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문화적 철학관
인간은 문화를 추구하고 창조하는 존재이다. 문화 철학을 정립한 캇시러(1874∼1945)는 인간은 의미 있는 것을 찾고 이상을 바라보며 가능한 것을 추구하면서 문화를 창조한다고 한다. 문화의 세계는 곧 인간에게 고유한 상징들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태권도 기본동작에서 주춤서 몸통지르기의 운동행위는 모든 기본기의 본을 이루고, 운동형태는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 반작용의 법칙에 따르고 있다. 두 주먹, 음양(좌우)이 상호 작용할 때는 언제나 양에 의해 음이 작용하는 힘은 음에 의해 양에 작용하는 힘과 크기는 같고 방향은 반대임을 알 수 있다.
그때 두 주먹은 자기 몸을 기준, 현전에 명치(급소) 를목표로 정하고 지르기하는 정점의 상(相)은 음양의 조화에 의한 의미있는 몸과 마음의 하나됨의 활동이다. 좌우 각 주먹은 허리와 목표간의 두 점 사이를 주기적으로 왕복하는 현상으로 진동(oscillation)이며 그 진동은 파장으로 기(氣)를 방출하는 것이다.
이 같은 일련의 작업이란 인간은 자기 자신을 그 환경에 적응시키는 하나의 새로운 방법을 발견하여 수용 계통과 운동 계통 사이에서 우리는 인간에게 있어 상징 계통이라 할 수 있는 제3 세계의 차원에서 초월적 신념을 체득할 수 있게 된다. 우리는 신체의 활동을 통해 얻게되는 정신적 소산 내지 도덕적인 가치로서의 문화는 진, 선, 미 그리고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것이다. 인간은 물질 속에서 살고 있지만 결코 물질적인
기치만으로는 전인적인 인간이라 될 수 없다.
정신적인 가치의 향상이란 주춤서기 자세에서 필연적 요인인 육체와 정신의 균형, 조화, 즉 중심을 이룰 때 정신적인 한 인간의 내면성을 성숙하게 하며 완전성을 향한 추구가 본성적으로 작용하는 것이다.
캇시리의 문화적 철학관은 공자의 인문주의와 비견될 수 있다. 공자는 인간이 문화적 존재임을 예(禮)를 강조하고 있다.
참된 인간이란 본능적 존재로서의 자기를 극복하고 예를 행하는 사람이며, 따라서 "예가 아니면 보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듣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말하지도 말고, 예가 아니면 행하지도 말라"고까지 하였다.
태권도에서 예는 도장의 출입에서부터 상호간의 인사 그리고 모든 동작 등 행위에서 엄하게 다루는 인간 됨의 기본적 도덕 규범이 되고 있으며 인간이 자기 완성에로 향하는 과정이 정신 활동으로 표출되는 것이다. 바로 예는 태권도 동작의 정신적 기본을 이루며 그 정신은 바로 기본동작인 주춤서 몸통지르기의 반복적인 행위에서 수행될 수 있다.
스웨덴 계통의 체조에서는 운동은 자세에서 자세에로의 이동이란 사고 방식 때문에 개시와 종말(준비와 그만)의 기본 자세를 중요시한다.
신체문화는 신체의 발달을 촉진하는 기능을 말하며 운동과 관계 있는 인간의 기본적 욕구라고 생각되는 새로운 경험에의 욕구, 창조적 표현에의 욕구, 사회 관계의 향수, 운동에의 욕구, 경쟁에의 즐거움 등을 충족하는 기능을 들 수 있다.
인간의 정신성은 육체의 활동을 통해 어떤 목적 의식이나 가치 의식을 가지고 고된 수련을 하는 것은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문화의 조건에 매이는 존재이기 때문에 동물적인 본능과는 근본적으로 차이를 나타낸다.
서양 고대에서 예술은 인간의 세 가지 고유한 활동, 곧 창작과 이론과 도덕적 실천 가운데서 첫 번째 범주에 속했으며, 장인(匠人)들의 작업과 순수한 예술적 작품이 동일시 되었듯이 무예에서 고수(高手)가 되고자 하는 장인 정신이란 예술에서 이데아의 세계를 불완전하게나마 반영하고 있는 자연 사물들의 형상을 모방함으로써 실제로 완전한 이데아가 그 작품에 투영되게 만든다고 보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무예, 무도 수행에서팔 다리, 몸의 움직임은 의식, 정신(마음)의 집중된 행위인 데 우리의 활동은 매 순간 그 행위의 자기 반성과 자기 이해를 통해 철학적 사고의 본질적 행위이다. 이 같이 우리가 신체 문화를 일깨우는 태권도의 기본 동작에서 문화적 철학관이 성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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