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태권도 시범단과의 3일 ①
태권도 통일은 이미 다 됐어
2000년 8월 27일 중국 쪽을 통해 올라간 백두산 천지에서는 기적이 일어났다.
남과 북, 북과 남의 태권도 시범단이 한 목소리로 통일조국 만세를 외쳤을 때 방금 전까지도 천지를 뒤덮고 있던 짙은 구름이 물러가면서 천지가 열린 것이다.
그 장면을 지켜본 남북한의 태권도 시범단과 기자에게는 그 광경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그것은 남과 북 동포들이 한 목소리로 외친 통일 구호에 대한 하늘의 응답이었다.
기자는 지난 8월 24일부터 29일까지 중국 연길에 가 그 중 25일부터 27일까지 3일간 북한 조선태권도위원회 시범단을 동행 취재했다. 지금부터 그 3일간의 기록을 공개한다.
설레이는 첫 만남
2000년 8월 25일 드디어 긴 세월 갈라져 있던 남북한 태권도는 통일의 길에 나섰다. 제 1회 연변 국제태권도 문화축제에 참가한 북한 태권도 시범단이 연길시 시민들과 남한에서 참가한 시범단 앞에서 시범을 보인 것이다.
애초에 행사 계획은 남과 북의 시범단이 약 15분간씩 문화축제 개회식에서 공동시범을 보이는 것이었으나 북한 시범단 쪽이 마치 남과 북이 대결을 벌이는 것 같다며 난색을 표해 25일 개회식 행사에서는 북한 시범단의 시범만 펼쳐졌다.

남한에서 참가한 충청대학 시범단의 시범은 다음날인 26일 폐회식 행사에서 공연하기로 조정되었다. 비록 공동시범은 이루어지지 못했지만 축제 관계자들은 각기 시범공연을 하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라며 안도의 한숨을 쉬는 분위기였다.
기자는 25일 북한에서 온 조선태권도위원회 태권도 시범단을 만나기 위해 대회장인 연길체육관에 아침 7시부터 나가 기다렸다. 이때까지도 기자는 그들이 록원호텔에 묵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아무 것도 몰랐다. 바로 전날 밤늦게 연길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전 내내 들려오는 소식은 불길한 것들 뿐이었다. 북한 시범단이 남한에서 시범단이 왔다는 소리를 듣고 행사에 불참하려 한다는 말에서부터 27일에 예정된 백두산 공동시범도 무산될 가능성이 높다는 말도 돌았다.
어쨌든 행사는 시작되었고 북한 시범단은 보이지 않는 가운데 시간은 흘러갔다. 그러다가 오후 3시경 체육관에 북한 시범단이 나타났다. 4시에 예정되어 있던 개회식 행사에서 시범을 보이기 위해서 온 것이다.
그들은 도복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기를 붙인 것 외에는 남한 태권도인들과 하나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었다. 외모나 말이 남쪽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하얀 도복을 입은 모습도 같았다.
그들은 조금 긴장한 표정이었고 기자는 수십년 남한에서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사람이라 그런지 그들보다 몇 배 더 긴장했다. 선뜻 다가가 인사할 용기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기자는 북한 시범단 임원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눴다.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그들은 기자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러나 기자의 인터뷰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다음은 김형락 조선태권도위원회 시범단 부단장과의 대화.
-북조선 시범단 단장님과 단원들을 인터뷰하고 싶습니다. 괜찮습니까?
"글쎄요. 지금은 시범 전이니까 끝나고 얘기합시다. 지금은 경황이 없습니다."
-그러면 시범을 마친 후에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
"글쎄...그럽시다. 나중에 봅시다."
그러나 끝내 정식 인터뷰는 하지 못했다. 그래서 기자가 택한 방법은 인터뷰 아닌 인터뷰였다. 앞에서 기록하지 않으면서 머리로 기록하는 방식. 임원들과 단원들에게 적극적으로 다가가 대화를 시도했다.
태권도와 관련되지 않은 질문은 할 필요도 없었고 일부러 피했다. 왜냐하면 오해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였는지 그들은 묻는 말에 무엇이든 성의껏 대답해주었다. 물론 말할 때마다 장군님의 은혜를 빼놓지 않아서 이질감도 느꼈지만 그것은 별 문제가 안됐다. 태권도에 대한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선체육대학교에서 태권도를 전공하고 있다는 한순영 단원은 자신이 계백틀을 제일 잘한다고 말했다. 그는 남한에서 온 사람을 처음 만났기 때문인지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북한에서도 여성들이 태권도를 많이 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태권도는 남녀노소가 다 즐겨 하는 대중화된 운동이라고 소개했다.
김형락 부단장은 작년에 아르헨티나에서 열렸던 세계태권도대회 이야기를 통해 북한 태권도를 자랑하기도 했다. 그 대회에서 북한 태권도 선수단은 우승을 차지했다. 그런데 김 부단장의 말인즉 대회 관계자들이 앞으로 조선 선수단은 대회에 나오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조선 선수단이 메달을 죄다 쓸어가기 때문이라면서 말이다.
세계태권도연맹 주최의 세계태권도대회에서 항상 남한 선수단이 우승을 차지하는 것처럼 국제태권도연맹 주최의 세계태권도대회에서는 북한 선수단이 우승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들은 단 한 차례도 우승을 놓치지 않았다.
이날 시범공연을 위해 온 시범단은 김형락 부단장의 소개에 의하면 조선태권도위원회 소속의 여러 시범단 중 최고 수준의 기량을 갖춘 시범단이었다. 그들은 북한 전역에서 지역에서부터 선발돼 전국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한 최고의 기량을 갖춘 시범단원들이라며 김 부단장은 한번 시범을 보시면 알게 될 것이라고 자랑했다.
놀라운 위력 선보인 북한 태권도 시범단

북한 태권도 시범단의 시범은 위력 중심이었다. 위력이라면 힘의 세기를 표현하는 시범을 말하는 것인데 격파 시범이 그 대표적인 예다. 그들이 선보인 시범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바로 엄청난 힘이었다.
남한에서는 잘 하지 않는 기와장 격파라든지 벽돌 격파를 선보였는데 이 대목에서 관중들에게서 큰 박수를 받았다. 맨손과 맨발로 기와장과 벽돌을 깨는 모습은 어찌보면 차력 시범같은 느낌을 주었다.
남한 시범단에서는 기와장이나 벽돌을 격파하는 시범을 남자들도 잘 하지 않는데 그들은 여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여성 시범단원의 기와장 격파는 관중들의 탄성이 저절로 흘러나오게 하는 시범이었다.
다른 시범도 마찬가지였다. 고도의 기술보다는 힘의 세기를 강조하는 시범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호신술 시범에서도 여성 단원들은 거의 실전에 가까운 시범을 선보여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이날 시범을 본 충청대학 시범단의 한 단원은 "여자들까지 저런 격파를 하고 정말 대단하다"면서 "그러나 전에 비해 기술적인 측면도 많이 보강된 것 같다"고 말했다. 화려한 기술도 많이 선보인 것을 말하는 것이다.
화려한 여성 시범단원들의 호신술 시범은 다음날 충청대 시범단의 호신술 시범 내용을 더 보강하게 만들었다. 충청대 시범단의 한 단원은 후에 기자에게 북한 시범단의 호신술 시범을 보고 부랴부랴 내용을 더 보강하게 됐다고 밝혔다.
시범이 끝나자마자 북한 시범단은 사진촬영과 인터뷰 공세에 시달렸다. 관중들이 서로 사진을 함께 찍자고 요청해왔고 보도진은 인터뷰를 하기 위해 그들을 놓아주지 않았다. 특히 여성 단원들이 인기였는데 김춘경, 리경희, 한순영, 리순금 이 4명의 여성단원은 이후 3일 동안 인기를 독차지했다.
리경희 단원은 시범을 선보인 소감을 묻는 질문에 "하루빨리 통일이 되어 남조선 태권도인들과 함께 태권도도 하고 시범도 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한순영 단원은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평소에 단련이 되어 있어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답했다.
북한 태권도 시범단은 기념촬영과 약식 인터뷰에 간단히 응한 후 서둘러 체육관을 빠져나갔다. 기자는 버스에 오른 그들에게 다가가 버스 창문을 열고 대화에 응한 전광천 사범과 대화를 나누었다.
-태권도하는 것 말고 다른 직업이 있나
"태권도를 잘 해서 나라와 민족의 명예를 드높이는 일이 나의 일이다. 시범단에서 시범활동만 한다."
-하루에 몇 시간이나 운동하나
"하루에 6시간 운동한다. 일요일은 쉰다."
-언제 태권도 시범을 보이나
"수령님 생신일과 같은 각종 기념일에 시범을 보인다. 인민들이 아주 좋아한다."
-해외에서도 시범활동을 많이 하고 있나
"많은 나라를 다녀봤다."
-태권도하면 무엇이 좋은가
"태권도를 하면 신체도 건강해지고 나라를 지킬 수 있는 힘도 기를 수 있고 여러 가지로 좋다."
그들은 다시 만나자며 손을 흔들고 떠났다. 북한에서 파견나온 연길시 주재사범 리 사범은 아쉬워하는 기자에게 내일이나 모레 기회가 있을 것이니 "기다려보라"며 격려해주었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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