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름, 벼랑끝에 서다
LG씨름단 농성

LG씨름단의 농성
우리의 전통씨름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속씨름이 출범 21년 만에 무너질 위기에 처했다.12월 6일자로 해단이 확정된 LG투자증권 씨름단이 29일 김재기 한국씨름연맹 총재권한대행의 퇴진과 선수단 생존을 위한 비상대책위원회 구성을 요구하며 농성이 있었다.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연맹과 선수단 간의 뿌리깊은 불신과 주도권 다툼이 자리잡고 있다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김 총재 권한대행과 사무총장 등 집행부가 사퇴해야 강력한 제3의 집행부가 들어서 LG팀을 인수할 기업을 물색할 수 있고 씨름판 발전과 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현대중공업 씨름단 선수 14명도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와 LG씨름단의 농성에 합류했다. 신창건설 등 3개의 씨름단 중 2팀이 사활을 걸고 농성에 들어감에 따라 씨름판의 또다른 씨름이 이루어지고 있다.
현 집행부는 LG 해체를 막기 위해, 또 인수기업을 찾기 위해 그동안 노력했다고 했다. 하지만 씨름 인기하락과 경기불황으로 초래된 기업의 씨름단 해체가 몇몇 인사들의 영향력에 따라 달라질 수는 없다는 입장.
20년의 프로씨름 위기에 서다
우리나라의 씨름경기는 근대초기에 이르러 1927년 조선씨름협회의 창립으로 인해 경기화의 계기가되어 1972년 1월 1일 대한씨름협회의 규칙과 부칙이 제정되면서 1960년대보다는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경기화가 이루어졌다. 또한 1972년을 전환점으로 오늘날 경기의 현대화에 대한 붐을 조성할 수 있었던 계기는 KBS배쟁탈 전국장사씨름대회를 대한씨름협회가 주관하고, KBS방송공사 후원아래 언론 매체를 통해 전국적으로 처음 생중계 하여, 씨름발전에 큰 전환의 계기가 마련되었다.
그리고 1980년대 초부터 일부 씨름인을 주축으로 프로화의 움직임이 일기 시작했고 1983년 대한씨름협회 내에 민속씨름위원회가 출범하여 9년간 통합 운영하고, 민속씨름이 현재의 프로화된 모습을 갖추기 위해 1991년 2월에 대한씨름협회와 민속씨름협회가 완전독립, 분리운영되어 왔었다.
민속 씨름경기의 경기 개최 전개양상은 민속 출범이후 경기 개최 회수가 일시적으로 증가하였으며 씨름경기의 정착과정 속에서 체급의 축소를 통한 경기의 계속적인 증가를 보였다. 씨름경기가 발전기에 접어들면서부터 단체전 및 지역장사를 신설하여 경기의 개최 횟수를 늘려나가기 시작하였으나 씨름경기가 과도기적인 현상 속에서 천하장사의 경기를 년 1회씩 경기를 개최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와 1995년까지의 개최 수가 사실상 많은 것이었다.
그것은 씨름경기의 최고봉인 천하장사의 경기가 3개월에 한번 개최됨으로 경기의 질이 낙후됨은 물론 너무 자주 개최함으로써 천하장사의 권위상실과 씨름경기의 인기가 점차 감소하는 계기가 된 것은 아닌가라는 평가도 있다. 그 권위를 높이기 위해 경기의 개최 횟수를 축소하였고, 체급별 장사의 경기 개최횟수도 출범당시에 비해 민속 씨름경기의 정착과 발전기를 그치는 동안 서서히 감소하기 시작하여 년6회의 경기를 개최하고 있다.

수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벼랑끝에 선 프로씨름
민속씨름 출범이후 씨름단수는 15개였으며, 한국씨름연맹은 1997년까지 8개의 씨름단을 유지하여 왔으나 IMF 체재이후 씨름단이 급속히 빠른 속도로 해체되어 현재 존속하고 있는 씨름단은 3곳에 불과한 실정에 있어 가장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경기규정 변화의 특징은 관중들의 흥미유발을 위한 경기 진행의 박진감을 위해 경기장 및 경기시간을 축소시켜 기술위주의 경기가 이루어지는 한편 선수들의 체급 및 체중의 증가로 인해 선수들의 대형화를 가져왔다. 특히 심판복장의 변화는 한국 전통문화의 고취 일환 및 씨름경기가 전통무예로서 그 위상을 제고시키는데 많은 역할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민속씨름경기는 전통적인 측면에서 많은 변화를 보여왔다. 하지만 씨름경기의 정신과 의식적인 면은 철학적 부재와 학문적 연구의 결핍으로 그 체계성을 확립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다. 씨름경기가 과도기적 현상 속에서 경제적 어려움에 따른 의식화 및 세계화로 그 질적 향상을 갖지 못한 것도 지적되고 있다.
해외에선 창단바람 불고 있다
이러한 국내의 분위기와는 달리 해외에서 씨름연맹이 조직돼 눈길을 끌고 있다.
뉴질랜드 토착인인 마오리족 출신의 한 사업가가 뉴질랜드에서 한국 고유의 스포츠인 씨름협회를 발족한 것으로 뒤늦게 알려져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정치와 사업을 병행하는 영국계 마우리족인 번 위니타나(55)씨가 지난 2001년 뉴질랜드씨름협회를 만든뒤 자국 내 씨름 저변확대를 위해 종주국인 한국에 코치 파견 등 도움을 요청하기도 했다. 외국에서 현지인이 씨름협회를 세운 것은 처음있는 일.
뉴질랜드핸드볼협회장을 맡고 있는 위니타나씨가 씨름의 매력에 흠뻑 빠진 것은 사업차 한국을 방문하면서 시작됐다고 한다.
우연치않게 신원길 연맹 심판위원장과 인연이 닿아 씨름을 접하게 된 위니타나씨는 화려한 손. 발기술에 매료돼 귀국과 함께 지인들을 모아 협회를 발족했고 마우리족 등을 포함해 50명의 회원을 확보했다고 한다.
또 신원길 위원장의 조카로 자사에서 근무하고 있는 재뉴질랜드교포 신수현씨를 통해 한국에서 씨름 관련 비디오 테이프와 자료, 샅바 등을 구입하기도 했다고 한다.
마오리족은 한국인과 정서가 비슷한 데다 체격 조건이 좋아 씨름 기술을 전파하면 나중에 뉴질랜드 씨름 선수를 용병으로 역수입할 수도 있다는 게 신씨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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