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합기도 사범 박상준의 고국 방문기
- 미국 볼티모어에서 합기도 사범을 하고 있는 박상준 사범이 얼마 전 고국을 방문하고 그 소감을 보내왔습니다. 박 사범은 최용술 선생의 직제자의 한 사람인 임종배 원로의 제자입니다. 박 사범이 한국의 합기도를 보고 느낀 점들을 가감없이 전달합니다. 국내 합기도인들에게 도움이 되기 바랍니다.[편집부 주]
1. 15년만의 고국 방문
저는 미국 볼티모어에서 합기도의 원로이신 임종배 선생님을 모시고 합기도를 수련 및 지도하고 있는 사범 박상준입니다. 지난 10월, 스승이신 임종배 총관장님의 은퇴를 기념하여 스승님과 외국인 제자 2명과 함께 15년 만에 한국을 방문할 수 있었습니다. 6박 7일간의 한국방문 기간 동안 저희 일행은 한국 합기도의 고향인 대구를 비롯하여 합기도의 원로 선생님, 선배님들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한국 방문기간 동안 스승이신 임종배 선생님이 대구 수덕관 수련시절(1964년 12월 ~ 1973년 3월)에 함께 수련하시던 유권술 합기도의 서복섭 원로님, 한풀의 김정윤 원로님, 수도관 창관자이신 홍승길 원로님 등과 후배되시는 용술관의 김윤상 원로님 등을 방문하여 합기도에 얽힌 일화를 비롯해서 합기도에 대한 그 분들의 고견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원로 선생님, 선배님들께 들은 이야기들을 합기도인들과 나누고 싶어 이렇게 졸필이나마 몇 자 적습니다.
2. 서복섭 원로와의 만남
인천공항을 빠져나오면서 숙소로 정한 역삼동의 한 호텔까지 가면서 느낀 것은 고층 빌딩숲과 거리에 넘치는 차량, 수많은 화려한 네온 불빛 등 화려하게 변한 서울의 야경이었습니다.
호텔에 여장을 풀자마자 저희 일행은 바로 대구로 향했습니다. 덕암 최용술 선생님과 함께 한국 합기도를 출발시키신 서복섭 원로님을 만나기 위해서였습니다. 대구 서복섭 원로님의 집 근처에 도착하자, 서 원로님은 집 앞 골목 어귀까지 회중전등을 들고 저희 일행을 따뜻이 맞아주셨습니다.
서 원로님께서는 1948년 대구에서 양조장을 운영하던 중 술찌게미를 얻으러온 40대 중반의 조그만 남자가 큰 덩치의 사람들과 다툼이 일어나자 이상한 자세로 덩치 큰 사람들을 제압하는 것을 보시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술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서 원로님이 최용술 선생님에게 무슨 무술이냐고 캐물어도 최용술 선생님은 묵묵부답 말이 없으셨다고 합니다. 서 원로님은 끈질기게 매달려서 결국 덕암 선생님의 무술을 전수받을 수 있었고, 그 댓가로 덕암 선생님의 생활을 보장해 주셨다고 합니다. 서 원로님은 그 후로 일어난 많은 일화들도 들려주셨습니다.
결국 덕암 선생님과 서복섭 원로님 사이에는 스승과 제자의 깊은 유대감이 형성되었고, 1952년 2월 양조장안에 건물을 마련하여 한국 최초의 합기도 도장인 ‘대한 합기유권술도장’의 문을 열게 되셨습니다. 서 원로님은 이 도장의 현판식을 하는 사진을 보여주셨습니다.
후에 덕암 선생님은 집을 마련하여 쌀가마니 석장을 펴놓고 수련생을 지도하셨고, 이 때 지한재, 김무홍 같은 분들이 배우셨다고 합니다. 1959년 경에는 다시 도장을 따로 내어 사범으로 김무홍 원로님이 맡았다가, 김무홍, 지한재 두 분이 서울로 진출하여 지금의 합기도가 전파되었다고 합니다.
서 원로님은 후에 합기도의 관절을 꺾고 비틀고 하면서 인체의 오묘함을 깨닫고 연구를 계속하여 몸의 신경계, 근육 계통의 신체지병이 몸의 균형이 흩트러져 일어남을 알아내시고 신체를 바로잡아 질병을 이겨내고 몸의 건강을 유지하는 것이 최상이라는 것을 알게되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균형체육’을 정립하여 경희대, 수원대, 단국대 등에서 강의를 하시기도 했다고 합니다.
올해로 84세이신 서 원로님은 호두를 손으로 깨뜨리시고 손가락의 악력을 두 손을 당겨도 견디어 내시고 같이 간 저의 외국인 제자들을 팔씨름으로 이기실 정도였는데, 이러한 것들이 합기도의 원리에 다 들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해주실 때는 가슴이 뿌듯했습니다.
서 원로님은 짧은 시범을 보여주셨고, 제가 배운 것과 같은 술기를 설명해 주시기도 했는데, 이런 술기를 하는 곳의 소개를 부탁드리자, “지금은 다들 변형이 되얐지... 하지만, 우리는 한 합기도 가족이야.”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서 원로님은 밤 늦도록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먼 곳에서 왔다며 손수 운전을 하시어 우리에게 맛있는 한식을 사주시고서야 우리를 보내주셨습니다.
3. 한국합기도를 느끼다.
서울에 있는 동안, 서울을 비롯해 경기도와 경남지역의 합기도장들을 방문했습니다. 그 도장들에서 느낀 것은 제가 배운 합기도와는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곳의 도장들에서는 유술기라기보다는 타격기 위주로 수련을 하고 있었고, 호신술이라고 부르는 술기도 주로 순발력과 허리회전력을 이용한 것이었습니다.
제가 배운 것 기술들 즉, 먼저 상대힘을 쓰지 못하게 하는 수형, 중심허물기, 전후진력을 이용한 회전력 등은 좀처럼 보기 힘들었습니다. 그리고 단련법은 유술가의 몸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기 보다는 타격가의 몸을 만들기 위한 수련이 위주였습니다. 수련생들도 청장년이 위주가 아니라 청소년들 중심으로 수업이 진행되었습니다.
관전 중, 몇몇 사범님들이 느낌을 물어와서 다른 원리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기술을 보여주자 불쾌해 하는 느낌을 받아서 슬그머니 나와버리기도 했습니다.
또 꽉 잡으면 술기를 걸지 못한다고 하시는 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인정할 수 없어서 꽉 잡게 한 다음 술기를 걸 수 있음을 보이고, 꽉 잡으면 술기가 들어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원리에서 벗어나면 술기가 들어가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드렸는데 그래도 배운 대로 하겠다는 말들을 하는 것을 듣고나서는 합기도장 간판만 보면 반가웠던 마음에서 외면하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한풀 김정윤, 수도관 홍승길, 용술관 김윤상 원로 등을 만난 이야기가 이어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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