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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1의 전설이 된 사나이, 앤디 훅 7주기

2000년 서른 여섯의 나이로 요절한 앤디 훅


8월1일 도쿄 젠니쿠 호텔에서 열린 추모회(사진제공=씨네웰)


지난 1일 일본 도쿄의 젠니쿠 호텔에서는 앤디 훅의 사망 7주기를 맞아 "앤디 훅을 기리는 모임"이 열렸다.

이날 추모회에는 앤디 훅과 치열한 승부를 겨뤘던 어네스토 후스트, 피터 아츠, 레이 세포, 무사시 등 K-1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할 수 있는 선수들과 K-1의 대표심판 가쿠다 노부아키, 극진가라데의 마쓰이 쇼케이(문장규) 관장을 비롯한 일본 격투기 관계자들이 다수 참석하여 푸른 눈의 사무라이라 불렸던 격투기 천재를 추모했다.

1993년에 시작한 K-1이 배출한 격투스타는 초특급 선수로만 꼽아도 열손가락이 모자랄 정도로 많다. 피터 아츠, 어네스토 후스트, 마이크 베르나르도와 같은 초기 멤버에서부터 미르코 크로캅, 제롬 르 반나, 밥 샵을 지나 최근에는 레미 본야스키와 세미 슐트 그리고 K-1 맥스의 마사토와 프아카오 포프라묵에 이르기까지 K-1을 통해 탄생한 스타들의 이름을 꼽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이 많은 스타들 중에서 앤디 훅이라는 이름이 가지는 무게는 다르다. 그것은 앤디 훅이 다른 격투가들이 가지지 못했던 것을 가졌고, 보여주지 못했던 것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피터 아츠를 향한 앤디 훅의 액스킥



앤디 훅은 K-1에서 활약하고 있는 대부분의 격투가들과는 다르게 정통 극진가라데를 수련했고 그 정신과 기술을 K-1의 링에서 보여주었다. 앤디 훅에게서 단순한 격투기 선수가 아닌, 무도가의 이미지가 겹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앤디 훅이 무도가의 이미지를 가지는 것은 그의 품성이 남달랐다는 데에서도 찾을 수 있겠지만, 그가 동양무도가 추구하는 무술을 통한 자기완성을 실천을 통해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앤디 훅을 K-1 최강의 격투가였다고 평가하는 사람은 드물지만, 그를 K-1 최고의 격투가로 평가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그가 보여준 무도가의 모습 때문인 것이다.

최강은 아니었지만 최고로 평가되는 사나이


격투가 이전에 무도가로 평가받는 앤디 훅

앤디 훅은 피터 아츠, 어네스토 후스트, 마이크 베르나르도, 프란시스코 필리오에 이르기까지 최강의 라이벌들과 말 그대로 혈투를 벌였고, 그가 상대한 선수들이 워낙 강했기 때문에처절하게 패배하는 모습도 많이 보여주었다. 그러나 앤디 훅은 이러한 패배에 머무르지 않고, K-1 최강의 사나이들을 상대로 승리를 따냈으며 1996년 K-1월드그랑프리 우승이라는 절정에 오르기도 했다.

어떤 면에서 K-1은 앤디 훅 이전과 앤디 훅 이후로 나눌 수 있다. 그 차이는 덜 세련되었지만, 무도의 로망이 남아있던 시절과 무도로서의 로망은 줄어들었지만, 전세계적인 격투이벤트로 발전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어느 쪽을 더 좋아하느냐 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의 차이일 것이다. 다만, K-1에게 있어 앤디 훅이라는 이름은 다른 격투 대회들이 가지지 못한 전설이라는 점에서 축복이라 할 수 있다.

이 날 추모식에서 앤디 훅과 겨루기도 했던 극진가라데의 마쓰이 쇼케이 관장이 한 말은 그런 의미에서 되새겨 볼 만하다.

"오야마(최영의) 총재는 생전에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 자네들도 그렇게 해야한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앤디 훅은 분명 그것을 이룬 사람입니다. 그가 영원히 살기 위해서는 K-1의 무대도 계속 되어야 합니다. 또한 그 뜻을 헤아려 격투가들도 그것을 구현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댓글 3

미야모토무사시 2006.08.05
영원한 사무라이 앤디훅이여 편히쉬소서..
지상최강 입식타격기 태권도 2006.08.05
앤디훅을 보면은 앞으로 우리 태권도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는 것 같습니다. 앤디훅이 가라데의 우월성을 증명했듯이 이제 태권도의 우울성을 증명할 파이터가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이제 태권댄스니 태권체조니 쓸데없는 곳에 열올리지들 말고 앞으로 적어도 태권도가 종합룰은 아니더라도 입식타격에서의 적응을 위해서들 진지하게 생각했으면 합니다.
허허 2006.08.10
맛는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