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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사랑한 태권도인, 정우진 - 5. 정의의 칼을 갈다

조국을 사랑한 태권도인, 정우진 - 5. 정의의 칼을 갈다

정우진은 빨갱이

정우진 관장은 현재 세계에서 유일한 태권도 전문잡지 태권도타임즈의 회장으로 있다. 그는 현재 이 잡지의 발행을 책임지고 있는 김정은 관장과 함께 20여년간 태권도 언론인으로서 활동해 왔다.

태권도타임즈는 1980년에 김정은 관장이 시작했는데 1981년부터 정우진 관장은 함께 했다. 지금은 고인이 된 심상규 관장도 함께 했었다. 처음 한 5년 동안은 굉장히 힘들었다. 정우진은 관장은 후에 태권도에 대한 애착이 없으면 못했을 일이라고 회상한 적이 있다. 현재 태권도타임즈는 전세계 120여개국에 12만부 정도 발행되고 있다.

그는 태권도타임즈 활동을 통해 활동의 폭을 넓혀 간다. 그중 특이할 만한 것은 바로 그의 남북한 태권도 교류와 통합 활동이다. 남북한 태권도의 교류와 통합은 바로 세계태권도연맹(WTF)과 국제태권도연맹(ITF)의 통합 작업이기도 하다.

그가 벌인 태권도조직의 통합을 위한 일련의 활동은 일부 태권도인들의 오해를 사기도 했고 한국 정부에서 곱지 않은 시선으로 그를 보게 만들기도 했다. 그가 한국에 갔을 때 한국정보기관에서 모셔간 적도 있으니 그의 활동을 한국 측에서 어떻게 봤는지 알만하다.

정우진 관장이 처음으로 남북한 태권도의 교류를 본격적으로 추진했던 사업은 1991년에 추진했던 남북한 시범단 교류 사업이었다. 그 당시는 한국의 노태우 정부가 강력하게 북방정책을 구사하던 시기라 시기는 매우 적절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뜻하지 않은 벽에 부딪혀야 했다. 당시 한국 정부에서 실세중의 실세였던 박철언 장관까지 좋다고 했던 사업이 한국 태권도인들의 반대라는 뜻하지 않은 장애물을 만났던 것이다. 정우진 관장은 그때 김운용 세계태권도연맹 총재가 훼방을 놓았다고 후에 증언했다.

그때 일로 그는 빨갱이라는 모함을 받아야 했다.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상황은 그렇게 돌아갔다.

그는 당시 미국태권도의 아버지 이준구 사범과 액션배우로 널리 알려진 척 노리스, 여자 사범으로서 사업가로 성공한 김태연 사범과 함께 조직을 만들어 사재를 털어서 일을 추진했지만 결국은 실패의 쓴잔을 마셨다.

그는 당시의 실패에서 느꼈던 쓰라림을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다. 여기서 정우진 관장의 말을 직접 들어본다.

"1991년에 남북한 시범단 사업을 추진하다가 손해도 많이 보고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마지막에 한없이 눈물도 흘렸습니다. 그때 내가 칼을 갈았습니다. 정의는 언젠가는 살아날 것입니다. 어떻게 태권도가 정치적으로 이용될 수 있습니까?"

그는 젊은 시절 자유를 누릴 수 없었던 조국의 현실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는 한시도 조국을 잊지 않고 조국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조국은 그의 성의를 마다했다. 따라서 그로서는 너무도 원통한 일이었다. 그 훌륭한 사업을 적극 돕지는 못할 망정 빨갱이라고 모함을 하고 다니니 복장 터질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가 처음 내디뎠던 남과 북의 태권도를 하나로 만드는 길은 아직도 멀기만 한 형편이다.

1992년에 처음으로 북한 방문



그는 1992년에 북한을 처음 방문한 이후로 꾸준히 남과 북을 잇는 활동을 전개해오고 있다. 그는 지금 북한의 나진선봉 자유무역지대에 조성되고 있는 태권도성전 건립추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일하고 있기도 하다.

북한에는 이미 한국의 국기원보다 9배나 큰 태권도전당이 있지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별한 관심 아래 그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태권도성전 건립 프로젝트를 진행중이다. 그는 직접 헬리콥터를 타고 다니며 부지도 선정하는 등 열정을 쏟고 있다.

정우진 관장은 태권도성전 건립 문제에 대해 한국 측 인사들과는 좀 다른 견해를 갖고 있다. 그의 생각을 요약하면 남과 북은 언제가 됐든 통일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쪽은 주로 관광지대가 되고 남쪽은 산업지대가 되니 태권도성전은 관광지대인 북쪽에 있는 것이 좋다는 것이다.

그리고 남과 북이 다 태권도의 종주국이라고 태권도성전을 각기 짓는 것보다는 하나의 성전을 지어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있다.

북한에 태권도성전을 짓는 문제를 그는 전세계 태권도인들의 십시일반으로 해결하고 하고 있다. 태권도타임즈에 광고도 내고 해서 한푼 두푼 모아서 태권도성전을 짓겠다는 것이다. 부족한 자금 문제도 해결하고 기부금을 내는 사람들은 사람들대로 성전 건립에 참여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어 좋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우진 관장은 해마다 한번씩 한국도 방문하고 있다. 고향인 울산에 가서 어머님을 찾아 뵙기도 하고 최근에는 한국의 대구 계명대학교에서 특강도 했다. 울산지역에서 선발된 장학생들이 미국 아이오와에 가면 그가 편의를 다 봐주고 있다.

그가 사랑하는 조국은 하나다. 북한도 아니요 남한도 아닌 하나의 조국 코리아 일뿐이다.

<다음에 계속>


댓글 5

Lee, Ki Ho 2000.09.08
I would like to express my sincere thanks to taekwon.net and to GM Woo Jin Jung. This is a impressive article that many martial artists can get motivated. As a Korean born Taekwondoist, I admire GM Woo Jin Jungs unselfish contribution to the two Koreas reconciliation. Keep up the good work! Ki Ho Lee
익명 2000.09.08
이외출 2000.09.12
안녕하십니까? 둘째 질부,준이 댁 입니다....이곳에서 삼촌의 글을 읽게 되어서 무척 반갑습니다...서투른 솜씨로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삼촌의 기사를 읽고 많이 감동적이었습니다. 앞으로도 태권도의 발전을 위해 많이 노력하시고 한국인의 위상을 높여주십시요...나중에 한국에서 뵙겠습니다....
림원섭 2000.11.02
정우진 회장님께! 큰 안부드리며 , 아래 첨부하는 글을 보내드립니다. 만약 가치가 있다면 태권도 검정띄 신문에 실어주시고 만약 가치가 없다면 참고로만 해 주십시요. 그러나 만약 신문에 내시게 되면 글자와 문장을 고치지 않는 다는 조건입니다. 스웨덴, 림 원섭. (태권 넷에 쓴 글). 난 참 바보였기 때문에 나는 그 동안 참 많이 눈물을 흘였다. 일본의 무술 당수도(공수도) 운동한 세월까지 합하여 43년이 넘도록 난 사실 그 동안 태권도에 대해서 완전히, 완벽히 미친자였다. 그 이유는 여러 이유 중 하나는 몽고에, 중국에, 일본에, 지금은 미국에 신민지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좀 벗어나려고 즉 우리 코리아 민족이 얼마나 우수한데 정치적인 사대로 인한 예속에서 벗어나 해외에 우리의 우수함을 알리고져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억눌려 살았던 우리가 좀 자유인이 되고 싶었다고나 할까! 다시 말하여 우린 우리의 문화를 널리 알리고 싶었다. 이 좁은 지구 덩어리에 -- 세상은 넓더라, 그 문화가 매우 못난 이조 5백년 문화냐 아니냐? 연구의 대상이고 --- 하여지간에 - 내가 1966년에 베트남에 가서 줄곤 그곳에서 태권도 사범과 우리 대사관 경비 반장을 하며 살다가 망하는 바람에 여기 북구에 태권도가 없다고 해서 이 스웨덴에 처음 1975년5월에 와서 그해 일본 가라데 국가 대표 선수권 대회 9월1일 날에 할 때다. 시범 초청 받아서 잡아 주는 사람 몇 명과 같이 혼자 시범을 20분 약속을 어기고 붕붕 뜬 기술로 40분을 할 때, 큰 박수를 받았지만 그 천 여명 관중들은 99.99%가 공수도(가라데) 배우는 학생들 이였거나 그 들의 가족들 이였다. 그후 여기 가라데 협회로부터 많은 공격은, 태권도는 karate 다 였다. 난 단호히 아니다, 절대 아니다. 그런데 그것이 소용이 없었다는 것이다. 동작들의 근거가, 증거가 되였었다. 언젠가 여기 북구 어떤 사범이 품새 시범을 하고 나오니 일본 사범이 와서 물어보는 질문은 어데서 가라데를 배웠냐고 하면서 어디에서 쏘도관을 했냐는 질문을 받아서 대답도 못하고 매우 창피에서 죽을뻔 했다고 얼굴이 빨강해져가지고 말하는 것을 난 기억을 하고 있다. -하여지간에 - ITF, WTF 시범 선수들이 서로 모여서 친교를 맺고 있다니, 그 동안 난 벼라 벌 구설수를 다 들어가며 심지여는 빨갱이 소리를 들어가며, 또 나에게 빨갱 이라고 매도한 자들의 무릎 팍과 엉덩이가 서서히 움직이고 있는 모양이다. 그 동안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기회만 보고 있던 자들을 말한다. 하여지간에 좋은 형상이다. 늦게라도 깨여지고 있다니 다행이다. 본인이 원했던 것이 이제 서서히 이뤄지고 있으니 세월은 바꿔져가고 있다는 증거고, 자식 이름도 통일이라고 진 내가 지금 멀리에서라도 참으로 기쁘지 아니할 수 없다. 그것이 지금 시작한 것이 아니한 것보다 훨씬 좋지. 쉬지 말고 거듭 발전하길 빌다. 무도인 답게 솔직 담백(박) 하길 빈다. 즉 깨끗하라. 청결하라. 잘못이 있으면 잘못 되였다 고 당당하라. 그랬으면 창조하라. 그래서 이 새대에 사는 우리는 이 태권도가 창시냐? 준 창시냐? 표절이냐? 등등을 확실히 분별하여 사대와 예속과 자주와 자기 주체와 국가의 자주를 분명히 가려야 할 것이다. 난 그것을 도라고 배웠고 혼자 참 많이도 연구하고 사색했다. 울기도 퍽 울었다. 왜? 분노한 나머지 - 너무도 억울해서 - 너무도 못나서 - 였다. 난 이북 태권도를 1982년1월부터 6월초까지 제2기생(일부 1기생들도 재교육을 했음)를 하루에 8시간씩 가르켰고 즈그들이 또 2-4시간을 스스로 운동하며 태권도 기계들을 배출한 사범이다. 벌써 18년이 갔나 보다. 오늘도 낙엽은 떠러저 흙으로 가는 세월 그 누가 잡을 영웅이 감히 있으랴, 내 년 봄이면 또 새싹이 나오는 것을 -. 내가 못나서, 아니 너무 몰아서, 너무도 무식해서 역사의식과 정치의식이 너무도 그 동안 무식해서 이북 태권도를 잘 못가르킨 책임의식도 있으나 ITF의 책대로 하다 보니 내 인생에 큰 실수를 한 것이 되였다. 내 인생에 큰 추억의 경험도 하게 되였다. 그러나 죄를 진 것은 아니다. 그래서 그 실수란? 지금이라도 이북 태권도인들이 꼭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늦게라도 알려 주고 싶어서 없는 시간을 냈다. 꼼꼼히 읽어 보거라, ITF틀을 사랑하는 자들이여 - ITF 24틀의 이름 등등을 잘보거라 그 중에는 단군틀이 있고 도산(안창호)틀, 중근(안중근)틀, 화랑(화란도)틀도 있고 유신(김유신)틀도 있고 주체(김일성)-(전에는 고당틀(조만식))틀도, 삼일(3.1)틀도, 통일틀 등등이 있다. 이것들의 역사를 제대로 볼때, 너는 너를 거울이 없이도 보게 할 것이다. 거울에 먼지가 낀 것을 보거라. 머리를 까앗다고 언제나 말쑥한 것은 아니다. 말하자면 WTF 품새나, ITF 틀이나 이름만 다른 일본 가라데 동작인가 아닌 가? 모두 막지 아니한 찌르지 않은 손은 허리에 있다. 그 뜻은 일본 카라데와 똑 같다는 뜻인가? 난 지금 차렸 서기와 준비서기도, 끝 동작 고만이라는 것도 보고, 듣고, 읽고 있는 것이다. 품새나 틀이나 일본 공수도 동작에서 조금 발전한 것뿐인가? 제국주의 문화인가? 군사문화인가? WTF 태권도 철학은 팔쾌, 태극은 송나라의 음양의 철학인가? 이것은 지방장 관을 한 주돈이(1017-1073)라는 사람이 만든 것인가? 동작은 왜놈들의 karate 와 매우 비슷하고 흡사한가? 아니 참 많이 닮았는가? 쌍둥이의 모습도 다를 수도 있는가? ITF 태권도 철학은 참 재미있다. ITF 책을 보면 근 세대에 우리 나라의 그래도 맥을 살였다고 할 수 있는 권 력을 가진 자들도 있다. 이름 없는 영웅들은 없다. 이들의 성함 및 호를 따서 틀을 만들었다. 율곡틀(이이 1536-1584)과 퇴계틀 (이황1501-1570)은 어떤 한문(주자학=유학)을 한자들인가? 아니면 지배층 학문인가? 어용 학문인가? 그러니까 철학들은 그 분들의 주자학=공자 역사였지만 틀의 동작은 karate 동작인가? 특히 한문(중국글자)으로 ITF 책 안에 잘 쓴 붓글씨가 더러 있다. 그 뜻들은 모두 공자, 맹자, 노자, 순자, 한비자들이 말한 것인가? 그러니까 틀을 만든 최홍희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공자, 맹자, 순자, 한비자, 노자 철학들을 우리 선조들의 숭고한 주체, 자주 의식을 중국의 철학들에, 동작은 일본 무술에 예속을 시켜 버렸는가? 말하자면 푹 수령에 빠저서 나오지 못하게 교묘히 엉키게 했는가? 이(그) 것이 중화 사대사상인가? 모화 사대사상이라고 하는가? 오늘은 4333년대다. 서기로는 새 천년 대다. 새로운 우리 것이 절대 필요로 한다. 남의 학문이나 종교를 확실히 떠난 완전한 코리아 것을 원한다. 즉 다 문화를 의식한 참 의식을 말한다. 표절은 싫다. 절대 안 된다. 표절은 정말 창피하고 부끄러운 일이다. 아 - 내 얼굴 모습이 어쩜 고추장 색이 되였을까? 이북 태권도인들 중 몇 명이나 이글을 읽을지 모르겠다. 많이 읽길 바라고 혹시 이글을 읽는 기자님들이여 - 복사하여 이북 태권도 인들을 만나시거들랑, 이글을 주셨으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그래도 품새는 확 닮아서 잔머리는 아니썼다. 몰라서 그랬을까? 아니면 ? 태권도의 주체는 ITF를 발전시킨자의 정치, 역사의식이고, WTF는 WTF를 발전시킨 자들의 정치, 역사 의식이다. 그럼 이분들이 어떤 시절에 교육을 받었고 살았냐, 독서 량이 얼마냐, 하는 것도 깊이 분석 검토해야 할 것인가? 정말 이젠 우리들의 모습을 제대로 볼 때다. 더러운 사대의 시조 화랑도 김유신을 구체적으로 보고, 인도의 불교 문화였던 고려 시절을 좀 뒤졌거려 보고, 중국의 유교시절이였던 못난 이조 5백년을 더 자세히 보고, 35년 왜놈 식민지를 꼼꼼히 보고, 지금은 지중해 문화로 사는 가? 오늘은 1945년 이후 55년을 철저히 구체적으로 살펴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은 과연 누구인가를 - 자기 방어 운동 국기 태권도가 즉 자기 국가 방어도 된다는 것이여라. 그래야. 오늘 보이지 않는 후손들에게 떳떳해질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태권도는 과연 배달 겨레의 국기가 될 자격이 있는가? 그래서 난 주야로 고심하고 있다. 분석하라 이 글을 읽는 자들이여 --. 끝까지 읽어주셔 참 고맙습니다. 00.11.02일. 월남 다낭지역, 스웨덴, 노르웨이, 이북 제2기생, 사범, 시인 림 원 섭 씀. wonsup@chello.se
김인현 2002.01.18
정우진회장님 안녕하십니까.보잘것 없는제가 답답해서 이렇게 맬로 회장님께 여쭤보고싶어서 의견서에다 글을올립니다!! 다름이아니오라 제소원이 태권도에 꿈을 외국에서 펼치고싶은데 여건이안돼서 이렇게 꿈만가지고 있습니다. 몇번이고 태권도 싸이트에 들어가봤지만 제가할수있는거라곤 고작 싸이트로만 보는게다라서 어떻게 해야될지 잘모르겠습니다. 저는현제 돈도없는상태라 외국생활이라곤 꿈도못꾸는 신세입니다 태권도를 하며 외국생활에서 좀더 많은것을 보고느꼈으면하는 생각을 가지고 잇습니다 회장님을이렇게 뵌지는 첨이지만 존경스럽습니다.저도 희망과 꿈을 키우고싶습니다.도와주싶시오... 회장님께서는 태권도의강인함과동시에 한국을대표하시는 정말높으신 분인것 같습니다.진심으로 존경합니다. 건강하세요 회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