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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사랑한 태권도인, 정우진 - 3. 건달들의 도전

 조국을 사랑한 태권도인, 정우진 - 3. 건달들의 도전

천신만고 끝에 도장을 열고 보니 여러 가지로 부족한 것이 많았다.
샤워장도 하나밖에 없었고 세 사람만 동시에 써도 찬물이 나왔다. 또 주차장이 없어 수련생들이 주차를 하는데도 애를 먹어야 했다. 그러나 이를 불평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련생들이 자신들의 스승이 가난하다는 것을 알고 이해해줬던 것이다. 정우진은 후에 그런 것을 보면 사람이 많다고 행복한 게 아니라는 것을 무술을 통해서 많이 배웠다고 그때를 회상했다.

첫 심사는 11명을 봤다. 그 다음엔 20명 그 다음엔 30명, 1년이 지나니 100명이었다. 정우진은 이 도장에서 7년 동안 지도하면서 심사를 모두 7백명을 봤다. 돈이 없어 광고도 못냈지만 수련생은 늘어만 갔다.

이 시절 정우진에게는 또다른 골칫거리가 있었다. 그 당시 미국에 진출한 한국인 사범들이 많이 겪었던 일이었는데 바로 건달들의 도전이었다.

빈민가라서 건달들이 조그만 아시아 사람이 하나 와서 설치니 기분이 안 좋았던지 계속 도전해왔다. 한 1년 동안 계속해서 도전에 시달려야 했다. 심심하면 한판 붙자고 하는데 골치
덩어리였다. 그럴 때마다 정우진은 외로웠다.



그러던 어느날 이런 일이 있었다. 보통 건달들은 도장을 찾아왔을 때 정우진이 수련생들을 심하게 가르치는 모습을 보면 겁을 먹고 그냥 돌아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방법이 안 통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

시카고에서 사고 치고서 새덜래피즈에 있다 돌아가는 건달들이 종종 있는데 한번은 그런 건달 중 하나가 붙자고 왔는데 아무리 겁을 줘도 황소 웃듯이 웃고만 있는 것이었다. 정우진은 내심 겁이 났다.

하지만 죽든지 살든지 어떻게든 이겨내야 할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잠베크라는 제자에게 시켜 종이하고 연필을 가져오게 했다. 일단 죽음을 각오하니까 하나도겁이 나지를 않았다.

정우진은 그 종이와 연필을 건달에게 주면서 결투를 벌이다 죽어도 괜찮다는 각서를 쓰라고 말했다. 그랬더니 그 건달은 죽이는 것은 싫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정우진이 그러면 경찰을 부르라고 했더니 건달은 경찰만은 부르지 말아달라며 도망치듯 그 자리에서 도장을 떠났다. 정우진은 나중에 그 건달은 아마도 수배자였던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그 후 많은 사람들에게 이 얘기를 해줬다. 그랬더니 많은 무도인들이 똑같이 따라해 효과를 봤다고 한다. 정우진식 건달 퇴치법이었던 것이다. 그밖에도 그는 건달들이 오면 그들 중에서 리더를 골라 혼을 내줬다고 한다. 그러면 나머지 건달들은 백이면 백 다 도망쳤기 때문이다.

정우진은 시범을 다니면서도 많은 고생을 해야 했다. 사람들이 태권도를 모르다보니 세면을 갖다대고 주먹으로 깨고 머리로도 깼다. 그랬더니 의사들이 보고 제일 중요한 머리를 왜 쓰냐고 그러지 말라고 충고하고는 했다.

태권도를 알리려다 보니까 다 그랬던 것인데 안 깨지면 머리 굉장히 아팠다. 태권도 보급을 위해 개척을 위해 별 일을 다 겪은 것이다.

그런데 다행히도 그는 어려서부터 그 누구 못지 않게 고생을 경험했기 때문에 꿋꿋이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정우진이 9살 되던 해 한국전쟁이 났다. 한국전쟁은 한국인들에게는 너무도 큰 고통을 안겨주었다. 사람들은 굶주리고 헐벗어야 했다. 세상은 험악해져 밤거리도 마음 놓고 다닐 수 없었다. 그래서 정우진은 태권도를 배우게 됐다.

다음은 정우진의 회고.

"태권도가 따로 정식도 없었잖아요. 그냥 호신술로 배웠습니다. 그때는 밤에 다니기 힘들었습니다. 9살 때 한국전쟁이 났는데 세상이 무척 험했지요.

지금 생각하면 노란띠쯤 된 사람한테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러다가 부산에서 정식으로 도장에 들어가서 배웠고 서울에서 고학할 때인 1962년에 영등포에서 직접 도장을 열었어요. 고학 생활 도움을 받으려고 한 거죠."

그러다가 그는 태권도에 큰 매력을 느끼게 됐다. 이 때 태권도를 한 것이 계기가 되어 그는 군대가서도 월남에서 태권도 사범으로 근무했고 결국은 태권도를 직업으로 삼게 되었다.

그렇게 한국에서 마약 장사 빼고는 안 해 본 일 없이 닥치는 대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였던 그는 젊은이들이 뜻을 펼치기에는 너무도 억압이 많았던 당시의 한국을 뒤로 하고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 뜻을 펼치기로 마음 먹고 이민을 결심하게 된다.

<다음에 계속>

댓글 5

실눈 2000.08.22
이선장 2000.08.23
제가 만나본 정우진회장님은 조국을 사랑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참 스승이 아닌가 생각된다. 공기나 바지의 허리띠와 같이 우리에게 중요하면서 우리들이 인식못하는 것과같이,순수하고 뒤에서 태권도를 걱정하면서 묵묵히 실천하는 사람으로 생각됩니다. 이런분의 경험담과 삶의 철학을 태권도인들이 보고 많이 배웠으면 하며, 이런기사가 많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또한 이런분들을 초청해 세미나를 듣을 수 있는 기회도 마련하면 더욱 값진 시간이 되리라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김병직 2000.09.03
저도 태권도를 수련하는 학생입니다. 기사잘일었습니다. 정말태권도의 선배님으로 존경합니다 내년일월달에 미국에 갈예정입니다. 그때 꼭찾아 뵙고 싶습니다, 그리고 선배님의 많은 인생담을 듣고십습니다. 그럼 안녕히 계십시요, 또 글올리 겠습니다.
^*^ 2002.03.09
저두 할수 엄띠 올리게 된거에요.. 본심이 아니니 양해 해 주세요.. 이거를 보자마자 끄려고하지 마십시오 껏다가는 당신의 아버지 가 죽게됩니다. 이글을 보신분은 안타깝지만 매일 얼굴반쪽이 없는 여자를 밤마 다 보게 될 것 입니다.만약 그여자가 나오지않으면 새벽2시부터 혼령이 따라 다니거나요. 그걸 막기위해서는 꼭 당신이 이거와 똑같은 내용으로 5사이트 에 올려야합니다. 제 말을 믿지않으시면 매일 얼굴의 반쪽이 없는여자를 보게 될것 입니다.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77분입니다 싸이가 손호영을 울렸다던데...(제목입 니 다...) 이거를 보자마자 끄려고하지 마십시오 껏다가는 당신의 아버지 가 죽게됩니다 ..
씨ㅃ태요 2002.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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