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녘땅 방문기-1] 5박 6일간의 평양가는 길
23명의 방문단은 중국 북경을 경유한 5박 6일의 <평양 가는 길>에 몸을 실었다.

북녘땅을 배경으로
2006년 1월 18일. 국제태권도연맹(총재 장웅, ITF) 대한민국협회(회장 박상규) 사무국은 조선태권도위원회의 황봉영 위원장으로부터 정중한 초청장 하나를 접수했다.국제태권도연맹 창설 40주년기념 <평양태권도페스티발>에 남측 태권도 관계자들이 참석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는 내용이었다. 참가인 자격은 국제태권도연맹(ITF)과 세계태권도연맹(WTF) 소속과 무관하다는 것. 더불어 조선태권도위원회와 국제태권도연맹 그리고 미국의 태권도타임스가 공동으로 주관하는 공식행사임이 명기돼 있었다.
단발에 그쳤던 2002년도의 양측 태권도 교환시범을 예외로 한다면, 남북태권도인의 정식초청에 의한 첫 만남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깊다. 더구나 종주국이면서도 지난해 우여곡절 끝에 새로 연맹에 가입하고 재창립 총회를 가졌던 우리 협회로서는 공식적인 남북교류협력과 확대를 위한 시금석으로도 아주 적절할 듯싶었다.
이에 국제태권도연맹 대한민국협회는 면밀한 검토 끝에 협회차원에서 공식 참가를 결정, 참가를 희망하는 태권도인들과 학술인들이 총망라된 <평양행사 방문단> 결성을 마무리 지었다. 그리고 마침내 5월 15일, 최계호 부회장이 단장을 맡고 김 훈 사무총장이 중심이 된 우리 23명의 방문단은 중국 북경을 경유한 5박 6일의 <평양 가는 길>에 몸을 실었다.
첫날(16일), 평양 가는 길
16일 오전 7시 30분. 우리 방문단 일행 23명을 태운 전세버스는 가벼운 설렘을 안고, 호텔을 빠져나와 북경공항으로 향했다. 전날의 천안문광장을 뜨겁게 달구던 뙤약볕 대신에 북경하늘은 먹장구름을 가득 베어 물고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도 않아 버스는 도로 한 복판에 딱 갇히고 말았다. 어제 북경에 도착한 직후부터 우리 안내를 위해 동분서주했던 중국태권도협회의 이관장 부부가 불안한 시선으로 창밖을 기웃거려 보지만 러시아워가 장난이 아니다.
평양 가는 길… 은, 아직도 그렇게 멀었다.
손 내밀면 닿을 듯하고 비행기는 뜨기가 무섭게 내려야 할 것만 같은 바로 저 윗동네가 심적으로는 정말 낯설고 멀었다. 1969년도에서야 나는 닐 암스트롱의 눈을 통해 달나라의 거리를 시청했다. 그리고도 한참이 지나고서야 나는 평양거리를 시청했다. 평양 가는 길은 달나라 가는 길보다 훨씬 멀었을까.
1990년대 초에 나는 북경이나 연변 등지에서 처음으로 북쪽의 우리와 똑같은 칼라의 피부를 가진 사람들을 처음으로 마주쳤고, 억지로라도 뭔가 다른 것을 찾아보려 일부러 말도 걸어보고 하던 씁쓸한 기억이 있다. 다른 것이 있다면 단지 머리와 가슴사이의 거리만큼이나 세상에서 가장 먼 길 뿐이었다.
북경 공항엔 이미 미국, 캐나다, 호주, 브라질 등에서 온 해외의 30명 남짓 흑백남녀의 방문단이 도착해 수속을 밟고 있었고, 행사기간 내내 동행 취재할 두 명의 AP통신 기자들의 카메라도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미국 태권도타임즈의 정우진 회장과 캘리포니아주 코테마데라시의 양진석 시장이 바삐 움직이며 인사를 나누고 있었고, 특히 미국 ITF협회장 Dr. 맨시야 사현(8단)도 예의 그 환한 미소와 꽁지머리를 덜렁거리며,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와 함께 연신 포옹을 해댄다. 뉴욕에서 큰 병원을 경영하는 현직 의사 신분이지만 그의 태권도에 대한 경외감과 열성은 대단하다. 그는 지난해 한국을 두 번 다녀갔다. 9월에 한양대학교에서 있었던 첫 국제세미나를 위해 일본의 국가대표감독 황수일사범과 함께 다녀갔었고, 12월의 대한민국협회 창립총회를 축하해주러 국제연맹 수석부총재 영국의 이기하 사성(9단)과 부총재인 캐나다의 박종수 사성(9단)과 함께 방문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도 종주국의 젊은 태권도 영재들이 되도록 미국에 많이 진출했으면 하는 소망을 숨기지 못했다.
탑승을 기다리는 동안 그들 해외 방문객들의 화제는 단연 평양의 변화였다. 대부분 여러 차례 방문 경험이 있는 그들에게 최근의 평양의 개방과 유연성은 체감온도처럼 빠르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초행길인 나로서야 둔감할 수밖에 없지만 평양행을 기다리던 승객들이 그렇게 많을 거라곤 생각지 못했기에 뜻밖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북녘 땅을 함께 밟은 방문단 일행들과 공항에서 기념촬영
그들 중의 대부분이 먼저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그리고 활주로에 앉아 있던 낮선 고려항공 여객기 두 대 중 조금 더 덩치가 큰 여객기 한 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경과 평양을 주 2회 운항하던 고려항공의 정기노선이 금년 3월부터 주 3회로 늘어났다는데, 그렇다면 방금 빠져나간 여객기가 정기노선일 것이고 남은 작은 녀석 하나가 바로 우리 50여 태권도방문단의 전세기일 것이다.
고려항공의 여승무원들
우리가 탄 여객기는 낡았지만 스튜어디스들의 미모와 미소만큼은 그녀들의 순백의 블라우스만큼이나 신선하고 상냥했다. 말투는 약간 아니지만 말씨는 영락없는 서울 말씨다. 기내에 흘러나오던 서정적인 선율에 대해 누군가 물었는데, 두 차례나 조종석 쪽으로 가서 그 음악이 영화주제가라는 것과 제목을 용케 알아오는 일에 그녀들 셋이 모두 합작했지만 결국 영화 제목엔 실패하고 환한 웃음으로 대신했다.
내가 그녀에게 평양 도착시간을 물었더니 답변이 아주 명쾌하다.
“비행기 날아오른 시각부터 1시간 20분 뒤입니다.”
하긴 내 질문이 웃긴다. 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고 1시면 어떻고 2시면 어떻겠니.
흥미로운 건 그녀들 중 한 명은 기내식 봉사시간을 빼고는 시종일관 손님 옆 빈자리에 함께 앉아 대화를 나누며 타고 가는 모습이었다. 그녀의 말을 빌자면 북쪽에서 스튜어디스가 되는 경쟁이 말같이 쉽지는 않은 것 같고 당연히 영어를 잘 해야 한다는 점이 요점이다.
고려항공의 기내식은 대략 빵과 닭고기, 야채, 과일, 햄, 카스테라 등이 전반전이고 쌀밥과 양념 닭찜이 꽉꽉 담겨져 나오는 은박도시락이 후반전이라고 보면 된다. 식사가 다 끝났다고 여겨질 즈음에 은박도시락이 다시 나오니까. 커피 한 잔 하고 해외태권도인들과 잠시 얘기 나누고 하는 사이에 어느새, “지금 손님들께서는 압록강을 건너 조국의 영공으로 들어가고 계시다”는 멘트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거의 정확히 비행기가 이륙한 지 1시간 20분 만인 1시 50분에 여객기는 평양 순안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환영객들과 취재경쟁
순안공항은 우리가 TV에서 보던 그대로 아담했다.
우리는 환영객들과 십여 명 보도진의 환영 플래시를 받으며 검색 대를 통과했다. 입국서류에 소지품을 하도 꼼꼼하게 묻고 있어 검색이 까다롭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태권도라면 모든 게 오케이? 입국수속은 일사천리로 끝났다.
영국에서 이틀 전에 이미 입국해 있던 국제연맹의 이기하 수석부총재를 나는 근 반년 만에 다시 만나 반갑게 인사했다. 그는 캐나다의 박종수 부총재와 함께 최홍희 창시자를 도와 태권도를 전 세계에 보급시키고 발전시킨 대표적 1세대 선각자로서 대한민국여권의 태권도 해외파견 1호 사범이기도 하다. 태권도 챔피언인 그가 무하마드 알리와 나란히 주먹자랑을 하고 있는 사진이 있는데 헤비급 권투 챔피언인 알리의 주먹이 그의 주먹 앞에서는 오히려 왜소해 보일 정도로 그의 주먹은 크고 단단하다. 하지만 그의 진면목은 주먹의 강함보다는 평생 해외에서 사선을 넘나드는 풍파를 인고하며 오늘의 태권도를 키워낸 강인한 무도정신과 담대한 배짱에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현지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보도진들이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고 있다.
공항엔 조선태권도위원회의 류성일 부위원장이 나와서 일일이 악수를 하며 환영인사를 나누었다. 북쪽에선 태권도위원회 위원장이 우리의 장관급이고 부위원장은 차관 급에 해당한다. 그는 첫눈에 보기에도 아주 부드럽고 사교적이라는 느낌이다. 우리는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보도진의 취재경쟁에 잠시 파묻혀 기념촬영을 했다. 특히 북경부터 함께 한 AP 통신의 두 기자가 그들 틈바구니에서 취재경쟁을 벌이는 것이 이채로웠다.
사람이 살고 있었네!
우리는 대기하고 있던 현대자동차 버스 두 대에 해외방문단과 남측방문단으로 나뉘어 올라타 별도로 공항을 출발했다. 우리 차에는 여섯 명의 남성 안내원들과 한 명의 젊은 여성 안내원이 동승했다. 서구적 미모의 20대 김분이 씨는 2004년부터 민화협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내가 남쪽에 온 적이 있는지 물었더니 아직 기회가 없었지만 올해 광주에서 열리는 6.15 행사에 혹시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대답해 광주지부 임원들의 환호를 받았다.
순안공항은 평양으로부터 북쪽으로 22km 떨어진 순안구역에 위치하고 있다.
미사일처럼 곧게 벋어나간 고속도로엔 다니는 차가 극히 드물고 농촌 풍경이 그렇듯이 창밖 풍경은 단조롭다. 공항 근처에선가 평화자동차의 대형 홍보판을 언뜻 본 것 같지만 그 이후론 이정표조차 흔치 않다. 뭐라고 할까, 같은 화면을 반복해서 본다고나 할까. 길가엔 수직으로 곧게 자란 미루나무들이 건강하게 늘어서 있고 이따금씩 그 사이로 우리네 깨끗한 빌라 같은 살림집(그렇게 불렀다)들이 고속도로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환호하고 서 있다. 그 사이사이로 거칠고 조금 황량해 보이는 밭에서 일하는 농부들의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는데 벌겋게 방치된 황무지들이 툭툭 튀어나와 못 볼 것을 본 것처럼 쓰리고 민망하다.
갑자기 어디선가 환청처럼, “사람이 살고 있었네~” 하는 탄성이 들려온다. 분명 벌써 10여 년 전에 작가 황석영이 북쪽을 방문하고 돌아와 쓴 책 제목이 맞겠지만, 그렇다면 네 살 때 떠난 고향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와 표현한 그의 영탄조가 왜 그렇게 나의 뇌리에 강하게 복사됐는지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한남동 협회 중앙도장에 걸려 있는 <최홍희씨와 임수경씨, 황석영씨의 기념사진>을 바라보다가도 나는 가끔,“어이! 사람이 살고 있었어!” 하는 탄성 같기도 하고 탄식 같기도 한 그의 오리무중의 영탄이 욕지기처럼 치밀어 오르곤 했었다.
공원속의 도시 평양
한적했던 길은 평양시내로 들어서며 차량도, 행인들도 약간은 빈번해지면서 활기를 띤다.
우리 안내원동무들도 힘이 솟고 바빠진다. 흔히들 ‘공원속의 도시’라 표현하듯이 평양은 초대형 건축물들과 고층 아파트들과 광장이며 동상들과 숲이 어우러진 계획도시다. 그런데 그만 유경호텔이 바로 그런 안내원동무들의 어깨를 늘어뜨리게 함은 정말 아이러니다. 거대한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아 멀리서도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유경호텔을 실물로 보는 것은 처음이지만 설명이 별로 필요 없다. 105층 300m 높이의 초대형호텔인 유경은 한때 분명히 평양의 프라이드였겠지만 지금은 십여 년 전에 공사가 중단된 또 다른 의미의 상징으로 고개 숙인 유물이 되었으니 아마 안내원들도 유구무언일 것이다. 저게 유경호텔이구나……. 하고 내가 아는 척을 했는데도 마지못해, 예…….유경호텔……. 하고는 어색한 침묵만 흐른다. 하지만 기왕지사 그럴 것이 무언가. 아무렴 300m의 90%를 채울 여행객들만 차곡차곡 쌓인다는 보장만 있다면 그까짓 10%의 미완을 채우는 일은 대수도 아닐 것이다. 문제는 10%의 미완을 채워서 자칫하면 피라미드가 발딱 물구나무를 서는 현실이야말로 정말 난감할 수 있으니 내 생각엔 그대로 방치시켜 놓는 것이야말로 현재로서는 최선의 실사구시가 될 것 같다.
만수대동상
우리가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은 만수대동상이었다.
만수대동상은 평양시내가 잘 내려다보이는 언덕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1972년 북한 정부가 김일성주석의 60회 생일을 맞아 건축했다는 높이 20m의 황금색 동상을 말하는데 그간 언론을 통해 종종 본 지라 새삼스러울 것은 없었다. 대표자의 꽃다발이 관례라고는 하지만비교적 자유로운 짧은 관람 정도의 분위기다. 분이동무하고의 커플사진들을 찍느라 한바탕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내려오다 보니 신랑 신부가 기념사진을 찍으러 온 모양이라 우리 일행은 모두 열렬한 박수와 환호로 축하를 해 주었다. 쑥스러워하면서도 그들의 얼굴에도 밝은 웃음이 피어났다. 언제 어디서든 사랑은 아름다워라, 청춘은 사랑스러워라…….
보통강호텔
만수대동상에서 우리는 곧장 숙소인 보통강호텔로 직행했다.
평양에서 특급호텔로는 의당 고려호텔과 양각도국제호텔이 있고 주로 외국인전용으로 쓰이는 보통강호텔은 세 번째쯤 해당하는 10층의 1급 호텔로서 평화자동차회사가 운영한다. 그래서 그런지 호텔앞 주차장엔 외제 승용차들 사이에 뻐꾸기와 휘파람이 주차해 있는 것이 유달리 눈에 띈다. 1층엔 식당과 커피숍, 의상실, 선물코너, 도자기, 그림판매점, 노래방 등이 있는데 각 층의 복도가 트럭이 다녀도 양쪽에 인도를 만들 만큼 넓고, 각 층마다 1층 로비와 같은 넓은 휴게 공간이 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호텔에 도착해서야 들은 얘기지만 지금 평양은 남쪽사람들과 외국인들로 고급호텔은 객실이 바닥나고 없을 정도란다. 평양 봄철 국제상품 전람회를 위해 각국의 경제인들이 대거 입국해 있고, 남쪽에서도 적십자사 방문단 일행과, 개성참관단경제인일행 등 수많은 사람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우리는 각각 2인 1실로 방을 배정하고 저녁식사 후에 휴식을 취하기로 했으며, 그 사이에 앞으로의 일정을 북측과 논의하는 것으로 계획을 발표하고 해산했다. 나는 광주지부협회장이신 임명섭 교수님과 8층의 한 방을 사용하게 됐는데 객실은 그만하면 깔끔하고 부족함은 없어 보였다. 8층 로비 앞에 남녀의 큰 웃음소리가 나는 사무실이 있어 가까이에 가서 간판을 보니 인터넷 관련 일본 현지 투자회사인 모양이다. 아주 호텔에다 사무실을 차린 모양이다.
먼저 샤워부터 하고 테라스에 나가 앉아 맥주 한 잔을 들이키며 바라보니 평양시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비로소 먼 길을 돌아 평양에 입성했음이 절절하게 실감이 났다. 평양은 내가 생각하던 곳보다 훨씬 더 큰 도시였다. 멀리 시선이 닿는 끝까지 아파트들이 밀집해 물결치고 있었는데, 오늘 중심가를 지나쳐오면서 느낀 소감으로는 평양시가에서 고조선의 수도이고 고구려의 수도이기도 했던 역사의 흔적을 찾기란 그리 쉬워 보이지는 않는다.
공항에 나오지 못해 죄송했다며 황영봉 조선태권도위원장이 직접 찾아와 함께 인사를 나눈 뒤 유난히 콩나물국이 맛있다 해서 칭찬이 자자했던 저녁식사를 마치고 나는 몇몇 일행들과 황혼의 보통강변을 산책하러 나섰다. 그러자 호텔 밖의 처음 보는 젊은 안내원 둘이 다가와 어디를 가는가 물어 온다. 보통강변에 산책을 간다 하자 그냥 오늘은 피곤하신데 쉬시지요, 한다. 줄곧 앉아만 있어 좀 걸어야겠다고 하자 그들은 더 이상은 군말 없이 웃으며 동행을 한다.
보통강은 해방 이전에는 대동강의 샛강이었다고 한다. 그 샛강은 물이 썩어 지저분하고 악취가 진동했는데 해방 이후 항상 물높이가 일정할 수 있도록 수로로 만들고 주변을 모두 숲과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처가 되도록 했다고 한다. 평일에는 시민들 발걸음이 뜸하지만 휴일만 되면 시민들은 가족들과 함께 새 옷으로 갈아입고 모란봉이나 대동강변 등의 공원으로 나들이를 나오기 때문에 이들 공원들은 발 디딜 틈조차 없다고 한다. 그래서 흔히들 평양을 ‘공원속의 도시’라고도 하고, 능수버들이 많다 하여 유경(柳京)이라고도 부른단다. 유경호텔이나 유경정주영체육관의 이름도 그런 연유인데, 평양엔 유경이 따라 붙은 이름이 많다고 했다. 유경 보통강변의 정취어린 풍경위로 땅거미가 짙게 내리고 있었다.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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