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구에서 태권도로-'인간 승리' 컨켈 (조현진 기자 2000. 8. 8)
농구에서 태권도로-인간 승리 컨켈

미국 올림픽 대표 여자부 +57kg의 바바라 컨켈(Barbara Kunkel, 32)은 다른 선수들과는 경력이 다르다. 그녀는 대학에서 농구 선수로 뛰었을 정도로 농구에 대단한 애착을 가졌던 농구선수였다.
농구시합에서의 두 번의 무릎 부상 후 시작한 태권도, 그녀의 인생을 바꾸어 놓기에 충분했다. 이제 그녀에게 태권도는 인생 그 자체가 되었다.
다음은 그녀가 그녀의 인생과 태권도에 대해 쓴 글이다.
나의 목표는 농구였고 뉴욕에 있는 농구 대학팀에서도 제의를 받았었다. 그러나 경제적 이유로 내가 살고 있던 타코마(Tacoma)에 가까운 하이라인 주니어 칼리지(Highline Junior College)로 가기로 했다.
1987년 1학년 때 오르간에서 토너먼트 경기에 참가했을 때의 일이다. 나는 아웃렛 패스를 했고 두 명의 선수와 심하게 부딪혀 넘어졌다. 그러나 그 당시에 난 아무런 이상도 느끼지 못했다.
내 무릎은 힘이 빠졌지만 난 애써 걸었다. 그런 일이 되풀이되기 전까지는 상태가 호전되는 것처럼 느꼈다. 난 내가 부상당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고 그렇게 한 달간 운동했다.
결국, 나의 코치는 "난 네가 더 이상 이 상태로 운동하게 놔둘 수 없다."고 말했고 나도 이해했다. 현실이 다가온 것이다. 코치는 내 무릎이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우리는 여전히 낙관적이었다.
나는 수술만 하면 되는 줄 알았다. 부상 회복을 위해 2주를 기다려야한다고 했다. 처음으로 부상당한 운동 선수에게 2주란 시간은 한 사람의 인생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수술이 시작될 때, 의사는 멈칫했다. 그는 부상이 너무 심해서 복원 수술을 해야한다고 했다. 나는 번개를 맞은 듯했다. 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그리고는 부상이 완치되기까지는 1년의 세월이 걸린다는 말을 들었다.
모든 상황이 나쁘게만 돌아가는 것 같았다. 나는 화가 났고 1년이라는 세월을 짧게 줄이겠다고 마음먹었다. 나는 빨리 부상에서 회복하려고 노력했다. 나는 1주일에 3번 스포츠 재활센터에 갔고 더 빨리 회복되기를 바라며 하루 종일 물 안에 있었다.
우리는 삶, 가족 그리고 건강을 잃기 전까지는 그것들을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갱생 치료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쳤다. 사람이 진정 바라고 믿는다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태권도 캠프에서 의족을 한 어느 참가자를 만났다. 그녀는 대단했다. 그녀는 내게 아주 큰 자극을 주었다. 그녀는 내게 사람은 언제나 어떤 것을 추구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약함이나 장애는 옳은 자세와 뭔가를 추구하는 마음으로 극복할 수 있다.
"절대 포기하지 마라"
요즘 큰 이슈가 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정신 상태이다. 우리는 "할 수 없다"라는 말을 우리의 사전에서 빼야 한다. 나에게 있어서 "할 수 없다"라는 말은 0%의 노력이다.
"할 수 없다"라는 말은 실패를 의미하며 포기하기 위한 말이다. 대신에 "이것은 정말 어려워 하지만 난 한번 해 볼테야."라는 말이 훨씬 좋다. 이런 말은 당신이 인생이라는 게임에 앞서 나가게 할 것이다.
다음 농구 시즌에 나보다 더 큰 선수와 같이 리바운드 할 때였다. 난 다시 다른 쪽의 무릎에 부상을 입었다. 내 왼쪽 무릎의 인대가 찢어진 것이다. 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정확하게 알았고 내 머리 속에는 "왜 또 나야?"라는 말이 되풀이되었다.
수술 후에 난 부상당한 다리에 너무 신경을 썼지만 건강한 다리에는 신경을 쓰지 않았고 그것은 건강한 다리의 부상을 가져왔다.
"당신이 다시 농구 선수로 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라고 의사는 말했다. 난 화가 났고 또 내게 일어나는 일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운동은 나에게 전부였다. 왜 이러한 일이 나에게 일어나는 것일까?
두 번 째의 수술 후에 의사는 내게 "만약 이런 일이 다시 벌어진다면 걸을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좀더 신중 하는 것이 좋습니다."라고 내게 말했다.
하지만 난 속으로 "두고 보세요. 저는 다시 뛸 겁니다."라고 말했다.
난 직장을 구하고 저녁에 헬스클럽에서 운동하기로 했다. 그런 일이 나의 인생을 망치게 할 수는 없었다.
매일 갱생 치료, 수영 그리고 라켓볼을 하던 중 어느 날부터 난 대학생들과 농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난 다시 농구 선수로 뛰리라 생각했다.
매일 헬스클럽에서 충분히 운동한 후에 난 2명의 아이를 가라데 수업에 데리고 다녔고 난 앉아서 구경했다. 보면 볼수록 난 가라데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리고 가라데가 농구하기 위한 몸 상태를 만드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더욱이 이것은 공짜였고 어쨌든 난 다시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야만 했다.
난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났고 아침 6시부터 오후 2시 반까지 비행기 음식 서비스 회사에서 일했다. 그리고 가라데 수업이 있는 밤 9시전까지 난 헬스클럽에서 운동을 하거나 농구 또는 라켓볼을 했다. 난 가라데를 너무 좋아하게 되었고 수업이 끝난 후에도 1시간을 더 머물며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가라데라는 스포츠는 뭔가 달랐다. 정말 훌륭했다. 6개월 정도 운동한 후에 난 길 건너에 태권도 도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난 "한번 체크해봐야지"라고 생각했다.
난 태권도 도장에 가서 앉았다. 난 사람들이 너무 열심히 운동하는데 놀랐다. 사범, 차상혁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이었다. 난 한달 동안 매일 구경갔다.
한달 후 사범의 아내는 나에게 "같이 운동하실래요? 아니면 계속 지켜보기만 할 생각이에요?"라고 물었다. 난 운동하기 시작했고 차사범의 첫 번째 미국 학생이 되었으며 여자 학생이었다.
그는 나에게 여자를 가르치기 싫다고 했다. 특히 미국사람을. 난 항상 무엇인가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래서 차사범이 나를 가르치게 했고 다른 누구보다 열심히 운동했다. 오후 3시에 가서 밤 10시까지 운동했다.
처음에 차사범과 난 서로 의사소통을 할 수 없었다. 그는 한국말을 했고 난 영어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 친구가 의사소통을 도와주었고 나와 같이 운동했다.
배우는 기회를 늘리기 위해 난 한국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다. 언어학교가 아니라 한국 아이들을 위한 초등학교였다. 난 이것이 한국어를 배우기 위한 최고의 방법이란 것을 알았다.
난 한국말을 쓰고 말하는 것을 독학했지만 조금 더 실용적인 환경에서 공부해야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욱이 난 문화도 배우고 싶었고 굉장히 재미있었다.
난 한국에 8번 가보았다. 그리고 한국말로 의사소통 할 수 있다는 것은 한국 여행을 더 의미 있게 그리고 더 재미있게 만들었다.
차사범은 태권도에서는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열중했고 2등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에게 그런 것을 강조했다. 가족의 도움과 차사범의 가르침으로 난 빨리 엘리트 급으로 성장했다.
어머니와 차사범은 내게 경쟁의식과 최고가 되기 위해 필요한 집중력을 불러일으켰다. 난 많은 스포츠를 하며 자라왔기 때문에 경쟁의 본질과 더 나아지기 위한 방법을 알았다.
태권도에는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 많았다. 난 차고 싸우는 것을 좋아한다. 발차기는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다리가 더 강함에도 손만을 사용한다. 태권도는 나에게 공중에서 얼굴을 차는 것을 가르쳤다. 발차기는 정말 멋지다.
그리고 태권도에 대한 다른 좋은 점은 사람들에게 자신감과 자기 수양을 하게 한다. 만약 사람이 자신감, 자기 훈련 그리고 존경심을 갖고 있다면 인생에서 더 성취하는 것이다. 자신과 싸우는 것이다.
의사는 내가 태권도를 하는 것에 대해 미친 생각이라고 했다. 하지만 내 무릎은 다치지 않았고 사실, 더 강해지고 유연해졌다. 그리고 또 다른 현실은 내가 농구 선수로서의 인생이 끝나고 있었다는 것이다.
난 내가 하는 일을 좋아했고 대학 농구선수로 뛸 시간이 없었다. 당시에는 WNBA가 없었기 때문에 어쨌든 난 2년 정도 후에는 그만 두어야 했었다. 태권도라면 난 수년 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996년 팀 선발전에서 난 다리를 다쳤다. 난 왼쪽 다리를 전혀 쓸 수가 없었다. 난 결승전에 나가게 되었고 이한원 코치에게 단단히 테잎을 감아달라고 했다. 코치는 "현명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싸우라고 했다. 그러면 어떠한 것도 이겨낼 수 있다."라고 내게 말했다.
난 이러한 말들이 단지 스포츠를 위해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인생을 살아가는 데에도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난 부상으로 경기 내내 다섯 번 내지 여섯 번 밖에는 발차기를 하지 못했다. 그리고 정신적 싸움에서 이겼다. 정말 놀라웠다.
어느 날 64세의 태권도를 배우는 할머니한테서 편지가 왔다. 그녀는 "내 인생을 다시 옛날로 돌려줘서 정말 고마워요. 태권도를 배우기 전에는 아파서 많은 일을 할 수 없었는데 전 다시 간호사가 되었어요. 그리고 제가 정말 하고 싶었던 말도 다시 탈 수 있게 되었어요."라고 했다.
사람들이 더 나아지고 좋은 결과를 얻는 것을 보면 어떻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몇 년이면 싸울 수 없게 되는 다른 운동과는 달리 태권도는 삶과 함께 할 수 있는 스포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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