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떠난 자식의 효도" 최홍만과 추성훈
▲ 최홍만과 한국 씨름계

최홍만
2004년 12월16일, 최홍만은 씨름계를 떠나 K-1에 진출한다는 공식기자회견을 가졌다. 소속팀이었던 LG씨름단이 해체되고, 제반 씨름계의 환경에 실망한 최홍만이었지만, K-1 진출을 결정하기까지 적지않은 고민을 했었음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었다.최홍만의 K-1 진출에 대해 씨름계는 직설적인 비판을 감추지 않으며 노골적인 불쾌감을 드러냈다. 전통문화인 씨름을 버리고 일본에서 만든 K-1에 간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는 것이다. 돈을 쫓아간다는 등의 비난이 난무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홍만이 스스로 씨름을 버리고 K-1을 찾아간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스모가 국민적인 사랑을 받고 그에 걸맞는 대우를 받는 것과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씨름은 어떠한가. 씨름계에서는 국민들의 사랑을 받는 씨름을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들을 기울였는지 되돌아 보지 않으면 안된다.
최홍만은 K-1에 진출한 지 만 1년 만에 K-1을 대표하는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이러한 결과는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 최홍만의 K-1진출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입식타격기인 K-1과 씨름은 여러가지 면에서 다르기 때문에 최홍만이 K-1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기는 어렵다고 예상했었다.
전문가들의 지적은 일리가 있었지만, 한가지를 간과했다. 그것은 최홍만의 노력이었다. 최홍만은 전문적인 트레이너와 함께 자신의 신체에 맞는 훈련계획을 세웠고, 그것을 실천했다. 그리고 그 전략은 적중했다. 복싱에 기반한 펀치 훈련과 장신의 키를 이용한 무릎차기는 씨름천하장사 최홍만을 K-1 정상급 파이터로 만들어냈다. 그 바탕에 최홍만의 피나는 노력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최홍만의 성공을 통해 씨름계의 실력파 선수들의 격투기 진출이 이어질 전망이다. 그러나 이것은 한국 씨름계의 붕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씨름이 그만큼 훌륭한 운동이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최홍만이 단순히 체구만 큰 거인이었다면 K-1에서 이 정도까지 좋은 성적을 거두지는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씨름을 통해 다져온 최홍만이었기에 단기간의 K-1 적응훈련을 통해서도 좋은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 추성훈과 한국 유도계

추성훈
2002년 부산아시안 게임 81kg급 결승에서 한국의 안동진은 일본의 아키야마 요시히로에게 금메달을 빼았겼다. 이 아키야마 요시히로(秋山成勳)가 바로 얼마 전까지 한국대표선수로 활약하던 추성훈이다. 제일교포4세인 추성훈은 오로지 유도가 좋아서 한국유도대표선수가 되기 위해 왔으나, 한국유도계는 추성훈을 한국의 아들로서 대해주지 않았다. 고질적인 심판판정문제로 추성훈은 번번히 고배를 마셨고, 마침내는 일본으로 귀화하고 말았던 것. 결국 추성훈이라는 재목을 잃은 한국 유도계는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 하나를 잃은 것 이상의 손실을 보았다.국적의 틀을 깨고 일본으로 귀화해 유도에 전념한 추성훈은 81kg급 세계최강으로 인정을 받았고, 그가 사랑하는 유도의 강함을 증명하기 위해 격투기에 뛰어든다. 21세기의 콘데코마라는 그의 별명이 말해주는 것처럼, 격투기의 무대에서도 추성훈은 유도를 바탕으로 유도의 강력함을 유감없이 보여주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있다.
지난 K-1히어로즈 한국대회에 출전한 추성훈은 한쪽 어깨엔 태극기를, 다른쪽 어깨엔 일장기를 새겨넣고 출전했다. 국적은 일본이지만, 한국인으로서의 자신의 정체성은 잊지 않고 있다는 것을 경기장에 모인 관중들에게 추성훈은 자신의 어깨를 가리키며 웅변했다.
추성훈을 바라보는 한국유도계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한 다큐멘터리프로에서 추성훈이 했던 "여기는 말을 해도 안됩니다"라는 말을 한국유도계는 뼈아픈 자성의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진정으로 씨름을 사랑하는 사람은 씨름협회 임원들인가, 최홍만인가. 유도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유도협회 임원들인가, 추성훈인가. 최홍만과 추성훈의 이야기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면서도 씁쓸하게 만드는 이유를 씨름과 유도를 포함한 모든 무술단체, 협회의 임원들은 깊이 고민해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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