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일본검술 북진일도류 한국 수련개시

북진일도류, 서울에 지부도장 개설
양재도장에서의 수련모습
현대 검도(Kendo)의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고, 에도시대 말기 3대 검술유파로 불렸으며, 한때는 일본에서 가장 많은 수련생을 보유하며 일본 최강의 검술유파로까지 여겨졌던 북진일도류(北辰一刀流, 호쿠신잇토오류)가 서울에 지부도장을 열었다.
북진일도류 본부도장인 현무관(玄武館, 겐부칸)은 대한아이키도연맹 대현도장(관장 윤익암)과 2001년부터 매년 교류를 해왔으며, 교류를 통해 쌓인 상호신뢰를 바탕으로 올 1월 중순부터 정식 사범을 파견하여 서울 신촌과 양재동에 지부도장을 개설하고 수련을 시작했다.
일본 내에도 지부도장을 개설하지 않고 있는 북진일도류가 한국에 지부도장을 개설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이번 지부도장 개설은 한일 무술문화 교류에 획기적인 일로 평가된다. 북진일도류가 한국에서 지부도장을 내는 데에는 대한아이키도연맹 윤익암 관장의 세심한 노력과 지원이 있었다. 이번에 수련 장소로 결정된 서울 강북의 신촌도장과 강남의 양재도장은 모두 윤 관장의 대현도장 소속이다.
월수금은 신촌, 화목토는 양재에서 수련
사토 하루히코 사범
이번에 한국 지부도장을 맡아 지도하게 될 사범은 사토 하루히코나리에이(佐藤 遙彦成榮) 7단이다. 사토 사범은 나중 이름의 한글자인 나리(成)를 북진일도류 5대종가(5代宗家)인 코니시 츄우지로(小西重治郎成之) 관장에게서 받았을 정도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사범이다.북진일도류 서울 지부 수련은 아직 시작의 단계여서 사토 사범 혼자서 지도를 맡고 있다. 향 후 수련생의 증가에 따라 일본 본부도장에서 추가로 사범이 올 계획이다. 사토 사범은 월•수•금은 신촌도장에서, 화•목•토는 양재도장에서 지도한다.
사토 사범은 이번 지부도장 개설의 의의에 대해 "한국과 일본이 무술을 매개로 구체적인 교류를 하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북진일도류 수련에 관해서는 "검도(kendo)를 수련하는 사람은 죽도 수련에 치우치는 경향이 있고, 검술, 또는 거합을 수련하는 사람은 죽도 수련을 등한시하고 진검수련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며, "북진일도류는 현대검도의 모체가 된 검술로서 검도와 검술의 연결점을 발도(拔刀)와 쿠미다치(組太刀), 죽도시합 등을 통해 이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토 사범은 또한 "쉽지 않게 기회가 마련된 만큼 검도와 검술에 관심이 많은 한국 수련생들의 많은 참여가 이어져 한국지부가 계속 이어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북진일도류 수련에 관한 자세한 정보는 북진일도류 한국지부도장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진일도류 한국지부 홈페이지=[www.kumsul.com]
북진일도류는?

북진일도류 창시자 치바 슈샤쿠
북진일도류는 일본정통검술의 대명사와 같은 검술유파다. 북진일도류는 창시자인 치바슈샤쿠(千葉周作)가 당대 최고의 검객으로 이름을 날렸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걸출한 제자들을 배출했다는 점에서 더욱 유명한 유파다.북진일도류가 배출한 최고의 검객으로는 메이지 유신을 통한 일본 근대화의 주역으로 일본인들에게 가장 많은 존경을 받는 인물로 첫손에 꼽히는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를 들 수 있으며, 막부 말기 최강의 검객 집단으로 불리던 신선조(新選組, 신센구미) 대원들 중 상당수를 배출하기도 했다.
북진일도류는 불필요한 형식에 치우치지 않고, 실제 시합에서 사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기술을 중시했다. 현대 검도에서 사용되는 많은 용어와 기술이 북진일도류와 북진일도류의 모체인 중서파일도류(中西波一刀流, 나카니시하잇도오류)에서 비롯되었을 만큼 수 많은 일본의 검술 유파들 중에서 특히 그 실용적인 면에서 인정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북진일도류의 검술사적 의의로는 수련의 체계를 단순화 시키고 많은 사람들에게 검술을 보급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사무라이들만이 배울 수 있었던 검술이 에도시대 말기 격변기를 통해 대중화 되었고, 배우기 어렵고 난해한 기술체계를 단순화 시키고 지나치게 세분화된 승급체계를 줄여 많은 사람들이 쉽게 검술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도록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북진일도류는 에도시대 3대도장으로 꼽히며 6000명이 넘는 제자를 보유하기도 했다.
북진일도류의 창시자인 치바 슈샤쿠는 기술의 치바라고 불렸을 정도로 절묘한 시합기술과 높은 수준의 가타(形)로 이름이 높았으며, 에도시대를 대표하는 검객으로 첫손가락에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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