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태권도 시범단과의 3일 ③
북한 태권도시범단과의 3일 ③
어렵게 성사된 북한 시범단의 백두산행

8월 27일은 북한 태권도시범단을 만날 수 있는 마지막 날이었다. 이날은 남북한 시범단이 함께 백두산에 올라가 공동 시범을 보이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계획은 새벽부터 어긋나기 시작했다. 남북한 시범단이 묵고 있던 록원호텔 앞에서 새벽 4시 30분에 버스가 떠나기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남한 충청대학 시범단과 중국 연변대학 태권도 선수단은 4시경부터 나와 백두산 갈 준비를 했다.
그런데 5시가 넘어도 북한 시범단이 나타나지 않았다. 중국어 통역을 맡고 있던 연변대학 여학생이 그들이 묵고 있는 객실에 올라갔다 오더니 "사람들이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전날 밤 해당화식당 만찬에서 마신 술이 너무 과해 못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었다.
나머지 일행은 그들을 약 1시간 가량 더 기다렸으나 그들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1시간이 지난 후 나타난 김삼덕 단장과 김형락 부단장은 선수들이 피로해 백두산에 갈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때 이번 행사 성사의 주역을 맡았던 연변대학 이천식 교수가 김삼덕 단장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그러나 북한 시범단의 입장은 바뀌지 않았다.
그래서 할 수 없이 남한 시범단과 중국 연변대학 선수단끼리 백두산을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기자는 너무 아쉬웠다. 사실 백두산에 가는 이유는 북한 시범단 때문이었는데 그들이 빠지게 되면 행사는 관광이 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아쉬운 마음을 안고 버스 창 밖을 바라보며 백두산을 향해 가던 중 갑자기 이천식 교수가 버스를 다시 록원호텔로 돌리라고 지시했다. 북한 시범단이 마음을 바꿔 일부 단원들이라도 백두산에 함께 갈 수 있게 하겠다는 연락을 해 온 것이다.
버스는 록원호텔에서 북한 시범단 일행 7명을 태우고 백두산을 향해 달렸다. 연길에서 백두산까지는 약 4시간 30분 정도의 시간이 걸렸다.
백두산 천지에서의 기적

백두산에 도착한 남북한 태권도 시범단은 제일 먼저 장백폭포로 향했다. 장백폭포에 도착한 남북한 시범단은 작지만 역사적인 행사를 가졌다. 애초에는 백두산 천지에서 가지려 했던 행사인 공동 시범이었다.
공동 시범은 남과 북의 시범단이 각기 자신들의 품새(틀)를 서로에게 가르쳐주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남한 시범단은 고려 품새를 북한 시범단에게, 북한 시범단은 남한 시범단에게 천지 틀을 가르쳐 주었다. 북한에서는 남한에서 말하는 품새를 틀이라고 한다.
먼저 북한 시범단이 남한 시범단에게 천지 틀을 가르쳤는데 남한 시범단은 매우 진지한 자세로 천지 틀을 배웠다. 천지 틀은 태권도를 처음 배우는 초심자들이 익히는 틀이다. 남한 시범단이 고려 품새를 가르쳐 줄 때 북한 시범단 또한 진지한 자세를 보여줬다.
날씨도 역사적인 태권도사상 최초의 남북한 공동 시범을 도와줬다. 하루에도 수십번씩 변한다는 백두산의 날씨는 공동 시범 행사를 가지는 시간 내내 맑은 상태를 유지했다. 이런 날씨를 두고 남과 북의 시범단원들은 남북이 함께 백두산에 온 것을 하늘이 알고서 도와주는 것이 아니냐는 덕담을 주고 받았다.
그러나 백두산의 날씨는 역시 얼마 가지 않아 본색을 드러냈다. 남북한 시범단이 장백폭포 앞에서의 공동 시범을 마치고 천지로 향할 즈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장백폭포에서 백두산 천지를 가려면 장백폭포에서 버스를 타고 백두산 입구까지 내려왔다가 다시 소형 짚차를 타고 천지로 향해야 했다.
남북한 시범단 일행은 소형 짚차 여러 대에 나눠 타고 장대비를 뚫고 백두산 천지로 달렸다. 비는 멈추지 않았고 하늘엔 먹구름이 가득했다. 정상에 올랐는데도 천지는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비록 천지를 볼 수 없었지만 민족의 영산인 백두산을 함께 올랐다는 기쁨에 남북한 시범단은 지난 밤 만찬때와 마찬가지로 또 노래를 부르고 구호를 외쳤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부를 때 남북한 시범단원들의 눈에는 눈물인지 빗물인지 모를 액체가 흘러내렸다. 통일조국 만세, 세계태권도 만세, 국제태권도 만세도 함께 외쳤다.
그런데 잠시 후 마치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일행이 사진촬영을 마치고 내려가려는 순간 누군가가 갑자기 "와 보인다!"고 외친 것이다. 그래서 일제히 천지 쪽을 바라보니까 천지가 자신의 자태를 드러내고 있었다. 천지를 뒤덮고 있던 구름이 서서히 물러가는 것이었다.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졌고 만세 소리도 들렸다. 일행들은 다시 사진촬영을 하느라고 바빠졌다. 이 광경을 직접 보지 못한 사람은 그날의 감동을 실감하기 어려울 것이다. 남북이 함께 노래하고 통일조국 만세를 외쳤을 때 천지가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사람 저 사람이 이 광경을 놓고 거짓말 같은 일이라고 말했다.
백두산 천지는 열 명이 올라가면 그 중 아홉명이나 여덟명은 천지를 못 보고 내려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아무에게나 그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게다가 장대비가 내리던 상황에서 갑자기 날이 개면서 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분명 기적 같은 일이었다. 적어도 함께 목청 높여 노래부르고 구호를 외친 남북한 시범단원들에게는 말이다.
"기자선생님앓지 마시라요"

백두산에서 내려온 후 남북한 시범단은 연변대학 측이 준비한 만찬에 참석했다. 이날 만찬은 차분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됐다.
만찬 후에 기자는 드디어 북한 태권도시범단과 헤어져야 할 시간을 맞이했다. 북한 태권도시범단 단원 중에서 가장 어린 리순금 단원은 작별 인사를 하는 기자에게 "기자선생님 앓지 마시라요"라고 당부하며 꼭 다시 만나자고 말했다. 리순금 단원은 중학교 6학년이다. 한국 학제로는 고등학교 3학년.
3일 내내 헤어질 때마다 그랬듯이 이날도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우리는 작별 인사를 나눴다. 그런데 이날은 마지막이라는 생각 때문인지 서로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순금 동무도 순영 동무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김춘경 단원, 리경희 단원과도 아쉬운 이별을 해야 했다. 김춘경 단원 뒷좌석에 앉아 있던 전광천 사범도 창문을 열고 기자에게 "통일되면 다시 만납시다"라고 말했다.
김형락 부단장도 버스에 오르기 전 "그런데 기자선생 이름이 뭐라고 그랬죠?"라고 물어보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기자는 멀어져 가는 버스 뒷모습을 바라보며 그들이 남기고 간 말을 새겨보았다.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노력해 달라는.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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