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태권도 시범단과의 3일 ②
"아니 신발을 신었잖아!"
2000년 8월 26일은 충청대학 시범단의 시범이 있는 날이었다. 이날도 역시 북한 태권도 시범단은 충청대학 시범단의 시범이 시작되기 바로 전 대회장에 도착했다. 그들은 충청대학 시범단의 시범을 주의 깊게 지켜봤다.

"아니 신발을 신었잖아!"
그들은 충청대학 시범단이 격파 시범을 할 때 신발을 신고 하는 것을 보고 왜 신발을 신고 하지? 하는 표정을 지었다. 맨발로 벽돌 격파를 하는 그들이 볼 때는 진짜가 아닌 것처럼 보일 만도 했다.
시범이 시작되기 전 한순영 단원과 간단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름과 나이는 어떻게 되시죠.
"이름은 한순영이고 나이는 스물 한 살입니다."
-태권도 말고는 다른 직업이 있습니까.
"네. 공부합니다."
-어느 학교에서 무엇을 전공하시나요.
"조선체육대학교에서 태권도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태권도를 하면 무엇이 좋습니까.
"건강에도 좋고 자신감도 생깁니다. 그리고 나라와 민족의 명예를 드높일 수 있습니다."
-어제 시범을 보니까 남성들을 간단히 제압하던데 실제 성격도 그렇습니까.
"아닙니다(웃음). 실제 생활에서는 여성스러움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만 자신을 지킬 수 있는 호신술을 수련하다보니 그렇게 보인 것 같습니다."
-태권도를 하시니까 재미있습니까.
"네. 아주 재미있습니다."
여기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충청대학 시범단의 시범이 시작됐다. 다른 단원들이 시범을 보라고 말했고 한순영 단원은 시범을 보고 나서 얘기하자고 말했다.
시범이 진행되는 동안 북한 시범단원들은 충청대학 시범단의 시범 내용을 주의 깊게 살폈는데 특히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고난도 기술이 발휘될 때마다 서로 귓속말을 주고 받는 모습이 자주 눈에 띄었다.
충청대학 시범단이 신발을 신고 송판을 격파하는 모습을 보고서는 "에이 신발을 신고 하잖아!"라는 말도 했다.
이날 저녁 만찬 석상에서 만난 북한 태권도 시범단원들은 대개 "조금만 더 노력하면 아주 훌륭한 시범단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충청대학 시범단을 추켜세워줬다. 남한 태권도 시범단의 시범을 처음 본 소감에 대해 묻는 말에 워낙 말을 아껴 더 이상의 말은 듣지 못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충청대학 시범단의 시범을 다 본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바로 자리를 뜨는 바람에 한순영 단원과의 인터뷰는 더 이상 진행되지 못했다. 그러나 기자는 몇 시간 후 충청대학 측이 마련한 만찬에서 한순영 단원과 북한 태권도 시범단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26일 저녁 연길 시내에 있는 해당화식당에서는 한바탕 통일잔치가 열렸다. 아무런 걸림돌도 없이 거리낌도 없이 남과 북에서 온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노래하고 춤췄다. 만찬에 참석한 연변대학 시범단은 감격에 겨워 하나가 되어 어우러지는 남북한 태권도 시범단을 보면서 따뜻한 박수를 보내주었다.
반갑습니다, 통일무지개, 휘파람 등 이미 남한에도 많이 소개된 북한의 가요에 맞춰 남북한 시범단은 함께 노래하고 춤췄다.
평소 주량이 소주 석잔 밖에 되지 않는 기자는 북한 시범단원들이 권하는 술을 계속해서 10잔을 넘게 받아 마셔야 했는데 그것도 한번에 다 마시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권해서 못하는 술을 연거푸 들이켜야 했다. 자그마치 39도나 되는 독한 중국 술을.
그러나 이상하게도 전혀 취하지도 않았고 힘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너무 기뻤다. 취해도 어쩔 수 없다는 배짱으로 마셨다. 북한 시범단도 많은 술을 마셨다. 한 잔 술이 들어가니 어색했던 감정이나 경계하던 마음도 눈 녹듯 녹아버리고 가슴을 열고 이야기 할 수 있었다.
기자는 만찬이 시작될 때부터 북한 시범단원들이 식사하는 테이블을 찾아가 자리를 같이 했다. 처음에는 왼쪽에 않아 있던 한순영 단원과 오른쪽에 앉아 있던 리경희 단원과 주로 얘기를 나눴다. 그런데 얘기를 나누다보니 그들과 기자의 위치가 바뀌어 있었다. 그들이 많은 질문을 던져왔기 때문이었다.
막상 대화를 하다보니 서로 젊어서 그런지 태권도에 관한 대화보다는 개인 신상에 대한 대화를 더 많이 하게 됐다. 한순영 단원은 기자에게 몇 살이냐고 물었고 또다른 단원은 결혼은 했냐고 물어왔다.
기자는 기자가 본 북한 영화와 소설에 대해 이야기했고 그들은 신기한 듯 얘기를 들었다. 한순영 단원은 임수경 언니는 어떻게 지내시냐고 물어오기도 했다. 감옥에 갔었다는 말을 듣고는 특유의 그 순진한 표정으로 안타까워했다. 임수경씨는 지난 1989년에 정부의 허락없이 평양을 방문했었다. 나중에 자세히 쓰겠지만 북한 여성들은 정말 듣던 대로 순수 그 자체였다.
만찬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남북한 시범단은 여러번 무대에 함께 나가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합창했다. 그리고는 함께 만세도 불렀다. 조선은 하나다, 조국통일 만세, 태권도 만세가 이날 가장 많이 울려 퍼진 구호다.
이날 저녁 해당화식당에서는 우리의 소원 통일은 이미 이루어졌다. 과거에 남한 대학생들이 부르던 어떤 노래 가사처럼 통일은 됐어 였다.
남북한 시범단은 헤어지기에 앞서 서로 다가가 사진 촬영을 요청하기도 했다. 3시간 가까이 진행된 만찬은 남한측 충청대학 시범단이 먼저 자리를 뜨면서 끝났다. 그러나 기자는, 취재하느라고 식사를 제대로 못한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한순영 단원이 식사를 하고 가라고 권하는 바람에 계속 남아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헤어질 때 어떤 시범단원은 "준성아 뭐 타고 가네?"라고 물으면서 "우리 차 타라우"라고 말하기도 해 기자의 가슴을 찡하게 했다. 만난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지만 벌써 가슴을 연 것이다. 정말 마음 같아서는 같이 타고 가고 싶었지만 쓸데없는 오해를 피하기 위해 기자는 사양했다.
전날(25일)과 마찬가지로 이날도 북한 시범단과 기자는 버스 창문을 사이에 두고 손을 흔들며 이별의 정을 나눴다. 다음날 백두산에 함께 오를 것을 다짐하면서. 그들은 "내일 백두산 가시죠?"라고 묻는 말에 "네. 갑네다. 함께 갑세다."라고 화답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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