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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 =#3356ef><b></b></font> 북한 태권도 시범단과의 3일 ④



"당신 조선 사람이오?"
김형락 부단장은 백두산 장백폭포 입구에서 기념품으로 북한 돈을 팔고 있는 상인과 맞닥뜨리자 따지듯이 물었다. 그 상인은 한족이라고 말했다. 김 부단장은 어디 팔 게 없어서 제 나라의 돈을 파냐 면서 그 상인 앞을 지나쳤다.

충실한 당일꾼 김형락

3일 동안 옆에서 지켜본 그는 그런 사람이었다. 북한 사람들 말로 당성이 충실한 사람이랄까.

김형락 부단장과는 3일간 비교적 많은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김삼덕 단장은 기자와의 대화를 피하는 편이었고 단장 역할을 하고 있어 잘 기회가 나질 않았다. 반면에 김 부단장과는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김 부단장과는 8월 25일 북한 시범단의 시범이 있기 전, 다음날인 26일 연길시 해당화식당에서의 만찬석상에서 그리고 마지막 날인 27일 연길에서 백두산을 오간 버스 안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공식적인 인터뷰는 피했기 때문에 녹음을 한다든지 수첩에 대화내용을 받아 적는다든지 할 수 없었다. 이 기사는 후에 기억을 되살려 정리한 내용을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

-북조선에서는 태권도를 많이 합니까
"예 많이 합니다. 전 인민이 모두 합니다. 우리나라가 태권도의 모국 아닙니까? 그래서 수령님과 장군님이 모든 인민에게 태권도를 배우게 조치해주셨습니다."

-북조선에서는 태권도를 언제부터 했습니까
"1980년부터 태권도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행사(제1회 연변 태권도문화축제)에 온 시범단은 국가대표 시범단입니까
"이번에 여기에 온 시범단은 조선태권도위원회 시범단입니다. 우리 시범단은 전국에서 실력을 겨뤄 지역별로 선발되어 올라온 단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일 잘하는 시범단입니다."

-외국에도 많이 다니녔습니까
"외국에서 요청이 많이 옵니다. 조선 태권도 시범을 보고 싶다고 말입니다. 작년엔 우리 선수단이 아르헨티나에 가서 우승을 했는데 그때 관계자들이 앞으로 조선 선수단은 세계대회에 참가하지 말라고 합디다. 너무 잘한다고. 물론 농담이지만 그 정도로 우리 조선 태권도를 알아주고 있습니다."

-외국에 사범들도 파견합니까
"예, 외국에서 조선 사범들을 많이 원합니다. 현재 약 30여개국에 나가서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습니다. 미주지역과 구라파, 아프리카 등 안 나가 있는 곳이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시범을 자주 합니까
"자주 합니다. 거의 일년 내내 합니다. 4월 15일 같은 국경일에도 하고 태권도전당을 방문하는 손님들 앞에서도 합니다."

-태권도전당에 외국 손님이 많이 찾아옵니까
"일년 내내 손님이 끊이지 않습니다. 전세계에서 찾아옵니다. 외국 태권도 수련생들은 평생에 한번 태권도의 모국인 조선을 방문하는 것을 소원으로 삼고 있습니다."

-태권도전당을 세계에 널리 알리고 싶은데 평양으로 초청해주시겠습니까
"아니 이미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전세계에서 다 압니다."

-한국 사람들은 태권도전당의 존재를 잘 모릅니다.
(손을 내저으며) "그게 문제에요."

-태권도를 하면 무엇이 좋습니까
"태권도는 건강에도 좋고 조선의 기백을 알릴 수 있어 좋습니다."

-태권도를 이론적으로 연구하는 기관도 있습니까
"태권도과학연구소가 있어서 관련 일꾼들이 리론적으로도 활발히 연구하고 있습니다."

헤어질 때 되서야 마음 열어

김 부단장은 나름대로 자유스럽게 얘기하면서도 할 말 안 할 말은 정확히 가리는 편이었다. 연변대 한 관계자는 북한에서는 행정직의 두 번째 책임자는 당일꾼이기 때문에 상대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락 부단장은 3일 동안 사실 거의 빈틈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가 기자를 스파이나 대하듯이 조심스러워 하는 모습은 기자로 하여금 분단의 아픔을 절로 느끼게 했다.

그는 헤어지는 날 백두산을 다녀오는 버스 안에서 백두산에서 기념으로 산 손수건에 사인을 요구하는 기자에게 조선은 하나다라고 써주었다. 그 밑에 주체 89년이라고 써주길래 왜 89년이냐고 물으니까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설명을 해주었다. 그는 역시 당일꾼 이었다.

북한에서는 최근 김일성 주석이 태어난 해를 기점으로 해서 연도를 표시하는 주체연호를 쓰고 있다.

그는 기자와 헤어질 때서야 기자의 이름을 물었다. 그가 마음의 문을 연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접촉했던 사람의 이름을 보고하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기뻤다. 그가 마음의 문을 연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김형락 부단장은 나중에 평양에 와서 태권도전당을 들르게 되면 꼭 입구에서 자신을 찾으라고 말했다. 다시 한번 만나게 될 때는 가슴 터놓고 편한 얘기 나눌 수 있을는지.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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