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땅 방문기-2] 그윽한 향기의 기기묘묘한 산
금강산은 수려하나 장엄하지 못하고
지리산은 장엄하나 수려하지 못하고
구월산은 장엄하지도 수려하지도 않으나
묘향산은 수려하고 장엄하다.

소설가 김용환.
서산대사가 묘향산을 두고 찬탄해 마지않았다는 글이다.백두산, 금강산, 칠보산과 함께 북한의 4대 명산으로 불리는 그 묘향산을 가기 위해 우리는아침식사를 마치자마자 서둘러 버스에 올랐다.
평양에서 묘향산까지는 160km, 약 2시간 거리다. 4차선의 향산 고속도로에 올라서니 역시 길은 또다시 곧고 한적하고 뜨거운 햇빛만 넘실댄다. 포장도로가 마치 걸레로 훔친 듯이 깔끔하다. 아마 교통량도 적지만 속도를 높이거나 급정거를 하는 차량이 없으니 도로 상태가 그렇게 균일한 것 같다.
생각대로 낮은 구릉들은 나무가 적어 벌겋게 속살을 드러낸 곳이 많았다. 주변 논밭에도 아까운 농토가 황무지로 버려진 곳이 많아 안쓰럽다. 솔직히 평양 근교이고 외국인들이 자주 드나드는 통로가 그 정도면 다른 오지는 훨씬 더 심각할 것이다. 저 땅들만이라도 잘 개간해 옥토로 만들고 기계화영농을 할 수 있다면 식량난 문제는 한결 덜 수 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식량지원보다는 효율적인 영농을 위해 과학적 지원과 농민단체간의 연대가 강화되는 편이 훨씬 더 생산적이고 효과적임을 한 눈에 느낄 수 있었다.
차는 어느새 왼편에 맑은 강을 달고 달려간다.
청천강...
맑고 깨끗한 강이란 뜻이 정말 딱 들어맞는 투명하고 아름다운 강이다. 너른 모래밭을 가로질러 한가롭게 흐르는 강물이 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다. 오죽하면 강상의 모래 채취선들마저 강태공의 배인 듯 한가롭게 보일까. 다만, 수량은 썩 많은 편이 아니어서 을지문덕이 수양제의 100만 대군을 물리친 살수가 청천강이라고는 믿기 힘들어 보인다. 도로는 오래도록 청천강과 이따금씩 들락거리는 기찻길을 옆에 안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아기자기한 풍경 속으로 이어졌다.
아름답고 맑은 청청강의 매력에 깊이 빠져 있다가 보니 어느새 갈림길 저편의도로표지판엔 영변이란 팻말이 스쳐지나간다. 아, 김소월 시 <진달래>의 바로 그 영변의 약산이 향산의 지척에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산기슭을 따라 오르다가 향산갑문을 지나니 바로묘향산으로 접어든다. 이 일대의 모든 산들은 향산이라 부르는데 묘향산은 그 중의 하나로 산세가 아름답고 기묘하며 풍기는 향기가 그윽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안내원동무는 깜박 졸다말고 설명을 붙인다. 평안북도, 평안남도, 자강도의 경계점에 위치하고 있고, 주봉인 비로봉의 높이는 1,909m에 이르는 세계적인 명산이다. 단군의 유적이 있다는 단군사도 이곳에 있다고 한다. 적어도 이곳 향산 만큼은 남쪽의 지리산 못지않게 산림이 울창해 보여 좀 전의 헐벗은 구릉에서 느꼈던 황량함이 비로소 씻겨 내리는 듯하다.
국제친선전람관
우리는 묘향산을 등에 업고 선 거대한 건축물 앞에 도착했다. 화강암의 반듯한 사각형 요새에 궁궐 같은 기와집을 얹어놓은 듯한데, 북쪽을 방문하는 외국인들에게 빼놓지 않고 보여준다는 이른바 국제친선전람관이었다. 전 세계에서 김일성주석과 김정일국방위원장에게 보내온 선물을 전시한 아주 특이한 선물전람관으로써 1978년 개관했다 한다. 묘향산 탐밀봉 기슭의 바위산을 파고 깎아내 그 지하 수 만평에 북쪽의 대리석만 가지고 건설했다고 하니 그 공력이 도대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안으로 들어서자 화려한 샹델리아와 웅장한 대리석의 실내장식이 분위기를 압도한다. 신발을 감싸는 덧신을 신고 카메라를 맡겨둔 뒤에 우리는 먼저 5만 평의 면적에 전시실만 150개이고 전시물은 무려 21만 여 점에 이르러 1분씩만 보더라도 1년 반이 걸린다는 김일성주석의 전람관을 둘러보았고 나중에 다시 김주석 전람관과 쌍둥이처럼 흡사한 김정일국방위원장의 전람관도 둘러보았는데, 바위 속의 웅장함에 연신 혀를 차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된 선물들은 모두 언제 누가 선물을 했는지 코멘트가 달려 있었다. 정말 종류도 각양각색이고 화려하기 이를 데 없었다. 가령 역도산이 선물했다는 당시 세계 최고의 방탄유리승용차부터 제주도에 사는 누구누구의 선물까지 천차만별이었다. 박정희 전대통령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대중 전대통령에 이르기까지 남쪽의 통치자들의 이름은 모두 붙어 있었고 정주영, 이건희 회장을 비롯한 재벌기업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중소기업인들이나 시민사회단체들에 이르기까지 총망라돼 있다. 특히 유난히 한눈에 들어오는 것은 1998년에 선물한 것으로 적혀 있는 동아일보사의 선물이다. 1937년 있었던 김일성주석의 혁혁한 <보천보전투>를 보도한 당시 호외판을 동판으로 다시 제작하고 정성스럽고 극성스럽게 금까지 입혀서 선물한 것이 그곳에 전시돼 있었다.
나오는 길에 2층의 화려한 누각으로 올라가 전방을 바라보니 묘향의 계곡이바로 눈앞에 서 초대형 스크린처럼 펼쳐지는데 아, 과연 묘향이구나! 절경이란 표현 따위는 갖다 붙일수도 없게 황홀하다. 내향산에 속하는 두 산이 중앙에서 나비처럼 접힌 사이로 계곡이 펼쳐져 있는데, 누각의 맑은 풍경소리에 겹쳐 은은한 향기가 온 몸을 휘돌아나가는 듯하다. 아마도 그 계곡의 맑은 물과 만개의 폭포가 펼쳐진다는 만폭동의 옥수가 함께 모여 청천강에 합류해 흐를 테니 그 강물이 어찌 그리 맑지 않을 수 있을까 싶었다.
묘향산역사유적지와 보현사
우리는 거대한 선물궁전을 나와 보현사로 향했다.
보현사는 단순한 사찰이 아니다. 기존의 유물 유적만이 아니고 금강산에 있던 유점사 등 수많은 유물과 유적이 옮겨져 수장고에 불교유물 5천여 점이 보관 전시한 북한 최고의 박물관으로써 묘향산역사유적지가 그곳에 있다.
보현사는 고려 광종때 건립(968)됐고 현종 때에 탐밀. 굉학 두 승려가 수백 간 규모의 사찰을 새로 지었는데 묘향산이란 산 이름과 보현사라는 절 이름도 이때 얻었다고 하며, 김부식이 지었다는 보현사비(국보)가 입구에 서 있다.
11세기에 지어진 보현사 해탈문을 지나면 대웅전이 나오는데 서산대사가 입적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한국전쟁 때 미군 폭격으로 전체 건물 24채 중에 14채의 건물이 불타버렸고 소장했던 유물 역시 1만점을 잃었다 한다. 대웅전 앞의 보물인 13층 석탑은 매우 아름답고, 각 층의 팔각 기저마다 풍경이 달려있어 퍽이나 인상적이다.
대웅전에는 제법 많은 불자가 들어가 절을 올리고 우리 일행 중에도 몇몇이 올라가 정성스럽게 절을 올렸다. 하지만 대부분의 일행이 밖에서만 훑어보고 막상 안으로는 들어서지 않자 해설안내인은 나머지 관람객들에게도 대웅전 안으로 올라 볼 것을 정중히 권했는데, 일행 중의 한 사람이 기독교신자가 많아서 그런가보다고 하자, “기독교신자라도 많이들 들어가십니다”, 하며 못내 아쉬운 표정이다. 대웅전의 현란한 단청 채색이 풍경소리와 함께 부처가 되어 사바세계의 번민을 조용히 손짓해 날려 보내는 듯하다.
천 년의 풍상 속에 그대로 보존돼온 팔작지붕의 관음전은 해설안내인의 건축에 얽힌 전설이 아니더라도 그 미술사적 가치가 나같이 둔감한 사람 눈에도 정말 크게 느껴진다.
임진왜란 때 의병장이었던 서산대산와 사명당 및 처영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었다는 수충사로 향하다보니 아름다운 꽃밭이 눈에 띄는데 그 꽃 이름이 재미나다. 벌을 막는다는 의미의 두봉화라나. 꽃에 나비며 벌이 날아들지 않으면 그 어찌 꽃이라 할 수 있을까. 꽃밭 앞에는 조금 전에 대웅전에서 보았던 승려들보다 훨씬 더 내공이 깊어 보이는 화가들이 관광객에 아랑곳없이 한참 붓놀림에 열심이다.
우리는 수충사 앞 새로 지은 역사박물관의 팔만대장경의 목판 인쇄본과 청주 흥덕사에서 금속활자로 찍은 직지심경(1377년) 등을 살펴보며 주마간산(走馬看山) 격의 관람이나마 우리의 문화유산 보존에 남북이 따로 없음을 새삼 느끼며 그곳을 물러나왔다.
향산호텔의 산채국
우리는 다시 버스를 타고 점심 식사를 위해 바로 지척의 향산 호텔로 이동했다.
묘향산의 절경을 가리지 않기 위해 산의 형상인 삼각구도로 건설했다는 향산호텔은 미적인 감각이 아주 독특하고 뛰어나다.
향산 호텔의 전경에서 느꼈던 미적인 감각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식사 중의 미각으로까지 전이된 듯하다. 조금 시장했기에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팔색송어요리를 비롯한 음식들과 술맛이 입에 쩍쩍 달라붙는다. 특히 이곳의 산채국은 아주 일품이다. 맛도 일품이고 해장에도 그만이라고 추켜세우는 안내원의 표현이 아니더라도 혀끝이 개운하고 맛있다. 산채의 내용을 물으니 묘향산에서 채취한 곰취, 두릅, 고사리, 송이버섯, 도라지라는데 일행 중의 한 분이 도라지가 보이지 않는다며 이리저리 수색을 하다가 조리법을 묻자, 이제 제법 친숙해진 안내원이,“다음부터는 도라지를 통으로 넣어드리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조리법까지 물으면 여긴 뭐 먹고 삽네까?” 해서 한 바탕 기분 좋게 웃었다. 보통강호텔의 담백하고 시원했던 콩나물국과 향산호텔의 산채국에서 느끼는 그윽한 동감이 오랜 이질감을 그렇게 잘게 부수고 단순화시키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진심도 그윽한 동화를 만들어나가는가 보다.
돌아오는 길에 우리는 고속도로변에 차를 세우고 잠시 휴식을 취했다. 기분 좋게 몇 잔 들이킨 맥주 앞에 견딜 장사가 도대체 어디 있겠는가. 남이고 북이고 할 것 없이 앞 다퉈 주변 숲으로 달려가 실례를 하다 보니 미안함보다도 그 모처럼의 자유분방함에 시원함이 형언할 수 없이 곱절이다.
우리는 기왕에 내렸으니 담배나 한 대 피며 쉬어가자고 해서 도로변에 편하게 주저앉았다. 잠시 바람처럼 자유로워졌다. 그 참에 행정학을 가르치는 이규환교수가 운전기사에게 우리가 타고 있는 현대자동차에 대한 궁금증을 털어놓았다. 금강산사업으로 3년 전에 들어왔지만 실제 운행은 2년 됐고 이제 3만 km 밖에 뛰지 않았다고 한다. 고장이 나면 어떻게 하냐고 물으니 간단한 것 정도는 자신이 다 손을 본단다. 내친 김에 더 큰 고장이나 사고가 나면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씨익 웃으며 “금강산으로 가야디요, 뭐!”하고 대답 한다. 실제로 평양거리엔 차가 많지는 않아도 기왕에 굴러다니는 차량은 고급 승용차가 많았고 그중엔 현대 로고가 선명한 차량들도 있어 물어본 모양이지만 혹시 자존심이 상할까 조심스러웠는데 그의 사람 좋은 표정엔 허물없는 친구만 남아 있어 다행이다.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에서의 탄성과 탄식
묘향산에서 돌아오는 길에 만경대구역 광복동거리에 있는 만경대학생소년궁전엘 들렀다. 중구역에 따로 평양학생소년궁전이라고 있는 모양이었지만 이곳은 평양뿐이 아닌 북녘 땅 전역의 130만 청소년들이 이용한다는 곳이다. 1988년 제13회 세계청소년축제를 위해 광복동거리를 개발하면서 그 중의 하나로 건축한 곳인데, 일반적인 교육기관이라기보다 방과 후 특별활동과 특기 개발을 위한 일종의 무료 과외교육기관이라 했다. 두 팔을 벌려 안을 듯 형태의 외관 설계가 인상적이다. 실제로 그 건축형태의 이름을 그들은 어버이의 가슴을 뜻하는‘품’이라 불렀다.
뒤이어 도착한 이기하 수석부총재를 비롯한 해외방문단 일행과 합류해 조선태권도위원회 류성일 부위원장의 안내를 받아 우리는 그동안 남쪽의 TV를 통해 일부 본 적이 있는 소년궁전의 공원을 관람하기 위해 안으로 들어갔다. 아마 각 특기의 수십 개 소조가 있는 것 같은데 많은 연습실 중에 우린 먼저 중창단이나 가야금소조와 태권도소조의 방에 들어가 어린아이들의 놀라운 예술성을 가까이서 직접 지켜보며 박수를 쳤다. 특히 태권도소조의 경우 일곱 살 남녀 어린이들부터 청소년들까지 망라돼 있었는데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럼에도 즉석에서 이기하수석부총재가 나서 간단한 교육까지 곁들여지니 효과가 만점이다.
2천여 관람석의 주공연장으로 들어서니 수많은 보도진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태권도 해외대표단을 환영한다는 멘트에 따라 환영연주와 함께 객석을 가득 메우고 기다리던 평양시민들의 열렬한 박수가 우리를 맞아주었다.
무대 중앙은 좌우 혹은 수직 이동이 자유로워 프로그램 연결에 전혀 끊임이 없고 무대 양편의 합창단 좌석과 오른편 상단의 관현악단 연주가 조화와 웅장함을 불어넣어 주었다. 공연은 소년궁전 어린이들의 합창과 연주, 무용, 뮤지컬, 민속, 교예 등 두 시간 동안 한 순간도 눈길을 놓지 못할 만큼의 다양함과 역동성이 넘쳐났는데, 특히 특유의 일사불란함과 도저히 아이들답지 않은 녹록함에는 정말 감탄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도대체 얼마나 연습시켰으면 하나가 움직이듯 저렇게 기계적으로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인가 하는 탄식이 드는 것도 어쩔 수가 없다. 이렇게 좋은 시설에 스파르타식으로 영재교육을 시키는 곳이 아직 신기 들린 남쪽의 학부모들에게 알려지지 않아 천만 다행이다.
평양 야경
채널을 돌리다가 남쪽의 탤런트들이 나와 깜짝 놀라서 다시 돌려보았다. 서울에서 나도 가끔 시청하던 일본 채널인데 나도 제목을 알지 못하는 영화를 틀어주고 있는 모양이었다. 또다른 일본채널엔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여야 대표들이 환하게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평양채널이 세 개 있었지만 연속극인 듯 지루하다.
자정이 가까워 오는데도 평양 아파트들의 불빛은 꺼지지 않는다. 늦도록 그들은 뭘 하고 있는 것일까. 가족들끼리 오순도순 대화를 나누며 TV라도 보고 있는 것일까. 가정집들에만불빛이 남아있고 그 밖의 도로나 건물들은 먹물을 뿌려놓은 듯 깜깜하다. 칠흑 속에서 뻐꾸기 울음소리만 시계초침소리처럼 똑딱일 뿐 너무 조용하다. 나는 이곳에 오기 전에 참 궁금한 것이 하나 있었다. 서울에서 바라보는 하늘과 평양에서 바라보는 하늘이 얼마나 다를까 하는 궁금증이었다. 불과 두어 시간 거리의 평양의 하늘엔 내 어린 시절의 하늘처럼 별들이 소금을 뿌려놓은 뽀얗게 쏟아져 내릴까? 매연이 적으니 뭔가 그럴 듯도 했는데 그건 그저 잊는 편이 좋은 듯했다.
3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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