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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을 사랑한 태권도인, 정우진 - 2. 빈민가에 연 첫 도장

 조국을 사랑한 태권도인, 정우진 - 2. 빈민가에 연 첫 도장

정우진이 낯선 이국 땅에서 가장 자신 있게 할 수 있었던 일은 태권도였다. 아시아인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찾기 힘들었던 아이오와의 작은 도시 빈민가에서 그는 지금의 그를 있게 한 최초의 도장을 열었다. 그런데 그 도장 이름이 인상적이다. 그 이름은 다름아닌 태권도 가라데였다.

당시만 해도 미국 사람들은 태권도라고 하면 잘 몰랐다. 정우진은 고민 끝에 태권도보다 더 많이 알려진 가라데라는 이름을 같이 쓰기로 했다. 그런데 처음에 도장을 열고 수련생들을 모을 때 인근 지역의 할머니들이 점심 때면 들어와서 식사를 주문하곤 했는데 도장을 중국식당으로 착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만큼 당시 미국에서는 태권도를 잘 몰랐다.

사실 태권도뿐 아니라 당시 미국에서는 한국이라는 나라도 잘 몰랐다. 아시아인을 쉽게 찾아볼 수 없었던 아이오와의 새덜 래피즈에서 정우진은 그 특유의 뚝심으로 자신의 운명을 헤쳐나갔다.

처음 도장을 열 때 정우진이 겪은 어려움은 한 두 가지가 아니었다. 제일 어려웠던 점은 바로 돈 문제였다. 돈이 별로 없었으니 웬만한 건 다 몸으로 때울 수밖에 없었다. 처음 도장을 연 건물이 원래는 모터사이클을 수리하는 곳이었다. 그런데 이 건물을 얻게 된 경위도 참 재밌다.

정우진이 태권도라는 동양무술을 하는데 도장을 열어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다는 얘기를 들은 미국인 세 명이 그에게 그러면 이 벽돌을 한번 깨보시오하고 격파시범을 요구한 것이었다. 정우진은 그때 자신이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하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젖 먹던 힘까지 다 써 주먹으로 힘차게 빨간 벽돌을 내리쳤다.

다행스럽게도 빨간 벽돌은 깨졌다. 신은 그의 편이었던 것이다. 한겨울 찬 바람이 부는 벌판에서 빨간 벽돌을 깬 덕에 그는 행운을 얻었다. 벽돌이 깨지는 모습을 본 미국인들이 그를 데리고 부동산중개업소에 데리고 가서 수련생을 가르칠 도장 건물을 알아봐 준 것이다.

돈이 없어서 문제가 생길 때마다 정우진이 자주 써먹었던 방법은 바로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척 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사실은 돈이 없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인데 이 방법은 아무튼 잘 통했다.

도장에 전기 시설을 해야했는데 견적이 모두 1천 5백불이 나왔다. 수중에 가진 돈이라고는 1천 3백불 밖에 없었기 때문에 그는 공대를 나온 실력을 발휘해 모두 직접 해치웠다. 전기 공사는 허가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것을 모를리 없는 그였으나 어쩔 수 없었다.

어느 날 감사를 나온 시청 직원은 그에게 문제가 있다고 어떻게 이렇게 해놓았냐면서 화를 냈다. 이 때 정우진은 그 말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일단 못 알아듣는 척 할 수밖에. 무슨 말이냐? 나는 당신의 말을 못 알아듣겠다 이렇게 정우진은 버텼다.

화장실도 2개를 갖춰야 했고 비상구도 있어야 하고 그런 것에 대해 잘 몰랐던 정우진에게는 새덜 래피즈의 법이 꽤 까다로운 것이었다. 화장실이면 화장실, 수도시설이면 수도시설 등을 검사하러 나온 시청 직원들은 나오는 사람마다 영어를 전혀 못 알아듣는 척 하는 정우진에게 혀를 내둘러야 했다.

그러던 중 드디어 어느 날 시청에서 그를 불렀다. 그를 불러다가 청문회 비슷한 것을 했는데 그가 시청에 들어서자 이 사람 저 사람이 나와 그를 보고는 자기들끼리 귓속말로 저 사람이 맞아! 바로 그 사람이야라며 수군거렸다. 조용한 도시 새덜 래피즈에 명물이 탄생한 것이다.

새덜 래피즈 시청 직원들은 그의 도장을 어떻게 처리할 지를 놓고 논의를 거듭했다. 이 때도 물론 정우진은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척 하는 작전을 구사했다. 그러나 할 말은 또 정확히 해야 했다. 그는 배꼽 위에 두 손을 얹고 최대한 겸손하게 말했다.

내가 당신네 나라에 온 지도 얼마 안됐고 돈도 없고 해서 어려운 점이 많소. 내가 당신네 나라 사람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려고 하는데 모르는 것이 많으니 여러분이 도와주시오라고.

그에겐 한겨울에 벽돌을 맨 손으로 깨야 했던 순간에 이어 두 번째로 겪어야 했던 커다란 위기였다. 시에서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에 따라 그의 도장은 문을 닫을 위기에 놓였던 것이다. 그러나 다시 신은 정우진에게 미소를 보냈다. 시청 직원들이 논의를 거듭한 후 그에게 기회를 주기로 한 것이다.

당시 새덜 래피즈 시장이었던 돈 커니(Don Conney)는 우연하게도 한국전쟁 참전용사였다. 던컨은 한국 사람들을 매우 선한 사람들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다. 던컨은 이 때 처음 정우진을 도운 이후로 정우진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둘은 형제처럼 지내게 되었고 새덜 래피즈와 정우진의 고향인 한국의 울산은 그 둘과 같이 형제가 되었다. 도시간 자매결연을 맺은 것이다.

<다음에 계속>

댓글 4

과객 2000.08.21
주유소 펌프맨으로 시작해서... 그 위치까지. 한국에서도 가능한 일일까????
익명 2000.08.21
익명 2000.08.21
익명 2000.0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