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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사랑한 태권도인, 정우진 - 4. 도전과 성취

 조국을 사랑한 태권도인, 정우진 - 4. 도전과 성취

정우진이 고생 끝에 성공의 길을 걷기 시작한 것은 휘트니스센터 사업을 시작하면서부터이다. 정우진 하면 태권도장에 휘트니스센터를 함께 열어 성공한 태권도 사범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물론 그의 여러 가지 이력 중 하나에 불과하지만.

아무튼 그에게 성공을 가져다준 휘트니스센터 사업은 아주 작은 아이디어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정우진이 도장을 운영하면서 보니까 남편들이 도장에다가 부인을 내려놓고 어디론가 가는 것이었다. 그래서 당신은 어디로 가느냐?고 물으니까 휘트니스센터에 간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태권도장과 휘트니스센터를 한 지붕 아래서 운영하면 가족들이 함께 태권도도 배우고 운동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이디어는 아주 성공적이었다.

휘트니스센터를 태권도장과 함께 운영하는 그의 아이디어는 태권도장 운영에도 큰 도움을 주었다. 7년만에 한 해 평균 백명씩 700명 심사를 봤다.


휘트니스센터를 처음 세울 때도 태권도장을 처음 열 때와 마찬가지로 우여곡절이 많았다. 언제나 그랬듯이 돈이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유단자들을 모아놓고 의논을 했는데 그 자리에서 하나의 제안이 나왔다.

유단자 중에 땅을 개발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2 에이커 가량의 땅을 줄테니 어떻게든 해보자는 것이었다. 제일 못 쓰는 땅 2 에이커였지만 휘트니스센터를 이미 반은 지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데 당시 은행에서 융자를 잘 안 해주었다. 정우진이 돈을 갚을 수 있을지 의심스러웠던 것이다. 그러다가 한 은행에 갔더니 5만불 정도 있느냐면서 3개월 안으로 갚으라고 그러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돈이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 5만불을 채워 은행융자를 받을 수 있었다.

이때 그는 7천 스퀘어 피트 규모로 휘트니스센터를 지었다. 그리고는 굉장히 열심히 일했다.아침 6시에 문을 열고 밤 10시까지 일했는데 이러기를 2년이나 했다.

정우진이 휘트니스센터 사업에서 성공한 원인은 그가 성실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지금까지 많은 태권도인들이 휘트니스센터 사업을 했지만 대부분 망했다. 망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들의 지도 스타일 때문이었다. 휘트니스센터에 가서도 운동하러 온 고객을 마치 도장에서 수련생 대하듯이 대하니까 좋아할 사람들이 하나도 없었다.

도장에서는 제자들이 자신에게 말끝마다 예 써 하면서 스승 대우를 해주지만 휘트니스센터에서야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정우진은 일찍 깨우쳤다.

그는 복도 하나를 사이에 두고 태권도장에서는 엄한 스승이었지만 태권도장 건너편에 있는 휘트니스센터에서는 겸손하기 짝이 없는 사장님일 뿐이었다. 이때의 경험이 그에게는 휘트니스센터를 7개까지 늘리는 과정에서 큰 도움을 주었다.

정우진은 그때 휘트니스센터 사업을 처음 시작하던 때를 회상하면서 그때 참 철이 많이 들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태권도정신이라고나 할까? 도전하고 성취하는 것이 재미있었습니다. 태권도장과 휘트니스센터는 마케팅이 틀립니다. 태권도는 젊은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이한 사람들이 많이 하고 휘트니스센터는 일반인들이 많이 합니다. 그때 참 재미있었습니다."

정우진은 새로 휘트니스센터를 지을 때마다 노동자들과 함께 일도 하고 맥주도 나누고 태권도도 가르쳐주었다. 노동자들은 무척 좋아했고 그도 굉장히 기쁜 마음으로 일했다. 돈을 번다는 기쁨보다 하나 하나 도전해 성취한다는 것이 너무 기뻤다.

이렇게 성공의 길을 걷던 정우진은 어느 때부터인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자신을 훌륭한 태권도인으로 키운 조국을 돌아보게 되었다. 남과 북으로 나뉜 조국과 세계태권도연맹(WTF)과 국제태권도연맹(ITF)으로 나뉜 태권도계의 현실을 직시하게 된 것이다.

<다음에 계속>

댓글 6

핫바지 2000.08.25
이걸 같다가 드라마 형식으루 해서 방영 하면 태권도을 해서 성공 한 정우진씨도 알리게 되고 외국에 있는 사범들도 성공을 한다는 걸 알릴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테인디...
핫바지 2000.08.25
이걸 같다가 드라마 형식으루 해서 방영 하면 태권도을 해서 성공 한 정우진씨도 알리게 되고 외국에 있는 사범들도 성공을 한다는 걸 알릴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테인디...
손정은 2000.08.26
국가대표 태권도 시범단 소속 손정은 입니다 학교 다니는 중에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랄리에 사범연수를 갔을때 일입니다..거기 관장님께서.. 정우진 회장님을 뵈러 간다고 그러더군요... 같이 가서 도장을 둘러보는 와중에 전 어떤 한국인을 만났습니다 아~~정우진 회장님이 한국분이니까 수위아저씨를 한국분으로 쓰셨구나.. 인사를 드리더군요.."아이구 회장님"하고... 놀랬습니다..옷차림도 너무나 검소하셨고..키도 그다지 큰편도 아닌.. 회장님께서는 그런분이셨습니다..우리들에게 많은 말씀 해주시면서 한국의 태권도 현실을 크게 걱정하시던 분이셨습니다..이렇게 컴으로 뵈니 너무나 반가운 마음이군요..오늘을 편지를 한장 써야겠습니다... 소식을 전해준 태권넷에 새삼 감사를 올리며....
태권 2000.08.27
우와..이건 진짜 한편의 드라마네요. 앞의 분의 의견처럼 성공시대에 나오도 손색이 없을거 같군요. 정우진님 같은 분을 통해서 우리 한국인의 끈기와 실력을 보여준거 같아서 자랑스럽습니다. 거의 빈손으로 시작해서 지금 이런 위치에 이르렀다는 점 정말 존경스럽스고 멋집니다. 앞으로 태권도의 발전에 힘쓰시고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우리 태권도의 자랑스러움을 알려주시는데 힘써 주십시요.
정은미 2000.09.03
정우진 회장님은 저의 작은 할아버지이십니다..... 이런 사이트에서 작은 할아버지의 기사를 보게 되어서 넘 반갑고 기쁘네요. 부와 명예를 어느정도 지녔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겸손하시고 근검,절약하시고 그리고 끊임없이 도전하시는 자세는 늘 자랑스러웠고 존경할 부분이 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마 이런 것 들이 지금의 성공을 있게 했을것입니다. 정말 처음에 미국이라는 낯선 땅에 들어가셔서 많은 고생을 하셨다는 것을 아는 저로서는 이번 기사는 더욱 반갑고 기쁘네요.......
스웨덴, 림 원섭 2000.11.09
최홍희 내가 죽기 전에 태권도 기구 통합 이루겠다 에 대한 의견 스웨덴, 림 원 섭 태권도 개척자의 말. 태권 넷, 최홍희, 내가 죽기 전에 태권도 기구 통합 이루겠다는 글을 보고. 1966년에 해외로 태권도의 개척의 사명을 질 머지고 나갔던 본인은 당수도(공수도)에 9년, ITF에 19년, WTF에 15년을 두루 두루 운명이 기구하여 다닌 자의 말이고, 1982년 1월5일부터 6월3일까지 이북 국제 사범 제2기생을 가르킨 자의 말이며, 1984년에 ITF 통합위원 이였다. 현재는 국기원(WTF) 소속이며, 1996년에 전(全) 무도 윤리 학회를 세운 자의 말이다. 1, 최홍희씨에게 질문 ? 2, 태권도 철학과 동작 문제. 3, 태권도 통합 문제. 1. 최홍희씨에게 질문 ? ㄱ, 위 내용 중에 세계 태권도 연맹(WTF)은 가라테에서 벗어나지 못한 태권도 -- ㄴ, 세계 태권도 연맹이 지나치게 경기 화된 형태로 올림픽 종목에는 잘 못된 일이지만 일단 들어갔으니 계속 정식 종목으로 남아 있어야 할 것이라고- ㄷ, IOC 위원장 선거에서 김운용 총재가 당선이 되면 태권도 틀(품새)도 정식 종목이 되어야 한다고 --- ㄹ, 1950년대 당시부터 태권도 명칭을 만들고 가라테와 다른 새로운 무도인 태권도를 고수해왔다고-- 질문; ㄱ,에 대한 나의 의문, 최홍희께서 얼마나 많이 품새를 하셨습니까 ? WTF 품새를 해 보셨습니까 ? 얼마나 장, 단점을 아십니까? ㄴ,에 대한 나의 의문, 지나치게 경기 화 된 것이 잘못인데, 이왕 들어갔으니 정식 종목으로 되어야한다고 -. 그럼 WTF가 올림픽에 드려가려고 각가지로 노력할 때 어찌 쌍 지팽이를 집고 최홍희씨는 반대를 그간 했는가 ? 그리고 그 말은 무도 동작에서 반올림이 있어도 되고, 이렇게도 좋고, 저렇게도 좋다, 즉 목적을 위해서는 불의하고도 타협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 혹은 벽돌담을 쌀 때 밑에 것 빼서 위로 올리고, 또 다시 밑에 것 빼서 위로 올려놓아도 된다는 뜻입니까 ? ㄷ, IOC 위원장의 권한으로 올림픽 종목을 집어넣기도 하고 또 뺄 수도 있다는 뜻입니까 ? 아니면 사탕발림의 말입니까 ? ㄹ, 1950년부터 명칭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2000.9.25일자 태권도 신문 6장 최홍희씨 태권도 명칭 이렇게 만들었다." 아래 15쪽에 그는 부관인 남태희씨와 함께 옥편을 뒤적거리며 연구를 거듭한 끝에 -- 이렇게 쓰여 있는데, 태권도 세 글자 창시자는 남태희씨와 최홍희씨로 해야 한다고 본는데 그 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왜, 같이 연구하고 옥편을 보았으니까요. 그리고 무도인 태권도로 고수하였다는데, ITF는 대회라는 것이 없습니까 ? 스포츠는 상대가 있어 대회를 하고, 무도는 상대가 없고 자기 자신이라고 하는데 그 말이 맛 습니까? 2, 태권도 철학과 동작 문제. WTF의 품새와 ITF의 틀의 동작 문제. A. 형과 품새와 틀은 무엇이 같은가 ! a, WTF, ITF의 두 단체에서 쓰는 태권도란 글자가 같다. b, 한쪽 동작으로 하는 막기나 찌르기를 할 때 다른 손은 허리에 오는 것이 똑 같다. c, 차렷! 경례, 준비, 시작, 고만도 같고, 기압, 얏! 하는 것도 같고, 또 차렷서기, 준비서기, 뒷굽이서기(니은자 서기), 앞굽이서기(고정서기), 주춥서기(앉는서기), 겨루기 서기(맛서기서기), 몸통 밖갓 막기(밖갓 팔목 밖갓 막기) 혹은 안 막기, 손날거드러막기(손칼대비막기), 등등 지면 관계상 모두 쓸 수 없다. 그리고 각종 차기가 같다. B. 형과 품새와 틀과의 다른 점 ! a, 이름이 다르다. b, 연무선이 다르다. c, 만약 왼발이 앞으로 나와서 왼 앞굽이서기(왼 고정서기)를 하면서 몸통(가운데)찌르기를 했다고 하자, 왼발 쪽인 왼 앞 주먹으로 찔었을 때 품새는 몸통 반대 찌르기라고 하고, 틀에서는 오른 앞주먹으로 가운데를 찔었을 때를 반대 찌르기라고 한다. d, 품새에서는 틀에서 있는 걷는서기가 없고, 또 틀에서는 품새에서 있는 앞서기가 없다. e, 품새에서의 빗차기가 틀에서는 없다. f, 형과 태권도의 옆차기가 다르다. g, 틀에서도 1960-1970년대 초까지 형이라고 사용했다. C. 철학문제. a, 품새 철학에서 중국의 복희씨가 만든 팔괘가 나오고 중국의 주돈이가 만든 태극 즉 음양을 사용했다. b, 틀에서는 단군(조상), 도산(안창호), 중근(안중근), 충무(이순신), 의암(손병희), 충장(김덕령), 서산(서산대사), 삼일(3.1절), 세종(세종대왕), 통일(민족 통일), 이 10개의 틀의 이름들이 외세의 침략으로부터 목숨을 내 놓고 막은 자들이다. 특히 임진왜란 때와 왜놈 통치 35년 동안. 그래서 우리 민족의 맥을 살렸던 이 분들의 역사 표현을 일본의 문화인 가라데 동작으로 사용했다. 다음, 불교인인 원효(원효대사)는 설총이의 부친으로 김춘추 정부에 어용 했다. 다음, 화랑(화랑도), 유신(김유신)은 사대의 시조인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외세를 끌려들어 반민족적인 행실로 당나라 소정방이와 손을 굳건히 잡고 같은 언어와 풍습을 가친 민족을 망하게 하고 고구려의 거대한 우리 땅을 빼앗기고 한반도로 움츠러들게 한 자다. 즉 백제를 신라의 지배로 고구려를 당의 지배로 놓아 민족이 2국으로 통일되게 한 자다. 이로 인하여 사대주의 사상이 천년화근이 되었다. 이런 민족의 대 죄인을 틀의 이름으로 쓴 것은 식민사관 이였다고 볼 수도 있다. 또 율곡(이이)틀과 퇴계(이황)틀은 중국의 유학-주자학의 학문을 연구한 학자이고 지배층 학문 혹은 어용 학문을 한자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고 본다. 그리고 광계, 연개, 을지,(고구려 왕 및 장군), 충신 포은(정몽주), 문무(신라의 문무대왕), 계백(백제의 계백장군), 주체(김일성-1980년 중반까지는 고당(조만식))을 썼음. 이렇게 이 사람 저 사람들의 이름 및 호를 따서 틀을 만들었는데 동작은 왜놈의 문화, 가라데 동작으로 썼다. 그래서 한국 신학원 원장 목사 지승원씨는 최홍희씨가 만든 천지, 단군 등의 형은 YMCA의 윤병인 선생으로부터 전수된 중국 북방 권법의 장권, 팔기권 정도라고 했다. (태권도 신문,1997.3.31. 시론) 그러면서 우리 태권도의 동작은 기상천외(奇想天外-상식을 벗어난 아주 엉뚱한 생각), 환골탈퇴(換骨脫退-얼굴이 변해 전보다 아름답게 됨, 남의 문장의 취의를 본뜨되 그 형식을 바꿔 자작처럼 꾸밈)라고 하였고, 본인은 도용(盜用-남의 것을 몰래 씀)이라는 말보다 표절(剽竊-남의 시가, 문장, 등의 설, 또는 글귀를 가져다가 자기 것으로 발표함.)이라는 말로 표현했다. 이 두 태권도 철학은 중국의 철학을 사용하였으니 모화(慕華)사대주의 사상이고 동작은 왜놈 것을 사용했으니 친일파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3. 태권도 통합 문제. ITF는 1966년도에 WTF는 1971년도에 생기여서 남북이 자본주의 공산주의 남의 것 사상으로 서로 엄청 지 백성들을 살상한 이런 못된 사상을 가지고 자기 것들인 것 모양 으시대며 부끄러운지 모르고 그 정치적인 남의 사상 문제로 참 많이 서로 잘 났다고 퍽 많이 들 씹었다. 그러나 그 것이 집안의 일이라 속으로 꿍꿍이 알고 있는 이 통합을 난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30-35년이란 세월, 강산이 3번은 변했을 세월 여기에서 두 단체는 자기 식 데로의 땀과 눈물과 피와 경쟁에서 경험 철학과 그 나름 데로의 역사를 쌓아서 명실 공히 세계의 많은 태권도 인들을 어깨에 근육을 때때로 자랑하며 18세가 넘었다고 우쭐대며 태권도는 코리아 것이라고 한다. 또 그들 데로의 역사와 철학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통합은 이들에게 많은 문제를 주어 혹 뿔뿔히 어마어마하게 갈아 질 수도 있다. 왜, 계급이 축소되기 때문에 - 그래서 태권도 단체는 참으로 많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코리아 국기원 밑에 WTF, ITF 두 총재를 두어 같이 발전하고 같이 협조하고 같이 국가 경제와 민족 철학을 위해서 다 문화와 친교를 맺는데 많은 이익이 있을 것이다. 혹은 많은 이득을 차려야 할 것이다. 외세가 잘라 논 우리 땅을 잇는데, 오늘도 서로 우리가 매일 도복 띄를 매듯 대화하며, 우리의 소원인 민족 통일에 앞장서 땀과 피를 쏟으면서 태권도 철학을 우리 것으로 바꾸고 또 동작도 우리 것으로 만들어 발전을 시켜야 한다고 본다. 이 길 만이 지금 보이지 않는 후손들로부터 손가락질을 피하게 될 것이며, 사람이 끝나고 나서 남는 것은 오직 남에게 준 것뿐일 것이다. 00.11.09 스웨덴 태권도 개척 사범, 림 원 섭 씀. wonsup@chello.se 등록일: 2000/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