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소룡의 절권도, 그 기본은 영춘권???
이소룡의 절권도, 그 기본은 영춘권???

대만에 있는 중국영춘권학회(中國詠春拳學會)에서 이소룡(李小龍)이 배우고 절권도(截拳道)를 만들때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는 영춘권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영춘권(詠春拳)은 전문격투무술의 하나이다. 초식이나 고정된 형태가 없어서 모든 것이 변화로 시작해서 변화로 끝이 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상대, 병기를 만나는가에 따라서 그들이 취하는 형태가 수시로 변한다.
잠시도 멈추지 않고, 어떠한 구속도 받지 않는다. 그들이 사용하는 수법과 이론은 영춘권의 역대 수련자들이 실전의 경험을 통해서 끊임없이 쌓아온 노력의 정수라고 할 수가 있다.
그 안에는 물리학, 역학, 수학 등을 수련자의 신체 골격, 시간, 동력, 거리 등에 응용 발전 시킨 전문학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영춘권은 이미 2백년이 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소림사(少林寺)가 그 원류라고 전해지는 유명한 남방권법의 일종이다. 영춘권의 역사는 사부로부터 제자에게로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왔기 때문에 그 역사를 증명할 사료는 존재하고 있지 않다.
이전에 영춘권은 무술수련자들로부터 상당히 도외시되어 왔다. 그 이유는 다른 무술문파의 존재방식과 커다란 차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영춘권은 유사 이래로 장문인등의 직위가 존재하지 않았고 다른 문파들이 가지고 있는 엄격한 관리제도 역시 존재하지 않았다.
그리고 한 문파의 신분으로 어떠한 중국의 경축활동 무대에도 참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전에는 소수의 사람들이 제자가 되어서 이 무예를 연마할 수가 있었다.
엄격하게 말해서 이전의 영춘권은 한 문파라고 말할 수가 없고 오히려 민간에 전해 내려오는 일종의 격투무술이라고 하는 것이 옳을 지도 모른다.
영춘권의 근대사에 대해서 알아보자. 영춘권은 황화보(黃華寶), 량이제(梁二?) 세대에 와서야 문자기록이 시작되었다. 이들은 노년에 이르러서야 영춘권을 량찬(梁贊)에게 전수하였다.
량찬의 외호는 "불산의 찬선생(佛山之贊先生)" 이었다. 그는 당시 광동 일대에서 어린 아이들도 다 아는 유명한 한의사이며 무술가였다. 그러나 그는 그가 배운 무술을 사람들 앞에 거의 드러내지 않았고 일생에 걸쳐서 네명의 제자를 두었는데 그중에 두명은 그의 아들이었다.
그의 네 제자들 중에 진화순만이 제자를 받아서 영춘권을 전수하였다. 진화순(陳華順)을 시작으로 영춘권은 반공개적인 교습의 형태를 지니게 되었다. 이 당시 영춘권을 배우는 대가는 매우 비싸서 황금을 싸들고 사부를 찾아야만 배울 수 있다는 말이 유행했다.
그러므로 그 당시 영춘권을 배울 수 있는 사람은 상당히 제한되어 있었고 명문가의 자제들만이 영춘권을 배울 수가 있었다.
우리가 이소룡의 사부로 잘 알고 있는 엽문(葉問)은 바로 불산의 명문세가의 일원이었다. 엽문은 어려서부터 진화순을 따르면서 영춘권을 배웠다. 그리고 이후 홍콩에서 우연히 량찬의 제자 량벽을 만나서 영춘권을 전수받고 불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1940년대 전란을 피해서 홍콩으로 와서 정착하고 도장을 열어 후학을 지도하였다. 영춘권은 이때부터 광범위하게 전파되기 시작하였고, 엽문이 제 1대 제자들 중에는 많은 유명인사들이 포함되어 있다.
영화배우이자 무술가로 잘 알려진 이소룡도 그중 한명이다. 영춘권은 서양무술계의 추앙을 받는 중국무술의 하나로, 이는 이소룡이 영화배우로 이름을 떨친 후 지금까지도 변함이 없다.
영춘권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외국인이 배우는 중국무술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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