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격투기 과연 피의 굿판인가?
이종격투기는 웅크린 폭력욕구와 가학성을 비판 없이 불러낸다
지난 3월 11일자 오마이뉴스의 홍성식기자는 “피의 굿판을 걷어 치워라”라는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는 홍기자 자신과 동생을 매혹한 볼거리인 서커스와 권투라는 과거의 흥행을 이종격투기도 연관된 것이라는 주장으로 시작된다.그는 기사에서 서커스와 권투의 이면에는 냉혹한 정글의 법칙이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권투에 있어서도 "복서가 아니라면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할 수 일이란 갱과 호텔벨보이 밖에 없다"는 무하마드 알리의 말을 인용하여 때리고 맞는 것은 밥을 벌 수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의 슬픔이라고 했고, 왜 권투선수는 절대다수가 흑인인지, 수천 달러짜리 VIP석을 차지한 채 피 흘리는 흑인복서를 구경하는 사람은 왜 대부분 백인인지에 대해서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이것을 비판받아 마땅할 천민자본주의 혹은, 카지노 자본주의의 어두운 그늘이 숨겨져 있으며, 세상 어디에나 존재하는 냉혹한 정글의 법칙과 그 법칙을 부지불식간에 내면화시키는 세상의 시스템이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논리로 그는 이종격투기 역시 서커스와 권투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았다. 현재 흥행하고 있는 외형적 치장과 드라마적 요소가 서커스와 권투와 다를바 없다는 것이다. 특히 이종격투기 선수들이 치고받고 조르는 경기가 링바닥이 혈흔으로 낭자한 피의 카니발이라고 했다.
여기에 가진 거라곤 몸뚱이밖에 없는 가난한 사람들-시간 보내기가 무료한 유한계급의 관음욕구-가난한 육체와 엇나간 관음증을 엮어 상품으로 포장하는 장사꾼(자본주의)이란 시스템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것. 이를 두고 서커스나 권투와 다를바 없는 시스템으로 보았다. 이러한 이종격투기를 두고 그는 “웅크린 폭력욕구와 가학성을 비판 없이 불러내는 이종격투기”라고 했다. 또, 이종격투기를 경계해야 하는 이유도 이때문이라는 것이다.
외형적 이종격투기보다는 내면을 봤어야 한다
이러한 홍성식기자의 보도는지나친 편견에서 시작된 글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의 논리라면, 현대올림픽의 종목에서 레슬링과 복싱, 유도도 없어져야 종목이고, 영화에서 등장하는 잔인성 등도 예술이전에 모두 폭력과 가학의 숭배자로 보아야 한다. 또한 이종격투기가 지닌 경기규칙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비난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경기규칙을 이해하지 못하고 외형적인 모습만으로 자신의 편견에 부합시키려는 위험한 논리로 보여진다. 이외에도 자칫 이종격투기 선수들을 모두가 피에 굶주린 야수로 보는 것은 이종격투기 선수 개개인을 만나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지난친 표현으로만 보인다. 사실 이종격투기 선수들은 대부분 조용한 성격이고, 상당히 부드러운 성격을 가진 선수들이 많다.
이번 홍성식기자의 기사는 현대스포츠가 안고 있는 스포츠의 역기능적 요소만을 언급한 보도로 판단된다. 이런 부분은 그동안 스포츠사회학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연구되어 왔다. 일반인들은 이종격투기가 단순히 ‘싸움’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유심히 들여다 보면 아주 세밀할 정도의 경기규칙이 선수를 보호하고 있고, 그런 보호제도장치가 선수들의 다양한 기술을 적용시키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는 것도 이해해야 할 것이다.
이종격투기 선수의 문제가 아닌 대회주최측이 문제

홍기자의 이번 기사는 두가지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먼저 자칫 이종격투기팬들이 이성을 잃고 폭력성에 심취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에서 나온 것이고, 다른 하나는 스포츠의 자본주의상을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 반해 자신의 코드와 맞지 않는다고 해서 이종격투기 선수와 팬들을 지나칠 정도로 오해하는 듯한 기사가 아니었는가 하는 우려도 있다. 공정한 경기를 추구하는 스포츠정신을 이해하고, 이종격투기 선수들의 경기이후의 상대선수들에 대한 배려 등을 유심히 살펴 봤어야 했다.
대부분의 스포츠전문가들은 이종격투기가 잠시 흥행하는 현상으로 보는 경우가 많다. 그 이유는 과거 프로레슬링이 그랬고, 권투마니아들의 변화에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여기에 사회학자들은 ‘폭력’이라는 단어를 동원해 해당 스포츠가 지닌 순기능적 요소를 감추고 역기능적 요소만을 부각시켜 매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스포츠마니아들은 변덕이 심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스포츠가 관중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것을 이해하면 쉬웠을 것이다. 여기의 관중은 욕구변화가 다양하다. 따라서 이러한 스포츠를 주관하는 에이전시들이 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다양한 이벤트를 동원하게 되고, 자칫 선수들이 노예처럼 보이는 사례도 빈번하다.
하지만 이종격투기의 우려는 선수들에게 있는 것은 아니다. 홍기자는 이 대회를 주관하는 주최측들의 상업성을 놓고 비판했어야 더 큰 설득력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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