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 번개를 맞은 남자, 조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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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원은 어떤 사람인가?
세계태권도연맹이라는 커다란 배에 새로운 선장으로 조정원 총재가 부임한 지도 2년 2개월이 흘렀다.
조정원 총재는 2004년 6월 김운용 전 총재의 부재로 인한 잔여임기 10개월의 제2대 WTF 총재에 당선됐고, 그 후 2005년 4월 제3대 총재에 재선되면서 신임을 확인했으며, 곧 이어 태권도의 올림픽종목 퇴출 위기라는 상황극복을 위해 숨가쁘게 달려왔다. 이러한 과정의 핵심에는 세계태권도연맹이라는 전세계 태권도의 대표기구가 명실상부한 국제스포츠기구로서 확립되기 위해서는 개혁이 필수요소라는 인식과, 태권도 개혁을 통해 태권도가 올림픽스포츠로서 확실한 자리를 잡도록 하고, 세계 속에 전파하도록 하겠다는 의지가 있었다.
이러한 개혁의 총책임자인 조정원 총재에 관한 인터뷰는 그 동안 수 차례 있었지만, 인터뷰의 주제들이 현안들에 집중이 되었던 경우가 많아, 조 총재의 인간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잘못 알려졌거나 덜 알려진 경우가 많았다.
그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그가 생각하는 태권도 개혁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 그 내용을 조정원 총재로부터 직접 들어본다.
[조정원 세계태권도연맹 총재 인터뷰]
▲ 바쁘신 중에도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 자리에서는 WTF 총재 조정원에 대한 딱딱하고 형식적인 인터뷰보다는 자연인 조정원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말씀을 나눠보겠습니다. 가까이서 뵙는 것은 오랜만인데 건강해 보이십니다. 건강관리를 위해 특별히 하시는 운동이나 취미로는 어떤 게 있나요?
- 80년대에는 테니스에 빠져서 일주일에 두 번씩 테니스를 치곤 했습니다. 그런데 취미라는게 변합디다. 90년대 들어서는 등산에 빠졌지요. 일주일에 최소 한번, 많게는 두 번도 갔습니다. 전국에 안 가본 산이 없을 정도로 많이 다녔지요. 제일 힘들게 했던 것은 지리산 무박종주였어요. 밤 12시에 노고단 주차장에서 출발해 그 다음날 밤 8시에 천왕봉으로 해서 내려왔습니다. 한 스무 시간 정도 걸은 셈이지요. 그 다음으로는 도봉산-북한산 종주가 기억에 남네요. 새벽 4시에 회룡에서 출발해 구기터널쪽으로 내려왔는데, 밤 8시정도에 내려왔으니 이것도 한 16시간 정도 걸렸지요. 그만큼 좋아했고, 체력적으로도 좋았던 시절입니다.
▲ 요즘도 등산을 자주 하십니까?
- WTF 총재를 맡아 좋은 점도 많지만, 한가지 안 좋은 점이라면 규칙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2004년 6월 11일부터 총재를 맡았으니 2년 2개월이 흘렀는데, 그 동안에 62회 해외여행을 했습니다. 26개월 동안 한 달에 두 세 번은 해외에 나갔던 셈이지요. 국내에 있는 시간도 많지 않고, 불규칙한 생활을 하다보니, 취미생활을 즐기지 못하는게 아쉽습니다. 운동도 부족하고 건강도 좀 해쳤어요. 친구들도 과거엔 같이 등산가자, 골프치자 연락도 자주했는데 요즘엔 친구들이 아예 없는 사람으로 제쳐 놔서 연락도 잘 안합니다.(웃음)
▲ 가볍게 헬스클럽 같은데서 운동하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 그것도 어려운 것이 매일 점심, 저녁으로 약속이 있다보니, 어렵습니다. 물론 내가 부지런하면 할 수 있겠지만, 저녁에 늦게 귀가하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나와야 하고 사람 만나야 하고 그러다 보니, 잘 안됩니다.
몽골에서 번개를 맞은 이야기
▲ 그래도 건강은 좋으신 것으로 보이는데, 건강과 관련해서 몽골에서 색다른 경험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무슨 이야기인가요?
- 아, 그거요. 오래된 얘긴데, 1991년으로 기억합니다. 그 때 몽골에서 국제세미나가 있었어요. 우리나라, 미국, 일본, 대만, 러시아 등 5개국 학자들이 몽골에서 동북아 세미나를 했었지요. 세미나를 마치고 나니 한 저녁 8시정도가 되어서 소화도 시킬 겸 동료 교수들과 숙소 뒤에 있는 언덕으로 산보를 갔습니다. 동료들 중에 내가 두번째로 언덕에 올라갔는데, 올라가서 보니, 저쪽 지평선에 먹구름이 끼고 비가 왔어요. 우레소리도 들리고 번개도 치고 그랬지요. 그래도 이쪽은 비가 안 왔으니까 별일 없겠지 하고 동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요. 나는 언덕 정상에 서 있었고, 다른 사람들은 맞은편 바위에 앉아서 서로 마주보고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뭐가 번쩍 하더니 이마를 큰 망치로 때려 맞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주저앉아서 머리를 만져보니 이상이 없는거 같아서 일어났는데, 다시 또 도끼로 머리를 찍는 것 같은 통증이 있었어요. 머리가 깨져서 피가 나는 줄 알았는데, 일종의 전기충격이었으니 피가 나지는 않았고요. 생각해 보니, 번개에 직접 맞은 것은 아니고 저쪽 지평선을 때리는 번개가 지나가는 길목에 서있었던 모양입니다. 아무튼 그래서 또 맞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숙소로 내려와 같이 올라갔던 사람들하고 이야기를 하는데, 내 맞은 편에 앉았던 미국인 교수가 말하길 번개가 칠 때 내 머리카락이 쭈뻣하고 서는 게 보였다고 하더군요.
어쨋건 번개를 두 번이나 맞고도 살아있으니 귀한 경험을 한 건데, 그 이후로 여러가지 변화가 있더군요. 우선 잔병치레가 없어졌어요. 그때 이후로 15년이 지났는데 그 동안 감기에 걸린다거나 어디 아파서 앓아누운 적이 없어요. 그 만큼 건강이 좋아졌어요. 그리고 또 한가지는 기억력이 좋아졌어요. 사람이름을 외운다거나 어떤 일이 아주 자세히 기억이 납니다. 또 술마시고나서, 시쳇말로 필름 끊어지는 일이 없어졌어요. 전에는 친구나 동료들과 술을 많이 마시다 보면, 기억이 가물가물한 경우가 가끔 있었는데, 그 일 이후로는 술을 좀 많이 마셔도 필름이 끊어지는 일이 없어졌어요. 아무튼 이 무렵 등산을 많이 할 때 교수들이 나를 부른 별명이 무장공비, 아니 무장은 안했으니 비무장공비였어요.
한번은 경희대 태권도학과 졸업생들하고 북한산 등산을 한적이 있었어요. 도선사쪽으로 올라갈때는 비가 안왔는데, 인수봉에 도착하니 말 그대로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더군요. 아무튼 그렇게 비가 오는 와중에도 종주를 해서 진관사쪽으로 내려왔는데, 사범들이 나를 못쫓아올 정도였습니다. 내려가서 얘기를 나누는데, 사범들이 매일같이 운동하는 자기들보다 어떻게 그렇게 산을 잘 타느냐고 고개를 젓더군요.
▲ WTF 총재라는 자리가 말씀하신데로 해외출장도 많고 여러가지로 일이 많다보니, 총재님의 건강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을텐데, 건강하시다는 말씀을 들으니 듣기에 좋습니다.
- 그렇습니다. 내가 맡은 일이라는 게 체력적으로 뒷받침이 되지 않으면 할 수가 없어요. 그런 의미에서는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몸을 물려주신 조상님들한테도 감사하고, 그 때 벼락을 때려주신 하느님한테도 감사하고.(웃음)
친구들, 가족이야기
▲ 이번에는 지인들, 교우관계에 대해 질문드리겠습니다. 여러 가지 분야에서 많은 분들과 교분을 나누고 계실텐데, 특별히 가까운 분들에는 어떤 분들이 있는지요?
- 글쎄요. 내가 가깝다고 하면 그 사람들이 싫어할는지도 몰라요. 나하고 가깝다고 하면 부담스럽게 생각을 해서… .(웃음) 아무튼 나는 다양한 사람들을 많이 만나고 만남의 인연을 소중히 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어요. 그러다 보니, 다양한 그룹에 다양한 친구들이 많은 편입니다. 그러다보니, 매일 같이 점심, 저녁을 바깥에서 할 수 밖에 없어요.
가깝게는 중고교, 초등학교 친구들과도 계속 만남을 하고 있고, 특히 초등학교는 동창회장을 맡고 있어서 요즘도 분기에 한번은 꼭 만납니다. 1996년에 경희대 총장이 되고나서 초등학교 동창들과 축하모임을 가졌는데, 한 40여 명 모였었습니다. 초등학교를 졸업한지 40년인데도, 만나자마자 "얘, 정원아, 얘 누구야" 하고 이름을 부르니까 너무 편하고 소중합디다. 그래서 요즘도 계속 좋은 만남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 작년에 싱가포르 IOC총회에서 태권도의 올림픽종목 유지에 성공한 후 공항에서 조 총재를 인터뷰를 하기 위해 기다리다가 사모님을 뵌 적이 있습니다. 결례를 무릅쓰고 말씀드린다면, 상당한 미인이시던데 사모님과 결혼하시게 된 이야기도 궁금하고, 자제분이 2남 2녀신 걸로 아는데, 다들 어떤 일들을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 사실 나한테는 정부가 표창장을 줘야합니다. 2남 2녀나 낳아서 요즘같이 인구증가율이 저조한 상황에서 큰 일을 했잖아요?(웃음) 기본적으로 자식이 많은 것은 좋다고 생각합니다. 키울 때는 많다고 생각했는데, 다 크고 나니까 지금은 집에 둘만 남았고, 둘은 유학을 가 있어요. 큰 딸은 국내에서 박사과정을 하고 있어요. 올해 서른이라 결혼할 나이는 지났는데, 조만간 하지 않겠느냐 기대하고 있고, 둘째는 군대 제대하고 외국에서 경영학 공부를 하고 있고 세째는 피아노를 전공해서 석사를 국내에서 마치고 얼마 전 외국에서 박사과정에 막 들어갔고, 막내는 공익근무를 하고 있습니다.
집사람을 만난 건 75년경인데, 미국에서 석사를 마치고 귀국을 하고 나서였어요. 그 때 집사람이 피아노를 했는데, 막내 여동생도 피아노를 하고 있었고, 둘이 같은 선생한테 배우고 있었지요. 그래서 피아노 교수 댁에서 처음 집사람을 만났어요. 그리고 나서 몇 개월 사귀다가 결혼했습니다.
▲ 형제관계를 보자면, 지금 자제분들도 2남 2녀지만, 조 총재께서도 2남 2녀의 장남이지 않습니까?
- 그렇지요. 순서는 달라요. 우리아이들은 딸, 아들, 딸, 아들인데, 우리 형제는 아들, 딸, 딸, 아들이예요. 사실은 나한테 형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북에 있을 때 100일을 지나면서 폐렴에 걸려서 죽었어요. 페니실린만 있어도 고칠 수 있는 병인데 그걸 못 구한거죠. 그래서 장남의 팔자가 됐는데, 사실 나는 자유인으로 사는 것을 제일 원하거든요. 차남이었다면, 그럴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도 들어요. 아무튼 장남이 됐는데, 장남 참 어렵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도 그렇고 가족을 항상 먼저 생각해야 한다는 것도 그렇고.
행복한 삶의 기준
▲ 나이가 47년생이시니 올해 우리나이로 60이시죠?- 예. 그런데, 간혹 언론 보도 등을 보면 "60세 노인이 어쩌구" 하는 표현을 하는데, 나는 그거 이해 안돼요. 나는 아직 손주도 없고, 할아버지도 아닌데 말이죠. 운동을 좋아하다보니, 만 45세까지는 누구하고 어떤 운동을 해도 진다는 생각을 안했어요. 그런데, 45세가 지나고 보니, 젊은 친구들하고 테니스 치다 보면, 젊음이 부럽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러다가 10년 지나 55세가 되니까 젊은이들과 체력적으로 맞경쟁은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제 60세가 되고 보니까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 시간이 얼마나 되나 돌이켜 보게 되더군요. 주변 때문에, 부모님, 가족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하는 일들이 대부분이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제는 하고 싶은 것들을 하면서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생각이 들고, 여행을 가더라도, 일 때문에 가는 여행 말고, 가서 느끼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 여러 나라를 많이 방문하시는데, 특별히 인상적인 나라가 있나요?
- 지난 4월 부탄에 갔을 때가 특히 기억납니다. 그 때 여러가지로 느낀 점이 많았습니다. 부탄하면 우리한테 좀 생소한데, 아시다시피, 인도 북쪽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나라입니다. 티벳과 네팔이 옆에 있지요. 우리가 삶의 질을 이야기 할 때 보통 물질적인 풍요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은데 부탄에서는 GNH(Gross National Happiness) 그러니까 국민총행복을 논하더군요. 물질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풍요로워야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이 여유있고, 표정도 밝고, 그렇게 친절할 수가 없어요. 그 사람들 우리하고 비슷한 점이 많아요. 몽고반점을 가지고 있지요. 또 활쏘기를 좋아해요. 우리활(국궁)과 비슷하더군요.
그리고 그 사람들이 좋아하는 게 태권도예요. 60만 인구에서 1만 6천명이 태권도를 합니다. 태권도인구 3만을 목표로 하고 있더군요. 60만 인구 중에서 3만이 태권도를 한다면 그것은 대단한 비율입니다. 이 나라에 있으면 어린 학생들이 태권도 교복을 입고 하교 하는 모습을 심심찮게 볼 수 있습니다. 그 모습을 보면 그렇게 감동적일 수 없어요. 이렇게 열심히 하려는 나라들에는 WTF가 가능한 모든 지원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얼마 전에도 십 여명이 와서 훈련을 하고 갔고, 장비 지원도 약속을 했습니다.
경희대 설립자의 아들 조정원이라는 이미지에 관하여
▲ 이번에는 조정원 총재의 외면적인 이미지에 대해 말씀 드리겠습니다. 조정원 WTF 총재 하면, 경희대 설립자인 조영식 박사의 아들이라는 즉, 명문가의 자제라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이제 연세가 60을 넘으셨으니, 명문가 자제라는 표현이 좀 어색하긴 합니다만, 명문가 출신이라 큰 고생은 안하셨을 것 같다라는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그 점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면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저 사람은 경희대 설립자의 자제로서 어려서부터 유복하게 자랐지 않겠느냐는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건 대학의 설립자의 자제를 대기업 재벌2세와 같이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우선 대학이라는 건 사유물이 아닙니다. 그리고 6.25전쟁 이후 부산 피난시절 등을 지나면서 (아버님께서) 대학을 설립한다는 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재정적인 후원자가 특별히 있었던 것도 아니었구요.
어렸을 때를 생각하면 우선은 먹고 싶은 게 많았는데 못먹었다, 쓰고 싶은게 많았는데 돈이 없었다, 이 기억이 많아요. 집에서도 여유있게 용돈을 받았던게 아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처럼 책 산다는 핑계로 다른데 쓰기도하고 그랬어요.
집에서도 어머님이 월급 때가 되면 사람들 월급을 주기 위해 빚을 내기도 하고, 학교 건물 짓기 위해 빌린 빚 때문에 빚쟁이에게 독촉받기도 하고, 그런 모습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여유있는 생활을 한다는 것을 생각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보통 이런 사정을 모르기 때문에 저 사람은 재벌가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돈을 흥청망청 썼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서 유학할 때도 돈이 언제 오고 언제 떨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절약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어요. 벨지움에서 유학할 때는 유럽의 교육제도가 좋아서 좀 생활하기가 나았습니다. 등록금은 면제였고, 장학생으로 선발이 되면 나오는 금액이 거의 생활비 수준이었어요. 75년부터 79년까지 있었는데 그때 받은 돈이 월 1천불 가량 됐어요. 그러다 보니, 공부하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그래서 돈을 좀 덜 받는 석사과정에 있는 친구들이 주말이면 우리집으로 몰려와서 같이 맥주도 마시고 하면서 재미있게 지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도 큰 여유가 있었던 건 아니었지만요. 뭐 그렇다고 해서 지금 큰 여유가 있다는건 아닙니다만, 아무튼 어려서부터 절약하는 걸 몸에 배서 배웠기 때문에 함부로 돈 쓰지 않는건 당연하게 알고 있습니다.
연맹에서도 그건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내가 연맹에서 많은 월급을 받고 있는 줄 아는 경우가 있는데, 세계연맹 총재의 자리는 자원봉사의 개념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활동비나 연맹 공식 행사에 의한 접대비는 사용합니다만, 그것 역시 내가 연맹의 재정상태를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억제를 하고 있습니다. 해외출장을 갈 때도 가능한 한 연맹 재정에 도움이 될 수 있도록 퍼스트클래스가 없는 항공을 이용하기도 하고, 마일리지 적립을 통해 비지니스 클래스를 업그레이드해 이용하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연맹 재정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로부터 받은 두가지 영향
▲ 말씀하신 검소한 생활에 큰 영향을 미친 분이 부친이신 것으로 아는데, 부친이신 조영식 박사께는 기본적인 생활태도 뿐만 아니라, 학문적으로도 큰 영향을 받으신 것 같습니다. 전공하신 국제정치학에서 특히 평화에 관련된 많은 저술을 하셨던데요, 조영식 박사가 주장하는 평화와 일맥상통하는 점이 많다고 생각되는데, 어떻습니까?- 그렇지요. 왜냐하면, 어렸을 때부터 아버님을 가까이서 보면서 자랐기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았지요. 무엇보다도 평화를 통한 국제질서 회복, 안정을 주창했던 것이 아버님이셨습니다. 그래서 경희대학교는 다른 어떤 대학보다도 평화와 관련된 연구, 세미나 등을 통해 업적을 쌓았습니다. 국내 최초로 전 강의를 영어로 강의하는 평화복지대학을 만든 것도 경희대구요. 1981년 세계대학총장회의 때는 아버님이 처음 제안한 평화의 날, 평화의 해가 만장일치로 의결되어 9월 세째 화요일이 평화의 날로, 1986년이 평화의 해로 제정되기도 했습니다.
앞으로도 평화라는 것에 대한 학술적인 연구는 계속 필요합니다만, 스포츠라는 것도 올림픽을 통한 세계평화를 지향하는 것이기 때문에 내년에 평화와 스포츠라는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구상하고 있습니다. 태권도도 격투스포츠지만, 태권도만큼 명예, 예의, 충성심 등을 강조하는 무술이 없지 않습니까. 이런 측면에서 태권도가 기여할 부분도 많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또, 내년 북경선수권대회에서는 학술회의를 같이 하려고 합니다. 국내에 태권도 전공학과들이 많고, 태권도를 배운 학자들도 많은 만큼 겨루기, 품새 뿐만 아니라 학술대회도 정기적으로 개최하여 태권도가 학술적으로 더 과학화되고 다듬어질 수 있도록 구상하고 있습니다.
ITF와의 통합문제
▲ 말씀하신 스포츠를 통한 세계평화에의 기여를 할 수 있는 현실적인 기회를 WTF가 갖추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구체적으로는 WTF와 ITF의 관계개선, 통합 등의 문제 해결을 통해 남북간의 정치적인 화합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부분에 대한 구체적인 생각과 전망은 무엇입니까?- 사실, WTF와 ITF의 통합문제는 남북통일만큼 어려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두 단체가 30여 년간 교류 없이 각자 국제화하는 노력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실적인 접근을 해야합니다. 무조건 기구통합하자고해서 될 수가 없는 이유가 각 단체가 WTF는 WTF대로 182개국의 가맹국을 가지고 있고, ITF는 ITF대로 약 60여 개의 가맹국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통합하자고 해서 총재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닙니다.
유럽의 통합과정을 보더라도, 처음에는 석탄, 철강 같은 자원의 생산과 유통 등에서 서로 협력하기 위해 유럽석탄철강공동체가 먼저 만들어졌습니다. 그러다가 해보니까 서로 도움이 되어 유럽경제공동체(EEC)로 발전을 하고 결국 유럽연합(EU)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WTF와 ITF의 통합 문제도 겨루기나 품새 등 기술적인 문제의 통합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현재 국내에는 ITF 조직들이 들어와 ITF를 가르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북한 정부당국이나 ITF쪽에서 동의만 한다면, 평양에도 WTF 도장을 만들어서 사범도 파견하고 기술전수를 할 준비가 우리는 언제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된다면, 북한의 WTF 도장에서 WTF 기술을 수련한 사람이 지역예선 등을 거쳐 국가대표로 선발되어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할 것입니다.
국기원, 대태협과의 관계에서 WTF의 역할
▲ 이번에는 국내의 상황에 대해 질문 드리겠습니다. 현재 국내 태권도계는 WTF, 국기원, 대태협의 세 단체가 주축이 되어 이끌어가고 있는데요, 예전 김운용 총재가 있을 때에 비해 각 단체간의 화합이 잘 되지 않고, 갈등의 조짐이 보인다는 말들도 있습니다. 각 단체간 위상이나 역할에 대해서도 각 단체의 입장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 것도 같구요. 이런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과거와는 상황이 다른 것이 사실입니다. 그때는 한 분이 세 단체를 모두 이끌었고, 또 그때는 그럴 필요가 있었습니다. 빨리 태권도를 발전시키고 국제화해서 올림픽 종목으로 만들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상황에서 중요한 것은 세 단체의 할 일이 다르다는 것을 정확하게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 셋을 자꾸 하나로 묶으려는 시도가 오히려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세계태권도연맹은 IOC가 인정하는 올림픽 국제스포츠 기구로서 182개 가맹국가를 통솔하고 그 182개 국가에서 태권도가 더 발전하도록 지원하고 보급하는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태권도가 올림픽 경기스포츠로서 세계 속에 뿌리를 내리도록 하는 것, 이것이 WTF의 역할입니다. 그리고 국기원은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기술적, 학문적으로 발전시키는 일을 해야 할 것이고, 대태협은 국내 경기단체로서 역할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각 단체가 각자 자기 기능을 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 무도로서의 태권도와 스포츠로서의 태권도를 구분하고, 올림픽 스포츠로서의 태권도를 발전시키는 것이 WTF의 주된 역할이라는 말씀이군요?
- 그렇습니다. 무도로서의 태권도와 올림픽 경기스포츠로서의 태권도는 분명히 구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무도로서의 태권도를 할 때는 도복을 입는다고 표현하지만, 스포츠로서의 태권도를 할 때는 경기복으로 표현합니다. 그랬을 때, 경기복은 컬러풀 해질 수도 있고, 소재도 활동적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축구나 다른 종목처럼 경기복에 각 국가의 국기를 부착하게도 하고, 다양하게 변화를 줘야 합니다. 지금 도복에 호구, 헤드기어를 쓰고 출전하는 선수를 보면 남자시합인지, 여자시합인지 구분도 잘 안가요. 요는 도복을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태권도 경기복을 현실적으로 바꾸자는 것이고 지금 연구 중입니다.
그리고, 경기방식도 바뀌어야해요. 지금처럼 팔 늘어뜨리고 껑충껑충 뛰는 모양이라면 누가 표를 사가지고 구경하러 오겠어요. 좀 더 박진감 있고, 재미있는 경기가 될 수 있도록 바꿔야지요.
조 총재가 생각하는 태권도 개혁
▲ 재미있는 태권도를 만드는 것과 함께 공정한 태권도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해 오셨습니다만, 그 점에 대해선 어떤가요?
- 나는 2004년 6월 11일날 WTF 총재가 되고 나서 기쁨보다도, 과연 2005년 싱가포로 IOC 회의에서 태권도가 살아남겠느냐, 살아남게 하기 위해서는 뭘 해야 하겠느냐는 생각을 먼저 했어요.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다녀오고 나서 느낀 것은 이런 심판제도로는 안되겠구나 재미있고 공정한 태권도로 바꿔야 겠구나 하는 점이었습니다.
요전에 무토미디어에서 "총재되고 나서 뭐했느냐"라는 표현을 했는데, 그거 보고서 나는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그렇게까지 희생을 하고 하는데, 이렇게 밖에 인정을 안해주는구나해서 섭섭한 마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내가 총재가 되고나서 한 일이 참 많아요. 그건 자랑이 아니라, 개혁위원회 보고서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그것대로 반드시 갈 겁니다. 요는 좀 답답한 부분은 있겠죠. 왜 빨리빨리 못하느냐는. 하지만, 일이라는 게 순서가 있습니다. 하나 하나씩 해나가야지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더 진전을 못합니다.
경기복, 경기방식, 심판제도 등 반드시 바꿀 것이고, 바꾸고 있습니다. 심판의 경우에는 WTF 주관대회에 참가하는 심판들은 평가를 해서 점수를 누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누적된 심판의 평가를 토대로 해서, 가장 공정한 심판 35명을 선발해서 2008년 올림픽에 내보낼 겁니다. 지역안배도 안합니다. 대진표와 심판 코트배정도 컴퓨터 프로그램을 의뢰해 놓은 상태입니다. 대진표나 심판 배정에 일체의 개인 사견이 들어갈 수 없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연내로 완성이 될 것이고, 내년 세계대회부터는 개발된 프로그램을 사용하게 될 것입니다.
▲ 공정한 심판판정 부분과 관련한 말씀을 해주셨고, 또 지난번 제가 썼던 글에 대해서도 섭섭했다는 말씀을 하셨으니, 그 부분에 대해서 한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지적했던 것은 조 총재께서 WTF 총재로 오시고 나서 개혁의 의지나 노력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 아니라, 개혁의 본질적인 부분에서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고 있다는 의구심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있었던 국제심판 관련 비리의 경우에도 WTF에서 발표한 징계나 결과들이 외부에서 조 총재와 WTF에 가지고 있는 기대에는 많이 못 미쳤다는 의견이 많았습니다. 그것은 그만큼 조 총재에 거는 태권도인들의 기대가 컸기 때문이겠지요. 직원 한 명의 사표수리와 관련 비리직원들의 부서이동으로 이번 사건이 마무리된다는 것은 개혁의 속도가 아닌 방향에서 문제가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 나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개혁이라는 것이 쉬운 게 아닙니다. 밖에서는 잘못한다고 쉽게 말할 수 있는데, 절대 그렇지가 않아요. 하나씩 하나씩 해오고 있다는 게 그런 점입니다. 이번처럼 우리(WTF)가 필요한 조치를 한 적이 언제 있습니까. 그러면 계장 하나만 책임질 일이냐고 하는데, 경찰에서 조사하고, 검찰까지 조사를 했어요. 그러면 우리가 더 이상 어떻게 조사를 합니까. 아는 사람이 있으면 얘기를 해줬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징계 절차도, 조사가 계속 진행 중인 상태에서는 징계위원회를 열 수가 없는 거고, 검찰조사가 끝난 후에 베트남 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징계위원회를 열어, IOC 위원이 두 명이나 포함된 징계위원회의 판정이 있었고, 나는 그 결과를 수용한 겁니다.
이 문제에 대해 자꾸 거론이 된다면, 문제가 언제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느냐고 반문하고 싶습니다. 난 그것 보다는 개혁도 미래지향적인 개혁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에 누가 어쨌다 저쨌다 하기 시작하면 끝이 없어요. 중요한 것은 미래를 위한 개혁을 과연 의지를 가지고 하느냐를 봐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국내에서 말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외국 사람들이 볼 때는 지금 엄청난 변화를 하고 있다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WTF에 대한 평가는 2007년 이후에 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지금 계획한 개혁프로그램을 2008년까지 완성하고, 2009년 코펜하겐 IOC 총회에서는 태권도가 당당하게 올림픽 종목으로 남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2009년 이후에는 태권도의 올림픽 퇴출 여부를 걱정하지 않을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전까지는 WTF가 가야 할 길을 한걸음씩 뛰고 있으니까 믿고 성원해주기 바랍니다.
솔선수범하는 한국의 태권도인들 기대
▲ 조 총재께서 태권도를 가까이 한 것은 경희대 시절부터 따지면 꽤 오래되었습니다만, WTF 총재의 자리에서 몸으로 직접 느낀 것은 또 다른 점이 있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가까이서 태권도인들을 보시면서 느끼신 점들 중에 개선해야 할 점, 노력해야 할 점, 협조사항 등이 있다면, 한 말씀 해주시죠. - 태권도가 올림픽 경기스포츠가 되긴 했지만 시작은 무도입니다. 어린 학생들이 도장에서 가장 먼저배우는 것이 예의범절이지요. 그런데, 태권도를 배운 사람들이 성인이 되면 태권도 안 배운 사람들보다 부족한 경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러한 태권도의 예절은 한국 태권도인들이 더 잘 지켜줘야 해요. 그런데, 국제대회 같은 때 보면, 외국 선수들은 심판이나 임원, 상대선수들에 대해 깍듯하게 인사하고 예의를 지키는 데, 한국 선수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있더군요. 입장 할 때도 외국 선수들은 본부석에 깍듯하게 인사를 하고 예의를 갖추는데, 우리 선수들은 그렇지 못해요.
승패는 병가지상사라 이길 수도, 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태권도의 본 모습인 예의범절에서 외국 태권도인들의 모범이 되었을 때 우리가 더 존경을 받을 수 있습니다. 태권도는 한국에서 출발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연맹에 한국 선수단이 각별히 예의를 지킬 수 있도록 사전에 충분한 교육을 시켜달라고 부탁을 했어요. 태권도가 한국인이 세계인에 준 선물이라는 말을 많이 했는데, 지금 태권도의 종주국이 한국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제는 경기스포츠로서의 태권도가 더 세계화 되기 위해서는 외국사람들이 더 태권도를 즐길 수 있도록 메달에 지나치게 욕심부리지 말고, 하지만, 실력으로 겨룰 것은 또 당당하게 겨뤄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야 겠습니다.
▲ 전세계 태권도인들의 모범이 되어달라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 들으면서 인터뷰 정리하겠습니다.
- 태권도에는 세가지 얼굴이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무도로서의 태권도, 올림픽 스포츠로서의 경기 태권도, 마지막으로 생활 속에 뿌리내리는 태권도입니다. 이 세가지가 잘 어울려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품새 대회, 장애인 태권도 대회를 활성화 시키려는 것도 생활 속의 태권도가 뿌리내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태권도가 세계 속에 완전히 뿌리내린다고 봅니다.
그리고, 개혁은 지속될 것입니다. 속도의 답답함은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혁명은 한꺼번에 할 수 있지만, 개혁은 단계적으로 많은 사람의 동참으로 해나가야 합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않고, 앞으로 가야 할 방향으로 꾸준하게 가겠습니다.
▲ 바쁘신데 장시간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오늘 못 다한 얘기들은 다음 기회에 또 같이하게 되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인터뷰 일시: 2006년 9월 1일
* 인터뷰 장소: WTF 총재실
* 대담자: 무토미디어 편집장 박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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