 등이 후원회에 포함 되었다. 후원회 임원들과 또 그간 버클리를 방문했던 교환 교수들이 후원 하였다. 또한 당시 김영삼 대통령의 청와대 의무실장이었던 정윤철 박사와 문광부 장관이던 주돈식 장관, 그리고 당시 이홍구 국무총리 등이 이 일이 성사되도록 많은 도움을 주었다.

결국은 일이 잘 되어서1995년부터 시작해서 1999년까지 1백만 불을 기금으로 나누어 받았으며, 석좌 제도 조건 중의 하나였던 100만 불 매칭 펀드도 2005년까지 노력하여 만들어 내었다. 나와 당시 체육학과장이던 팀 화이트 (Tim White)박사와 나는 주말과 밤을 가리지 않고 1000 페이지에 달하는 서류를 만들어야 했다. 한국 정부에서는 이러한 나의 공로를 치하하여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여하였다.

석좌제도를 만들고 나서 돌아보니 참으로 감회가 깊다. 내가 버클리 대학에 처음 왔을 때는 유도를 가르치기 위해서였다. 그것이 학교에서 나를 채용한 주목적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시간이 흘러 그 명맥을 이어갈, 유도가 아닌, 태권도 전공의 교수 한명과 다른 무도를 전공한 강사들이 이 대학에서 미국 최고의 두뇌 집단의 하나인 버클리 학생들에게 태권도와 그 외의 한국 무도는 물론 한국의 얼을 열심히 가르치고 있다.

더 나아가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가장 좋은 주립대학으로 평가를 받고 있는 버클리 대학교가 존재하는 한 석좌교수 자리가 계속될 수 있는 초석이 마련된 것이다. 나의 인생을 돌이켜보면서, 이것이 내가 이룬 업적 중에서 가장 힘들었지만 보람 있고 중요한 성과가 아닌가 생각이 된다.

이런 경유를 통해서 2003년부터는 매년 한 번씩 대학생들을 위한 세계태권도대회를 치르게 된 것이다. 즉, 홀수 년도에는 유니버시아드게임이 열리고 짝수년도에는 세계대학선수권대회가 열리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 대학 선수권대회는 다른 시합과 달리 각 나라마다 예산이 없기 때문에 참가자뿐만 아니라 개최 국가들도 많은 고생을 하고 있다. 시합이 있을 때, 국제대학스포츠연맹의 대표로 집행위원, 기술 고문, 재정 감독 (Financial Commissioner) 및 의료고문 등 각 한 명씩 참석해야 하는데, 러시아 대회의 경우에는 집행위원이 참석하지 않아서 나 혼자서 연설도 하고, 대회도 진행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나라의 경우는 정치적 상황이 불안하여 개최지역의 시장이 대회 일자 바로 전에 바뀌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노력들과 여러 사람들의 희생을 통해, 유니버시아드 대회와 세계 대학선수권 대회가 격년으로 돌아가며 개최되기에 이르렀고, 아직은 이 대회에 참가하는 각 국의 임원들은 몇 나라를 빼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비로 대회에 참석하고 있어 여러모로 어려운 점이 많았다.

그러나 이들 모두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참석하고 있는 것이다.앞으로 남은 일은 태권도가 유니버시아드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되기 위해, 현재국제대학스포츠연맹 집행위원회에 청원서가 접수 되어 있다.

안타까운 점은 이렇게 어려움을 딛고서 세계 대학 대회가 잘 되도록 지속적으로 노력중인데 지식인의 모임인 대학 대회 분위기가 다른 세계 태권도 대회와 다를 것도 없이 ‘반한’(Anti-Korean)을 외치는 소리가 높아진다는 것이다.그도 그럴 것이 한국에서 온 임원 및 코치들이 시합을 할 때마다 경기장에서 소동을 일으키는 것이 연례행사처럼 거듭되어, 태권도 종주국인 한국의 위상을 국제사회에서 격하시키는 일들이 여러 번 초래되어 세계 대학 태권도 모임에까지 불미스러운 일이 거듭되니 무척 실망스러울 뿐만 아니라 유니버시아드 정식종목 채택에 많은 역효과를 드러내고 있다.


[3편에서 계속]


- tkdnews@mooto.com -

ⓒ 무토미디어(http://www.mooto.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0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