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태권도 시범단과의 3일 ⑤
북한 태권도 시범단과의 3일⑤
평소엔 여성답습니다
"평소엔 여성답습니다."
남자들을 간단하게 제압해버리는 호신술 실력을 보고 기자가 평소 모습은 어떠냐?고 물은 것에 대한 한순영 북한 태권도 시범단원의 답이었다. 얼굴은 한껏 붉힌 채 한 말이었다.
이번 북한 태권도 시범단과의 3일 동안 가장 잊을 수 없는 얼굴들은 아무래도 여성단원들이다. 조선의 여인상이라고나 할까? 우리나라 여성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아름다움을 고루 갖춘 그들을 보고 기자는 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시범을 펼칠 때 그들의 모습은 굉장히 용맹하고 여자라고 느낄 수 없는 대단히 힘이 있었다. 그러나 시범을 마치고 나서 시범장 밖에서의 그들의 모습은 북한 사람들의 말대로 꽃 그 자체였다.
때를 하나도 타지 않은 순수한 인간성이 엿보이는 그들과의 대화는 너무도 즐거웠다. 한국에 대해 먼저 물어오지는 않았지만 기자가 먼저 얘기를 꺼내면 조심스럽게 관심을 보였고 태권도나 그들 나라, 평양에 대해서 기자가 물으면 굉장히 자랑스럽게 이 얘기 저 얘기를 하곤 했다.
한순영

한순영 단원은 시범을 보이던 날 우연히 기자 근처에 앉아 있다가 기자가 처음으로 말을 건넨 북한 시범단원이다. 태권도를 시작한지는 3년이 됐고 태권도 틀(품새) 중 가장 잘 하는 틀은 계백 틀이다. 조선체육대학교 재학중이다.
첫날 알게 돼 조금이라도 더 편하다는 이유로 한순영 단원은 3일 동안 기자가 줄곧 질문을던진 단원이다. 둘째날 만찬 때도 옆자리에 앉아서 같이 식사하며 대화를 나눴다. 임수경 언니는 어떻게 지내느냐는 질문도 했고 기자의 나이를 묻기도 했다. 결혼은 했느냐는 질문도 던졌다.
네명의 여성단원 중 가장 수줍음을 잘 타는 사람이었는데 시범을 보일 때를 비롯해 항상 머리를 묶고 있던 붉은 머리끈은 많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김춘경

얼핏 보면 미소년 같아 보이지만 가만히 보면 꽤 이쁜 여성단원이다. 네명의 여성단원 중 제일 활달한 성격이었다. 둘째날 만찬 때는 내 사는 내 나라 제일로 좋아라는 노래가 흘러나오자 기자에게 먼저 춤을 청해오기도 했다.
만찬 때 먼 자리에 앉아 있어 대화를 나누지 못하고 있었는데 술병을 들고 와 잔을 채워주면서 원 샷을 하라고 해서 기자를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날 기자는 이런 식으로 자그마치 39도나 되는 중국 술을 15잔이나 마셔야 했다.
김춘경 단원은 남남북녀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우리 북조선 여성들을 보니 어떻습네까?"라는 재미있는 질문도 던질 줄 아는 여성이었다. 통일이 되면 한국에 와 충청대학 교수를 해보겠노라고 말하며 활짝 웃던 그 모습이 잊히질 않는다.
"기자선생님 제 이름 기억하십니까?"
리경희

첫날 시범에서 발을 다쳐 같이 백두산도 못 가고 만찬 때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나눈 것이 전부였지만 꽤 인상적인 여성단원이다.
태권도에 대한 얘기도 가장 많이 나눴고 통일에 대한 얘기도 많이 나눴다. 둘이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결론이 통일이 빨리 되야 한다는 것이었다. 무슨 얘기를 하다가도 꼭 결론은 빨리 통일이 돼 다시 만나자는 것으로 났다.
기자가 본 북한 영화나 재미있게 읽었던 소설 얘기를 하면서 빨리 친해질 수 있었는데 휘파람이라는 노래의 화자가 여자냐 남자냐는 질문을 받고는 꽤 재미있어 하며 "물론 남자지요"라고 대답하던 모습이 뚜렷이 기억에 남는다. 세계의 모든 청춘이 남녀문제에 대한 이야기를 다 좋아하는데 그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리순금

네명의 여성단원 중 제일 어린 단원이었다. 나이는 18세. 현재 중학교 6학년이다. 처음에 이름을 물었을 때 리순금이라고 하길래 순수한 금이네요라고 했더니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수줍게 웃던 모습이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였다.
시범때 두 번의 덤블링 끝에 송판을 격파하는 시범을 보여 많은 관객들의 탄성을 자아냈는데 어렸을 때 잠시 체조를 한 적이 있었다.
리순금 단원은 제일 어려서도 그랬겠지만 유난히 소녀같은 감수성을 엿보게 했다. 헤어질 때 기자에게 "기자선생님 제 이름 기억하십니까?"라고 물어서 "물론 기억합니다"라고 대답했더니 "그럼 어디 한번 외워보시라요"라고 말해 기자를 감동시키기도 했다. 헤어질 때 잡았던 손을 정말 놓고 싶지 않았다.
전광천

24세의 4단 사범이다. 키는 조금 작지만 딱 벌어진 어깨가 다부져 보인다. 남성단원들 중에유일하게 기자와 많은 대화를 나눈 사람이다. 시범을 보인 첫날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인터뷰를 했었고 백두산을 갔다오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눴다.
그는 어렸을 때 축구와 레슬링을 했었다고 말했다. 그레코로망 스타일 레슬링을 하다가 태권도를 하게 됐는데 실력이 뛰어나 고향 원산을 떠나 현재는 평양에서 조선태권도위원회 시범단 소속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자가 북한에서는 결혼은 어떻게 하냐고 물었더니 일터에서 만나기도 하고 부모님이 소개를 시켜줘 만나기도 한다고 대답한 그는 한국에서는 남녀가 사귀다가 한쪽이 마음이 변하면 실연을 당하는 경우도 있다는 말에 굉장히 걱정스런 표정으로 "그러면 버림을 당한 사람이 너무 고통스럽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매우 순수한 사람이었다.
위의 다섯 사람 외에도 기자는 김삼덕 단장, 김형락 부단장, 리철준 단원, 리옥순 의사선생님과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이름을 알 수 없는 몇몇 단원들과도 대화를 나눴다. 리옥순 의사선생님은 50대나 60대로 보이는 여성으로서 어머니같은 분이었다. 마치 어머니처럼 자상하게 기자를 대해주었다. 몇마디 나누지도 않았지만 정이 들게 만들었다.
모두들 정이 많은 사람들이었다. 남과 북에서 태권도를 하는 사람들로서 함께 나눌 대화의 소재가 많았지만 그렇지 않았더라도 헤어져 살아온 한 민족으로서 나눌 대화가 너무 많았다.
리경희 단원의 "어서 빨리 통일이 이루어져 남과 북의 선수들이 함께 태권도를 했으면 좋겠다"는 말처럼 기자도 깊은 정을 느끼게 했던 그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라도 빨리 통일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해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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