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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홍희 국제연맹 총재의 '틀' 해설-(김준성 기자 2000.8.14)

최홍희 국제연맹 총재의 틀 해설


국제태권도연맹(ITF)에서는 품새를 틀이라고 부른다. 최홍희 국제태권도연맹 총재가 지은 태권도 백과사전에서 틀에 관한 해설을 일본 도쿄에서 활동중인 박정현 사범의 제공으로 소개한다.

국제태권도연맹의 틀은 모두 24개로 구성되어 있으며 한국 역사에 존재했던 인물이나 사건을 상징해 틀의 명칭을 정한 것이 인상적이다.

태권넷 웹진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태권도 관련 조직들을 공정하게 다루고자 한다. 우리 태권넷 웹진이 서로 다른 태권도 관련 조직이나 수련단체들이 서로를 잘 알고 교류할 수 있는 마당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지고 있다.

이 글이 국제태권도연맹의 틀에 대한 궁금증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틀(패톤)

이는 이로라는 고대의 동양법이나 눈은 눈으로라는 서양의 하무라비의 법전과 같이 옛날에는 고의적이든 과실이든 살인자 즉 사람을 죽인 자는 죽여야 한다는 법이 단순하고도 엄했다. 조금도 융통성이 없는 사회환경이라 련습중 사고로 다칠 것을 생각하여 사람과 사람끼리 공격과 방어의 기술을 련습한다는 것은 엄두조차 내지 못한 일이였다.

따라서 서양사회에는 가상적을 상대로 싸우는 련습을 할 수 있는 쐐도우복씽 그리고 동양에는 오늘과 같이 발전된 맞서기의 방법이나 제도가 연구되기까지는 군대가 어떤 가정된 적정하에서 전쟁연습을 하듯이 여러명의 가상적을 조직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동작들을 한데 묶어 누구든지 실제의 상대없이도 능히 싸우는 련습을 할 수 있는 방법이 각각 생긴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여러 가지 공격과 방어의 동작을 리치와 뜻에 맞춰 한데 묶어놓은 것을 태권도에서는 틀이라 한다. 그러므로 틀을 통해서 맞서기의 기술향상은 물론 근육단련, 호흡조절, 중심이동, 부드럽고 률동적인 동작 그리고 기본련습이나 맞서기에서 습득할 수 없는 특수한 기술도 련마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기본동작과 틀의 관계를 말한다면 기본동작은 알파베트나 군대의 각개 훈련에 비할 수 있고 틀은 단어 혹은 분대, 소대와 같은 단위의 전투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틀은 모든 중요동작의 집합체와 같은 까닭에 그 자체가 맞서기의 련속이자 격파, 특기, 호신술 또는 예술적 미의 련속이라고 할 수 있고 맞서기는 상대방에 의하여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는 반면에 틀은 상대가 있거나 없거나 자기의 실력을 그대로 나타낼 수 있는 것이므로 수련이나 경기에 있어서 모든 기술을 측정할 수 있는 바로메타라고 할 수 있다.

틀에서 꼭 지켜야 할 사항은

1. 시작한 지점(X)에 와서 끝내야 한다. 이것이 또한 동작의 정확도의 표시이기도 하다.
2. 언제나 정확한 자세와 목표에 대한 몸의 방향을 적절히 유지해야 한다.
3. 모든 동작은 힘을 줄 때는 주고 뺄 때는 빼야 한다.
4. 모든 동작은 부드럽고 률동적이어야 하며 어떠한 경우라도 동작이 딱딱해서는 안된다.
5. 모든 동작은 백과사전에 명시한대로 빠를 때는 빠르게, 느릴 때는 느리게 그리고 련결할 때는 련결함으로써 틀의 무용화를 방지하는 동시에 각 동작이 가지고 있는 목적을 다할 수 있다.
6. 한 틀을 완전히 익숙한 다음에 다음 틀을 배워야 한다.
7. 각 동작의 목적과 방법을 확실히 리해해야 한다.
8. 각 동작마다 실감 즉 눈앞에 가상적을 그리면서 련습해야 한다.
9. 공격과 방어는 한쪽 손이나 발에 치우쳐서는 안된다.

종합본에 있는 모든 틀은 D방향을 향하여 시작한 것을 가정했다(연무선 참조).
태권도에는 도합 24개의 틀이 있다.

24개의 틀을 만든 이유는

인간의 일생은 가령 100년을 산다 하더라도 이것은 영원한 세월에 비하면 단 하루에 불과한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생은 영세를 잠간 지나가는 하루의 나그네와 같다. 과연 누구든지 제한된 시간 이상은 살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사람들은 마치 1000년이나 살 것 처럼 자신들을 물질의 노예로 만드는 반면에 또 어떤 사람들은 후세들에 훌륭한 정신을 유산으로 남기려고 노력하는 바 전자는 실로 우매한 처사이고 후자는 영원을 구하는 현명한 처사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물질은 변하여 없어지지만 정신은 영원불멸한 것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물질이 아니라 인류의 복지를 위하여 무엇을 남기고 갈 것인가 하는 정신이다.

여기에 나는 20세기에 잠간 지나가는 한 나그네로서 인류와 평화를 위해 나의 발자취를 남기고저 태권도를 만들었다. 그리고 24개 틀은 하루인 24시간 즉 나의 전생애를 의미하는 것이다.

틀 해설

태권도 틀의 특징은 가볍고 무거운 동작 그리고 빠르고 느린 동작을 혼합함으로써 몸이 가벼운 사람도 무거운 동작을 할 수 있는 반면에 몸이 무거운 사람도 가벼운 동작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과 함께 발기술을 널리 사용하는데 있다.

모든 틀의 명칭이나 동작의 수 또는 연무선은 우리 나라 력사적 인물들의 이름이나 호를 따서 지었으며 또한 그 시대에 일어난 사실들을 상징한 것이다.

천지

문자 그대로 하늘과 땅이란 말인데 이것은 우주의 창조와 인간의 시초를 뜻한 것으로서 초심자들이 제일 먼저 배우는 틀이다. 그리고 연무선(+)을 두 번 돌게 한 것은 한번은 하늘을 그리고 또 한번은 땅을 각각 의미한 것이다.

단군

기원전 2333년에 조선을 창조한 전설에 가까운 단군성조를 뜻한 것이다.

도산

평생을(1876-1938) 조선독립운동과 학계에 헌신한 안창호 선생의 아호를 딴 것이다.

원효

686년 신라에 불교를 전수한 원효대사를 뜻한 것이다.

률곡

조선의 철학가이자 학자인 이이(1536-1584) 선생의 아호를 딴 것으로서 38개 동작은 그가 탄생한 지역의 위도를 그리고 연무선(士)은 선비를 각각 의미한 것이다.

중근

조선 주둔 초대 일본인 총독이며 조일합병의 괴수로 널리 알려진 이등박문을 할빈역에서 처단한 애국자 안중근 의사를 뜻한 것으로서 32개 동작은 그가 1910년 려순감옥에서 순국할 때의 년령을 의미한 것이다.

퇴계

한학의 권위자인 대학자 이황(16세기) 선생의 아호를 딴 것으로서 37개 동작은 그가 탄생한 지역의 위도를 그리고 연무선(士)은 선비를 각각 의미한 것이다.

화랑

제7세기 신라시대에 청소년으로 구성된 하나의 군사단체로서 삼국통일의 원동력이 된 화랑도를 뜻한 것이다.

충무

오늘날 잠수함의 모체로 알려지고 있는 거북선을 1592년에 발명한 리순신 장군의 시호를 딴 것으로서 이 틀이 왼주먹공격으로 끝마친 것은 넘쳐흐르는 충성심에 사로잡혀 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다 발휘할 기회를 가지지 못하고 순직한 것을 상징한 것이다.

광개

만주 대륙의 대부분을 포함한 모든 실지를 회복한 고구려 제 19대 왕인 광개토대왕을 의미한 것이다. 연무선(土)은 실지를 회복하고 또 강토를 넓힌 것을 표시하며 39개 동작은 그가 왕위에 오른 391년의 처음 두 수자를 뜻한 것이다.

포은

유명한 시조 이 몸이 죽고 죽어 일백번 고쳐 죽어 백골이 진토되어...를 읊은 고려 말기의 충신이자 물리학의 선구자인 정몽주(14세기)선생의 아호를 딴 것으로서 연무선(一)은 그의 변함없는 충절을 표시한 것이다.

계백

백제의 명장 계백장군(660)을 뜻한 것으로서 연무선(l)은 엄격한 군기를 표시한 것이다.

의암

3.1 독립운동(1919)때의 조선민족을 대표한 손병희 선생의 아호를 딴 것으로서 45개 동작은 1905년에 동학을 천도교로 개명선포할 때의 그의 년령을 의미한 것이며 연무선(l)은 조선민족의 번영을 위해 바친 그의 백절불굴의 정신을 뜻한 것이다.

충장

제14세기 익호장군으로 용맹을 떨친 김덕령 장군의 시호를 딴 것인데 마지막 동작이 왼손으로 끝난 것은 장군이 27세에 모략으로 전라북도 려순 옥중에서 억울한 죽음을 당할 때 할 일을 다하지 못한 채 어린 나이에 처형된 것을 의미한다.

주체

사람은 만물의 지배자이며 또한 모든 것을 자기의 뜻대로 결정하는 존재라는 주체철학적 사상 다시 말하면 사람은 자연을 자기 의사에 복종시키며 자기 운명은 자기가 결정한다는 사상인데 이는 배달민족의 상징인 백두산에 뿌리를 박은 것이다. 그리고 연무선(山)은 백두산을 의미한 것이다.

삼일

이것은 1919년에 력사적인 3.1 독립운동이 선포된 3월 1일을 의미한 것이며 33개 동작은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33인의 조선민족대표를 뜻한 것이다.

유신

삼국통일에서 이름을 떨친 신라의 명장 김유신 장군을 뜻한 것으로서 68개 동작은 통일된 668년의 마지막 두 수자를 표시한 것이다.
그런데 준비자세에서 칼을 오른손으로 뽑아야 할 것을 왼손으로 뽑은 것은 외세와 야합하여 동족에게 불리한 전쟁을 한 것을 의미한다.

최영

고려말기(14세기)의 수상이며 삼군도통사였던 최영 장군의 이름을 딴 것이다. 최영 장군의 충성심과 애국심 그리고 겸손한 풍모는 온 국민의 의표가 되었으나 그의 부하였던 리성계(리왕조의 시조)의 반란으로 처형당했다.

연개

고구려의 명장 연개소문을 뜻함인데 49개의 동작은 그가 안시성싸움에서 당태종이 이끈 근 30만의 당나라군사를 물리치던 해인 649년의 마지막 두 수자를 표시한 것이다.

을지

이것은 고구려 명장(제7세기) 을지문덕 장군의 이름을 딴 것으로서 연무선(乙)은 그의 이름의 첫 자를 의미한다. 동 장군은 612년에 당나라 양제가 이끌고 우리 나라를 침입한 약 100만에 가까운 대군을 유격전으로 완전히 분산격퇴시킨 유명한 전략가였다. 그리고 42개 동작은 이 틀을 만들었을 때의 저자의 나이를 뜻한 것이다.

문무

신라 제 13대 왕인 문무대왕을 뜻하는 것인데 61개 동작은 그가 왕위에 오르던 661년의 마지막 두 수자를 표시한 것이다. 문무왕의 시체는 그의 유언인 나의 혼은 그곳에서 영원히 내 나라를 일본의 침략으로부터 방위하리라대로 바다 안에 있는 대암산에 매장되였고 신라문화의 극치로 알려져 있는 석굴암은 바로 이 왕묘를 지키기 위해 지어진 것이라 한다.

서산

임진왜란(1520-1604)때에 승병을 일으킨 서산대사 최현응의 호를 딴 것인데 72개 동작은 그의 제자인 사명당의 도움을 받아 승병을 일으킬 때의 년령을 뜻한 것이다. 용감무쌍한 이 승병들은 1592년 평안도까지 침입해온 왜적을 완전히 물리칠뿐만 아니라 리순신 장군과 련합작전하여 통천 앞바다에서 거의 전멸시켰다 한다.

세종

이것은 조선력사상 가장 뛰어난 제왕의 한 사람으로서 1442년에 세계 최초의 측우기와 1443년에 한글을 발명한 세종대왕을 의미한다. 연무선(王)은 대왕을 의미하며 24개 동작은 훈민정음의 수자를 뜻한 것이다.

통일

이것은 1945년 남북으로 갈라진 조선을 통일할 데 대한 결의를 표시한 것이며 연무선(l)은 단일민족을 뜻한 것이다.

댓글 3

림 원 섭 2000.10.24
태권도 림원섭 개척 사범의 견해. 1. ITF 태권도 최홍희 총재는 틀(품새)를 창시한 것이 아니라고 본다. 왜 ? 그 이유는 예를 들어 막기의 기본인 ITF 낮은데 막기(WTF-아래 막기) 하나만 보아도 잘 알 수 있다. 즉 막았을 때 막지 않는 손(주먹)은 허리에 오기 때문이다. 이 동작은 일본 공수도(karade) 동작과 같다. 일본 공수도 동작은 태권도보다 먼저 생겼다. 그래서 창시냐, 준 창시냐? 아니면 표절이냐, 옮겼냐, 비슷하게 만들었냐? 이것이 문제다. 최홍희씨는 일본 중앙대학 범과에 다닐 때 가라데를 했다. 그럼 WTF 품새는 어느 누가 만들었는가 ? 그 만든 자는 공수도를 한 자인가을 구체적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틀과 품새 동작들은 일본 공수도(空手道-karade) 동작과 같다. 일개 국의 국기가 남의 나라 무술 동작과 같아서야 되겠는가! 본인의 의견은 당연히 틀과 품새는 바꿔져야 한다고 본다. 2, ITF 24 틀과 국기원(WTF) 17개 품새, 팔괘 8개. 천지, 단군(성조), 도산(안창호), 원효(대사), 율곡(이이), 중근(안중근), 퇴계(이황), 화랑(화랑도), 충무(이순신), 광계((광계토대왕), 포은(정몽주), 계백(백제의 명장, 계백 장군), 의암(손병희), 충장(임진왜란, 김덕령장군), 주체(김일성)-(고당-조만식)-월래는 고당으로 되었던 틀을 1985년 전후로 해서 주체 틀로 바꾸었다. 삼일(3.1운동), 유신(김유신), 최영(고려 말기 장군), 연개(연개소문), 을지(을지문덕), 문무(신라 13대왕), 서산(대사), 세종(세종대왕), 통일. 17개 품새: 태극1장-2,3,4,5,6,7,8,장, 고려, 금강, 태백, 평원, 십진, 지태, 천권, 한수, 일여. 팔괘 1장-8장까지. 이런 이름들을 붙인 것은 좋은 생각 이였다. 그러나 결국 그 역사의식은 ? 품새 태극 팔괘는 중국의 음양의 철학이고 중국의 지방장관 이였던 주돈이(1017-1073)이라는 사람이 만든 것이 태극(중국의 점괘)이다. 중국 무술 중에서 태극권이라는 것도 있다. 우리 것은 어디에 있는가? 철학은 중국것이고 동작은 일본 것인가? 3, 형에서 틀로 - ITF 교본 1966.7.1일자 국방부에서 출판된 책에서와 1972.5.10일 책에는 형(型)으로 되었다가 1983년 영문으로 된 책에서부터는 틀로 바꿨다. 그 형(型)의 용어는 공수도 용어다. 4, 틀의 동작은 예속이다. ITF 책에 들어 있는 우리 선조 단군과 항일 하다가 목숨을 받쳤던 도산, 안창호, 중근, 안중근, 충무에 이순신외 전 백성이 독립운동으로 많은 희생이 되였던 날 3.1일, 등등을 기념하기 위해서 만든 틀들은 일본 공수도 동작으로 만들어지었다. 결국 근 세대에 우리 민족의 맥을 살렸던 의로운 선조들 의 정신을 일본 문화인 공수도(karade) 동작에다가 예속시킨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5, ITF 및 국기원(WTF) 급, 단 제도는 유도 창시자 가노지고로씨가 만든 급, 단 제도를 100년 넘은 오늘까지도 국기라는 태권도에서 사용하고 있다. 6. 화랑틀과 유신틀을 만든 자의 역사의식.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누구이며 삼국통일은?). 당나라 장군 소정방(592-667)의 잔꾀의 몇 수에 놀아난 것은 소위 외교에 능수 능난 했다던 사대주의(事大主義)의 시조(始祖) 김춘추는 결국 남에게 그 넓은 땅까지 주면서 빼앗기면서 예속이 된 것이 였으니까 말이다. 이 때 유명한 장군은 사대주의의 시조 화랑도 출신 이였던 김유신(595-673)은 김춘추(태종 무열왕=604-661)와 동서지간이다. 그 외 부하들 화랑도는그 들의 명령에 의해서 무고한 생명들을 무지막지하게 살상한 자들이다. 바로 그때 그 므렵 민간 청년 단체 화랑도는 관에서 운영 총 지도자에 국선(國仙, 源花, 花主) 그 밑에 화랑이 있었다. 이 화랑이 지켜야할 도리는 유, 불, 선(儒, 佛, 仙) 3교(敎)의 정신인데. 그것은 석가의, 공자의, 노자의, 가르침이였고, 화랑의 지도와 고문을 담당한 원광법사(圓光法師)가 귀산(貴山) 추항( 項)하여 두 화랑에게 가르킨 세속오계(世俗五戒) 1, 사군이충(事君以忠), 2, 사친이효(事親以孝), 3, 교우이신(交友以信), 4, 임전무퇴(臨戰無退), 5, 살생유택(殺生有擇) 이것만 보아도 완벽히 세뇌되여 인형이 된 것이다.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자비(慈悲)였는가 ? 말하자면 화랑의 정신은 유가덕목(儒家德目)인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을 철저히 가르쳤지만 그것이 모순이고 위선이였다. 그 모순은 완벽히 삼천포로 빠지는 어긋난 살인을 밥먹듯이 했던 위선의 행각을 했었다. 즉 화랑정신은 인(仁), 도(道), 예(禮), 덕(德), 의(義)가 전혀 없었던 정치 깡패 살인 집단 이였다. 왜냐하면 ! 물론 이 때의 시절을 너무도 욕심이 많게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화랑도에서 인(仁)이란 글자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이 인(仁)이란? 남을 공경하기 위해 마음을 닦는 것이 인(仁)인데, 즉 사랑인데 화랑에서는 남을 위해 인(仁)을 사용한 것이 아니고 권력이 사용하기 위해서 있었던 것이다. 또 충(忠)과 효(孝)와, 신(信)과, 용(勇)만 있지 남을 공경하기 위해 나를 올바르게 하는 것인 예(禮)도 없고. 또 남을 공경하기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의(義)데 이 의(義)도 없다. 특히 지혜로움(智)은 공경을 통해 남을 용서하고 관용을 배프는 자비 같은 것도 없다. 특히 남을 위해 자기를 버릴 수 있어야 하며 불의(不義)는 목숨을 걸고 거부해야 한다. 그것이 사람과 그 사회를 나라를 공경하는 도(道)인데 이것도 없고 즉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옳은 것과 그릇된 것을 확실히 분별하여 사람들을 살게 해주고 사람들의 생활 윤택과 의식수준을 높여주게 해주려고 힘쓰는 도(道)가 없다. 더더욱 생명의 근원인 덕(德)이 없는 단체가 화랑도였던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진흥왕 37년(576)이나 그 보다 전인 진흥왕 23년 (562)에 이미 화랑은 가야 정벌에 종군하여 대야성을 공격하여 큰공을 세웠다. 그러니까 이전부터 있었던 공동체를 후에 국가적으로 편제 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 예로 진평왕 19년(597) 백제와 싸움에 나아가 적진 돌진 임전무퇴의 정신을 보여 준 적도 있었다. 그러니까 200여명의 훌륭한 업적, 말하자면 신라 삼국 통일에 크게 기여했다 함은 그 만큼 살인을 많이 했다는 것인데, 요즘 말로 하자면 정치 깡패 집단 이였다, 즉 특수 게리라 부대였던 것이다. 화랑이 있었기 때문에 신라가 삼국을 통일했을지 모르겠지만 당 나라 소정방을 끌어 드리지 말고 고구려 장군이나 백제 장군을 끌어드려 김춘추와 김유신의 그 특유한 간교(奸巧)한 머리로 백 번 이용했다면 오늘날과 같이 우리 나라 땅덩이가 작은 나라가 아니 되었을 것이다.(그 나마도 잘려 있지만). 동대 사회학 강정구 박사는 이렇게 글을 쓰며 억울해 했다. 통일신라의 민족통일국가 수립은 우리 민족사에 엄청난 통한(痛恨)의 족 적을 남긴 치욕(恥辱)이였다. 왜냐하면 동족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다. 외세를 업고 같은 민족을 멸망시켜 백제와 고구려의 유민이 조국을 등지게 하는 반민족적. 외세 의존적 통일이었고, 민족통일국가를 좁은 반도의 한 귀퉁이로 움츠러들게 하여 만주벌판에서 웅비하던 우리 민족의 위상을 위축시킨 "역사갈림길" 이였다 라고 말하면서 신라에 의한 민족통일은 첫째, 당나라라는 외세를 끌어들어 동족을 멸망시킨 반민족공동체적이고 반 자주적인 통일 이였다. 둘째, 엄밀한 의미에서 3국 통일이 아니라 백제를 신라의 지배로, 고구려를 당의 지배 아래에 놓아 민족을 분단시킨 2국 통일 이였다. 일부 학계에서는 신라와 당나라 사이의 사전 합의가 있었다고 한다. 이것이 역사적 사실이든 아니든 상관없이 결과적으로 이와 유사한 구도가 형성 되였고 또 이러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외세를 끌어들여 동족을 멸하는 반민족행위를 자행한 통일이였다. 셋째, 민족구성원을 끌어안아 공동체의 일원으로 포섭하기보다는 백제와 고구려의 일부를 내부 식민지화하여 수많은 백제 유민이 신라의 노예가 되기보다는 일본으로 이주하게 한 지배 종속의 통일 이였다. 넷째, 이렇게 영토 적 통일과 민족적 반 통일성은 그후 조선 초기까지 무려 800백년 이상 민족적 질곡과 멍에를 남긴 통일 이였다. (통일시대의 북한 학-강정구, 210-211쪽=당대) 소설가(45-50여권의 책을 씀) 국문학자 정비석(1911-1991) 선생님은 아래와 같이 비통해 했다. 자고로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은 만고의 진리라고 하시면서-. (김삿갓 88.7.15일-고려원) 고구려와 신라는 같은 조상의 피를 받아 오는 동족 국가들이다. 그런데 집안 싸움에서 승리하기 위해 피가 다른 당나라 군사들을 불러들였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처사였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설사 세나라가 통합을 못하는 한이 있어도 혈통이 다른 당나라의 도움만은 받지 않았어야 옳을 일 이였다. 신라는 이민족의 도움으로 삼국을 통일했다가, 그로 인해 얼마나 많은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인가. 고구려는 북방에서 새로 일어난 이민족 국가들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아 오고 있는데다가, 남쪽에서는 동족 국가인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에 급급하여 이 민족인 당나라와 연합군을 형성하여 남과 북으로 고구려를 협공해 왔기 때문이다. 신라가 만약 이민족인 당나라와 손을 잡고 고구려를 치지 아니하고 동족 국가인 고구려와 힘을 모아 당나라로 쳐들어갔드라면, 오늘날 광범한 만주 전역은 우리네의 국가가 되어 버렸을 것이 아닌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진리를 신라는 그러한 진리를 모르고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를 멸망시켜 버렸기 때문에, 그로 인해 우리 민족은 결론적으로 약소민족의 비운을 초래하게 된 것이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기 위해 이 민족인 당나라의 도움을 받아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킨 것은 신라 무열왕(김춘추)과 화랑도 김유신이 있을 때다. 일반적으로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것을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의 위대한 업적이였다고 찬양해 오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민족사적 견지에서 볼 때, 그러한 견해는 과연 올바른 비평이였을까 !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삼국 통일에만 급급한 나머지, 이민족인 당나라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인 백제와 고구려를 멸망시켜 버림으로써 고구려가 이미 점령하고 있던 광대무변한 만주 대륙을 이민족에게 도로 빼앗겨 버리고 말았다. 그뿐이랴. 우리 민족은 약소민족으로 전락됨으로써, 당나라의 뒤를 이어 일어난 원(元) 명(明) 등의 이민족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달림을 당했던 것인가. 그렇게 따지고 보면,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이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 국가를 멸망시킨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라는 이민족의 힘을 빌려 동족상잔의 불상사를 일으켰기 때문이였다. 옛 글에서 보면 형제끼리는 비록 담 안에서는 싸울망정, 외부에서 덤벼올 때에는 모두가 힘을 모아 막아내야 한다고 했다. 신라와 고구려와 백제는 비롯 싸우기는 하드라도, 형제간의 싸움에 이민족을 불러들인 것은 크게 잘못된 일이었던 것이다. 국가의 흥망은 수시로 반복 되여도, 피가 같고 말이 같은 동족은 언제나 공동 운명체인 것이다. 무열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그와 같은 영원한 진리를 몰랐기 때문에, 목전의 소(小)이익에만 눈이 어두워 민족적인 대의(大義)를 그르쳐 버렸던 것이다. 그로 인하여 천여 년 이상이 경과한 오늘에도 우리 겨레는 약소 민족의 비운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영토가 귀한 줄만 알고 피가 귀한 줄은 모른 까닭에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고 큰 우(愚)를 범했다고 볼 수밖에 없었다. 그로 인하여 우리 민족에게 사대주의 사상이라는 천년화근(千年禍根)까지 심어 놓았다. 신라는 남의 힘을 빌려 삼국을 억지로 통일했기 때문에, 힘을 빌려준 나라에 대해 머리를 굽신거려야 할 것은 뻔한 일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신라는 당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겨 왔었다. 그 후에 당나라가 원나라와 청나라로 바뀌고, 신라가 고려로 변했다가 조선 왕조로 바뀐 뒤에도 그들은 우리 나라를 항상 종속국 취급을 해오지 않았던가. 그래서 5백년 동안 매년 7백만 양씩 상납하고 사람도 금은 보화도 빼앗기고 주어 가면서 살았지 않았는가 말이다. 사대주의자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 두 동서의 생각 빈곤으로 백성들은 가난하여 허덕이며 엄청 죽어야 했다. 그와 같은 사대주의 사상은 우리 민족의 사기를 위촉시키는 데 커다란 작용을 해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한 일들을 생각하면 무열왕 김춘추와 화랑도 김유신은 삼국통일의 영웅이 아니라 우리 겨레의 영원한 죄인이며 역적이다라고 생각한다. 본인이 1982.1.-6월초까지 평양에서 이북 제2기생 국제 사범들을 가르킬 때 그 학생들에게 의암과 고당을 또 화랑과 유신 틀을 가르킬 때, 나에게 배우던 학생들 모두는 질문하는 시간에 위 4개의 틀에 대해서 본인에게 공격 특히 고당, 화랑, 유신 틀에 대해서 나쁜 사람들입니다 라고 항의를 할 때 나의 궁색한 대답은 나쁜 것이 있어야 좋은 것이 있어 비교가 되지 않겠는가고 답을 했지만, 그렇게 답 한지 18년이 지난 오늘도 난 몹시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다. 언젠 내가 죽지 아니하고 만약 만나게 된다면 난 진심으로 질문한 그들에게 사과를 하려고 한다. 7. 정치의식 의암 손병희 선생님은 3.1운동 때 33인의 대표(33인 거이다 배신)였다. 갑오 봉기 후 북접(호서지방), 남접(호남지방) 즉 일본으로 망명하고 뒤돌아와 신파, 구파의 갈등으로 해서 완전 종교화 시켜 버린 것과 고당 조만식 선생은 조선 민주당 반 소련 기독교(쾌이켜)인으로 미군정에 적극 참여한 것으로 보아서 우리 민족적인 차원에서 이 두 분이 틀에 들러갈 정도로 큰 인물이 될 수 있는가에서 최홍희씨는 식민지 지배의식으로 그 시절의 정치, 역사의식은 오늘에 정치, 역사의식을 따라가기에는 퍽 바쁘다. 물은 흐를 수록 맑아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틀 총 706 동작이다. 물론 중복된 동작이 많다. 품새, 팔괘까지 합하여 600 동작이다. 물론 중복된 동작이 많다. 틀과 품새에서 없는 차기 동작이 더러 몇 개 맛 서기(ITF)와 겨루기(WTF)에 있다. 8. 태권도 공원 모가지에 핏대를 세우고 이 이야기를 한지 이 말은 한지 훨씬 넘어 어-연 강산이 두 세 번은 변하였나 - 아 - 네 것, 내 것, 참 우리 것이라면 - 태권도 마을 태권도 동산 태권도 공원 한라산에 있으면 더 좋고 백두산에 있으면 더 좋고 설악산에, 지리산에, 금강산에, 묘향산에, 도봉산에, 단풍의 고향 정읍 내장산에 있으면 참 멋 질 거야 그러나 으뜸 엄지손가락 지역은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의 용산 미8군사령부 자리가 최고 일거야 - 2000.05.10일 씀. 2000.10.14일 스웨덴 시인 림 원섭 씀. 태권도 개척사범, 전(全) 무도 윤리 학회, 물흙길, 폭죽 안전 발사대 발명, 특허권자. 시집; "흐르는 물 함께 가는데" (살림터 2000.5.6일 출판).
지나가다가... 2001.09.11
혹시나 이글을 보신다면... 나는 당신이 누군지 모릅니다 다만 여기서 몇번 당신이 남긴 글을 접하게되었고 내 나름의 생각을 전하고 싶어서 몇자 남겨 봅니다 얼핏 스쳐가는 글들속에서 북쪽 이야기와 스웨덴쪽 이야기들이 나오는걸로 짐작하건데 아마도 지금 남한에 계신분 같진 않은데요... 여기 써놓으신 많은 글들대로라면 그동안 우리가 알고있던 많은 훌륭한 선조들은 다 매국노이고 썩은 정신의 소유자이고 우리는 너무도 멍청하고 바보라서 다 속아왔고 오로지 당신만아 똑똑해서 그 모든 사실들을 꿰뚤어보고 있는것 같군요...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당신은 그 시대를 살았던 사람도 아니고 당사자들은 더더욱 아닙니다 다만 당신도 남들이 써놓은 글 해놓은 이야기들을 전해들은것 뿐이지요 모두가 다 그렇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당신의 주장이 바르던 그르던 간에 당신이 틀렸다고 기술해놓은 글을 주장한 사람들은 한가지 입장에서는 분명히 당신보다 훌륭합니다 그들은 최소한 민족의 자긍심이라는 한가지 대명제는 남겼으니까요 물론 당신이 틀렸는지 맞는지 나는 모릅니다 분명한것은 당신이 기술한 글들이 역사적 사실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매국적이라는 느낌이 아주 강하다는 것이지요 다른사람들이 일부러 혹은 어떤 의도하에서든 역사를 고의로 조작했다면 그것은 분명히 잘못된 일입니다 그러나 당신자신도 한민족의 한사람이라면, 당신은 그들보다 훨씬 잘못된 말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은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그들은 남에게 큰 상처였던 너무도 확실한 사실들을 자신들의 입장만을 내세워 왜곡하고 있지만,당신이 반박했던 대다수의 사실들은 우리들의 일들이며 그것을 전한 이들은 직접 확인할길이 없었을테니까요 그리고 그 모든것을 떠나서 당신의 글들은 마치 당신이 한민족임을 부끄러워 한다는듯한 느낌을 받게 합니다 그것은 단지 나만의 느낌인 것인가요? 그렇기를 바랍니다 기나긴 역사속에서 훌륭한이들도 많았을것이고 그만큼이나 잘못된 일들도 분명히 많았을 것입니다 최홍희 총재에 대한 개인적 의견이든 아니든간에 무조건적으로까지 느껴지는 당신의 적대적인 글들은 옳지 않다고 느껴지네요 e-mail 남깁니다 혹시 제 말들에 대해 하고픈 말이 있으시다면 기다리겠습니다
태권전사 2002.01.11
정말 멋진 표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