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연재-1] 민경호 박사 “버클리대학과 나의 만남”


미국 민경호 박사, 태권도 수기공모 당선작 기획연재 -1-

재단법인 태권도진흥재단과 국기원이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공동 주관한 해외 한인사범 태권도 수기공모전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미국 민경호 박사(전 버클리 대학 교수)의 ‘미국에서의 태권도 보급과 세계화를 위한 일생의 집념과 노력’이라는 주제의 태권도수기를 <무토미디어>가 약 10회에 걸쳐 연재 합니다. 태권도 보급과 발전을 위해 일생을 희생과 봉사로 연구 한 그의 태권도 인생 열전 무술인 여러분에게 공개합니다.

<편집자 주>

버클리 대학과 나의 만남– “한국의 얼을 심는 무도 인으로”


1928년부터 유도 강의가 시작되었을 정도로 오랜 유도 역사를 가진 버클리 대학에 나는1969년에 부임하게 되었다.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조지아 주와 몬태나주 등지에 있는 세 곳의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그 후 동부 몬태나 대학에서 조교수로 직장생활을 시작했었다.그러다가 버클리 대학에서 교수 체용이 있자, 버클리대학의 체육과의 무도 실기 담당교수로서 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취직 되었다.유도 공인 5단과 태권도 4단의 무도 실력 등 충분히 자격을 구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나는 장래가 보장되는 종신교수(Tenure Track) 자리에 취직이 되었다. 이렇게 취직된 것이 나에게는 기쁨을 넘어서 아주 명예로운 일이었다.버클리 대학에 부임하는 첫 날 나는 나의 인생 목표인 무도 교육에 최선을 다하기로결심하였다.

체육학의 정식과목으로 실기 지도인 유도와 카라테, 기타 스포츠 종목들을 최선을 다해서 가르치다 보니, 내가 가르치는 카라테가 체육학과 실기과목 중에서 제일 인기 있는 종목이 되었다.그래서 곧 나는 카라테라는 과목 명칭을 태권도로 바꾸어야겠다고 생각했다.내가 가르치는 기술이 태권도였기 때문이다. 그 우선적인 절차로서 1970-1972학년도 2년간을 학과 목록에 강좌이름을 ‘카라테-태권도’로 기록했고,1972년부터는 다행히 태권도를 대학 학점 이수과목 목록에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태권도 과목은 폭발적인 인기가 있었다. 가을 학기부터 체육학과 태권도 수업에 등록하지 못한 많은 학생들과 한 시간이라는 짧은 시간에 만족하지 못하는 많은 학생들의 요구를 받아들여 방과후 그들을 모아서 일주일에 두 번씩 무보수로 가르치기 시작하였다.화, 목 양일을 가르쳤는데, 그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체육학과에서 학점을 주는 태권도 수업은 월요일과 수요일에 있고, 과외 클럽활동으로 진행되는 태권도 수업은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에 있다.또한, 유도와 용무도(합기도) 수업은 그와 반대로 체육과 과목으로는 화요일과 목요일에, 클럽수련으로는 월요일과 수요일에 있다.그래서 학생들이 원한다면 한 주에 4번까지도 수련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있다.게다가 주말에는 각 무도 시합, 세미나, 심포지움등의 일정으로 눈코 뜰새없이 바쁜 날들을 보내었다.

버클리대학에는 미국의 전통적인 무술 스포츠인 복싱과 레슬링이 교과목으로 있어서 격기 운동에 적합한 시설이 구비되어 있었기 때문에동양무술인 유도, 태권도등은 자연히 레슬링과 복싱의 곁방살이로 시작되었다.이것은 지금도 많은 대학이나, 기독교 청년회(YMCA),시에서 운영하는 체육관 (Recreation Center)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그와 같은 여건에서 체육과목도 레슬링과 복싱 수업이 우선이고 태권도와 유도는 항상 다음으로 취급되어 많은 애로점을 가지고 시작되었다.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많은 학생들의 관심과 나의 부단한 노력으로 인해 태권도, 유도 등 동양무도에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이 바뀌어 갔고, 종국에는 레슬링과 복싱은 체육과목에서 없어지게 되었으며, 이제는 학교 클럽 활동에서 마저도 복싱만이 자원 봉사 졸업생에 의해서 명맥이 유지되고 있다.

사실 복싱은 미국 의학회에서 학교 체육으로는 너무 위험하다고 규정되었으며, 몇 개 안되는 대학들에서만 명맥이 유지되는 실정으로 버클리에서도 일찍 체육과목에서 삭제되었다.레슬링도 무도와의 경쟁에서 결국 밀려나더니 담당 교수가 정년퇴직을 하고 난 후에는 과목마저 없어지고 말았다.그 대신 방과 후 레슬링 수업이 끝나는 저녁 10시에야 비로서 가르칠 수 있었던 태권도를 비롯한 무도 종목들이 이제는 최신 시설을 갖춘 무도실에서 일주일 내내 수련할 수 있는 위치로까지 발전하게 되었다.또한 무도의 학술적인 연구 활동을 더 활발하고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 2002년도부터는 국제 무도 연구소(International Martial Arts Research Institutes)도 개설하게 되었다.

이 연구소는 모든 무도 특히 태권도를 비롯한 한국 무도의 체계적인 학술적 발전을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기 위해 만든 것이다.그 일환으로 버클리 무도 프로그램에서는 6회에 걸쳐서 2년에 한 번씩 연구논문이 실린 무도 학술지인 모노그래프(Monograph)를 발행하고 있으며, 해마다 1,700명에 달하는 수련생들에게 질 높은 무도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이중 태권도는 이들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인기가 높은 종목이다.그래서 일 년 중 태권도 행사가 제일 많다.학교와 학교가 모여서 하는 시합, 몇 개의 대학이 모여서 하는 시합, 해마다 하는 서부지역 대학 시합, 유단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버클리 대학 연례 시합 등이 있다.

버클리 대학 연례 시합(Annual UC Open Taekwondo Championship)은 금년으로 37회 시합을 치렀는데, 이 시합은 내가 버클리에 취임한 1969년도에 30여명의 선수가 참가한 자그마한 시합의 수준에서 현재는 700여명의 선수들이 참가하는 미국에서 제일 권위 있는 대회중 하나로 성장하였다.한때는 1,500여명 이상의 선수가 몰려, 주말만 가지고는 세계 연맹 경기 규칙 (2분 3회전이나 2분 2회전)대로는 절대로 경기진행이 어렵고 또 100명 이상의 학생자원 봉사자들의 학업에 막대한 지장을 준다는 문제 때문에 700명으로 한정해서 시합 등록 시1년 이상의 수련자에게 우선권을 주는 방법을 선택하여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버클리 대학 태권도팀은 지난 31회 전미대학선수권대회에서4번을 제외한 나머지 27번을 유단자부에서 단체우승을 거두었다.그 덕분에 나는4번이나 전 미국 대학 태권도 코치 상을 받게 되는 영광을 얻었다.

버클리대 무도프로그램 전세계적으로 유명세


1970년대 초 버클리 태권도 팀

버클리 대학은 지금까지 5회(1978, 1982, 1986, 1992, 2005) 에 걸쳐 전국 대학대회를 개최했을 뿐만 아니라, 1970년도와 1985년 사이에는 버클리 대학이 중심이 되어 전국대학 태권도대회의 모체인 미서부 대학 태권도대회를 (Western Collegiate Taekwondo Championship) 해마다 개최 했으며, 지금도 그 대회는 지속되고 있다.또 대학 대항시합, 캘리포니아 대학 9개 캠퍼스 대항 시합 등 많은 교내, 학교 간 시합을 통해 학생들의 여가선용과 무도교육을 통한 친목, 체력증진, 그리고 정서함양에 최선을 기울였다.

버클리대학 무도 프로그램은 이제 명실 공히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유명한 무도프로그램으로 성장했다. 대표적인 인터넷 검색 사이트인 구글 써치 엔진을 열어 “university martial arts”(대학 무도)를 검색하면 캘리포니아 버클리 대학 무도 프로그램 (University of California Martial Arts Program)이 제일 먼저 나온다.내가 지난 37년 전에 착안하여 오늘날에 이른 버클리 대학 무도 프로그램은 이 정도로 매우 성공적이고 활동적이며, 꾸준히 성장 발전하는 무도 프로그램이 된 것이다. 이런 현상은 미국 내 어떤 대학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캘리포니아 대학교 본교 버클리 캠퍼스의 무도 프로그램 (UCMAP)은 내가 설립한 무도 통솔조직이며, 두 가지를 사명으로 하고 있다.

첫째는 질이 높은 기술체계를 갖춘 무도를 가르치는 한편 철학적, 과학적, 정신적 학술 연구를 버클리 대학교의 지적 자원을 최대 활용하여 무도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다.더 구체적으로 기술하면, 가능한 한 더 좋은 무도 교육을 학생, 직원 그리고 캠퍼스 주위의 시민들에게 제공하는 것이다.또한 여러 무도 (태권도, 유도, 우슈, 카라테, 용무도, 태극권)의 시합및 시범을 주최하며, 가능한 한 태권도, 유도 등 분야의 우수 선수들을 지역, 전국 및 국제 대회에 참가시키는 것이다.또한, 승급과 승단을 매 학기마다 제공하여 학생들이 무도 교육의진도를 공정하게 평가해 주며,계속 발전하고 변해가는 기술, 경기 규정 논문들을 정기적으로 무도 교육 커리큘럼으로 개발 사용하는 것이다.또한 가능한 한 최대의 시설을 제공하여 건강과 안전에 만전을 기하며, 계속해서 무도교육에 필요한 장비를 개발 사용하는 데도 힘쓰고 있다.이를 위해서는 정기적으로 무도 교육에 관계되는 전문분야 (운동 역학, 운동생리학, 체육 심리학, 체육 철학 등)의 실력이 있는 교수들로부터무도교육에 필요한 분야의 자문을 받아 소화시키는 것이다.학생들, 특히 대학원생들에게 무도 연구를 각자의 전문분야를 통해서 할 수 있도록 장려하도록 하며 연구 학술활동을 직접 세미나나 발표를 통해서 지속 개발하는 것이다.

두 번째 사명은 미국 내 타 대학이나 전국적, 국제적 조직체들과 체계적인 무도의 학술, 인적 교환을 통해서 친선 및 학술교류를 도모하는 것이다.이런 목적들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첫째, 목적을 이해하고 시간을 할애할 수 있는 많은 능력 있는 봉사자들을 활용해야하고, 둘째, 계속적이고 지속적인 모금활동을 해야 하며, 셋째, 능력 있고 대학 환경에 맞는 전문 인력, 즉 석사이상의 학위를 소지한 지도자들을 찾아내야 한다.넷째, 버클리 무도 프로그램의 유단자들을 최대한 투입하여 그들이 봉사를 통해 더 배우고 보람을 느끼도록 교육을 해야 하며,다섯째, 전 프로그램과 관련된 임원들이 충분한 대화를 통해 서로 자기의 능력과 시간을 극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여섯째, 대학이라는 특수 환경을 최대한 선용하여 지적인 도움을 받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좋은 시설과 무도 교육에 필요한 장비를 제공하여야 한다.이런 실천을 통해 버클리 무도 프로그램은 항상 타 대학보다 앞서가는 역할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이렇게 무도 프로그램을 창설하여 발전시키기까지 있었던 에피소드를 두어 가지만 소개하겠다.

"울며 겨자 먹기로 유명인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학생을 지도하고 있는 모습

몬태나의 지방 교육대학에서 근무할 때는 나는 그야말로틀에 박힌, 참으로 무미건조한 교수생활을 하였다. 그런데 버클리로 전근하면서 갑자기 일류대학의 일약 무도 교수로서 유명인사가된 것이다. 당시 버클리 캠퍼스에는 학생및 주민들의 크고 작은데모가 거의 매 주 일어나고 있었는데, 한국 경찰 지도자들이 버클리를 방문하여 데모진압 방법을 배워갈 정도였다.내가 부임한 1969년도부터 몇 년 동안은 월남전 반대 데모, 여성권리 신장 데모 등으로 캠퍼스가 항상 어수선하였다.특히 내가 가르치는 태권도, 유도 수업은 1개월 이상 여학생들이 무도 수업 등록 자유를 요구하며 피켓을 든 데모대로 문전성시를 이루었다.데모대가 모이면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3개 텔레비전 방송사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 신문, 오클랜드의 트리뷴 신문사 등의 기자들이 장사진을 이루었으며, 나는 항상 텔레비전 카메라에 잡혀서 수업에 들어가야 했으니, 캠퍼스뿐만 아니라 북가주 지역에 울며 겨자 먹기로 유명인사가 될 수밖에 없었다.사실 내가 부임하면서1년 뒤에는 바로 여학생들도 무도 수업에 등록하여 함께 수업을 받게 되어 있는 상태였는데도, 여성 과격 단체 회원들은 자신들의 여성운동을 위해서 대중매체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방법으로서 나의 무도 수업을 빌미로 삼은 것이었다.

여담이지만, 버클리 캠퍼스에서 학생과 주민들이 개최한 월남전 반전이나 반정부 데모를 강경 대책으로 맞서 진압에 성공한 당시 레이건 캘리포니아 주지사는 공화당 보수파들의 적극적인 추천으로 당 공천을 받아 결국 미국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다.또한 소련과의 강경 대응으로 결국은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결국 소련을 중심으로 한 공산주의까지 무너뜨렸으니, 버클리 캠퍼스가 레이건 대통령의 실험실이 아니었던가 싶다.

또 하나는 내가 버클리에 부임하니 일본계 무도 특히 유도와 카라테의 텃세가 심해 나에게는 여러 방면에서 끊임없는 도전이 들어왔다.역시 무도는 행동 철학인 것을 증명이나 하듯이 많은 도전과 시련을 거쳐야 했다.특히 방과 후에 이루어지는 클럽활동에는 카라테 사범들이 타 도장선수, 유학생이나버클리로 가르치러 온 일본 현역 선수들을 흰 띠로 위장시켜 나에게 도전해 오거나, 자기네 수제자들을 버클리 클럽에 투입시켜 나에게 도전해 온 경우도 몇 번 있었다.또 심지어는 카라테 사범 자신이 직접 도전해 옴으로써 달밤에 격투가 벌어질 번 한 적도 있었으나 주먹다짐을 피하며 슬기롭게 대처해 도전을 넘길 수가 있었다.지금도 그 당시 카라테 사범들을 가끔씩 만나곤 한다.

1964년 뉴욕 세계 박람회 장소에서 있었던 전미 유도 대회에서 내가 입상을 한 경력이 캘리포니아 유도 사회에서 알려져 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계 유도 선생이 30여 년 동안 자리 잡고 있었던 버클리 대학에 한국계 무도 전문 선생이 자리 잡게 된 것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을지도 모른다.그러나 그러한 역경을 거치며 나는 자리를 굳혀 갔다.이러한 어려움이 사실 더욱 활발하게 지역사회, 전국, 나아가 국제적인 무도 조직 형성에 더 많은 열정과 노력을쏟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되어준 것 같기도 하다.마치 레이건 대통령처럼, 나에게도 버클리 캠퍼스에서 배우고 실험하고 느낀 것이 기조가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2006년 7월 30일로 37년 만에 나의 청장년기의 정력과 자원봉사 정신으로 보람 있는 시간들을 보냈던 버클리 무도 프로그램을 젊음과 패기를 지니고 지난 2-3년 훈련을 통해 잘 준비해 온 안창섭 체육과 교수에게 넘겨주었다. 나는 남은여생을 오랫동안 미뤄왔던 연구 및 저서활동을 하며, 2002년도 무도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시작한 국제무도 연구소 (IMARI, International Martial Arts Research Institute)를 더욱 활성화 시킬 계획이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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